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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수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연약한 잡식동물인 영장류들은 무리를 이루고 살아감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한다. 그 중에서도 좀 특출난 종이었던 인간들은 그 무리를 발전시켜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형성한다. 그 국가가 존재하는 최초이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구성원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태어나고 죽어가는 국가의 구성원들을 계속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고 모든 종류의 노력을 다 하기 마련이다.

 

 

 

 

즉, 우리가 속해있는 이 국가란 존재는 우리의 생명을 보호함과 동시에 자신의 영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이는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의 3대원칙과도 맥이 통한다.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2. 1번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1,2번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국가 역시, 국민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고, 그 범위안에서 국민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그 두가지를 지키는 범위안에서 국가의 영속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그 국가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며, 심지어 그들이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것들이 산산히 부서져 버리는 과정을 복기한다는 것은 더욱 더 괴로운 일이 된다.

 

 

 

 

글을 쓰는 현재시각 2012년 12월 12일 12시 12분,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3년전에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장교집단이 정상적인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군 내부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권력을 탈취하고자 반란을 일으킨다.

 

 

 

 

명목상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이었으며,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는 사건 현장이었던 궁정동 안가에 초대받아 살인사건 현장의 바로 옆동 건물에 있었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수사 진행 절차상 반드시 필요했던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했으며, 무단으로 전방 경비에 투입되어 있었던 군 병력을 빼돌려 서울로 이끌고 오는 등, 이미 법적인 정당성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은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30경비단 단장이었던 장세동의 집무실에 모여 자신들만의 사령부를 설치하고 이 과정을 지휘하고 있었고,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중단시키고 진압하려는 3군사령관 이건영,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은 무력의 사용까지 고려하고 있던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 정승화 참모총장은 이미 이들에게 연행되어 전두환이 장악하고 있던 보안사로 끌려간 상태였고, 전두환 일당을 불법 세력으로 규정하여 진압하려 했던 각군의 지휘관들은 차례로 이들이 동원한 무력앞에 속수무책으로 체포되게 된다.

 

 

 

 

그 와중에서 한 명의 장교가 총격전 끝에 사망하게 된다. 바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오랑 소령이다.


 

 

 

김오랑 소령은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연행하기 위해 들이닥친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병력을 몸으로 막아 세우는 과정에서 온 몸에 여섯발의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하게 된다. 정병주 사령관 또한 팔에 관통상을 입은 채로 연행되게 된다.

 

 

 

 

이 장면은 사실상 당시 진행된 사건의 성격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병주 소장은 대한민국 국군의 특전사를 총괄 책임지고 지휘하는 특전사 사령관이었다. 그리고 이 현직 특전사 사령관을 연행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특전사령부 소속의 3공수여단 15대대 병력들이었다. 전형적인 하극상이었으며 이 때 동원된 병력들은 자신들의 최상급 지휘관을 무력으로 제압한 것이다.

 

 

 

 

앞서 연행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일당이 자리잡고 있던 30경비단이 바로 수도경비사령부의 예하부대였으며, 그 30경비단의 단장이었던 장세동의 직속상관이 바로 장태완 소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군이라는 시스템을 부정하고 파괴한 것이다. 나아가 군이 특별히 담당하고 있던 국가의 기능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한 것이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전두환이라는 비뚤어진 권력욕으로 가득찬 정치장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 자신을 저 멀리 동해안 동경사로 전출시켜 권력의 주변에서 제거하려는 정승화 참모총장의 행동을 미리 알고 제압하기 위했던 것 뿐이다.

 

 

 

 

이들의 시도는 분명히 국가라는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었으며, 그 시도에 맞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자신의 상관을 보호하려던 김오랑 소령은 그들이 보낸 병력의 총탄에 맞아 숨지게 된다.

 

 

 

 

단순히 군 내부의 권력다툼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는 양비론적 시각은 전혀 옳지 않다. 분명히 한쪽은 시스템을 파괴하려 했었고, 다른 한 쪽은 그 시스템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파괴하려는 쪽이 더 앞선 정보와 병력으로 무장한 상태였고 더 치밀한 사전 계획과 신속한 결단이 있었기에, 33년전 오늘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국가의 시스템은 완전히 부정되고 파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김오랑 소령은 시스템을 지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을 잃어 버렸을 뿐 더러,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조차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그리고, 그의 가족 또한 붕괴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김오랑 소령은 1946년생이었으니 당시 나이 34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백영옥이라는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받은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증세가 와서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상태에서도 남편의 명예회복을 바라던 그녀의 노력은 국방부로 하여금 1990년에 와서야 김오랑 소령을 중령으로 추서하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의 3당합당으로 충격을 받고 있던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까지 직접 만나 정치적인 해결도 모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결국 90년 12월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전직대통령 전두환, 현직대통령 노태우, 진압병력을 이끌고 온 박종규, 최세창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고까지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런 그녀의 활동을 당시의 권력자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외압에 의해 강제로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부산 영도병원에 격리조치를 당한다. 그리고 몇 개월 후, 91년 6월 28일 밤, 자택의 3층 베란다에서 투신한 상태로 발견되게 된다. 친지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죽을 이유도 없고, 죽을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경찰은 황급히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마무리하게 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장태완씨의 가족들 역시 모두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장태완의 아버지, 장태완의 아들, 그리고 장태완의 부인..

 

 

 

 

정병주 사령관 역시 이름없는 야산에서 발치에 뒹구는 소주병 몇개만 남기고 목을 매달아 죽었다.


 

 

 

 

 

 

시스템을 붕괴시키려던 자들은 붕괴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자신들만의 권력을 즐기며 아직도 호의호식하고 있건만, 시스템을 지키려던 자들은 이렇게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상황.

 

 

 

 

난 이 상황을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결코, 죽을 때 까지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시스템은 붕괴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공중파 방송은 일찌감치 붕괴해 버렸다. 파렴치한 사장을 임명하고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방송인들은 꽂꽂이 교육이나 받고 앉아 있거나 아예 방송하고는 관계없는 한직으로 배치받고 심지어 쫓겨나기까지 한다.

 

 

 

 

모든 사법, 검찰, 경찰등의 공권력은 자신들의 주업무가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도 잊은지 오래인 상태에서 집권세력의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의 안전에 관련된 정보 수집 및 분석에 전념해야 할 정보기관의 직원이 온라인상의 불법적인 선거운동에 동원되었다는 의혹을 사고, 자신의 오피스텔에 갇혀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판이다.

 

 

 

 

공정한 선거를 진행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이다.

 

 

 

 

33년전에는 총을 든 무장병력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파괴하려던 자들이 이제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장치들을 다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전력을 다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 국가는 국민들을 해쳐서는 안된다.

 

 

- 그 범위안에서 국가는 국민들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 그 범위안에서 국가는 스스로의 시스템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삼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극히 일부의 이익을 위해, 극히 일부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바로 우리의 국가가 말이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정치부장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