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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7.월요일

 

추억의 성인용품 테스터 B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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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이민갈래?


 

 

 

 

 

 

 

다들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니 결론부터 던지겠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망명기분 내봐야 대한민국 정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투표 잘 해서 나쁜 것들 이민보내는 세상이 더 속 편합니다.

 

 

 

 

저는 올해 37세로 대학원 졸업 후 5년간 회사 생활 중 이명박 치하에서 식욕저하의 고난을 받고 MB정권 10개월 만에 퇴사하여 호주 이민길에 오른 다음 포털 댓글들을 호불호 클릭으로 심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엔 아주 예전에 딴지일보 성인용품 벤치마킹 B군과 러시아 여행기로 글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주저리한 이야기는 저 개인의 별거없이 좆망한 사례 갈무리입니다.


 

 

 

 

 

 

[1] 이민 타령

 

 

 

 

OOO가 대통령 되면 이민가겠다는 소리는 선거철 마다 나옵니다. 10년 전, 이회창이 당선되면 이민 가겠다던 호기롭던 친구는 지금 모 회사의 팀장으로 서울에서 과로와 노화의 폭주 속에, 가끔 도둑도 맞고 과음도 즐기며 시트콤처럼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의 30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 같이 배팅을 했더라면 저도 이명박 때에는 모험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 5년 후, 제가 어쩌다보니 이명박 치하의 불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일순 나라라도 빼앗긴 냥 이민 테크를 타버렸지 뭡니까? 그리고 어느 덧 2012년, 새누리당 창원 지역구 안홍준 의원의 발언을 보면 여당도 패배하면 이민 갈 각오로 전의를 다지시는 모양인데, 이번 대선 직후 그런 자들이 이민 가는 모습 꼭 보고싶습니다.. 저는 지금 시드니에 이민왔습니다.


 

 

 

 

 

 

[2] 누가 이민 가라고 시키드나?

 

 

 

 

제 경우엔 대선 결과를 놓고 이민을 가겠다고 호기 부린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홍대 근처 서교동에 살았는데, 동네 친구들 술집에 불러모아 투표를 독려하는 정도의 그냥 말랑말랑한 진보적 성향을 지닌 초년의 아저씨였습니다. 용산 참사에 분노했고, 이명박 집권 직후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퇴근 후 양복 차림으로 종종 광화문 행 버스를 타던 조금 더 열이 받은 일개 직장인이었으며, 집회가 점점 심각해져 갈 즈음엔 촛불시민들을 위로하려 혼자 전경버스 데코레이션도 하던 유머감각이 그래도 조금 남아있던 상태의 명랑 시민이었습니다.

 

 

 

 

 

 

 사진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무단으로 퍼왔습니다. 감사히 저장했습니다.


 

 

 

 

 

 

집회에 좀 나가 앉아보니 이게 현실인지 만화 속 허구인지 헛갈릴 정도로 믿겨지질 않더군요. 엠비력 고작 석달 이었는데 저 넘지 못하는 차벽에 절망하고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뒤이어 집회가 최고 정점이던 때에는 거금 들여 30m의 현수막을 만들어 물대포 속을 누비며 세종로에 걸어 놓았던 약이 잔뜩 오른 시민이었구요.(나꼼수 여의도 첫 공연 때 광장 뒤에 내걸었다 무대 안보인다고 뒤지게 욕먹고 바로 걷어낸 현수막이 이겁니다. 허허헛)


 

 

 

 

 

 


 

 

 

 

 

 

 

"언젠가 분명 이 길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옴을 부정하고 그의 주주, 미국, 강부자, 조중동에서 나온다고 믿던 한 인간의 말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새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 중 누구도 더는 그의 무지와 무능과 무책임한 거짓말과 무모한 신앙심에 의해 희생되지 않도록 숨을 쉬듯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부끄럽게도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혼자 주접떨다 도망간 꼴이 되었군요.

 

 

 

 

그 해 겨울에 착찹고단한 심정으로 돌연 사표 쓰고 정치적 망명객의 테크트리로 전향해 이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결심에 이르게 만든 결정적 한 방도 있었다고 고발합니다. 당시 모 대기업 본사 과장 나부랭이였는데, 연말에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 첫 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다음 해 1월과 2월의 수출 물동량을 12월에 붙여넣고 세관에 신고하라는 정부의 이메일 지시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장부 조작을 하라는 일이었고, 정부가 왜 이런걸 시키냐면서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지만, 세관의 전폭적이고 신속한 지도편달로 수출 대기업들이 정말 그 짓을 해서 국가 총 수출액과 국가무역수지를 왜곡해 버렸습니다. 그때의 일로 100만 볼트 전기뱀장어에 감전된 듯한 충격과 실무자로써의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열심히 수출하면 이명박 정부가 그 공을 거둬가고, 서비스로 통계조작도 해줘야 하는 일종의 이명박 정권 부역자 신세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퇴사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에 GDP 단 0.0000001센트도 기여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끝까지 무노동을 택했습니다.


 

 

 

 

 

 

 

[3] 이민으로 무엇을 잃었고 얻었는가?

 

 

 

 

팔자에 없던 갑작스런 이민은 무슨 셀프 유배스런 형벌이더군요. 가장 이민이 쉽다는 호주로 결정했지만, 그 프로세스도 생각보다 길었으며, 동시에 찾아온 세계적 불경기로 호주 정부가 이민 정책과 커트라인을 강화하는 바람에 1년을 예상했던 이민에만 얼추 3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에서 무노동을 고집한 까닭에 퇴직금만 야금야금 까먹으며 그저 키보드 워리어로, 그러다 보니 또 할일이 없어 해외여행이나 등산을 다니는 글로벌 한량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한 직업 경력 단절로 호주에 와서는 제 경력에 맞는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워 지금껏 허드렛일이나 하며 이곳의 살인적 물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빠삐용 노릇 3년만에 인천공항 보딩 게이트라는 심정적 절벽에서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내려 정치적 자유를 얻고 행복하게 사느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호주 현지에 적응하려고 이메일도 호주 이메일로 바꾸고 네이버 블로그 대신 페이스북 가꾸고, 백인 거주지에 방구석 얻어 살고 있지만 다음과 네이버 포털은 신참 이민자를 나라 걱정질에서 결코 해방시켜주질 않았습니다. 댓글로 비이성적인 알바들과 싸우고도 싶고 한국 돌아가는 것도 알고 싶은 욕망은 쉽게 버릴 수가 없더라구요. 설상가상으로 새로 적용된 재외국민투표라는 이 불운한 신참내기 이민자를 대한민국이란 곳과 쉽게 단절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구속구가 새로 등장했지 뭡니까?

 

 

 

 

 

 

 

 

이민와서 대한민국 헌법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던 집회 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사실 그것들 이제 어디다 쓰겠습니까? 다만, 이민 접수 후에는 무한 한량함이 주어지더군요. 이민 준비하면서 해외 여행은 많이 다녔습니다. 뭔가 내 처지가 비장히 느껴졌었는지 뭔지....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의 필리핀 마닐라,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미국 애틀란타, 살바도르 아옌데의 칠레 산티아고..뭐 그런 동네를 선배들 만나러 다니는 기분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와중에 미국인 중 그나마 생각이 오롯이 박힌 금발의 글래머 애인을 만나 호주로 데려와 결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민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인데, 금발 체질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한참 젊을 때 만날 것을 그랬습니다. 아니지, 애인 덕에 미국 영주권 받을 수 있는 것을 모르고 호주로 이민가겠다고 돈과 시간을 버린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허허헛....


 

 

 

 

 

 

[4] SLIDING DOORS

 

 

 

 

다음은 한 편의 가상 소설입니다. 기호 2번 문재인 당선 될 경우, 창원시 안홍준씨의 두 아들들은 어떻게 이민을 떠나겠는가 입니다. 꼭 가라 이것들아!

 

 

 

 

 

 

 

 

우선 12월 말에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처음엔 이민이 그냥 몇 달이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들 서두르지요. 편의상 직장인이라고 해두죠. 종북세력이 국가를 장악해 언제 적화통일이 될지 모른다고 조중동이 떠들텐데 하루 빨리 뜨고 싶을 겁니다. 대체인력 채용 및 인수인계를 위해 1월 25일 까지 출근합니다. 불야성의 상남동 모 주점에서 환송파티 이후로는 백수임이 부끄러워 외출을 삼가합니다. 공황장애에 가까운 여러가지 증세까지 경험하게 되지만, 겨울에 당장 이민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봐도 온통 광고 뿐이라 2013년 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이민/유학 박람회를 기다리며 지루한 방구석 생활을 이어갑니다.

 

 

춘계 이민박람회에 가서 이민 법무사 면담을 통해 모든 가능한 견적을 다 뽑습니다. 그래봐야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정도가 이민을 받아줍니다. 은퇴이민을 받아주는 필리핀은 성에 안차고 가문의 영광 안현수 처럼 스포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러시아도 갈 수 없습니다. 물론, 40억 대 재력가인 부친 안홍준 씨가 투자 이민 형식으로 간다면 빠른 이민이 가능하니 추천합니다. 불법 증여나 노부모의 이민이 흔치 않으니 보통의 30대 전후 사람들 처럼 취업 이민으로 가정합니다.

 

 

이민의 전체 과정 중에는 본인과 배우자의 나이, 학력 및 전공, 보유 자격증, 직업 경력, 재산, 전과 기록, 신체 검사, 통장 잔고, 출입국기록 증명, 국가에 따라 영어 성적 등 요구하는 것도 많으며 아무 전공과 경력이든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것도 부족하면 호주의 경우 어디 지방도시에 일정기간 거주하거나 친인척의 스폰, 유학 후 이민으로 가는 옵션도 있습니다. 미국은 2년에서 5년 가량 걸린다고 하고 호주는 보통 1년에서 몇년 까지, 조건 별 우선 순위에 따라 기간이 달라집니다.

 

 

이민 법무사는 조건이 된다고 했지만, 막상 진행하면서 자세히 따져보면 요건 미달인 경우도 있고, 1년을 공부해도 영어 성적이 안나와 못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고용주 스폰서는 다른 말로 이민 노예제와도 같고 법적, 금전적 문제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법무사는 한 600만원 정도 가볍게 떼어갑니다. 만약 호주나 뉴질랜드로 간다면 IELTS라는 한 번에 21만원 하는 영어 시험을 점수 나올 때 까지 무한반복으로 봐야 하며 학원비는 전과목에 보통 육십 만원 합니다. 필리핀에만 십수군데 IELTS 기숙학원이 있는데 월 120만원 이상 합니다. 영어 성적표 점수 따는데 7개월 걸렸다고 칩시다. 퇴직 1년 후에나 이민신청 접수하고 퇴직3년차에 운이 좋으면 이민 승인. 결국 문재인 정부 싫어 나가려 해도 3년간 어쩔 수 없이 인질이 되어야 합니다. 출국해서 집 얻어서 세간살이 좀 채워넣고 허드렛일 직장이라도 잡았다 싶으면 벌써 한국은 그 다음 대선 정국입니다.


 

 

 

 

 

 

[5] 교민의 삶

 

 

 

 

정치적 이민자는 사실 아주 적은 수에 속하겠지요.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민자들이 영주권 취득까지 힘들고 지리한 싸움을 했다면, 그 나라에서 생존이라는 또 다른 싸움을 새 출발선에서들 시작합니다.

 

 

 

 

아무튼, 교민들의 삶이 어떠해 보이는지, 또 제게는 어떤 느낌인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도로 정리해서 투고하고 싶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민 온지 오래된 교민들도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 뉴스에 집착하고 나라걱정질에서 자유롭지 않더라는 겁니다. 저보다 더 심각해 보이더군요. 향수병과 익숙한 한글 읽을 거리를 찾아 포털에 손대고 해외판 조중동 신문에 손대면 멀쩡한 사람도 맛이 가겠지요. 제가 아는 시드니의 50대 교민 한 분은 매일 자정까지 포털만 보십니다. 그것도 네이버만...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있던 나꼼수 강연에 가서 그쪽 교민들과 유학생들도 어깨 너머로 만나고 왔습니다. 강연장에 가득 모인 분들 모두 해외까지 와서도 나라 걱정들로 바빠보였습니다.

 

 

 

 

나라 걱정질은 술, 담배, 주식 끊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한국에서 하던 삶을 그냥 장소만 바꿔 계속 이어지는 듯 싶더군요.


 

 

 

 

 

 

[6] 당신도 대선 결과 때문에 이민가고 싶습니까?


 

 

 

 

 

 

대선 결과에 불만족하고 불안과 분노를 느끼면 얼마든 그것을 피해 이민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충동적으로 이민 간다는 것이 피똥 여러 번 싸는 짓이고, 또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우리 쪽의 누군가는 그랬고, 또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부디 이번 선거로 시민이 주인이고 모두 화목하게 산다고 해서 이름 붙인 민주공화국을 진짜로 만들어 봅시다. 작금의 나라 꼬라지를 멀쩡한 나라로 되돌려서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더는 이민 안가고, 이민자들이 역이민 오고 싶어하게 합시다. 저도 이미 재외국민 투표로 힘을 보탰고 한국에 친척 친구 독려하려 선불 국제전화 총알 가득 채워놨습니다.

 

 

 

 

가카 퇴임식 때 귀국해서 세종로에 다시 그 현수막 내걸고 싶습니다. 우리를 가로막았던 전경버스에 가카가 실려가는 모습도 꼭 보고싶습니다.


 

 

 

 

 

 

 

추억의 성인용품 테스터 B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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