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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2. 수요일

정우성


 


 


“상식회복법”


 


자식이 장성하여 권세를 누리며 이름을 떨치기를 꿈꾸는 원대한 육아가 있는가 하면, 그저 건강하게 자라서 인간 노릇을 하며 살기를 바라는 소박한 육아도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원대한 육아는 언감생심이고 소박한 육아조차 감지덕지하다. 내게 있어 원대한 육아는 매우 위험한 시도로 비춰진다. 자칫 아이들의 인생에 부모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질까 염려스럽다.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기 위해서 혹은 부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꿈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꿈이 있고, 그 꿈은 성장하면서 저마다 다양한 얼굴을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매몰차게 말하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현실은 지나치게 매정해서 행복은 마치 부와 권세에 비례하는 듯하다. 학벌이니 인맥이니 하는 것도 있다. 힘센 사람은 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에 약한 사람들은 가슴을 태우며 사는 세태이라면 부모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때이른 공부를 강요하고 입시경쟁의 전사로 키우는 것 자체가 부모의 본심은 아니리라. 왜곡되고 잘못된 현실이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도 무리라고 생각하는 길로 아이들을 몰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육아를 뒷받침하는 효험 좋은 길이라고 믿는다.


 


물론 내게는 오래된 노파심이 있다. 현실이 잘못됐다고 해서 나쁜 것이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탓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나쁜 것을 강요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된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일 뿐이다. 너무 쉽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 멍드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사회의 일로 탓하지 않고 먼저 내 책임으로 여길 일이다. ‘관심을 갖고’ 우리 아이들의 눈빛과 가슴과 환상을 ‘정면으로’ 바라볼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슬기로운 자세라고 믿는다.


 


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사회를 생각한다. 그건 이념적인 게 아니다. 내가 좌파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내 친구들 또한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와 같아서 내가 그런 이념을 가졌다손 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대를 이어서 부모의 이념을 계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치관과 철학은 사람마다 고유의 양심의 영역이어서 누구도 강요할 수 없으며 강요가 효과적이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는 이념에 의해서 판단되지 않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의 사회다.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처럼, 힘센 사람이 더 무거운 짐을 드는 사회다. 어떤 짐을 져야 할지는 이념에 의해 갑론을박하겠으나, 더 큰 어깨가 더 무거운 짐을 든다는 메시지는 이념의 이편과 저편에 의해 달라지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힘센 사림이 무거운 짐을 들기는커녕 책임을 외면하고 연약한 사람을 공연히 핍박하며 뻔뻔스럽게 권세를 누리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인간적인 염치는 너무 밑에까지 추락했다. 정의는 핍박을 받고 있다. 때로는 국가가 나서서 파렴치한 짓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양심과 교양을 찾을 수 있을는지 개탄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잘날 것도 없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육아를 할 수 있을지 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극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필경 더 끔찍한 현실을 경험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빠’로서 어떤 법률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을 법제도에 의지하려는 관성을 경계하는 입장이지만, 잘못된 현실에서 비롯되는 국민의 고통과 변화에 대한 간절한 심정이 때로는 입법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추락한 인간적인 염치가 회복되고 무너진 양심과 교양이 다시 존중 받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정상적인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한다.


 


즉, 이 법률은 인간적인 염치와 상식을 회복하고 사회 정의를 훼손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법률이다. 이 법률은 그 동안 다른 법률이 제대로 규율하지 못했던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상식에 반하는 권세의 행위를 최소화하는 특별법이다. 이 법률은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요구한다. 독립 수사기관이 전속으로 수사하고 전속으로 기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지랖 넓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결단을 제외하고 육아를 구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인 결단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일개 납세자의 이런 생각이 쉽게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으레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것처럼 우리 부모도 불가능한 현실을 꿈꾼다.


 



 


 


1. “권력의 부당행위를 방지하고 인간적인 염치와 상식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정의 특별법”



(법률의 명칭이 길지만 명칭이 더 긴 법률도 있다. 이를테면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법률도 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사회정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건 보수파의 언사로 널리 사용되곤 했다. 그렇지만 ‘정의’라는 단어가 이념적인 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보수파의 언어에 적합하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이런 법률은 진보와 보수의 합의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100만권 이상 팔린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칭으로는 “상식회복법”이 어떨까 싶다.)


 


2. 법의 목적

권력의 작위/부작위
(행위/불행위)에 의해 국민 또는 국민의 대표자에게 중대한 고통과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사회의 상식과 인간적인 염치를 크게 훼손하고 사회 갈등을 심화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 여기서 권력이라 함은, 국가기관, 공무원, 대기업(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함) 등.


 


3. 법의 성격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 및 행정규제에 관한 규정을 포함함. 형법 등의 일반 법률에 대하여 특별법의 성격을 띰.


 


4. 이 법률은 다음과 같은 행위를 처벌한다. 형벌의 양형은 형사법 전문가의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법률이 통상 부과하는 양형보다 더 엄했으면 한다.


(1) 국가기관(경찰, 검찰, 군대 등)이 중대한 범위로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형사 처벌.


(2) 공무원이 특별한 사유 없이 보관해야 할 자료를 파기하거나 자료를 훼손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3) 공무원이 특별한 사유 없이 국민의 직선 대표자의 정당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거나 중대하게 해태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4) 공무원이 특별한 사유 없이 법원의 판결 또는 명령에 의한 이행의무를 태만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5) 공권력이 기업의 위법한 폭력행위를 방조하거나 협력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6) 대기업이 국민을 상대로 폭력이나 위협을 가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7) 정당, 기업, 정치단체 등이 정치적 또는 영리적인 목적으로 비정규직/일용직 직원을 고용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해침으로써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8) 대기업이 행정기관의 행정행위를 방해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9) 대기업이 국민의 직선 대표자의 정당한 자료제출 요구를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10) 대기업이 특별한 사유 없이 법원의 판결 또는 명령에 의한 이행의무를 태만하는 행위, 이를 지시한 자 그리고 과중한 책임을 지닌 자 처벌.


 


5. 기타


이 법을 위반한 공무원에 대한 엄중한 징계(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의 규정보다 훨씬 엄격하게 규정) 및 대기업에 대한 행정처분 포함(각종 인허가에서 배제) 포함.


 


6. 수사기관


법제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검찰이 수사와 기소권을 가져서 엄정히 처리할 일이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이 법률에 기초하여 자기 역할을 묵묵히 잘 수행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신뢰 때문에 다른 독립기관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난 정부 시절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검찰과 독립된 특별수사청으로 신설해서 고위공직자들의 직무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도록 하는 입법이 시도됐다. 그리고 좌절됐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정치적인 색채로 인식되었다. 오늘날 검찰의 과도한 정치편향은 다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현실적인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왠지 부족해 보인다. “부패”는 제한적이다. 부패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부당할 수도 있다. 염치없고 상식에 반하며 연약한 국민을 핍박하는 교양 없는 짓거리들이 횡행한다. 그들은 하급공무원일 수 있고,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기업처럼 현존하는 권력일 수도 있다. 만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유사한 제도가 입법된다면, 이 법률에 입각한 수사와 기소도 그 기관해서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저 아빠이기 때문에 내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물려주는 사회가 정의롭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자기의 꿈을 잘 펼치기 위해서라도 사회는 정의로워야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적어도 추락한 교양과 상식과 인간적인 염치가 정의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기둥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좀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사회를 물려줄 의무가 있다.


 


 


 


 


정우성


트위터 : @hanaeserin


 










나는 아빠다 지난 글 읽기


1 – 나는 아빠다

2 – 위로가 필요하다

3 – 상상력의 해방

4 – 아름다움에 대해

5 – 아이의 자존감

6 – 가사와 육아의 분담

7 – 육아는 정치다

8 – 꼴등교육을 생각함

9 – 리더십과 팔로우십

10 – 차원바꾸기 놀이

11 – 선행학습은 반칙이다

12 – 선행학습은 여전히 반칙이다

13 – 아이와 부모 사이

14 – 도깨비가 온다

15 – 지금 행복한 부모가 늙어서도 행복하다

16 – 엄마의 마실

17 – 4권의 육아책

18 – 육아는 어렵지 않다

19 – 국공립 대학부터 시작하자

20 – 변별력에서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21 – 아이의 첫 선생님

21 – “아이 망치는 엄마의 무의식적 습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