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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키(Digi-key Electronic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전기, 전자공학과 관련된 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거의 한 번은 들어봤을 만한 업체인데요. 예전에 제가 운영하던 회사에도 디지키의 카탈로그 책자가 몇 개씩 오곤 했었습니다. 택배기사님들이 도대체 뭐하는 회사기에 대한민국 택배업계를 비수기에 이렇게 바쁘게 할 수 있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국내 중소기업의 몰락은 결국 그 생태계를 황폐화시켰습니다. 국내에서 부품·소재를 제조하는 기업은 물론 해외에서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여 공급하던 대리점들의 폐업으로 이어졌죠. 그러다보니 소량의 부품 구입이더라도 달러가 아닌 국내 은행에서 현금 송금을 하듯이 손쉽게 거래가 가능한 ‘디지키’의 성장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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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인 ‘수입’은 이런 기업 환경의 변화 때문에도 쓰게 되었는데요. 요즘에 각광 받는 드론처럼 벤처기업들은 단순히 소프트웨어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에 대한 창업도 합니다.


청년벤처기업들이 하드웨어 제조 기반인 경우에는 사업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애로사항이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스스로 수입을 해서 해결하지 않는 한 뾰족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글로나마 작은 컨설팅을 해드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갑에서 일했던 사람이 을이 되어 일을 하면 처음에 좀 조깥지만, 의외로 갑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줍니다. 을에서 일했던 사람이 갑의 위치가 되면 을의 처지를 이해해서 갑질을 자제하죠(항상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이렇듯 경험을 통해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본연의 업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수입도 마찬가지인 것이 수출을 해 본 사람은 상대 seller(판매상)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더 효율적으로 관계를 조율할 수 있습니다.


수입을 해 본 사람은 수출을 잘 할 수 있고 수출을 해 본 사람은 수입을 잘 할 수 있다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함에 있어 수입과 수출을 따로 떼어 보고 한 쪽에만 치중하는 오류가 없었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업에서 수입을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국내 시장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수입해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는 유통


둘. 국내에서 수급이 불가능한 원재료(소재, 부품 등)를 조달하는 구매


셋.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 외에 제품의 라인업을 보강하기 위한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중소·벤처기업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로 언급한 해외 원재료 조달은 갈수록 그 중요도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요. 세 번째의 경우는 제가 중소·벤처기업들을 컨설팅할 때 새로운 사업방향으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욕심과는 달리 소비자의 요구를 모두 만족하는 제품 라인업을 중소기업 수준에서 모두 직접개발하고 제조해서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이럴 땐 OEM을 선택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은 줄이면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그럼 수입을 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짚어볼 텐데요. 지난 시간에 선수 학습 과목은 ‘알아서 공부해~’라고 하니 속상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번 시간엔 차근차근 초보 무역기업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과의 거래에서 주의할 점을 사례를 들어 적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결제 조건(Payment term)


T/T(Telegraphic Transfer, 전신환. 전신에 의한 송금제도), L/C(Letter of Credit, 신용장. 은행이 거래처의 요청으로 신용을 보증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증서), Paypal(에스크로. 제3자가 상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계를 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외로 T/T거래가 많습니다.


관세청이 매년 발행하는 무역통계 자료를 보면 수입 중 1만 불 미만의 거래가 총 거래의 79.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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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이 분석한 수입 대금별 통계
(출처: <2014년 그림으로 보는 무역통계>, 관세청)


소규모 무역인 경우에는 첫 거래 시 대부분 국가의 수출자(Seller)들은 수입자인 나(Buyer)에게 ‘T/T in advance(선금 일시불)’을 요청합니다. 돈 떼일까 걱정되어 그러는 거죠.


L/C의 경우는 국내 은행이 수입대금을 대신 내줄 정도의 신용(담보)능력이 있을 때에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업의 영업상황이 양호하고 재무구조가 좋을 때만 개설할 수 있죠. L/C는 구매자금을 은행이 대신 내주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을 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죠.


Paypal은 ebay 등 전자 상거래 결제 방식으로 유명하죠. 본 거래 직전에 sample order나 trial(initial) order를 할 때 활용하시면 아주 유용합니다. T/T를 설명할 때 외국에서 수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South Korea라는 잘 모르는 나라의 누군가에게 물건을 판다는 게 위험하게 느껴지니, 발주 시 현금일시불을 요구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우리 입장도 마찬가지죠. 기껏 선불로 송금했더니, 벽돌이 든 상자가 들어오면 난감하잖아요. 그럴 때 Paypal을 씁니다. Paypal은 기본적으로 에스크로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걸 통해 기업은 수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는 거죠. 개인이 해외직구 할 때만 쓰는 서비스는 아니랍니다.


“어차피 첫 거래(Trial order, Sample order)니, 당신네 Paypal account를 알려주면 거기로 입금하겠다.”고 얘기하면, 상대방은 ‘아. 내가 거래하려는 회사가 생초보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무역에서 상대방이 국제적 상식(?)을 갖춘 파트너인지 생초보 or 돌아이인지는 수시로 검증해봐야 합니다. 그건 수입하는 우리도 수출하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역을 하기 전에 반드시 공부를 해보시라고 한 이유이기도 한데요. 상대방은 내가 쓰는 단어 하나에서 바로 수준을 파악합니다. 클럽에서 같이 춤을 출 상대방을 고를 때, 국민체조나 하고 있는 사람하곤 부비부비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 처럼요.



2. 거래의 조건(가격, MOQ 등)


견적(quotation)이나 오퍼시트(Offer sheet. 물품의 매도 사실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한 문서)에는 가격과 MOQ(Min Order Quantity, 최소구매수량) 등이 나옵니다. 이걸 꼼꼼히 살펴보시고 확인해둬야지 나중에 그런 줄 몰랐다라고 항의해봐야 힘들어집니다. 국제간의 거래이다 보니 분쟁을 조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거든요.


가. 가격의 정확한 인식


가격은 반드시 운송 조건(incoterms)과 함께 표기됩니다. EXW(공장인도. 매도인의 영업장 구내에서 화물을 인도), FOB(수출항본선인도. 매도인이 선박의 적재부터 본선상의 화물 인도의 끝까지를 책임지고, 이후는 매수자가 책임), CIF(운임 및 보험료포함인도. 수출업자가 화물을 선적하고 운임료와 보험료도 부담), CPT(운송비지급인도. 수출업자가 목적지까지 화물을 인도하면서 운송비 부담) 등을 표기하는데, 이 조건은 상호 간 비용과 의무에 대한 국제적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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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트리)


예를 들어 국내 수입상이 샘플 제품을 DHL로 수입하는 경우, CPT조건이 가장 합리적이겠죠(참고로 FOB는 국내에서 수출 신고 시 기본 조건으로 보고, 수입 신고 시에는 CIF를 기본조건으로 봅니다).


EXW와 같이 바이어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무역 초보들은 ‘이거 편하네’하면서 자위적인 해석을 하고 붙여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Seller는 수입 뿐 아니라 교육(?)까지 시켜야 하니 일단 제외해야겠죠. 반대로 우리가 역으로 유럽권의 Buyer에게 오퍼시트를 보낼 일이 생겼을 때 일반적인 상품에 EXW같은 조건을 붙여 버리면, 4가지 없는 놈으로 인식할 수도 있죠.


견적 가격이 US$50고, 국내에서 사는 건 US$55라고 했을 때, 수입을 처음 해 보시는 분들이 ‘훨씬 싸구나! 얼른 수입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품가격을


US$50 + shipping cost + (Handling Charge)


로 생각하시고, 이게 맞는지 Seller에게 확인을 해보셔야 합니다. ‘Handling Charge’에 괄호를 쓴 이유는 수량이 적은 경우 운송비를 제외한 별도의 비용을 더 받는 Seller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Handling Charge = shipping cost(TNT, DHL 비용 등)로 해석하면, 분명 물건 값과 handling charge(오해한 운송비?)를 함께 보냈는데도 수신자 부담(Carriage forward)로 오는 경우가 생깁니다.


나. MOQ에 대한 이해와 대응


MOQ(Minimum Order Quantity)는 최소 구입 수량입니다.


MOQ는 공장에서 필요한 원·부자재의 최소량, 생산설비의 가동 효율성, 컨테이너 적재 최대 수량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해외 셀러들은 재고(Stock)를 유지하지 않고 바이어의 구매 주문이 있을 때만 생산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터무니없이 많은 수량이 MOQ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경우에는 Break down 된 견적서를 요청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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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 down 된 견적서'란 이런 거다


Seller가 일정 재고를 유지하고 있거나, 과하게 지른 견적이라면 다시 수량이 조정된 견적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국내 기업과의 거래에서도 필요한 과정이죠.


또한 sample, trial(initial) order를 진행하면서 미래 구매 예상량(forecast)를 주고 대응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EOL(End Of Line, 단종)이 잦고, 생산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Seller들을 미리 걸러내는 지혜가 필요하니까요. 특히 국제적 브랜드를 확보하지 못한 ‘일단 만들어 팔자’식의 개발도상국 중소기업들은 단종이 잦습니다. 거래가 이루어졌을 땐 단종 계획이 있다면 즉시 알려 달라고 요청해 두세요.



3. Lead time


주문 접수 시 제품을 제작해서 ‘선적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역의 특성 상, 수출자가 내가 언제 물건을 창고 문 앞에서 받을 수 있을 지를 알려줄 수 없죠. 그리고 말씀 드렸듯이 대부분 수출자는 FOB를 기준으로 거래를 제시하기에 Lead time은 ‘물품을 배에 싣는 시간’까지로 보는 게 관례입니다.


지속적인 거래가 필요한 경우라면, Lead time은 내가 원하는 시기에 재고들을 채워놓기 위해 제대로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절 아이템, 기획 아이템처럼 일정기간이 지나고 나면 판매가 어려운 아이템인 경우 반드시 Seller에게 확인을 받아 두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프로모션을 준비해서 발주했는데 2월에 물건이 들어온다면 황당하니까요.


대부분의 Seller들은 겉보기와 다르게 재고를 쌓아 놓고 기다리지 않는 점, Seller 또한 Buyer의 입장으로 완제품 제조를 위해 원자재를 구입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트러블이 생기면서 Lead time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은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합니다. 역지사지죠.



4. T/T 송금


은행에서 송금을 하실 땐, 송금관련 수수료가 있습니다. 이 수수료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주로 송금자가 내는, 국내거래은행에서 송금을 할 때 드는 수수료, 또 하나는 경유 은행에 대한 수수료입니다. 모든 은행이 국가 간 1:1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죠. 간혹 은행직원 “이 수수료를 어느 측에서 내시겠습니까?”하면 당연히 Seller 측에서 낸다고 하세요. 착하디 착하게 이것까지 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걸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고 하지요.


반대로 내가 수출을 했고 US$ 통장으로 대금을 받기로 했는데, 원래 입금될 금액보다 아주 조끔 적게 들어왔다 싶으면 이 수수료가 부과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또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Seller가 T/T 송금은 받고 물건을 안 보내주면 어떻게 되죠? 좋게 되죠? 이럴 경우 송금 금액을 나누어서 지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절반은 발주 시에 주고, 절반은 제품 받고나서 하자 확인 후에 주겠다는 식으로 Deal을 거는 겁니다. 이런 송금방식은 전형적인 표현이니까. 아래와 같이 쓰시면 됩니다.


50% by T/T in advance and 50% by T/T 7(Seven) days after receipt


무역대금의 위험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Risk taking에서 다시 보강 설명하겠습니다.



5. 관세


일단 기억하실 것, 관세와 수입부가세는 다릅니다. 관세는 부과되지 않을 수 있지만, 부가세는 정상 통관에서는 반드시 부과됩니다.


관세 부과는 품목별로 각각 다릅니다. FTA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양국 간 개별 협정에 따라 관세를 물지 않는 품목도 있습니다(대만산 컴퓨터 부품 등). 반면 높은 관세를 매기는 품목도 있고요.


관세 또한 부가세처럼 환급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환급되지 않기 때문에 관세가 높은 품목이라면 신중하게 검토하셔야 합니다. 관세는 원가로 봐야 할 수도 있거든요.
 


6. 수입부가세


수출의 경우에는 면세가 되기 때문에 부가세 신고를 할 필요가 없죠. 해외에서 내 물건을 산 바이어가 그 국가에서 부가세를 내니까요. 하지만 수입을 하면 부가세가 부과됩니다. 수입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10%의 부가세가 부과되죠.


정상적으로 통관이 되면, 관세청(UNI-PASS)에서 간편하게 전자세금계산서를 발급할 수 있습니다. 부가세 신고하실 때는 잊지 말고 UNI-PASS 접속하시길….



7. AS와 Claim


백 번 양보해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들 보다는 사후지원과 관리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는 제조 기업들이 많습니다. 뭐, 요즘에는 천민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팔고나면 땡인 경우가 있습니다. 절대 사후관리가 국내기업과 같을 거라고 짐작하지 마세요.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입 전에 Sample/Trial order를 하면서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고, 업체와의 잦은 연락을 통해서 그 업체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사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가. EOL(End Of Line, 단종)


기껏 수입해서 내수 시장을 개척한다고 출혈해가며 가격 경쟁하고 광고해서 제품 런칭시키고 이제 좀 팔아볼까 하고 발주했더니, 단종(EOL)이랍니다. 항의하면, “I am sorry.”로 일관합니다.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고 계약생산이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물건의 유형에 상관없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나. 제품 개선 요구


제품의 취약점을 보강해달라고 연락을 하면, MOQ를 10,000개로 해서 구입하면 해줄 수 있다고 답장 오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샘플을 꼼꼼히 살펴볼 걸….


다. Claim


무리한 ‘마켓 클레임(시장 상황이 안 좋아 못 팔겠으니 환불해달라)’이 아니더라도, 제품의 하자에 대한 클레임 차원으로 정당하게 환불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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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라. AS


단순소비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갖춘 완성품이라면 AS용 부속들을 수입자가 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도 MOQ에 맞춰서.


국내 시장을 개척하는 우리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1%라도 스페어 지원을 해주는 외국회사라면, 좋은 셀러를 만난 거니 관계를 이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1%의 여분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갑(buyer)이라고 윽박지르거나 너희 제품을 어떻게 믿느냐고 떼를 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선 셀러 측에게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에 대한 자료를 요구합니다(어지간한 기업이 아니고서야 QA자료도 부족하고 허점도 많습니다). 이후 적정한 수준의 대비 물량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향후 AS 발생 건수에 따라 추후 조율하자는 식으로 신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장기적인 우호 관계에 도움이 되죠.


제품에 따라서는 AS를 받아주더라도 1:1 제품 교환이 이뤄지려면 많은 시간이 드니, 수입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품이나 모듈을 비축하고 있다가 직접 수리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가전제품이나 IT관련 완제품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겠죠. 수입 전에 AS에 대한 상세한 협의를 해두셔야 합니다.


마. 자기 제품도 모른다


무역 담당자와 생산자, 엔지니어가 다 따로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심도 있는 제품 문의가 들어가면 회신이 늦거나 엉뚱한 회신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거래처라면 사고의 위험성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특히 홍콩 쪽의 Seller들 중에는 유통업만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심도 있는 질문이 있을 할 때엔 원 제조사(original manufacturer)의 확인을 요청한다고, 구체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려야 화병이 나지 않습니다.



8. 해외 생산자에 대한 이해


나와 다르다, 한국과 다르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셔야 합니다. 외국의 독특한 사상과 문화와 한국의 다른 생각이 만나서 감정적인 싸움이 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실제 무역 업무를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박한 마진과 치열한 경쟁 때문에 마켓은 온·오프라인, 국경을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전쟁터입니다.


생산자의 정책과 자세(?)를 꼼꼼히 확인한 후 수입을 진행해야 합니다. 절대 국내 생산자들과 같을 거라고 짐작하지 마시고, 재차, 삼차 확인을 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무역의 특징 상 사고가 난 다음에는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으니까요.


같은 품목이라면 여러 제조사를 만나보고 제품의 정보를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중화권(중국, 대만, 홍콩) 셀러들의 경우는 알리바바에 회사의 판매 제품이나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으니 소싱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검색해 보시구요. 알리바바를 이용하실 때 유의하실 점은 구매 의향(Buying inquiry)를 오랜 기간 등록하면 offer를 가장한 스팸 때문에 업무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점 유의하세요. ‘Gold supplier’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기업의 신용 상태가 좋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도 아셔야 합니다.



9. Risk taking


가. 수입대금 문제 발생


뭐니 뭐니 해도 돈을 떼이는 게 가장 큰 문제겠죠. 예방차원으로 AP Bond(선수금반환보증서, 수출자의 은행이 발행함, L/C의 반대 개념) 발행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무역보험공사의 수입보험을 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 두 가지 대응책은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해 내가 써 먹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닌 경우도 허다합니다. AP Bond가 뭐냐며 무시하는 생산자도 있고, 보험가입이 불가한 경우도 있습니다. 무역보험공사에서는 재무제표 평가를 칼 같이 하기 때문에 수출자의 신용이 좋아도 수입하는 내 회사의 재무제표가 나쁜 경우에는 가입을 안 받아줍니다.


따라서 뭐니 뭐니 해도 최상의 방책은 ‘자금 결제 분할’과 ‘수입 수량의 최소화’입니다. 자금 결제 분할은 처음에는 안 되더라도 거래 횟수를 늘리면서 계속 시도할 필요가 있고요. 수입수량의 분할은 현금으로 회전되지 않는 악성재고를 줄이고 적정재고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나. 관세 이외에 대두되는 통관의 문제(선 인증 후 통관)


정상적인 통관을 하더라도, 일부 품목들은 HS코드(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따라 대외 무역거래 상품을 총괄적으로 분류한 품목분류 코드)에 따라 강제적인 인증을 통과해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품, 의약품, 전기/전자제품 등이 있는데요. 이런 품목들은 기준이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약화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드시 강제 인증이나 시험을 거쳐야 하는 품목인지 확인하고 수입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비관세 장벽이 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수출하는 상대국 생산자의 지원이 없으면 수입이 불가능합니다. 시료, 시험성적서, 국내인증과 호환되는 타국인증의 호환 문서 등이 지원돼야 하거든요. 이런 범위의 물품이더라도 반드시 수입이 필요하다면 관련된 지원과 발생 비용에 대한 협의 등을 충분히 해야 합니다.



10. 정리


무역이라는 광범위한 업무 분야를 모두 기술하기에는 지면도 부족하고 자칫 길어진 글이 독자 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까 싶어 이만 정리하겠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이나 빠진 내용은 추후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서두에 말씀 드렸던 세 가지 수입 상황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보면요.


가. 유통을 위한 수입 시 고려할 점


‘완제품을 수입해서 유통을 해야 하는데, 제품이 IT제품이다’ 이럴 때는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로 상호 간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제품을 판매한 후 사후관리 등의 부담이 아주 크거든요. 중계 무역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IT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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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시즌2에서 장그래가 내비게이션 수출을 제안했을 때 과장님의 반응


수출자 측에 새로운 시장을 대신 열어주는 동반자임을 강조해서 독점적 판매(exclusive sales) 권리를 갖도록 협상해야 합니다. 독점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죽을 고생을 해서 시장을 개척한 공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더 큰 상사나 유통사에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니까요.


나. 부품의 조달을 위한 수입 시 주의할 점


EOL(End Of Line, 단종) 가능성에 대해 수시로 체크해야 합니다. 부품 하나 때문에 완제품을 단종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부품의 성능이 완성품의 성능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므로 MTBF(Mean Time Between Fail. 평균 고장 간격)등의 자료도 확보해야 합니다. 통신, 군수 등 특수산업의 납품 시 MTBF 자료 및 여러 가지 기술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부품 쪽에서 지원이 되지 않으면 고생하니까요.


국제 표준 및 특허에 대한 자료도 받아두시는 게 좋습니다. 국제표준화 그룹에 들어있는 부품회사라면 추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구요. 부품회사가 타 기업의 특허를 침해해서 공급이 중단될 수 있는 상황도 미리 대비해야겠지요.


다. OEM을 위한 수입 시 생각해 볼 점


우리 회사는 USB 메모리를 만드는 회사인데 구형 PC에서 최근의 USB3.0을 지원하는 확장카드를 공급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면, 어렵게 확장 카드를 만드느니 OEM수입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게 낫습니다. PC내장형 확장 카드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PCB를 몇 천 장을 떠야 하고, 가이드형 브래킷의 금형을 만들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KC인증까지 받아야 하니 그 시간과 비용이 말할 수 없이 크거든요.


이렇듯 동종의 제품을 만드는 해외기업의 제품을 OEM하면서 소비자에게 더 많은 제품군을 선보일 수 있다면 기업의 사업영역 확대도 가능해지는 거죠.


OEM 수입의 경우 제품을 검증하고 소비자의 니즈에 따른 시장 예측을 정확히 할 수 있어야 하기에 기업의 전문분야에 맞는 라인업 확장 위주로 기획하시기 바랍니다. 간혹 수입 맛(?)을 안 사장님들이 자기 기업의 전문분야가 아닌 물품을 수입했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더군요.



국내 중소·제조기업의 몰락과 중화권 제조기업의 세계시장 석권이 맞물리는 시국이다 보니 중화권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대상 수입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를 상대로 하더라도 항상 어려운 무역 분야이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 포인트를 맞추고 잔소리를 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일부 내용 중에서 간혹 개발도상국에 대해 낮게 평가된 점이 있습니다만, 그들도 그동안 많이 발전해 왔고, 비즈니스는 회사 대 회사의 일이니 만큼 선입견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역에서 영어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영어로 된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무역에서 사용하는 영어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자작(?)한 단어나 문장보다는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계속 눈에 익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조금 적었습니다.


2회에 걸쳐 꽤 긴 내용으로 구성된 무역 편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기사


1. 비상장주식

2. 영업비밀 겸업, 그리고 경업

3. 사장의 월급

4. 혁신적 기술과 신제품을 위한 연구 개발

5. 기술개발자금

2014 결산. 컨설팅 일기

6. 지적재산권 1

7. 지적재산권 2

8. 우리회사 자산은 얼마일까

9. 니 사업을 알아라

10. 판매 예측과 적용: 패턴을 파악해라

11. 기업의 조사와 평가: 경남기업 협력사를 위로하며

12. 구매의 기술 (번외편 : 팬텍의 몰락)

13. 원가와 가격: 승부는 원가에 있다

14. 브랜드 : 회사의 브랜드와 정체성

15. 협상의 기술

16. 기업이 신년에 할 일

17. 프리젠테이션의 기술

18. 기업과 직원 : 사람 경영

19. 외국 수출은 '대박'일까






[편집자의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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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필진 '워크홀릭'이 <회사팟 Cobllat Blue>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한다고 한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제가 최근에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딴지일보에 연재하는 컨설팅일지와 시너지를 만들어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이제 시작이니 좀 더 열심히 쓰고 열심히 방송하는 거 외엔 딱히 뭘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라고 하니, 수줍은 목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으겠다.

가장 최신화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얘기이니,

지식재산권하면 내가 빠질 수 없지! 하시는 분들은(응?)

과감히 (링크)를 누질러 주시라.


이상.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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