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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2. 수요일

딴지관광청장 뚜벅이


 


술자리에서 여자 선배가 물었다.


 


“ 중년남성들은 왜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말복도 다 지나간 마당에 웬 보신탕 타령인가 싶었는데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 얼마 전에 아는 언니에게 들은 말인데, 그 집 강아지가 샤워하러 들어간 아저씨 안경을 부러뜨렸대. 아저씨가 처음에는 누가 한 짓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다가 강아지가 그랬다니까 갑자기 개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구 니가 그랬어?’ 라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까지 짓더라는 거야 ”



 


사연을 들으며 가슴 한 쪽이 뜨끔했다. 집에서 키우는 푸들이 워낙 장난이 심해서 벌써 녀석이 해먹은 내 안경이 두 개째다. 둘 다 꽤 비싸게 주고 산 안경이었는데 하나는 아예 반 토막을 냈고 또 하나는 귀걸이 부분을 다 갉아버렸다. 그랬음에도 나 역시 선배 언니의 아저씨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말 귀 못 알아듣는 동물에게 화를 내고 훈계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는 체념과 벌써 꼬랑지를 내리고 슬슬 뒤로 내빼는 강아지의 우스운 행동이 내 관대함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아빠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면 고함은 기본이었던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은 나의 너그러움을 기이하게 받아들였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들어왔을 때, 트위터로 소식을 접한 모 신문사의 아저씨 기자는 “ 앞으로 퇴근 시간이 빨라지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라는 맨션을 남겼었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가 했으나, 주변에 강아지를 입양한 중년남성들이 마치 늦둥이라도 본 양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기자의 선견지명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신혼 때 잠깐 자기 색시 보고 싶어 칼퇴근을 한 이후로 수십 년 만에 강아지나 고양이 때문에 집으로 조기 귀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강아지를 끌고 공원 산책을 나가면 나처럼 배 나오고 머리 희끗한 중년 남성들이 한 손에 개줄을, 한 손에 배변 봉투를 들고 뭔가 흡족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caption id="attachment_101337" align="aligncenter" width="598" caption="일본작가 미에코 오사카의 <아름다운 시절> 중 단편 '그녀와 그와 그의 개' 중에서"][/caption]


 


일본 작가 미에코 오사카가 지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명품 만화는 ‘ 그녀와 그와 그의 개’ 라는 단편을 통해 개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를 아주 절묘하게 그려냈다. 계약에 의해 결혼한 커플에게 어느 날 남편이 좋아하는 개 한마리가 집에 들어오고 개와 남편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로 인해 생기가 넘치는 남편과 이를 질투하는 아내의 묘사 장면은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선배 언니 남편을 포함한 주변 남자들의 개사랑과 영화나 만화의 장면들과 나의 경험담을 종합해보면 개를 사랑하는 남성들의 심리는 흥미롭게도 통제 욕구(Desire for control)라는 심리용어에 닿아있다. 통제 욕구는 말 그대로 살아가면서 자기 주변과 사건들을 자신이 장악하고 자기 조정의 범위 안에 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물론 통제 욕구는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다. 남자에게도 있고 여자에게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 승객들은 자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기장에게 통제 권한을 위임한다. 기체가 흔들릴 때 특히 더 심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자기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을 향한 엄마들의 잔소리 역시 품 속 통제를 벗어나려는 아이를 향한 통제욕구의 좌절감이다.


 


그러나 통제 욕구의 좌절감을 가장 극심하게 경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년남성들이다. ‘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고 외치던 호기는 잊은지 오래다. 그저 다니던 회사나 무사히 출근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다. 나만 잘하면 상대도 잘할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은 주변 인간들이 보여준 몇 번의 배신 이후에 접어버린지 오래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것이라는 청년시절의 꿈은 중년이 되면서 쓸쓸한 거실 풍경 한 쪽으로 밀려나버렸다. 아내도, 아이들도 더 이상 아빠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세상도, 사람도, 가정도 자기 통제권 밖으로 사라졌음을 인정할 때, 개가 나타난 것이다.


 



 


여자가 가슴으로의 교감을 정서의 바탕으로 둘 때, 남자는 힘으로의 통제를 존재의 이유 삼는다. 진화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그것은 이미 검증된 남녀의 어쩔 수 없는 차이다. 100명의 남자에게 1등 신붓감을 물었을 때 저마다의 답은 다르겠지만 변치 않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말을 믿어주고 따라주는 여자가 최고라는 것이다. 즉, 내 통제권 안에 있는 여성을 남자들은 절대적으로 좋아한다. 자기 아이를 낳았을 때도 모성에 비해 부성은 뒤늦게 발동한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낯설어하고 어색해 한다. 아빠가 아이에게 눈이 돌아갈 때는 아이가 아빠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 통제권 안에 들어올 때이다. ‘이리 와’ 하면 이리오고 ‘뽀뽀해’ 하면 뽀뽀 해주는 아이 앞에서 남자들은 단번에 무너진다. 그리고 중년의 남성들에게 이 역할을 유일하게 채워주는 것이 바로 개나 고양이 들이다. 특히 개들은 절대적이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자신을 반기고,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와서 안기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앉으라면 앉고 왼 손하면 왼 손을 내미는 강아지는 남자의 자존심이었던 통제욕구를 유일하게 채워주는 대상인 것이다.


 


술자리에서 여자 선배가 물었던 그 질문에 이제는 답을 할 차례다.


 



“중년남성들은 왜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 그 무렵에 세상에서 자신의 지시와 손길을 무조건 수용하는 유일한 존재니까.”



 


그런데 다 쓰고 나서 든 생각, 왜 중년남성과 관련된 칼럼을 쓰게 되면 늘 결론은 새드앤딩인 것이냐? 흐흑.


 


딴지관광청장 뚜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