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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활한지 벌써 6년이 다 되어 간다. 프랑스어를 배운지는 인생의 반을 넘겼다. 이제는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프랑스에서 보내는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9천 킬로미터라는 거리만큼이나 한국과 프랑스는 참으로 많이 다르다. 물론 두 곳 모두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24시간 내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편의점이 그러하고,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위하여 휴일과 저녁 시간에 일할 경우 임금을 더욱 높게 책정해야 해, 한국과 같은 편의점이 존재할 수 없는 프랑스의 노동 조건이 그러하다. 또한 식당이나 카페에서 서빙 직원의 불친절함에 항의할 수 없는 프랑스가 있고, 손님의 무례함에 항의할 수 없는 한국이 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 일상에서는 일견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주제 중 하나, 바로 안전이다. 안타깝게도 이 주제에 한해서는 프랑스가 한국보다는 한참이나 나아 보인다. 세계 치안 순위에 한국이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주눅들 이유 있나, 뭐. 한국도 하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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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파리 리옹 역 참사


1988년 6월 27일 오후 6시 35분, 물랭에서 출발한 파리 행 열차 Z3500는 파리의 리옹 역(Garde de Lyon)을 향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8킬로 정도 떨어진 지점, 한 여성이 열차 내 비상브레이크를 작동시킨 채 내리고 사라졌다. 이로 인해 예정시간보다 26분 늦게 열차가 출발한다. 통제관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으니 다음 정차역을 건너뛰고 바로 종착역으로 갈 것을 명령한다. 마음이 급해진 기관사는 속도를 시속 100km로 올린다. 얼마 후, 경고등이 들어왔고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았다. 열차는 폭주했고, 간신히 작동한 브레이크의 효과는 미미할 뿐이었다.


한편, 파리의 리옹 역 2번 플랫폼에 정차한 열차에 문제가 생겼다. 차장의 부재. 퇴근시간인지라 서 있는 열차에는 계속해서 승객이 들어찼다. Z3500의 폭주로 인해 리옹 역 조종실에서는 경보가 울렸다. 리옹 역의 모든 신호는 붉은 색으로 바뀌었고, 열차의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Z3500 열차에선 모든 승객을 맨 뒤 칸으로 피신시키고 충격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폭주 열차는 점차 리옹 역에 가까워져 역사 진입을 앞두는 상황이었다. 2번 플랫폼에 정차된 열차의 차장이 도착하였으나 너무 늦었다. 역사 내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폭주 열차는 만원이 된 2번 플랫폼에 정차된 열차를 향해 돌진했다. 기관사는 안내방송으로 열차 안의 모든 승객에게 즉시 내릴 것을 방송하며 자리를 지키다가 폭주 열차와의 충돌로 즉사한다. 사고에서 대부분의 피해는 2번 플랫폼에 정차해 있던 열차에서 발생했다. 56명이 사망하고 57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56명의 사망자 중 자크 브레송(Jacques Bresson) 씨의 아들이 있었다.


브레송 씨는 이 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희생자의 가족들이 완전히 배제되는 상황을 손 놓고 볼 수 없었다. 리옹역 참사 희생자 지지 협회(ASVGL, l’Association de Soutien aux Victimes de la Gare de Lyon)를 결성하였으나 사건 발생 5년이 지나도록 희생자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애도하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폭주 열차의 기관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술자를 불러야 했지만 자신이 직접 하려다가 사태를 키웠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리옹 역은 신호조작자에게 철도 수동 통제권을 주기 위하여 자동승강장 지정 프로그램을 무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폭주 열차가 2번 플랫폼으로 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주 열차 기관사만이 과실치사로 집행유예 4년을 받는 데에서 사건은 종결되려 하고 있었다. 납득되지 않는 사항들의 진실을 하나하나 밝히기에는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브레송 씨는 참사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건의 피해자 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함을 절감했다.


6년이 지난 1994년 4월 30일, ‘프랑스 재난과 테러 희생자 연합(FENVAC, Fédération Nationale des Victimes d’Attentats et d’Accidents Collectifs)’이 결성된다. FENVAC은 1982년부터 1993년 사이에 발생한 재난 재해 희생자 단체 8개의 연합체로 시작하였다. 당시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교통사고로 기록된 1982년의 본(Beaune) 참사, 앞서 언급한 1988년의 리옹 역 참사, 같은 해 6월의 에어프랑스 A320기 추락사건, 1991년 바르보탕(Barbotan) 목욕탕 화재 사건, 2천 3백여 명의 부상자와 18명의 사망자를 낳은 1992년의 퓌리아니(Furiani)의 축구 경기장 붕괴 사건, 같은 해 2월에 발생한 세네갈 클럽메드 비행기 추락사건, 1996년 브뤼츠(Bruz) 병원 화재 사건의 희생자 단체들이 뜻을 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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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VAC, 프랑스 재난과 테러 희생자 연합
이 연합체의 활동으로 프랑스에서 사고 희생자 단체들은 1995년부터
관련 사고의 수사과정에 관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재난 및 재해가 발생했을 시, 희생자들이 단체를 구성하고 행동함으로써 보상과 진상규명에 그들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낼 수 있도록,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돕는 것이다. 또 그들 간의 연대를 통해 사회 내에서 희생자들의 위치를 보장하고 이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자 한다.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 과정에 희생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정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최종 목표는 전보다 조금 더 안전한 사회, 즉 모든 사회구성원이 보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리옹역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 자크 브레송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20년 넘도록 적잖은 성과를 거두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FENVAC의 활동과 함께 프랑스의 재난 재해 희생자 처리 과정 역시 달라졌다. 연합체가 결성된 지 1년이 채 안 된 1995년, 프랑스 의회는 대중교통 및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대형사고 희생자 단체에 사소(私訴. 권리 등을 침해당한 사람이, 형사 소송에 곁들여 손해의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청구하던 민사 소송) 당사자 자격을 부여하는 형사소송법 2조 15항을 채택한다. 이로써 희생자 단체들은 관련 참사의 수사과정에 관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다. 2002년 FENVAC은 이 법안에 거주지나 사업체 등 공공장소가 아닌 모든 장소에서 일어난 재난 재해 희생자를 포함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며, 2008년에 발생한 디종(Dijon) 가스 폭발사고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2005년에는 해당 사고의 희생자 단체뿐 아니라 그 단체가 속한 연합체 역시 사소 당사자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법안이 수정되었다. 2010년 말, FENVAC은 모든 종류의 재난 재해를 망라한 70여 개 희생자 단체의 연합체로 거듭난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는 전례 없이 강력해진다. 프랑스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희생자 단체는 정부 부처와 직접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FENVAC은 프랑스 사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단체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법적 효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프랑스 대형 참사 희생자 단체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FENVAC은 프랑스 고등국립법과대학(Ecole Nationale de la Magistrature ) 및 고등국립경찰학교 등 미래의 사법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국가기관에서 강의를 하는 등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 프랑스에는 참사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진상 규명을 위한 그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에는 테러 사건 역시 관련법에 추가되었으며, 2016년 5월에는 희생자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Ministère de l’aide aux victimes)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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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VAC 및 유럽 재난 피해자 네트워크 대표 스테판 직켈(Stéphane Gicquel)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13일, FENVAC과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 단체인 ‘416가족협의회’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FENVAC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스테판 직켈 씨는 "참사를 처리하는 과정이 오히려 2차 참사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행동" 하게 된 것이라 증언한다. 실제로 프랑스 내 참사 희생자의 권리 향상 및 그로 인한 정부 당국의 안전사고 예방 및 사후 처리를 위한 조치의 발전은 20여 년간의 FENVAC 역사와 함께 했다. 이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희생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송두리 채 허물어 버리는 대가를 치르고야 비로소 얻은 결과다. 현재 프랑스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는 이 사실을 인지하든 아니든 그 혜택을 받고 있다.


비단 프랑스뿐만이 재난 및 재해의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기에, FENVAC과 유럽 재난 피해자 네트워크 SOS Catastrophes는 참사의 처리 과정을 보장하는 표준 규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에게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세계에서 전례가 없다며 결국 시행령으로 이들의 활동을 제한해 버린 한국의 사정과 참으로 대조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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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3일, FENVAC 파리 본부
한국의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의약속국민연대가 
FENVAC, SOS Catastrophes, 11월 파리 테러 희생자 단체 ‘박애와 진실’과 만났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전 지구적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의 연대는 당연하면서도 필수적이다. 총 다섯 개의 단체 대표는 이 날 긴 회동 끝에 올해 10월 중에 서울에서 국제 피해자 연대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에 집중될 것이며, 그 중심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가 설 것이다. 인권에 대한 존중과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보장이 해당 사회의 위치를 결정하는 오늘날, 세월호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혹자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던질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로 세월호 관련 두 단체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적잖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월호 문제가 한국 안에서 적절하게 처리되었다면 사건 발생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고 유예은 양 아빠와 고 김시연 양 엄마가 이 먼 유럽까지 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2014년 6월부터 시작된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은 아직까지도 진전이 없으며, 당시 국가의 부재에 대한 해명을 하기는커녕, 조직적으로 세월호의 특조위에 대한 독립성을 훼손하는 상황이다. 그 누구도 처벌 및 조사받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며, 마지막으로 걸어볼 수 있는 희망은 시민들의 지지와 더불어 국제적인 연대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나마 20대 총선 결과는 이전에 비하여 희망적이나, 그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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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4일, 파리 교민들이 준비한 416 떡을 커팅하는 예은 아빠와 시연 엄마


FENVAC을 비롯한 프랑스 및 유럽 내 희생자 단체 세 곳과 만난 다음날, 예은 아빠와 시연 엄마는 프랑스 교민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이후, 두 사람은 파리 교민들이 준비한 416 떡 케이크를 커팅하기도 하였다. 떡을 자르기 직전, 예은 아빠 유경근 씨는 "하루 빨리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어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며 조금 앞서 "예행연습으로 교민들이 준비해 주신 떡을 커팅"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것.

그것은 참사 희생자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법제화된 권리다.


프랑스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 것.

그것은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권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있다.


또한 특히 한국에 많은 것.

그것은 뜨거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정(情)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라는 ‘정’이 보다 적극적으로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아까이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