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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7.월요일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일제는 지난 식민지 통치 시절, 조선의 경제발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산업기반이라고는 전혀 없는 조선에 철도를 부설하고 현대적인 도로를 놓았으며 곳곳에 발전소와 항만, 상하수도와 같은 SOC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시절 조선에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현대적 의미의 중화학 제조업 공장과 광산촌, 상업회사가 생겨 산업이라는 이름 붙일 만한 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경인선 개통식, 1899년>

 

 

 

 

 

 

<수풍댐, 현재도 북한 최대의 발전소이다>


 

 

 

<조선방직 공장의 모습>


 

 

 

<현재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국에 토지조사를 실시하고 인구통계를 작성하여 현대적인 행정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고등교육이 가능한 학교와 의료시설, 관공서, 치안시설 등이 생기는 등 사회 전반의 운영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일제가 건립한 경성제대 전경>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조선 민중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학정이 극에 달하였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 직후를 비교하자면,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져 평균수명은 올라갔고 문맹율은 낮아졌습니다.

 

 

호환, 마마 기아의 고통은 이전보다 완화되었고 강력한 치안이 작동되어 조선 말기 활개치던 산적, 비적, 내란 등이 평정되었습니다. 탐관오리의 비공식적인 수탈도 크게 줄었고 대외 안보가 보장되어 조선왕조 내내 끊이지 않았던 외침으로 인한 조선 반도 내에서의 전쟁은, 최소한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겪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태형의 모습>

 

 

 

 

 

 

<일제 순사, 강력한 치안 유지의 바탕이 되었다.

 

 

사진처럼 호환을 물리치기도 하여 한반도 호랑이 멸종에 기여를 하였다.>


 

 

 

 

 

 

 

부가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기존에는 없던 터라 국부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고, 결과적으로 일제시대 조선은 당시 전세계에 불어닥친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합니다.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403/200403030272.html


 

 

 

 

 

 

무능하고 부패하였던 말기의 조선왕조는 국민들을 먹여살릴 능력도, 의지도 없었으며 당시 식민 지배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던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조선은 일본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어느 강대국의 식민지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 2층에 고종의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일제의 병탄은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로 미개한 조선은 이후 35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룩합니다.

 

 

그 과정에서 폭압정치가 있었으며 인권유린, 외세의 개입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경제성장의 공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무리한 상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시작된 일제의 강제 병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양반 상놈 하면서 상투 틀고 갓 쓰고 쇄국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구한말 마포나루 도기 장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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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수의 매국 꼴통들이 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도 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하며 주요 대학의 연구실에 앉아 방귀 깨나 뀐다는 분들이 신빙성 있는 근거자료를 한손에 들고 허공에 저으시며 주장하시는 논리입니다.

 

 

 

 

이 이론은 학계에서도 관련한 논쟁이 많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207031802091&pt=nv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202121195&code=960201

 

 

 

 

통계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 일본의 강점기가 아니었더라면 더 멋지게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에 기반한 주장까지 http://blog.daum.net/kimys1267/8874915 의견은 분분하여 반론에 반론을 거듭합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 공유된 ‘사실’만 놓고 최소한으로 본다고 해도,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소득수준은 구한말보다 높아졌다” 정도의 명제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성,명동 1937년>


 

 

 

 

 

 

짐작하셨겠지만,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본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집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일제에 의한 조선의 경제발전의 성과와 부가가치는 대부분 일제로 또는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군수물자로 유출되었고 그들이 이룩한 수많은 기반시설과 행정 시스템은 결국 식민체제를 강화하고 더욱 효율적인 수탈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식민지 조선은 경제발전이 지속될수록 일제에 더욱 의존해야 하는 기형적 경제 구조를 가지게 되었으며, 실제 조선의 경제성장은 일제에 그 이상의 부를 안겨주어야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가 일제로 수탈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서 걸쳐 상상하기 힘든 인권 탄압과 폭력, 차별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 민중들에게 있어 일제강점기 경제발전의 ‘진실’은, 「일제 강점기에 증가한 부의 총량으로 얻은 긍정적인 후생의 크기 보다는 그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받은 고통의 총량이 더 컸다」 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일제의 고문 도구들>

 

 

 

 

 

 

<강제 징용자들의 절규>


 

 

 

<일제말, 공출된 놋그릇>


 

 

 

 

 

 

 

따라서 그 당시에 경제발전이 일어났건 근대화가 일어났건 신식 문물이 들어왔건 무엇이건, 일제 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외세에 주권을 빼앗기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공통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의식을 공동체 내에서 지속 공유·확산하기 위하여 우리는 교과서와 위인전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배웠고 역사책으로 일제 강점기의 비참함과 부당함을 공부하였으며 3.1절과 8.15를 해마다 기념하며 이런 역사가 다시는 오지 않게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합니다.

 

 

 

 

 

 

<독립기념관, 3.1운동 정신계승 만세운동 재현행사>


 

 

 

 

 

 

우리가 이렇게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선대에게서 그 인식을 배운 이유는, 역사는 항상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외세에 지배를 당하면 다수의 구성원들이 고통을 당하기에, 다시는 외세에 지배당할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외세에 지배되었을 때에는 빨리 그 상태를 벗어나도록,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심과 위상을 유지하여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모습의 반복은 아닙니다. 그 본질만 반복이 되지요..


 

 

 

<"역사는 반복된다. 너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티셔츠>


 

 

 

 

 

 

제일 처음에 제시된 아티클에서 단어 몇 개를 바꾸어 봅니다.

 

 

 

 

'일제' 대신 '박정희' 로

 

 

'식민통치' 대신 '유신독재'로

 

 

'강화도조약' 대신 '5,16'으로

 

 

'강제병탄' 대신 '쿠데타'로

 

 

'조선' 대신 '장면정부'로 등등...

 

 

 

 

단어 몇 개 정도만 바꾸면 박정희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의 논리와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박정희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바탕으로 도출한 ‘진실’은 일제 강점기의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박정희 시절에 증가한 부의 총량으로 얻은 긍정적인 후생의 크기는 그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받은 고통의 총량 보다 컸다」.... 박정희를 그리워하지 않는 분들은 또 다시 여러 근거를 들고 반박합니다.... 고통의 총량이 더 컸다고요...


 

 

 

 <http://kr.news.yahoo.com/nuriwl/poll_v2/result.html?qid=50411 야후코리아 여론조사 결과>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역사의 논란은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의 총량에서 얻은 후생의 크기’와 ‘그것을 얻기 위해 받은 고통의 총량’은 계량화하여 비교, 증명 하고, 그를 통해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옳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부의 크기와 고통의 크기의 비교가 가치를 판별하는 도구가 된다면, 일제강점기에 증가한 부의 총량이 우리 민족이 받은 고통의 총량보다 더 컸다는 사실을 정확히 산출하여 증명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독립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결과를 도출해야 하기도 합니다. 다시 글의 첫 부분 내용으로 돌아가 본다면, 일제강점기 근대화의 성취들은 그들이 자신의 성과를 정당화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당시 희생당한 일부 독립운동가들과 강제 징용, 징발 및 전반적인 조선인의 차별을 감수하고라도 말이지요... 일제는 이렇게 자신의 성과를 식민지 백성들에게 지속 주입하였는데, 깨어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해방 전날까지도 대부분의 조선 백성들은 실제로 일제가 미개한 조선을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다고 믿었습니다.


 

 

 

<민족정론지, 조선일보도 당시는 친일이 옳은 길이라는 신념이 있어

 

 

일제의 고마움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반일이 옳은 길이라는 소수의 신념이 있어 행동에 옮겼습니다>


 

 

 

 

 

 

 

따라서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를 생각하자면, 그들이 무력으로 우리 영토를 강제 점유하고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치를 했기 때문을 우선으로 보아야 합니다, 증가된 부의 양과 수탈한 부의 양을 공정하게 산출하여 저울질 하는 것은(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는 데에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몇몇 사건들을 통하여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라면 시민이 부여한 정당성이나 정의 같은 가치 정도는 포기할 수 있었던 현대사를 강요받게 됩니다. 경제만 발전할 수 있다면 내란을 해도 괜찮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도, 부정과 부패가 있어도 반대세력의 인권 정도는 헌법을 초월하여 탄압을 해도 용인이 되는 것을 삶에서 목격합니다. 성공을 못한 이들이 단죄받는 것은 많이 보아도, 불법과 반칙을 저지른 이들은 성공만 하면 단죄받지 않습니다.


 

 

 

 

 

 

 

그 시기를 경험한 우리는, 성공한 힘을 숭상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일제를 ‘강제병탄’으로 떠올리면서도 박정희에게는 ‘경제성장’의 키워드를 우선적으로 부여합니다... 천에 하나,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리가 해방이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일제를 ‘경제성장’이라는 키워드로 기억하며 고마워하고 있을것입니다.....

 

 

 

 

 

 

<소년조선일보, 황군의 무운장구를 빕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박정희를 숭상했고 전두환을 방치하였으며 재벌을 용인하고 그들의 특권을 그저 인정해 왔습니다..


 

 

 

 

 

 

이러한 판별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IMF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공고화 되었습니다. IMF를 전후하여 “뭘 그러나, 경제를 살리자는데”라는 유행어가 돌 정도로 경제발전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였고, 불과 5년전 대선 때 우리는, 수많은 부정 부패의 징후를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원조가카의 딸을,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유력한 대선 후보로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존재를 입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박정희의 딸로서 위치 점유>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 선거의 후보가 될 만큼의 성취도,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도, 인간에 대한 애정도 그녀의 삶으로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5개국어를 한다고는 하는데... 그걸로 뭘 했는지는 모르겠고...>


 

 

 

 

 

 

그럼에도 그녀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요인을 살펴보면, 바로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라는 증거를 여러 곳에서 찾게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2783.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4/2011022400203.html


 

 



 

 

 

 

 

 

 

다시 말해, 이번 선거에서 만에 하나 박근혜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우리는 박정희를 뽑는 것이고, 박정희의 가치를 다시 지지하는는 것입니다. 경제적 풍요 앞에서는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구성원들과 합의하는 것이고, 정치 권력을 부여함에 정당성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을 우선하는 것에 합의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래서 다시 어느 외세가, (그 모습은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그것과는 다를지라도)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한다거나, (5,16이나 12,12보다 그 방법은 세련될지라도) 내란자가 자신의 독단과 무력에서 비롯된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위기가 온다고 했을 때에도 그들이 경제발전만 약속해준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확신을 보여준다면, 그 어떤 불의도 용서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 일본군 출신의 박정희에게 살해 되었음이 유력하다.

 

 

우리 아이에게, 박정희가 되라고 해야 하나 장준하의 삶을 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가치가 합의된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가치를 공유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야 할 때, 독립운동가의 활약과 용기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치있는 목적이라면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성공만 한다면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성공 사례들이 그렇게 씌여졌으며 지금도 신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선거에서 박정희가 이슈화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유신본당이라 하며 선거에 나왔던 적이 있고, 누군가는 박정희와 얼굴이 닮았다고 해서 대선에 출마하여 반짝 인기몰이를 한 적도 있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얼굴, 닯으셨다니간요...>

 

 

 

 

박정희는 죽은 지 30년도 더 되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 어느 선거 보다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예 생물학적 딸이 본격 출현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옳지 않은 수단을 부정하지 않는 그의 딸이 단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당선이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가치판단 체계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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