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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올림픽 단상

2012-08-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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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친구 추천0 비추천0

2012. 8. 3. 금요일

아홉친구


 



 


열대야다. 올림픽을 보기에 새벽은 너무 덥다. TV 화면의 온도까지도 짜증나는 계절.


 


예전에는 올림픽 열리면 한마음 한뜻으로 TV 앞에 모여앉곤 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새벽에 열려야 제맛이다. 밤잠 설쳐가며 한 게임 보는 사이 날은 훤히 밝아오곤 했다. 그래도 좋았다. 금메달이라도 따는 날엔 남일 같지 않게 기뻐했다. TV에선 프로필과 함께 웅장한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나가자 싸우자 이겨야 한다…’ 곧이어 금메달을 딴 선수 고향집이 생방송으로 비쳐진다. 아니 어떻게 알았는지 농악단이 모여 춤사위를 신명나게 펼치던 광경도 흔했다. 더 전에는 선수랑 엄마랑 전화 통화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울리곤 했다.


 


이젠 다 옛날이다. 더 이상 군가 비슷한 대한건아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선수 집도 안 나온다. 대통령의 격려전화 뉴스는 지금도 있으려나 모르겠다만.


 


공감은 예전 이야기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 게다가 요즘 선수들, 예전처럼 정이 안 간다. 너무 훤칠하고 예뻐져서다. 자고로 국가대표란 심권호 고정운처럼 생겨야 제맛이다. 뭐라 말 한마디 안해도, 아 뼈빠지게 고생했겠구나 서러웠겠다 하며 고개를 끄덕여지게 하던 그들. 근데 요즘 선수들은 하나같이 엄친아 엄친딸처럼 생겨먹어서, 알아서 잘하겠거니 내버려두게 되는데, 그럼 또 제깍제깍 메달들 잘 따온다. 물론 사실은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견뎠겠지만, 국민된 한 사람으로써 이미지가 그리 박힌 걸 어떡하나.


 


[caption id="attachment_98294" align="aligncenter" width="191" caption="심권호"][/caption]


 


스포츠 국가주의는 예전같지 않다. 그런 면에선 올림픽보단 월드컵이 잘 팔릴 게다. 월드컵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거다. 4년마다 한번 불태우라고 말이다. 올림픽은 슬슬 판이 줄어들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스포츠 축제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수익 구조를 논하기에 한계가 있는 올림픽은 조금씩 낙후되는 모습을 보인다. 오심은 그 징조다.


 




 


1초 이하의 단위를 계측하지 않아서, 또 스톱워치 측정을 대충 맡겨서 발생한 신아람 사건은 올림픽의 운영 구조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낸다. 박태환의 부정출발 논란은 심판의 판단이 컴퓨터의 계측에 앞서 일어났기 때문에 생겼다. 배드민턴의 조별리그 예선 구조는 ‘져주기’가 일어날가능성이 높다는 게 미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도 밀어붙여서 결과적으로 사건이 터졌다.


 


우리나라 선수가 관련된 오심 사건이 많아서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필자는 이것이 올림픽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운영에 만전을 기할 정도로 세심한 신경을 쓰려면 투자가 부족했던 거라고 말이다. 영국의 문제일 수도 있고, 한국을 견제하려는 국제 스포츠계의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다. 올림픽 자체가 후지기 때문에 문제가 돌출되는 것이다.


 


사재혁 선수가 출전하길래 잠깐 보았던 역도 종목에선, 중국 선수가 인상 세계신기록을 2차시기에서 작성한 이후, 3차 시기를 타임 오버로 놓친 일이 있었다. 한 선수가 연속 출전하려면 2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원래 출전하기로 했던 다른 선수가 빠지면서 휴식시간이 줄어들었다. 타임 오버로 3차 시기를 놓치자 중국 스태프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그저 중국의 잘못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다만 세계신기록 갱신을 앞둔 선수를 대하는 태도 면에서,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심판진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어쨌거나 세계신기록을 들어올리려 했던 선수가 아니었나. 장미란이 그런 경우에 처하면 우리 입장에서도 속이 끓을 게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이 첨단 시대에 심판들이 4:3 모니터를 쓰고 있는 것도 이상했고.


 


유도에서 3:0 승리를 0:3 패배로 바꾸어버린 심판위원장 이야기는 오심의 백미를 장식한다. 한 사람의 권력자가 여려 명의 의견을 묵살할 수 있을 정도로 스포츠계는 여전히 권위적이다. 올림픽이 후지다는 것은 이러한 속성이 현 시대의 트렌드와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프로 스포츠들에서 보듯, 수익 구조에 입각한 투자는 이를 교묘히 포장하여 세련되고 과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 시킨다. 올림픽은 그렇지 않다. 기업 홍보를 위한 투자는 있을지 몰라도, 내부적인 경기 운영은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 프로 스포츠를 보던 사람들은 거기서 낙후성을 찾아낸다. 오심과 같은.


 


또 하나의 낙후성은 우리 언론에 관한 것이다. ‘대한건아’ 노래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언론도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애국심과 정신력을 강조하는 캐스터들의 버릇은 여전하다.


 


역도의 사재혁 선수가 팔이 꺾여 경기를 포기해야 했을 때, 캐스터는 불굴의 의지를 기대하는 멘트를 날려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더 당황했던 건 캐스터 옆에 있었을 해설위원이었다. 팔이 꺾여 아령도 못들 판에 무슨 수로 바벨을 든단 말인가? 이런 멘트가 나오는 건 캐스터의 의지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저 습관이다.


 


[caption id="attachment_98295"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사재혁"][/caption]


 


가봉과의 축구 경기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부상당해 나온 선수가 있었다. 가봉은 안 그래도 전 경기에서 퇴장당한 선수가 있어 선수교체 카드가 얼마 없었으니, 초반 선수 부상은 악재 중의 악재였다. 그걸 놓고서 ‘좋은 현상입니다’라고 멘트하는 건 너무했다. 아무리 우리 편을 든다고 해도, 부상당한 선수를 기쁜 마음으로 해석하다니. 그런 태도라면 마라도나를 로우킥했던 과거도 애국행위가 될 것이다.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다. 우리보다 훨씬 덩치 큰 나라도 메달 수가 우리보다 적다. 그러면 그 수준에 맞는 스포츠 정신을 보여줄 때가 됐다. 승리와 메달에 집착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의 견제를 받기에 충분하다. 펜싱의 어느 선수는 습관적으로 변칙 플레이를 일삼아 수 차례 경고를 받았는데, 원래 그 선수가 그런 기질이 있다고 해도, 정통파 플레이어들의 반감을 사는 건 당연하고 더 엄격한 제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걸 언론에서 포장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배드민턴의 져주기 사건 보도에서는 희망적인 모습을 본다. 중국 선수들 때문에 우리는 4명이 퇴출되어 억울하게 되었다. 시작은 걔네들이 먼전데 말이다. 정말 속 쓰리겠지만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쨌든 정정당당한 시합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면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보도들이 나오는 건, 사실 그게 당연한 거지만, 조금은 언론 보도 행태도 바뀌어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올림픽의 낙후성도 바뀌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는 기존의 권위가 답습되는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인프라가 갖춰지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언론의 낙후성도 극복되고 나면 예전의 ‘대한건아’가 그리워질 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들 가카께서 다 해주셔야 될텐데 올해로 끝난다니 안타깝다. 문득 다음 올림픽 즈음엔 어느 공공기관에 계실지 궁금해진다. 몸에 좋은 두부라도 한 모 사드려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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