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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소설 특허전쟁(1)

2012-08-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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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29. 수요일

정우성


 


홍길동과 임꺽정은 지난 일요일 저녁에 만났다. 홍길동은 애플을, 임꺽정은 삼성전자를 대변하고 있었다. 홍길동과 임꺽정은 종로 2가 시골집에서 국밥에 소주를 마시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홍길동은 앱등이가 아니며 임꺽정은 삼엽충이 아니다. 혹은 홍길동은 앱등이며 임꺽정은 삼염충이다. 어느 쪽도 괜찮다. 나름 대화가 된다는 게 중요했다. 이들은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전쟁을 한번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기로 작정했다. 1차는 소주를 마시면서, 2차는 동동주를 마시면서 그리고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3차까지 가기로 작정했다.


 



 




 


홍길동: 지난주 금요일 니네가 이겼다며? 좋겠다. 자기 안방에서 이기니 기분이 어떠니?


 


임꺽정: 지금 놀리는 거냐? 그래 한국에서의 하루는 좋았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냄새 푹푹 나는 똥판결을 받을 줄 상상 못했다.


 


홍길동: 정의가 이기는 거야. 우리 쿡 아저씨가 말했잖아. 도둑질은 좋지 못해. 진작에 백기를 올렸어야지. 좀 더 우아하고 품위 있게 질 수도 있었잖니?


 


임꺽정: 나는 우리가 완전히 이길 줄 알았어. 봐 봐 작년만 해도 언론에서는 완전히 우리가 승리하는 건 따논 당상이었다구. 우리는 강력한 특허를 니네보다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어. 너흰 기껏해야 디자인이었잖아. 세상에, 어떻게 디자인 따위가 우리같은 원천 특허를 이길 수 있는 거지? 이건 너무 이치에 맞지 않아. 혁신은 죽었어!


 


홍길동: 혁신이 정의보다 앞설 순 없지. 도둑질은 나쁜 거야.


 


임꺽정: 혁신도 일종의 정의지. 디자인을 모방하면 정의가 아니고, 기술을 모방하면 괜찮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지.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사실 우리의 기술이 없었으면 너희가 어떻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었겠냐구. 이건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어. 그래도 좀 자신감을 잃는다. 완전히 멘붕이야.


 


홍길동: 너희는 멘붕 당해도 싸. 소송을 제기한 것은 우리가 맞지. 사실을 똑바로 보라고 이 소송을 글로벌 특허전쟁으로 규모를 키운 건 너네가 한 거 잖아. 우리는 그저 미국, 그리고 유럽 한 나라 정도에서만 소송을 하려고 했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너희는 한국, 일본, 독일까지 소송을 넓혔잖아. 게다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너네가 먼저 소송을 걸었어.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 우리는 어이를 잡으려고 네덜란드와 호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전이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기를 쓴 건 너희고, 결국 패소하는 것도 하이라이트야. 사필귀정인 거야 이게.


 


임꺽정: 그건 우리가 이길 줄 알았던 거지. 우리가 특허가 겁나게 많잖아. 특히 너희가 피할 수 없는 강력한 ‘표준특허’도 있고. 이 표준특허로 말할 것 같으면, 원천기술이잖아. 원천기술이라고 하면 너무 눈이 부셔서 너희들이 시력을 잃고 쓰러질 줄 알았지 뭐야. 무선통신기술의 표준특허가 뭐니? 기술표준에 관한 특허 아니겠어? 표준기술이 없는 조무래기들은 그저 우리 특허 집에서 세들어 사면서 월세나 내야 되는 거지. 이건 너무 강력한 특허여서 내가 다 눈이 부시네. 데이터 전송 기술에 관한 특허, 전력효율에 관한 기술 특허, 이름만 들어도 승리가 예감되는 그런 특허라고 생각했던 거지. 우리는 아주 소송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어요. 산전수전 다 겪었어. 공격을 당하면 더 엄청난 공격으로 밀어붙여야 협상 테이블에 오더라고. 우린 너희들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짝 겁을 줘서 협상을 보기 좋게 끝내려던 거였어.


 


홍길동: 그게 너희가 어설프다는 거야. 상대는 애플이잖아. 기본적으로 반도체 기업과 달리 크로스 라이선스를 선호하지 않아요. 그리고 표준특허는 함정이야. 우린 이미 표준특허에 대한 분석을 끝냈지. 너네도 알다시피 애플은 노키아랑 2009년부터 소송을 했잖냐. 노키아도 표준특허 많아요. 걔네들이랑 소송하면서 우리가 많이 배웠어. 이게 엄청난 배움이거든. 애플은 현금이 산더미처럼 많아요. 까짓것 노키아한테 거금의 로열티를 줘버리고 백기를 들었지만, 이게 다 전략이었어.


 



 


임꺽정: 그래 난 너희들이 노키아한테 로열티를 주고 백기를 들길래, 우리도 당연히 노키아처럼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홍길동: 특허라는 게 그래요. 환상을 불러오고 비즈니스를 감정적으로 흔들지. 우리는 냉철해. 표준특허의 약점을 찾았거든.


 


임꺽정: FRAND를 말하는 거냐?


 


홍길동: 그래 그거야. 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유식하게 말하자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라이선스 부여 규정이지. 표준특허권자는 이 의무를 지켜야 하잖어.


 


임꺽정: 그렇지만 표준특허권자도 ‘특허권자’야. 당연히 정당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지. 그깟 디자인특허도 권리주장을 하는데,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는 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도가 지나치지 않아? 이건 너무 상식적인 처사가 아니야!


 


홍길동: 네 심정만큼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특허법이 중요하냐 경쟁법이 더 중요하냐의 문제지. 특허는 혁신을 위한 예외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지. 기술혁신을 계속 해야만 자본주의가 사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특허가 언제나 기술혁신을 위한 것은 아니야. 현실을 봐. 업계에 먼저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한 터줏대감들이 얼마나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니? 후발주자는 경쟁에 참여하기 어려울 정도야. 후발주자가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강자를 상대로 새롭게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게 특허제도지. 이건 원래 후발주자를 위한 제도라는 거야.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되었어. 선행주자의 기득권을 오히려 강화하기 위해 특허가 존재하게 되었잖아. 사실 자본주의가 배려 없이 무한경쟁에 빠지고 아무런 규칙이 없었다고 해봐. 경쟁이 무너지는 거야. 자본주의의 파국이지. 그래서 이 시장경제를 최소한의 범위로 지탱하자는 게 바로 ‘경쟁법’ 이잖아. 반독점법 또는 우리 말로는 공정거래법이잖아. 특허는 경쟁법의 예외이지만, 특허가 악용되면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서 경쟁법을 생각해야 해.


 


임꺽정: 졸라 어렵다. 너는 뭐 이렇게 꼬치꼬치 이론적이냐? 게다가 특허권자가 자기 권리를 지키겠다는 게 왜 경쟁법을 위협하는데? 이건 완전히 언어도단이야.


 


홍길동: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너한테는 어려울 수 있어도 재판하는 판사한테는 겁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란다. 기업가들은 명석해. 제조사마다 각자 자기 규격과 원리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면 호환이 되지 않아요. 이건 소비자들도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제조사들도 시장을 키울 수가 없게 되지. USB 핀 규격이 제조사마다 다르다고 생각해봐. 네 주머니에는 수십 개의 USB 메모리를 들고 다녀야 할 걸. 그래서 기술표준을 만들게 되지. 그러면 부품단가도 저렴해지고, 기술개발할 할 때에도 무척이나 편리해지지. 소비자들고 엄청난 이익이고 말이야. 표준기술이라는 게 이처럼 시장을 넓히고 경쟁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거야. 이건 말이지 사실상 후발주자를 배려하는 거야. 신출내기 기업이나 조무래기 기업이 어떻게 자기 규격과 원리로 시장에서 승부하겠니. 종래에 있는 표준기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표준기술도 기술이니까 당연히 특허권자가 생기는 게 아니겠어? 이게 골치 아픈 거지. 그래서 규칙을 정해서 표준특허권자는 자기 특허를 감추지 말고 잘 공개하면서 공평하고 적절하게 로열티를 받으면서 이익을 얻으라고 했던 거야. 그게 바로 FRAND지. 성춘향한테는 로열티로 100원을 받으면서 똑같은 것으로 장길산이 밉다고 장길산한테는 1000원을 받으면 이 FRAND에 딱 걸리게 되지. 너희의 문제는 표준기술의 정신을 잊고 표준특허로 우리를 무릎 꿇리게 하려고 했어. 그러면 어떻게 되겠니? 불공정한 행위가 되고 경쟁법 위반이 되는 거야. 이게 우리같은 후발주자에게는 참 좋은 게, 불리하면 읍소하면서 ‘제네들이 토끼몰이식으로 우리를 몰아요.’, ‘표준특허로 우리를 시장에서 쫓아내려 하는 건 가요?’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거지. 미안하다. 우리의 꼼수다. 그렇지만 이게 은근히 정당한 일이란다. 특허로터 위협받는 경쟁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지.


 



 


임꺽정: 그래서 니들이 작년 가을에 있었던 네덜란드 재판에서 읍소전략으로 졸라 없어 보이는 짓거리를 했구나. 트위터로 생중계된 그 재판 말이지. 나는 그때 애플이 특허침해를 인정하면서 삼성전자가 완전히 승소하는 줄 알았다.


 


홍길동: 그 재판은 기념비적인 성과였지. 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덕분에 너희가 FRAND를 위반했다는 판결을 얻어냈어. 그걸로 이 특허전쟁은 이미 끝난 게임이었지. 덕분에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너희를 상대로 반독점조사에 착수하게 됐잖아. 유럽연합의 알무니아 집행위원은 이렇게 말했지. “나는 시장 활성화와 접근 방해 목적에서 표준 필수 특허를 오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독점 제재 조치들을 분명하게 취할 것이다.” 졸라 멋진 말이다. 표준특허가 우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아니라 부메랑이 돼서 너희에게 돌아갔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표준특허권자는 대개 업계의 터줏대감들이어서 너희 권리를 넓게 보호하면 경쟁에 참여한 후발주자에게 부당하게 패널티를 주게 되는 것과 같아져. 헤비급이랑 라이트급이랑 공정하게 싸움 붙이면 되겠니? 표준기술을 선점했으니 그동안 기술개발에 유리했고, 인류공영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서 좀 참아줘라. 표준특허권자는 삼성전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삼성전자 위주로 판단하면 앞으로 줄줄이 표준특허권자들이 특허괴물처럼 완력을 보일 텐데. 그땐 어쩌란 말이니?


 


임꺽정: 그래도 표준특허권자도 로열티를 받을 권리가 있어. 이건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거라고. 네덜란드 법원은 우리에게도 로열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고. 너희는 재수없게 요리조리 피하지만 말고, 우리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 그게 예의야.


 


홍길동: 그렇지만 너희는 너무 많은 로열티를 요구했어. 세상에 스마트폰 한대의 가격당 2.5%의 로열티를 요구하다니! 그건 너무 과해. 너희 특허도 의심스럽지만, 표준특허권자는 너희만 있는 게 아니야. 다수의 표준특허권자들이 그런 금액의 로열티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겠니. 게다가 우린 다른 이유로 로열티를 주지 않아도 되는 카드도 있고 말이지.


 


임꺽정: 너흰 올해 봄에 자기 UI를 이용하는 대가로 삼성전자한테 1대당 30~40 달러의 막대한 로열티를 요구했잖아. 그거에 비하면 오히려 삼성전자는 양반이지.


 


홍길동: 그건 뻥카였다. 언론 플레이지. 언론 플레이는 삼성전자만 하는 게 아니야. 애플도 언론을 다룰 줄 알지.너희보다 훨씬 전략적이고 섬세하게 언론을 이용하지. 각 나라의 판사들과 배심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는 거지. 여차하면 그 언론기사를 법정에 증거에 활용하려는 꼼수였지. 우린 꼼수의 귀재잖아. 애플은 화해할 줄 모른다, 싸움밖에 모른다 라는 비난을 없애기 위해서 로열티를 요구하면서 화해를 제안한 척 하는 거지. 너무 저렴하게 제안하면 나중에 지금 있는 재판에서 손해배상액이 적어질 수 있어서 문제이고, 더욱 문제는 값싼 로열티를 제안했다가 너희가 덥썩 물어버려서 소송이 끝나면 어쩌란 말이니. 이 소송은 좀 더 가야하니까 아예 무리하게 제안했지. 그랬더니만 언론사들이 우리의 제안을 잽싸게 물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더라구. “애플, 삼성에 화해 제안” 뭐 이런 거지. 우리는 디테일을 무척이나 사랑하거든.


 


임꺽정: 근데 다른 카드가 뭐냐?


 


홍길동: 우리는 여러 가지 카드가 있지.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사용할 생각이야. 무선통신 기술 특허는 사실 칩(chip)이라는 부품에 구현되지. 그 부품을 정당하게 시장에서 구입함으로써 특허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삼성전자와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어 특허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퀄컴이나 인텔의 부품을 대량으로 시장에서 구입하는 거야. 이게 그 유명한 특허소진론이잖아? 사실 우리가 너희의 최대 고객이기도 해서, 이 비즈니스 관계도 현재로선 우리에게 유리해. 너희가 우리를 극단적으로 대하기는 좀 어렵지 않겠어?


 


임꺽정: 특허소진론도 문제가 많아. 내가 성춘향과 특허협약을 한 것은 성춘향한테 라이선스를 줬다는 거야. 그게 성춘향의 어미인 월매와 몸종인 향단이에게 라이선스를 준 게 아니거든. 어떻게 부품을 구입했는지 그 루트가 중요한 거야. 미국 재판결과 때문에 묻혔지만 우리나라 서울중앙지방법원도 같은 취지로 정당하게 판결을 했단 말이야. 좀 꼼수와 억지만 부리지 말라고. 애플은 정말 지구 역사상 최고의 억지 나부랭이야.


 


홍길동: 네 이야기가 더 어처구니 없다구. 그건 완전히 특허가 시장에 군림하는 형식논리야. 시장에서는 다양한 구조조정과 M&A와 거래관례가 있어. 시장에서 물건을 내다 팔 때에는 꼭 춘향이만 하는 게 아니야. 춘향이가 몽룡이 아이를 임신해서 집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할 건대? 월매가 할 수도 있고, 향단이가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사람이 다르다고, ‘어, 이건 정당한 판매가 아니네.’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임꺽정: 너희의 그 그럴싸한 말장난 때문에 우리의 강력한 특허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무지 억울하지만, 더 억울한 것은 애플의 소프트웨어 특허를 침해했다는 건데, 그건 내 탓이 아니라구. 구글의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쓰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없이 빈 깡통의 스마트폰을 팔란 말이야? 수백 가지의 기능 중에 몇 개가 애플의 iOS 특허랑 유사하다고 판매금지를 주장하는 건 정말로 탐욕스러워. 우리 제조사들은 탐욕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정당하게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애플의 주장대로라면 전 세계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의 문을 닫으라는 거야. 자기들의 특허를 쬐끔 침해했다고 말이지. 삼성전자 같이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은 완전히 구글의 대리전을 하는 선량한 양이라고.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이야. 우리도 우리 처지가 불쌍해.


 


홍길동: 에이, 왜 그래~ 구글 덕좀 봤잖아. 너희가 세계 1위가 됐다메? 그리고 안드로이드만 있니? MS의 윈도우 있잖아? 요즘 MS가 절치부심해서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었대. 윈도우 8은 기똥차다는 거야. 그거 쓰면 되잖아. 우리는 MS랑은 안 싸워. 겁나게 친해.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MS랑 붙으면 되잖아. 아니면 그 유명한 “바다” 소프트웨어를 써.


 



 


임꺽정: 그렇지 않아도 안드로이드 좀 겁이 나긴 해. 구글이 작년 가을에 모토로라를 인수했잖아. 우린 그때 졸라 쇼크를 받았어. 그래서 한 달만에 바로 MS와 특허협약을 체결하여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MS한테 로열티를 주기로 계약했지. 구글이 배가 아플 거야. 그렇지만 우리 제조사의 심정은 어느 한쪽에 올인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양 다리 걸치기 작전을 쓰고 있지. 제조사는 눈치가 빨라야 해. 시장 돌아가는 꼴을 보고 여차 하면 MS의 윈도우로 올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소송은, 그건 정말 우리한테 싸움을 걸 게 아니라 구글한테 소송을 해야지. 왜 애꿎은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인지. 싸우려면 정면 승부를 하란 말이야. 게다가 삼성전자와 애플이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실은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요즘은 좀 불안해지긴 했지만 말이지.


 


홍길동: 그래 물론 우리의 진정한 타깃은 구글이지. 구글을 목표로 이 특허전쟁을 기획했지. 구글이 안드로이드라는 짝퉁을 만들어서 제조사에게 무상으로 배포한 게 모든 일의 원인이야. 구글은 파렴치한이지.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가 글쎄 아이폰을 만들 때 애플의 이사였다구! 우리는 참을 수 없었지. 그렇지만 구글을 직접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되게 어렵고 사납고 복잡하고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그래서 애플은 구글과 제조사 사이를 뒤흔드는 전략을 택했던 거야. 어차피 증거들은 모두 제조사의 제품이 될 터이고 말이지. 우린 먼저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었던 대만의 HTC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어. 그리고 모토로라(빌어먹을 모토로라! 구글에 먹히다니 바보같은!)를 상대로는 6개월 후에 특허소송을 시작했고, 또 그 후로 6개월 후에 드디어 너희를 타깃으로 특허전쟁을 한 거야. 삼성전자는 이미 특허소송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잖아. 그래서 더 나쁜 거지. 어떻게 소송을 예상하면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카피하니? 도대체 무슨 강심장이야?


 


임꺽정: 디자인특허를 몰랐지. 트레이드 드레스의 위험도 몰랐어. 알다시피 우린 기술특허에 관해서는 엄청난 강자라고 자부하고 산전수전을 많이 겪었어. 우린 세계 1위의 특허강자란 말이야. 우리가 특허로 공격받는다면 우리의 특허로 무자비하게 공격하면 결국 크로스 라이선스로 가는 공식에 충실했지. 젠장, 근데 그 허접한 디자인특허라니!


 


홍길동: 사실 디자인특허는 대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단다. 그렇지만 너희처럼 유별나게 과감하게 모방하는 경우에는 이처럼 강력한 게 없는 거지. 나는 정말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우리 제품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너희들 머릿속으로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아니면 심장을 만져보고 싶어. 얼마나 강심장인지. 여기서 너희의 강심장을 즐기렴.


 


그리고 이런 위험(링크)을 알리지 않거나 눈치채지 못한 조직은 널리 알려서 자랑할 게 아니라 징계해야 하는 거란다. 어쨌든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고 유별나게 제품을 출시했는지 의문이야. 신기해. 그것도 자기의 최대 고객한테 말이지. 비즈니스에 예의도 없니? 니네 디자이너는 양심과 영혼도 없니?


 


임꺽정: 그건 앱등이들이 즐기는 글이잖아. 인정할 수 없어. 소비자는 눈이 삐었어? 제품 로고가 박혀 있잖아. 그럼 구별할 수 있는 거지. 너희들의 진정한 특허는 소비자를 우습게 여기는 게 너희들의 태도야. 그리고 사각형의 둥근 모서리가 있으면 다 니네 권리라고? 이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야. 그런 건 옛날에도 있었던 거야.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거라구. 우린 그저 디자인 리서치를 한 거야. 만일 애플이 삼각형의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쳐. 그게 아이폰의 권리라고 가정해 보자고. 그러면 확실히 애플의 권리를 넓게 인정하겠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이잖아. 직사각형은 모든 모바일 기기의 기하학이야.


 


홍길동: 루이뷔통 짝퉁 가방을 만들어놓고서 루이뷔통 이름이 붙는 곳에 “동대문”이라고 쓰면 괜찮다는 말이니? 소비자들도 그게 짝퉁인 줄 알면서 사는 거야. 소비자들이 짝퉁이라는 것을 다 알았다고 모든 게 면책 되는 거니?


 


임꺽정: 루이뷔통 디자인은 고유한 자기들 디자인이고, 니네 디자인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고유한 거니?


 


홍길동: 디자인특허 도면에 첨부된 거. 우리 디자인 특허는 “The ornamental design of an electronic device, as shown and described.” 이지. 이게 다야. 사각형의 둥근 모서리가 우리 꺼라고 우긴 적이 없어. 그렇게 유포되었을 뿐이야. 디자인 특허는 그저 디자인특허 도면에 표현되는 것일 뿐이야. 그림을 보면 모서리만 둥근 게 아니잖아. 화면의 크기와 배치도 있는 거고, 양 측면에 화면의 에지부분은 아주 좁게 되어 있지. 또 스피커의 위치와 형태도 있고 말이야.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봐서 어떤 심미감을 느끼느냐, 그게 디자인특허의 범위지. 알면서 왜 그래? 물론 모서리를 둥글 게 하지 않고 직각으로 만들면 아이폰 디자인특허랑은 확실히 관련 없어지겠지. 그렇지만 모서리가 둥글다고 그것만으로 아이폰 디자인특허 침해는 아니야. 다른 요소까지 너무 유사해서 문제 아니겠어?


 



 


임꺽정: 그래도 미국 배심원 평결은 너무 지나쳐. 우리의 모든 제품이 이 디자인특허를 침해했다는 평결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건 완전히 삼성전자의 디자인을 무력화시키는 핵폭탄 같은 거야.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평결이라구! 어떻게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이 디자인과 유사하다고 보겠어!


 


홍길동: 그런데 갤럭시 S3는 좀 다른 거 같어. 모서리의 곡률과 크기가 다르고, 화면의 좌우 에지의 간격이 좀 크고 스피커의 크기와 형태도 차이가 있는 거 같네. 이건 아마도 디자인특허를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마음도 바뀔 수 있지.



 


임꺽정: 어떻게 디자인특허가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보다 더 넓게 보호되는 거지? 이건 정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인류 산업발전의 기여는 디자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특히 무선통신기술, 전력기술, 데이터 처리 기술이 없이는 어떻게 스마트폰을 만드냐고. 그렇지만 디자인이 좀 후져도 스마트폰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거야.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존중받아야겠어?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기술이 더 대우를 받아야겠지. 디자인독점을 너무 쉽게 인정하면서 정당하게 보호되는 기술독점은 스스럼 없이 부정하는 것은 너무 이치에 맞지 않아.


 


홍길동: 사람들은 흔히 기술특허가 원천적인 것이므로 더욱 그 권리가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렇지만 이는 곧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술중심주의에 젖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해. 작은 권리이든 큰 권리이든 권리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해. 너희의 문제는 권리를 차별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큰 권리와 작은 권리, 대접받을 권리와 무시할 권리를 임의로 나누는 데 문제가 있어. 친절하게 설명을 하자면, 기술특허의 경우에는 사인(私人)인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있지. 그렇지만 디자인은 달라. 이건 사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혼동까지 생각하게끔 하는 권리란 말이야. 이건 기술특허보다 훨씬 공익적인 성격이 있는 거란 말이야. 소비자가 ‘아 이것은 특허 987 특허 제품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제품을 구입하는 게 아니야. 제품의 디자인과 외관을 보면서 때로는 디자인에 끌려서 때로는 제품에 표시된 브랜드를 보고 구매하지. 소비자를 보호라는 공익 같은 게 있어서 말이지. 기술은 크로스 라이선스가 용이하지만, 디자인은 어떻게 크로스 라이선스를 하냐 이 말이지. 그게 디자인독점보다 훨씬 말이 안 되는 거야.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데 디자인은 서로 공유한다? 이게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임꺽정: 그런데 내 말은 그 따위 디자인은 외관을 바꾸면 되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소프트웨어는 변경해서 업그레이드 하면 되는 정도의 권리를 왜 그렇게 유별나게 보호해주냔 말이지. 새로운 기종을 제외하고 우리 제품들을 몽땅 침해제품이라고 평결하는 미국 배심원들은 또라이 아니냐 정말?


 


홍길동: 그게 삼성전자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거야 바부탱이야. 판매금지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삼성전자는 해당 제품들의 소프트웨어를 변경하거나 외관을 변경해서 다시 시장에 판매금지된 제품을 내놓잖아. 결국 큰 타격을 입지 않게 되는 구조지. 실제로 여러 차례 그런 일이 반복했잖아. 그렇다면 판사는 그리고 배심원들은 삼성전자 제품을 판매금지하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겠구나. 소비자들도 여전히 제품을 구매하겠구나, 하면서 안심할 수 있잖아. 어차피 새롭게 개선된 제품을 최단시간에 다시 출시할 것이고. 배심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야. ‘그럴 거면 처음부터 다르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이지. 재판부가 애플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시장의 흔들림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 특별히 소비자의 선택권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점. 이게 바로 삼성전자의 약점이 되는 거지. 그 약점이 쌓여서 지금 폭발한 거라구.


 


임꺽정: 네 주장이 그럴싸하지만. 미국 재판은 도가 너무 지나쳐. 완전히 애국심이 발동한 보호무역주의야. 형평성이 전혀 무시됐어. 다른 나라 재판을 봐. 이렇게 완전히 압승을 선언한 적이 있었느냐 말이야.


 


홍길동: 오히려 너희에게 승리를 선언한 한국 재판이 애국심의 발동 아닐까?


 


임꺽정: 한국 재판은 사실상의 삼성전자 승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 승소, 일부 패소라고. 균형을 맞추고 형평을 생각한 흔적을 보라고!


 


홍길동: 너희에게 승리를 안겨준 한국재판은 말이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일관되게 우리를 향한 특허공격을 기각했는데 그것과는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지. 그게 더 특이한 거야. 그게 더 보호무역주의 같어.


 


임꺽정: 아니야. 한국제판은 표준특허권자의 권리남용을 엄격히 해석하면서 너희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권리자의 권리 보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어.


 


홍길동: 어차피 한국재판은 전체 특허전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어쨌든 보호무역주의는 피차 해롭고 지나친 상상력이야. 미국에는 앱등이만 있는 게 아니야. 이 소송의 배후에는 구글이 있지. 구글도 미국 회사잖아. 또한 이 특허전쟁은 말이지 애플과 모토로라와의 특허전쟁의 동전의 다른 면이기도 해. 모토로라도 미국 회사지. 미국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은 애플보다 더 힘을 발휘하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안드로이드 제품을 사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거야. 미국 내에서 이 배심원 평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한국보다 훨씬 거세게 불지도 몰라. 우리나라 언론은 그것을 열심히 퍼다가 도배할 거야. 이렇게 될 거라는 데에 <특허전쟁> 저자의 이름과 19,800원을 건다.


 


너무 이상한 보호무역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니? 충성심 높은 사용자는 애플만 있는 게 아니야. 안드로이드 진영에도 충성심 높은 사용자가 훨씬 많다고. 게다가 이 소송은 한국과 미국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야. 삼성전자의 애플을 상대로 한 특허공격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 완전히 기각되거나 혹은 극히 부분적으로 인정되었을 뿐이야. 어쨌거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특허를 보호무역주의의 무기로 삼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야. 현재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양분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8로 천하삼분지계를 도모하고 있는 형국이잖아. 이들 모두 미국회사여서 보호무역주의가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여. 오히려 그런 섣부른 주장은 이 특허전쟁의 긍정성마저 없애버리고 말지.


 


임꺽정: 오늘은 열라 우울한 날이네. 앱등이한테 설교를 들을 수밖에 없다니. 2차 가자. 2차 가서 또 말해보자.


 


홍길동: 그런데 너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에이콘 출판사)라는 책 혹시 한번 읽어봤냐?


 



 


임꺽정: 아니.


 


홍길동: 거기에 다 나와. 글로벌 특허전쟁의 해부학적 교과서를 아직도 읽지 않고 특허전쟁을 논하고 있구나. 넌 참 무식한 강적이구나.


 


임꺽정: 책 홍보하냐 지금?


 


이렇게 하여 홍길동과 임꺽정은 1차 시골집에서 나와서 2차로 인사동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인사동 초입에 있는 청강에 달빛이 비추고 어쩌고 하는 조그마한 솔가루 둥둥 동동주를 마시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1부 끝)

 




 


그 전날(한국 토요일, 미국 금요일)은 어쨌든 삼성전자가 굴욕적으로 패배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다음은 이른바 “bounce back” 특허(사용자 화면의 마지막까지 이동하면 화면이 튕겨지는 기능)에 대한 배심원 평결표이다. 소송의 대상이 아니었던 갤럭시 S3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제품모델이 이 특허를 침해한다고 평결했다(한국의 금요일 판결에서도 이 특허를 삼성전자가 침해한다고 판단되었다). 다행히 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이 특허를 매우 쉽게 피해갈 수 있는 듯하다.


 



 


 


다음은 이른바 “Pinch to Zoom” 특허(두 손가락의 멀티 터치로 화면을 크게 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에 대한 배심원 평결표이다. 이 또한 거의 대부분의 모델이 차용하고 있다.


 



 


“Tab to Zoom” 특허(손가락으로 두 번 탭하면 화면이 커지거나 원래대로 작아지도록 하는 기능 특허)라는 것도 있다. 역시 대부분의 삼성전자 제품이 침해제품으로 평결이 되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디자인특허도 침해했다는 것이다. 677 디자인 특허는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에, 스피커의 위치와 형태, 화면의 위치와 형태 등에 관한 아이폰 디자인 특허다.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가 모두 애플의 디자인특허가 아니라, 스피커와 화면의 형태까지 결합하여 판단된다.


 



 


정우성


트위터 : @hanaes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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