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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걍 이민갈래?

2012-12-0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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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5.수요일

 

논설우원 파토


 

 

 

 

 

 

 

 

 

 

요 며칠 사이 호주에서 한인 폭행 사건이 연달아 네 차례나 일어났다. 그렇게 안전하고 평화롭다는 저 남쪽 나라. 거기 백인들이 지나가는 한인들을 별 이유도 없이 두들겨 패고 손가락까지 자른 거다. 때린 것도 문제지만 현지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 거기에 대한 우리 대사관의 문제 제기와 항의가 있었단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사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다.

 

 

 

 

아는 넘덜은 알겠지만 본 우원은 여행 좋아하고 외국에 머무는 것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캐나다와 영국에서 도합 6년을 살았고 중국에서 그리스까지 배낭여행 4개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를 걸었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또 넉 달을 체류하기도 했다. 머 성격도 맞고 영어도 하고 정치, 사회, 문화 등 국제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테마들에도 익숙해서 외국인들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다.

 

 

 

 

그래서20대 후반이던 90년대 말 처음 캐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 어학연수생이나 유학생들은 물론 현지 캐나다인들, 그들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지내던 1년 정도의 세월, 그때는 내가 전생에 여기 살았던 게 아닐까, 이곳이야말로 제 2의 고향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룰루랄라 지내던 어느 화창한 가을날, 우원은 여느 때처럼 친구를 만나러 다운타운 중심가의 썰로우 스트릿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어떤 젊은 친구가 성큼성큼 내 옆으로 걸어온다. 그리고는 스쳐가며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이는 거다.


 

 

 

 

 

 

“I will kill you, Chinese.”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냥 사라져 가는 이 생퀴. 누가 봐도 멀쩡하고 건전해 보이는 20대 청년.

 

 

 

 

그것이 우원이 처음 겪은 인종차별, 혹은 인종증오의 현장이었다. 그날 룰루랄라 밴쿠버 생활, 고향 같은 포근하고도 편안한 느낌에는 첨으로 한 줄, 선명한 금이 간다. 그러면서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현지 백인 남자친구에게 얻어맞아 다친 유학생, 공원을 산책하다가 부랑자에게 폭행당해 의식불명이 된 한국인 여성 등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물론 그런 일들은 울나라에서도 매일같이 일어난다. 문제는 암암리에 인종차별적으로 벌어지는 현지 경찰이나 공권력의 무성의한 대응. 이게 진짜 답이 안 나오고 억울하다. 거기에 때로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복지부동 무사안일주의가 더해져,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보호받을 길도, 구제받을 길도 없기 십상이다.

 

 

 

 

…글타. 그곳은 내 고향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뿐.

 

 

 

 

그 담에 영국으로 옮기고 장기 체류를 하면서 그런 상황들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길 따라 조용히 걸어가는데 어디서 우유가 좀 남은 우유곽이 날아와 머리통에 부딪히는 거다. 옷을 버린 건 말할 것도 없다. 이게 대체 먼가 고개를 돌려 보니 지나가는 버스에서 10대들이 열린 창문 틈으로 비웃고 있다. 이 넘들이 왜 날 골라 이 짓을 했을지는 안 물어봐도 뻔한 일.

 

 

 

 

 

 

종이 아니고 이런 넘.

 

 

 뚜껑은 열려 있고 우유는 좀 남았고.

 

 

 아팠어.


 

 

 

 

 

 

허나 이런 일 하나하나에 억울해서 주먹을 불끈 쥐면 외국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룰루랄라는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응하며 살던 중에 이경운 사건을 접하게 된다. 한국 국적으로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에 살던 스무살 청년이 영국 유학을 왔다가 며칠 만에 사망한 사건이다. 현지에서 교통사고로 결론을 냈는데 그 처리 과정이 무성의하고 전후 상황이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여기에 더욱 우원을 가만있지 못하게 한 것은 현지 공관과 외교부의 안일하면서도 고압적인 자세.

 

 

 

 

그래서 외국에서 조용히 살려던 우원, 결국 그 일을 1년 넘게 붙잡고 있으면서 울나라 국과수를 영국에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귀국한 후에는 또 어쩌다가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된 한지수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본지 지면을 통한 지랄발광 끝에 외교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끌어내고 무죄 방면시킨 사실, 아는 넘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런 적지 않은 경험들 속에서 우원이 깨닫게 된 것은,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머 돈이 엄청 많거나 하면야 좀 다른 문제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험하고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 많다. 운 나쁘게 안 좋은 상황에 휘말려 들면 하소연 할 곳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허다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는 지점들이 널려 있다. 어린 우원이 천국 바로 아래 구백구십구국이라던 밴쿠버에서 첨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바로 이런 거였다.

 

 

 

 

…근데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냐고?


 

 

 

 

 

 


 

 

 

 

 

 

몇 달 전 우연찮게 한 야권 정치인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정세 돌아가는 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사람이 갑자기 이러는 거다.

 

 

“아 근데, 진짜 박근혜가 되면 어떡하죠?”

 

 

 

 

우원이라고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이어서 나오는 말.

 

 

 

 

“진짜 이민 가야 되나. 박근혜 대통령 되면 이 나라에서 어케 살지.”

 

 

 

 

정말 이민 갈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석이라도 저 정도로 알려진 정치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건 우리가 푸념조로 나누는 위기감의 정서를 그들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실제로 뛰는 이들조차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국민으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 우원은 유별난 애국자도 아니고 한민족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류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 때문이던 누구 때문이던 이민 갈려 가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 땅이 아닌 세계 어디에 가서 살던 우리는 결국 손님이나 국외자, 운 나쁘면 침입자에 가까운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점이다. 그곳의 어느 것도 진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머 어릴 때부터 자라고 성격도 좋아서 그 사회에 아무렇지도 않게 동화할 수 있는 소수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첨엔 잘 모르다가도 세월이 지나면서 머리 위 그리 높지도 않은 곳에 유리벽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열분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들과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열분들은 다르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구백구십구국 밴쿠버에 간들 벌건 대낮에 이 생퀴 죽여버린다는 소리나 듣고, 신사의 나라 운운하는 영국에서는 애들 던진 우유곽 맞는다. 코알라의 나라 호주에서는 길거리에 나가는 족족 뚜들겨 맞고 손가락 잘리고 그 외 에도 여기서 죽고 저기서 의식불명 되고, 어떤 데서는 살인누명 쓰고 감방에 들어간다.

 

 

 

 

그럼 어쩌냐? 결국은 이민 안가도 살 수 있는 곳으로 내 땅을 만들어 가는 수 밖에.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세상. 싫기도 싫지만 쪽팔려.

 

 

 

 

 선거가 20일도 안 남았는데 분위기가 뜨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3년만 기다리자고 이를 갈던 그 의분은 어디 간 건지, 다들 이 무거운 세상에 지쳐 버리고 자기 앞가림할 생각만 하는 건지 먼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다만 내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라도 따로 할 일은 있는 법이다.

 

 

 

 

우원은 여행 좋아하고 외국 좋아한다. 하지만 내 나라가 도저히 살만한 곳이 아니라서, 오늘의 일상이나 내일의 희망에 기대할 만한 게 없어서 패잔병처럼 도망가 살고 싶은 건 아니다. 농담처럼 하던 이민 이야기를 그런 기분 속에서 계산기 두들기면서 진지하게 숙고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거다. 이번 대선, 향후 얼마나 긴 세월이 될지 모를 우리 매일매일의 삶이 지금 여기에 걸려 있다. 수십 년 간 그 고생해서 가꿔놓은 이 나라를 꼴도 보기 싫고 살기도 싫은 나라로 만들 수는 없는 거다. 근데도 단일화 후 아직도 서로간에 쓸데없는 말들 나오는 걸 보면 이러다 진짜 그 꼴 되는 거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니 닥치고 정권교체. 이런 저런 다른 입장이나 생각으로 다투는 건 그런 담에.

 

 

 

 

길거리서 우유곽이나 맞고 다닐 거 아니면.


 

 

 

 

 

 

파토

 

 

@pato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