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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8일 자로, 사회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여기서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안을 발표했는데, 3단계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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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는 특기자, 논술, 수능 위주 전형의 요소가 강한 가짜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하는 최상위권 대학의 행태를 바로잡는 것.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이 해당된다.


2단계는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교과 평가요소 중 ‘교내수상실적, 인증 및 자격, 독서활동, 자율동아리 활동’ 등 사교육 개입 여지가 큰 4개 영역을 반영 금지하고, 학생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교사추천서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3단계는 능력 및 과정 중심의 교과수업 평가로 이를 반영토록 학생부 기록을 개선하여, 학생부 교과 중심의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상당수가 이게 뭔 소린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지금 입시제도는 너무나 복잡하다. 고등학생 아이가 있는 학부모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엄두도 나지 않고, 사실 학부모라고 해도 입시 전형의 의미를 파악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교육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 우리나라에서는 피해갈 수가 없다. 자식의 밥벌이에 좀 더 유리하다고 여기면 쓸개라도 빼야 하는 게 우리나라 부모다. 게다가 ‘학벌’의 위용은, 사회생활 해보면 처절하게 깨닫듯이, 일생토록 한국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카드다.


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긴 하지만, 부모의 소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비싼 학원교습, 그리고 컨설팅에 의존하지 않고선 이해가 안 되는 복잡한 입시전형 때문에, 대학 들어가기가 수월찮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바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만족할만한 대학입시안이 정립될 수 있을까?


너무나 복잡한 문제라서 짧게 이야기하긴 어려울 듯하다. 어쩌면 긴 시리즈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한가지 말해두자면,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좌익 우익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진보적 관점을 가진 단체가 좀 더 나은 안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은 허상이며, 보수 진영의 관점이 문제가 있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대학입시 문제는 학벌, 즉 엘리트주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여기서 자유로운 정치진영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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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현행 대학입시안의 구성, 그리고 문제점

 

1-1. History

 

1992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 세대들, 그러니까 40대 중 초반 이상의 사람들은 지금의 입시 체제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때는 딱 한 번 시험 보고, 안되면 재수했다. 무지막지하지만 투명하긴 했다. 경쟁률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 원서를 몇 장씩 써놓고 어느 대학에 제출할지 눈치작전이 극심했던 시기다. 1988학년도부터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뀌어 눈치작전의 폐해를 없애려 했지만, 단 하루에 인생 결정 나는 로또라는 본질에선 벗어나질 못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었던 때가 20년 전이다. 2016년 현재 시점에서 아이가 고등학생이라면, 아직은 부모가 학력고사 세대인 경우가 많다.


1993, 그러니까 94학번부터 수능 체제로 바뀌게 되었는데, 2번을 치를 수 있었다. 좋은 점수 나온 시험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는 학력고사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학력고사와 수능의 근본적인 차이는 ‘문제은행’의 개념이다. 학력고사 때엔 교수들이 호텔 방에 틀어박혀서 별의별 문제를 만들어냈다. 수능은 문제양식을 만들고 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주를 이루는 시스템이다. 지금 학생들도 수능을 보니까, 당연히 기출문제를 열심히 풀어보아야 문제양식에 익숙해질 수 있다. EBS 교재 연계성이 강하다는 것도 근본적으론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출제 방향성을 투명하게 하는 것, 고교생의 일반적 수준을 벗어나는 고난도 문제를 지양하는 것, 과외를 줄이는 것...그러니까 수능의 도입도 공교육을 살리자는 데 취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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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자 최상위권 대학이 반발한다. 난이도가 쉬워지면 최상위권 학생을 뽑는 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력고사 때엔 만점자가 드물었고, 340점 만점에 300점 맞으면 서울대 간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어려웠다. 나이 먹은 분들은 기억할 텐데, 92학번이 배출된 1991년의 학력고사는 갑자기 쉬워져서 300점 이상이 양산되는 바람에 일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수능의 예고편이라고 해야 할까.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들은 문제은행 개념의 수능에 대해 신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94학년도 수능 실시와 함께 대학에선 본고사를 치렀다.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 가서 치르는 본고사는 1981학년도까지 시행됐었다. 당시 국·영·수 중심의 어려운 본고사를 대비하느라 과외가 성행하는 문제가 있어, 전두환 정권은 과외를 금지하는 한편 본고사도 없애 학력고사 체제로 변화시켰다. 그런데 그 어려운 본고사를 10여 년 만에 부활시켰으니, 사회적 반발이 거셌다. 2번 치르는 수능도, 시험의 난이도가 고르지 않은 데다가 먼저 잘 본 애들이 학교 수업을 놓다시피 했기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단번에 엉망이 돼버리는 문제도 발생했다.


결국, 2번 치르는 수능은 1994학년도 한번 시행하고 끝났다. 본고사는 2년 정도 더 유지됐지만, 논술이나 면접, 적성고사 등으로 유형이 다양화되며 ‘어려운 본고사’ 체제는 사라지게 된다. 2002년에 들어 수능 9등급제가 도입되고, 이전에 재수생을 대상으로 했던 ‘수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본고사에서 바뀐 다른 입시 전형들이 ‘수시’란 이름으로 통합된 것이다. 이리하여 수능 점수 중심의 ‘정시’와 대학의 다양한 선발전형인 ‘수시’로 나누어 지금의 입시 체제가 정착하게 된다.



1-2. 수시와 정시


입시 전형의 역사를 짤막하게나마 말한 이유는, 수시와 정시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시는 대학의 재량이 최우선인 전형이다정시는 교육부에서 관할하는 수능 점수가 우선인 전형이다수시에는 크게 4종류가 있다.


학생부 교과전형 :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위주로 선발한다.

학생부 종합전형 : 고등학교 학생부에 기록된 교과 및 비교과 사항을 종합하여 선발한다.

논술전형 : 대학에서 치르는 논술 시험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

적성고사 : 대학에서 치르는 적성고사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


정시는 오직 하나다.


정시 : 수능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


여기에 특기자 전형, 지역균형 전형 등이 수시나 정시에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선에선 위 정도의 구분이면 충분하다.


언뜻 보면 정시 쪽이 깔끔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수능 성적을 표준점수 또는 백분위 중 무엇으로 활용할 것인지, 어느 과목에 가중치를 두는지는 대학 자율이다. 보통 상위권 대학이라고 하면, 국·영·수는 표준점수를 활용하고 탐구영역은 백분위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마다 점수 반영이 다 달라서, 소위 ‘변환점수’로 계산하기 때문에 일률 비교가 곤란하다는 게 문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총점수가 같은 학생끼리도 어느 대학에선학생이 높고 다른 대학에선학생이 높은 사태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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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학년도 연세대 정시 반영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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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학년도 한양대 정시 반영비율



이게 모든 대학마다 다 다르다. 진짜다. 위의 예시에도 단순 반영 비율뿐만 아니라, 한양대 체육학과를 가려면 수학을 안 해도 되지만, 연세대 체육교육과를 가려면 수학을 해야 한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만약 수능만이 입시의 유일 기준이 된다면, 상대적으로 수시의 복잡성에 가려져서 그렇지, 정시 변환점수를 놓고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것이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면 몰라서 그렇지, 매년 12월이면 대학별 유불리 따지느라 굉장히 소란스럽다. 그러니 예전 원점수 총합만 갖고 원서 넣던 생각을 버리시라.


그렇지만 정시는, 어쨌든 나온 점수를 가지고 계산할 수는 있다(대학 홈페이지에 변환점수 프로그램이 있어서 입력하면 알 수 있다). 내가 떨어지고 남이 붙었다면, 그 사람의 변환점수가 더 높았을 것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시에 학교 내신을 반영하는 경우도 꽤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서울 소재 대학의 경우엔 내신 4~5등급까지 감점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가령 내신 총점이 100점이라고 하면, 기본 50점 준 다음에 1등급부터 5등급까지는 0.5점씩 감점하다가 6등급 이하부터 10점씩 까는 식이다. 물론 최종 점수는 소수점 두 자리까지도 보니까 영향이 제로는 아니지만, 수능 하나 더 맞으면 내신 1등급과 5등급의 점수 차가 없어지는 상황이니 실질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정시는 수능이 전부다.


그러나 수시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를 알기가 힘들다. 수시 선발의 불투명성, 이 점이 현재 입시에서 큰 문제를 차지한다.



1-3. 수시 전형의 불투명성


우선 학생부 교과전형에서는 고교 간 학력 격차가 문제다. 현재 명목상으론 고등학교 사이의 격차는 인정되지 않는다. 즉 서울 과학고 학생이든 지방 일반 고교 학생이든, 학교 내신 등급이 같으면 그냥 같은 점수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게 평등한 대책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고교 차별을 할 거라고 예상되지만 투명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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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말하자면, 학생부 교과전형은 최상위권 대학에서 기피하는 전형이다. 아예 뽑지 않는 대학도 있다. 대신 경기권 이하부터는 교과전형이 사실상 대세다. 만약 서울 시내의 유명 대학을 교과전형으로 가고 싶다면,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놓지 말아야 함은 기본이요, 거기에 전과목 1등급을 하기 위해 만점을 목표로 해야만 한다. 1등급이 상위 4%인데, 100점 맞은 학생이 많을 정도로 학교 시험 문제가 매우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학교 시험은 자습서를 베낀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공부 좀 하는 지역, 예컨대 대치동에선 교과전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수능에 전념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 반대로 지방 고교에선 내신 좋은 학생을 우선 관리하는데, 서울 소재 대학을 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전형이기 때문이다.


논술전형은 불투명성 자체다. 점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학생은 오직 당락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논술이 살아남는 이유는, 글을 잘 쓰는 학생 또는 수리논술을 잘 푸는 학생은 높은 확률로 성적이 꽤나 좋기 때문이다. 독해한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는 사고력을 글로써 풀어내는 능력은, 고등학교 단계에선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그래서 논술 전형이 남아있는 대학은 총 28개교로 숫자는 적지만, 서울 경기권 내지는 유명대학들뿐이다. 지방대에선 거의 논술을 보지 않는다.


성고사는 국·영·수 중심의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는 시험이다. 투명하긴 하지만, 수능과의 연계성이 매우 강해서 이걸 미리 준비하는 학생은 없다. 객관식 문제를 빨리 풀어내는 능력은 연습량엔 비례할지 몰라도 재능을 판별해내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적성고사는 상위권 대학에선 실시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봐서 중위권 대학에서 실시한다. 현재로써도 실시 대학이 많이 줄었으며 얼마 안 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한 전형들이 나름의 불투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그리고 이 전형이 수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학생부 종합전형에서 교과는 ‘내신성적’을 뜻한다고 봐도 된다. 비교과는 내신 성적 이외의 다른 모든 사항이다. 출결, 진로희망, 교내활동, 독서 이력, 세부 특기사항 기재 등등...수치화되기 힘든 학생의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내신 등급조차도 수치화된 점수는 아니라는 거다. 내신 2등급이 3등급보다 유리하긴 하겠지만, 그걸 수치화하지는 않는다. 비교과 영역과 함께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학생부 종합전형은 무얼 기준으로 뽑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앞서 말한 전형들은 나름의 중심이 있다. 학교 시험이든 글쓰기든 뭔가 기준이 되는 것이 있고, 나름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다. 종합전형은 그게 없다. 학생부에 기재된 어떤 점이 인정받아 붙고 떨어졌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다. 출결과 봉사활동은 다 기본적으로 만족한다고 하면, 교내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내 각종 경진대회 참가하고, 진로 희망에 맞춰서 책 목록도 작성해 놓는다. 그래도 떨어질지 붙을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된 이유가 있다. 이걸 알아야 왜 입시가 이 모양이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1-4. 학생부 종합전형이 왜 대세인가?


수능, 학교 시험, 논술, 적성고사...이들은 모두 학교보다도 학원의 영향력이 강한 영역이다. 이것 중 하나라도, 노력해서 잘해보겠다고 마음먹은 학생들은 모두 학원에 다닌다. 뛰어난 강사를 찾을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맞춤으로 집어내어 보완해주는 선생을 만날 수도 있다. 학원 강사들은 실력 없으면 도태되는 냉혹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몇십 명을 상대해야 하는 교사는 이게 불가능하다. 또 학교와 달리 학원은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 공부 영역에서 주도권은 이미 사교육이 가져간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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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생부 기재는 사교육이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어떤 주옥같은 조언을 받았든 간에, 최종적으로 학생부에 특기사항을 기재하는 건 교사의 권한이자 의무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활용하겠다는 학생이라면 학교와 담임의 말을 지켜야만 한다.


즉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확대되는 데엔, 사교육으로 이탈한 중등교육의 주도권을 공교육에 정착시킨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불투명성이 너무나 크지만, 그것보다도 공교육 주도권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교육부는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부의 입장은 수긍할 수 있다. 지금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 안 하는 아이는 자고, 공부하는 아이는 학원 숙제를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많겠지만, 새삼 충격을 받을 분도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들은 이제 학교에서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 이미 학원에서 밀도 높은 수업을 받아본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만족할 수가 없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시장 경쟁을 통해 걸러진 강사와 공무원 자격이 보장되는 교사 사이에서 교습 능력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또 학원 강사는 교사들이 늘 싫어하는 수많은 보고서와 잡무의 부담 없이 수업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에 자신이 있는 교사라면 학원계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적이 중심이 되는 입시 전형에서 학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 자퇴하고 검정고시 본 후에 수능 치는 전략이 있었다. 학교 수업할 시간에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3이 되어 수능 공부 시작하게 되면 각종 명목으로 조퇴하는 학생들이 파다했고 학교는 이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렇게 학원 가는 애들이 빠지고 나면, 교실에는 대학 포기했거나 돈 없는 애들만 남게 된다. 이런 사태를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따라오면 대학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만 했다. 입학사정관제의 불투명성에 대해선 여전히 납득할 수 없지만, 그 취지는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1-5. 정말 사교육 배제가 해결책인가?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학생부 종합전형이 공교육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취지라면, 사걱세의 저 대안은 왜 나온 것인가? 


우선 1단계에선 가짜 학생부종합전형을 비판하고 있다. 최상위권 대학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평가요소를 집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는 교과로 1차 선발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본다. 이 면접은 질문지가 있어 그에 구술로 답하거나 수리적인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연세대 고려대는 특기자 전형이 있는데, 일반적 학생부 종합전형과 달리 학교 밖에서의 각종 활동, 외부 AP 시험 성적, 올림피아드 수상내역, 어학 자격증 등을 기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스펙을 확보할 수 있는 학생은 사실상 과학고와 외국어고 출신들이므로 불평등 여지가 많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야기들을 되새겨보면, 최상위 대학에서 왜 이런 꼼수를 부리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공교육에 주도권을 주긴 하지만, 인재를 가려낼 결정적인 기준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단이고, 무엇보다 학생의 지식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사실상 출신교를 제한시켜 버리거나, 자체 구술 면접으로 걸러내려는 것이다. 어차피 이 방법은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면 할 수도 없고 필요성도 없다. 따라서 사걱세의 비판은 한편으로, 지금의 학생부 전형이 최상위 인재를 판별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제공하며, 공부 잘하는 학생에겐 역차별로 작용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2단계의 비판, 즉 교내수상실적, 인증 및 자격, 독서활동, 자율동아리 활동 등의 영역을 반영 금지하라는 것도 학생부 종합전형의 맹점을 보여준다. 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한다는 지적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평가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교사의 학생부 기재가 천편일률적이며 학부모의 압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안 그래도 불투명한 학생부 종합전형의 변별력은 더욱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대안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교사추천서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사실 교사추천서는 의미 없는 좋은 표현의 나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폐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사의 의견 기재 부분을 비공개로 하라는 건 생각해봐야 한다.


부실한 공교육이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이게 모두 다 사교육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선생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학창 시절 정말 꼴 보기 싫었던 선생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학생부를 비공개로 기재할 것이고, 그걸로 내 대학입시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시라. 누군가에겐 그 선생이 마침 고3 담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붕괴 이유엔 부실한 교육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교내 수상실적, 인증 및 자격 부분에서 분명히 사교육이 작용할 수 있다. 독서도 그렇다. 미리 배우고 좋은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이 좀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싫다면 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심화학습을 진행하여 교내 경진대회나 경시대회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 굳이 학원가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 한다. 독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면 된다. 그러나 과연 이걸 자율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업무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갖춰진 것도 아니다. 교육부에서는 이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사 인원 감축을 시키고 있다. 그 대신 시간제 교사를 유연하게 쓰면 된다고 하는데, 실력 있으면 강사하지 무엇하러 박봉에 잡무 많은 시간제 교사를 하겠는가? 그리고 그걸 정말 공교육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일까. 장소가 학교면 다 공교육인가. 방과후학교 시간에 학원 강사 불러다가 수업료 걷고 있는 실태도 공교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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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말하자면,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내 활동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바다. 단지 학생부에 기재되는 내용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고정급 받는 교사들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지도하고 더 심화된 내용으로 이끌 아무런 유인이 없다. 있다면 오직 학생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뿐인데, 이를 실행에 옮기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그 선생님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도 있는 그때 그 선생님처럼, 참으로 존경받을 분들이다. 그러나 그분들도 인정하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가 않다. 교사는 결코 완전무결한 초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3단계로 나아가, 능력 및 과정 중심의 교과수업 평가로 이를 반영토록 학생부 기록을 개선하라는 지적에선 실소가 앞선다. 너무 이상적인 교사상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를 객관적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능력과 과정 중심으로 교사가 평가하게 되면, 촌지의 악습을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도 촌지가 없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공교육의 권위가 떨어지고 나서는 그 촌지가 사교육 비용으로 옮겨갔다. 어떻게 보면 나아진 것이다. 최소한 학부모들 입장에선 선택 가능하고 클레임도 걸 수 있는 학원에 비용을 부담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교사가 능력과 과정 중심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특기사항 기재를 비공개로 한다면, 촌지를 바치지 않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1-6. 교육부의 문제


앞서 입시 변천의 역사를 얘기한 데엔 이런 뜻도 있었다. 개악처럼 보여도 그 변화 속에는 이전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취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쉬운 수능, 중학교의 내신 비기재, 절대 평가제 등은 예전에 있었던 지나친 학업 부담을 덜어주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 사회 나가니까 그 암기한 것들 다 쓸데없더라, 그에 대한 공감이 지금의 교육을 만들어온 바탕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사교육이 성행한 이유는 공교육의 부실 때문이었다. 실력 없는 학교 선생에 대한 한풀이가 선택 가능한 학원 시장의 팽창을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고 공교육의 붕괴를 바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공교육의 내실을 기할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방기한 상태에서, 교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공교육의 주도권은 회복되지 않는다.


대학 입시안은 교육부가 만지기 쉬운 카드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취지는 분명히 이해한다. 하지만 중등교육계에 대한 투자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지금의 불투명성은 고스란히 교사의 불투명성으로 이어지고, 지긋지긋했던 촌지 문화의 부활을 불러올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걱세의 비판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그래서,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주체에게 그 주도권이 옮겨갈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고등학교 교사보다 대학교수의 판단이 더 공정하다고 여겨진다면, 본고사처럼 대학이 주도권을 가지는 입시안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의 논술이나 심층면접도, 본고사만은 막으려는 교육부에 대한 대학의 절충안이다. 특히나 발언권이 강력한 최상위 대학에서는 학생의 지적 수준을 판별하는 장치를 반드시 확보할 수밖에 없고, 교육부도 그것만은 완전히 틀어막을 수 없다.


요컨대 지금의 입시 전형이 요상 복잡한 이유는 이렇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취지에 따른 입시안을 만들어놓고 그에 뒤따라야 할 지원과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들의 요구를 무조건 막지도 못해 누더기 전형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혼란은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사교육 업계를 주적으로 상정해 그 혐의를 몰아간다. 사교육 업계는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를 발생시키는 원죄가 있으니, 뭐라 대꾸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부의 무능, 혹은 정권의 무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아홉친구


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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