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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ustrado(계몽인)’와 필리핀 민족운동


스페인이 막대한 부를 통해 신대륙과 동아시아 식민지에서 절대 패권을 가졌던 16세기 이후, 스페인은 끊임없이 몰락해 갔다. 계속된 전쟁과 내전은 스페인을 약화시켰고, 19세기엔 유럽의 강국에서 프랑스, 영국은 물론 네덜란드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유럽의 군소 변두리 국가로 지위가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의 무역중심지화는 스페인의 유일한 활로로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에 서구화된 중간계급이 성장하는데, 이들이 바로 Ilustrad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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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ustrados in Madrid (c.1890)


서구식 양복을 차려입은 이 필리핀 현지인 혹은 혼혈인들은 스페인에 의해서 완전히 서구화된 마닐라에서 서구식 교육과 사상을 익혔다. 이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근대인’들이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Ilustrado 민족운동가인 호세 리살(José Rizal)을 보자.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지방에 있는 스페인 지주의 농장과 집을 대신 관리해주는 중간 관리자였다. 마닐라의 대학에서 측량과 법학 학위를 딴 호세 리살은 이후 유럽으로 가 서구의 학문을 배운다. 그곳에서 민족의식과 혁명의식을 깨우치고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온 그는 개혁운동에 참여했고, 스페인에 의해 처형된다.


스페인이 Ilustrado들을 키운 것은 현지인 중간계급층을 통해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고 식민지 경영을 수월히 하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들이 서구의 학문과 사회를 배우는 만큼 그들의 민족과 혁명에 대한 의식 또한 자라나고 있었다.


스페인의 몰락과 함께 민중에 대한 경제적 침탈은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파산상태인 스페인의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폐가 발행되었다. 주요수출품이었던 설탕의 국제 가격이 폭락했고, 스페인은 이를 식민지의 조세 부담으로 돌려버렸다.


언제든 터질 듯한 혁명의 기운이 필리핀 전역을 감싸고 있었다. 마닐라에서 결성된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és Bonifacio)가 만든 카티푸난(Katipunan. '다함께'란 의미로, 필리핀의 대 스페인 혁명조직. 이후 필리핀 정부를 구성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로컬 혁명 조직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1896년 8월, 스페인 당국의 카티푸난에 대한 공격과 함께 혁명이 시작된다.


스페인은 예전의 스페인이 아니었다. 몰락하고 있는 스페인이 필리핀의 반란을 막을 가능성을 희박했다. 그러나 Ilustrado들은 혁명 직전까지도 스페인을 두려워했고 필리핀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와 적은 차별을 내세우는 점진적 진보를 옹호하였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마닐라 공격은 실패했지만 그 외의 지방에서의 혁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등 혁명군 측의 피해 또한 심각하였다. 스페인은 무너져 가는 국력을 마지막 남은 식민지 경제 중심지였던 필리핀의 혁명을 저지하는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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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그러는 와중에 혁명군의 주력이자 필리핀 독립정부를 이끌던, 카티푸난의 2대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가 Biak-Na-Bato에서 궁지에 몰린다. 그는 결국 스페인과 평화 조약을 맺는다.


에밀리오 아기날도 버전


1. 나와 함께 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자유롭게 다른 국가로 이동한다. 거주지에 대한 보상금으로 80만 멕시코 달러 무기에 대한 보상금으로 40만 달러를 지급한다. 20만 달러는 800명이 무장해제한 후 지급한다. 나머지 금액은 1,000명이 무장해제한 후 마닐라의 te deum sung 성당으로 이동하였을 때 지급한다. 2월까지를 시효 기간으로 한다.


2. 모든 금액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지급한다. 모든 금액의 나에게 알려져야 하고 내 재량권 하에서 내 지지자들과 반란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3. 금액이 지불될 때까지 2명의 제독을 인질로 내게 보낸다.


4. 협력했던 종교인 또한 홍콩으로 추방한다. 정치·행정적인 망명정부를 홍콩에 세운다. 미구엘 프리모 드 리베라(Miguel Primo de Rivera. 스페인의 군인) 장군에 대한 특별 요청은 조약에 넣지 않는다. 



필리핀 역사가 Teodoro Agoncillo 버전


1. 그의 조직이 biak-na-bato에 철수하는 조건으로 40만


2. 20만은 800명의 무장해제 조건


3. 40만은 1,000명의 무장해제 마닐라의 성당이동 조건


4. 미구엘 프리모 드 리베라 장군은 90만을 전쟁에 피해를 본 필리핀인에게 지급한다.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돈을 받고 셀프 추방하는 평화조약을 맺은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Ilustrado의 민족과 혁명 의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서구문명에 의해서 성장한 Ilustrado들은 서구의 가치관인 식민지 자본주의로 그들 의식의 바닥을 구성했다. 그들이 물질적 성취와 서구사회에서의 문명화된 지위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ilustrado가 주입한 필리핀 독립이란 염원을 가슴에 품었고 평화조약과 혁명의 종결 선언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싸웠다. 그렇게 1897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1898년, 미국은 쿠바혁명과 필리핀혁명으로 극심하게 쇠약해진 스페인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이미 노쇠한 스페인은 신흥 강국인 미국에게 별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쿠바를 봉쇄하고 마닐라에서 스페인 함대를 괴멸시킨 미국은 스페인에게 쉽게 항복을 받아내었다.


그 과정에서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혁명정부와 미국의 비정규 동맹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하는 대신 스페인 식민지 내의 아군을 얻었다. 홍콩으로 망명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스페인이 준 돈으로 무기를 사서 돌아왔고 국제사회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필리핀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종전 협상에서 쿠바와 필리핀을 할양받았다. 그동안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던 쿠바와 필리핀의 민중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미국은 이전의 약속과는 다르게 마닐라로 진주했고 식민통치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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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푸난들의 혁명은 수포로 돌아간 걸까


필리핀인들의 독립을 위한 수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3년 간의 필리핀-미국 전쟁 중에 Ilustrado들은 기꺼이 미국 쪽으로 변절하였다. 전쟁으로 자신의 물질적 기반이 파괴된 혁명세력들은 부의 분배를 요구했다. 그들에게는 혁명정부가 미국보다 더 큰 위협이 됐다.


미국은 스페인보다 훨씬 더 진화된 식민지 정책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과거 스페인이 했던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억압 대신에 필리핀인들의 환심을 사는 길을 택했다. 필리핀인들을 참여시킨 급조된 자치정부와 영어 교육, 대중 교육을 시행해, Ilustrado들은 능력만 있다면 경제적인 지위는 물론 정부의 참여와 식민지 사회에서의 무한한 발전을 약속 받았다. 이들은 미국의 선전활동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입에 발린 선의를 기꺼이 믿고 충성하였다.
 
1902년 아기날도는 전투 끝에 미군에 체포되고 미국에 충성 맹세를 한다. 이로써 식민지 지배 400여년 만에 얻어진 필리핀이란 국가는 미국의 식민지로 다시 추락한다. 그러나 Ilustrado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들은 미국이 사탕발림으로 약속한 점진적 독립을 필리핀 독립의 유일한 길로 보았다.


40년 간 이뤄진 미국의 기만적인 식민 통치 하에서 필리핀인들의 민족의식은 기형적으로 부패해갔지만, 아직도 민중들은 1896년의 혁명을 기억했고, 여전히 독립은 그들의 갈망이었다. 1935년 필리핀은 미국의 한 주(states)로 정치적 독립과 함께 46년의 완전 독립을 약속 받는다.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역의 7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는 식민지 경제구조는 여전했고, 신흥 강국이 된 일본이 계속해서 필리핀을 위협하고 있었다.



* 참고

More hispanic than we admit - ISAAC DONOSO
The cotinuing past - RENATO CONSTANTINO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친구 구글 위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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