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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정한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전 세계 곳곳의 무슬림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우리에게 '무하마드 생일'과 비슷한 지위일 뿐이고 하다못해 가까운 일본도 중국도 대만도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정하고 있지 않다. 대만은 그날 놀기는 하는데 제헌절이라서 노는 것이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쉬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러시아도 12월 25일은 정식 공휴일이 아니다. 러시아 정교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라서.

 

아시아에서 크리스마스를 법정 공휴일로 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한국과 필리핀 뿐인 줄 알았는데 인도, 말레이시아 등도 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또 역사적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가톨릭교도가 많다는 동티모르도 크리스마스가 휴일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국은 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즐기고 있는 것일까.


일단 시발은 미 군정이다. 미국 사람들이야 크리스마스 목숨 걸고 지키니 당연히 미 군정 하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었고 그 뒤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더 능통했고 대통령 선서할 때 난데없이 성경에 손을 얹었던 기독교도 대통령 이승만 치하에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에서 빼자는 논의는 불가했을 것이니 어영부영 공휴일로 굳어졌고 거기다 정부가 크리스마스이브를 통행금지 해제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한 가운데 4천만이 당연히 즐겨야 하는 날이 돼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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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 종교 가운데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것은 불교였다. 요즘도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치면 불교를 능가하지만 단일 종교로는 불교가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하물며 해방 당시 기독교인들의 비율은 3%도 안 됐었다. 그런데 성탄절은 명절이 됐고 석가탄신일은 그냥 까만 날로 지내온 것은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이상한 일이다. 불교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교계는 1963년 처음으로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한다. 이조차 꽤 늦었지만 정부의 대답은 간단했다.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공휴일로 제정할 수 없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공휴일 제정은 범세계적인 것으로 대내외적으로 유기적 연관을 가진 현 사회실정에 비추어 공휴일로 제정한 것이다."


범세계적이 아니라 범서방적인 문제였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불교계는 3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하는 한편 범종단 대책회의를 꾸렸지만 내부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날짜를 두고 심지어 양력이냐 음력이냐를 두고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고 그 날을 뭐라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도 초파일이다 불탄일이다 이러쿵저러쿵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온 묘안이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날짜도 음력 4월 8일로 확정했다.


이제는 대오가 갖춰진 셈이었다. 1971년 9월 23일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추진위원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국회와 정부에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어림도 없다였다. 계속되는 탄원과 거절에 불교 사부대중들도 지쳐갈 무렵 한 사람의 걸물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용태영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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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최후의 기인'으로 불리워지는 그는 학력이 중졸이었다. 그런데 스물여덟 살에 한 점쟁이를 만난다. 이 점쟁이는 도인인지 돌팔이인지 모르겠으나 엉뚱한 말을 한다. "자네는 법조인이 될 관상이네." 


서른을 눈앞에 둔 청년은 그 얘기에 '돌아버린다.' 한자는 하늘 천과 땅 지를 구분하는 주제에 웬 법조인? 하지만 청년은 분연히 용기를 내어 고시 공부에 돌입한다. 공부 방법은 일제 시대 이래 그때껏 실시된 고등고시 답안지를 외워 버리는 것. 그렇게 한 끝에 고등고시에 패스하는 (1년 만에!) 기적을 일궈낸다. 검사를 지망했지만 술 먹고 객기를 부리는 통에 검사에서 탈락했다. (전설에 따르면 불심검문에 걸리자 경찰에게 발가락에 신분증을 끼워 건네는 바람에 모욕감을 느낀 경찰이 청와대에 직소했다고 한다. 본인은 그건 아니라고 했다지만)


변호사로서도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어느 종교 집단과 소송이 붙어 치열한 논쟁이 오가는 가운데 종교집단에서 그의 이마를 도끼로 까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이 용 변호사 그야말로 용틀임을 하며 답한다. "그럼 나는 도끼를 이마로 까겠소."  


도끼를 이마로 까는 이 꼴통 변호사가 부처님 오신 날 공휴일 제정 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용 변호사는 법원에 '석가탄신일 공휴권 등 확인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원래는 판사들이 코웃음을 치며 각하할 분위기였지만 "그러려면 크리스마스도 공휴일에서 제외하시오!"라고 물고 늘어지는 용 변호사의 뚝심에 밀려 11차에 걸친 심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각하. 성탄절은 왜 공휴일로 하느냐는 용 변호사의 질문에는 이런 답이 나왔다. 


"기존의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됨에 따라, 원고 용 변호사는 어떠한 권리나 법률상 이익을 침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불교계는 들썩이고 있었다. 심리 중 수천 명의 불자들이 법원 밖에 운집해 시위를 벌였고 몰려도 너무 많이 몰린다고 생각한 경찰이 고속도로에서 불자들의 버스를 가로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용태영 변호사는 이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에는 '스님'이란 말도 흔하지 않았습니다. 또 직장불자들은 신상명세서 종교란에 '무교'라고 기입했지요. 불자라고 밝히면 신상에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었습니다. 16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불교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불자들이 이겼다. 정부는 1975년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공휴일로 할 것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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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태영 변호사(가운데)가 석가탄신일 공휴제정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불탄종 블로그)


용 변호사는 그의 살아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오신날은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의 생일입니다. 공휴일 지정을 어렵게 얻어낸 만큼, 앞으로 불자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의 생일잔치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불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처님 오신 참뜻을 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로 도끼 깐 사람치고는 매우 옳으신 말씀. 하기야 크리스마스도 그럴 것이다. 흥청망청 휘황찬란하고 돈만 냅다 쓰는 크리스마스라면 예수의 참뜻도 기릴 수가 없을 테니까.


1975년 1월 14일, 불교계의 오랜 노력과 이마로 도끼 깐 변호사 하나 덕에 우리 달력에는 빨간 날 하나가 추가됐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잘 오셨습니다. 오늘처럼 토요일이 아니라 평일에 와 주시면 더욱 대자대비함이 빛나시리라 믿습니다.


부처님오신날 축하합니다. 불자 여러분.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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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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