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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사건은 이미 많이들 듣고 접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조금 뒷북을 치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친절한 오지랖을 시전 하기 위해 노력해 봤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큰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두 가지인데, 첫째로 조영남이라는 지극히 마초적이고 자기 멋대로 하는 꼰대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다. 각종 성희롱 발언과 기행을 일삼으며 '자신은 예술가이여서 모든 면에서 면책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해왔던 한 연예인(!)에 대한 비호감 폭발.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언론과 sns는 사건을 더욱 크게 부풀리고 있다. 


두 번째는 미디어에 아주 간만에 노출되는 소위 미술 평론가, 교수라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난해한 말들. 미술은 그림 그리는 것, 정도가 일반의 인식인 사회에서 그들이 이 사건을 전달하는 방식은 한 마디로 "ㅁ;ㅣ낭럼니ㅏㅇ러"하다.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는 얘기다. 이는 첫 번째로 나온 비호감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더욱 강화한다.


사건의 개요는 단순하다. 조영남이라는 가수가 언젠가부터 화가로 데뷔하여 화투장 그림을 팔아왔는데 알고 보니 다 남이 그려준 거더라 하는 점이다. 게다가 이 사람, 그림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왔다. 유치원 다니는 우리 조카도 그릴법한 그림인데 저런 게 한 장에 몇백에서 몇천까지 한다니 참 쉽게 돈을 벌어왔다. 그것도 남의 손으로 말이다. 역시 현대미술은 다 사기다. 이번 사건에 대해 조영남은 "미술계의 관행"이라며 어물쩍 비비고 넘어가려 했지만 안 그래도 사회 곳곳이 관행으로 썩은 이 사회에서 대중의 시선은 조영남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들고 법규를 날려대며 차갑기만 하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니 법원이 조영남을 향해 법규를 날려만 주시면 조영남은 이 기회에 그간 번 돈 토해내고 주옥같은 삶을 살게 되겠지. 결국 이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간다면 남이 그려준 그림을 팔아 막대한 부를 거머쥔 파렴치한이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까? 아니 그것을 떠나 조영남을 처벌하는 것이 정의일까?

 

필자의 내공보다 삼만 갑절쯤 앞서는 냥이 성애자 다까기 진중권 선생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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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렵게 말하고 많은 것을 생략했다. 그리고 역시 대중도 깐다. 팝아트는 많이 들어봤는데 개념미술은 뭔가? 회화, 조각, 건축, 사진은 아는데 … 개념미술은 ?

 

컨셉만 제공했으면 뭐든 오케이란다. 예술이란 무릇 인내와 고통의 산물인데 달랑 컨셉 던져주고 그만이라니 말인가? 당나귀인가?


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 지루한 미술사를 뒤져보도록 하자.


 

미술사 배경지식

 

우리가 아는 화가의 이미지는 이렇다. 캔버스 앞에 혼자 앉아 베레모를 쓰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나름 성공한 화가는 파이프 담배 정도). 유화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지지리 궁상맞은 자세로 한땀 한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화가의 이젤 너머에는 옷을 벗고 누드모델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음란마귀 물러가라!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화가는 조수를 두고 작업을 해 왔으며, 이름있는 화가들은 영업을 뛰어 주시고 그 밑의 문하생은 화가의 그림을 그리며 해당 화가의 이름을 달고 작품을 판매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이름이 있는 화가는 작품 주문이 밀려들어 올 것이고 작업실이라는 작업 공간을 만들고 혼자 다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을 제자들을 시켜 생산했다. 제자들이 다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들의 도움 없이 대가들도 지금껏 세상에 저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그림을 배울 곳이라고는 유명 작가의 공방밖에 없던 옛날에 도제 시스템이라는 미술의 방식은 이런 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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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암굴의 성모]라는 작품이다. 런던 네셔널겔러리와 파리 루브르에 같은 제목의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작업하던 15세기 후반에도 그의 작품을 제자들이 그리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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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버전


루브르 버전의 마리아 얼굴을 보자 확실히 얼굴의 명암이 매우 부드럽다. 볼의 명함이 약하게 표시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빛을 받아 얼굴에 명암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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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셔널겔러리 버전


반면 네셔널겔러리의 마리아 얼굴은 강한 빛과 뚜렷한 명부와 암부 날카롭게 구분되는 윤곽선 등을 통해 강한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술사학자들은 먼저 제작된 루브르 버전의 경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직접 얼굴부위를 묘사했지만 네셔널겔러리에 있는 암굴의 성모는 제자들이 그렸다고 한다. 이런 일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천재라 불리던 라파엘 역시 그의 초창기 작업은 스승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그렸던 화면 뒤의 강이며 산 등의 배경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라파엘의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스승인 베로키오의 이름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가에 대한 이미지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필자도 모르겠다. 여담으로 흔히들 아는 생전엔 유명하지 않았지만 죽어서 빛을 보는 화가라는 환상 역시 실제 미술사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아는 거의 유일한 예는 반 고흐이다. 그 외 아무리 뒤져봐도 후세에 유명한 화가는 살아서도 유명했다. 이렇듯 미술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잘 포장되어 예술가의 마케팅 전략에 일조한다.

 

조영남의 대작 사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조영남이 "관행"이라고 칭한 것에 대한 배경설명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게 무려 수백 년 이어진 이야기라는 것도.

 

시간을 넘고 넘어 현대미술로 눈을 돌려보자. 20세기가 시작되자 세상은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총을 만들더니 대포를 만들고 점점 더 센 걸 만들어 전쟁을 무지하게 한다. 동시에 세상엔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미술가들 역시 이 세상 밖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사회의 흐름에 파묻혀 같이 갈 뿐이었다. 또한 사진이라는 메체의 등장 이후로 그간 있는 것을 열심히 따라그리던 미술의 종말을 고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대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데 왜 굳지 미술이 필요한가? 라는 물음에 화가들은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방향을 옮겨갔다. 내면을 표현하려다 보니 그림 자체가 아닌 그림의 내용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이 미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그림의 내용은 점점 더 난해해지고 복잡해지게 된다. 엄청나게 다양한 똘끼 넘치는 작가들이 쏟아져 나왔고 누가 누가 더 튈 수 있나를 두고 경쟁하는 판이 되어버렸다. 원래 세상이 막장이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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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복잡하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라 일컫는 미술 사조들은 대략 아주 대략 200년의 기간을 가지고 천천히 움직였던 반면 현대미술의 사조를 보라. 불과 몇십 년 만에 수십 개가 생겼다 없어진다.



마르셸 뒤샹

 

그즈음 변기 뒤샹 선생께서 나타나신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그때 '누가 누가 똘끼가 있나?' 한껏 뽐내던 그 시절 뒤샹 선생은 변기 하나를 들고 와 익명의 사인을 한 뒤 전시장에 놔둔다. 그리고 이게 작품이라고 우긴다. 자신이 그린 것도 만든 것도 아니고 아무 데서나 파는, 그것도 좀 잘 만든 고상한 게 아닌, 고작 변기를 가져와 '샘'이라고 우긴다. 4대강을 파면서 녹생성장을 외치던 누가 생각날 만큼 희대의 사기극처럼 보였다.


당시의 이야기를 살짝 풀어보자. 뉴욕의 독립 미술가 협회는 전시회를 주체하는 곳이었다. 연회비 몇 푼만 내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어느 날 이 앞으로 R-Mutt(리처드 머트)라는 이름의 작가가 변기를 전시하겠다고 보내왔다. 내가 보기엔 남자 소변기인데 작가는 작품이라고 우기는 이 상황에 주최 측은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변기인데 작품이란다. 없는 손녀딸을 업고 팔짝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다. 주최 측은 심도있는 논의 끝에 작품의 전시를 거절했고 변기가 야하게 생겼다는 이유와 다른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소변기는 아니 샘이라는 작품은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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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은 이후 심사의원들에 편지를 보낸다.

 

‘리처드 머트씨 작품  '샘' 은 단순한 하나의 설비로써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배관공들을 위한 상점의 진열장에서 매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머트씨가 〈샘〉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저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제목과 새로운 견해 아래서 실용적인 의미는 사라졌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 줄인 그저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그 용품의 의미는 사라지고 예술작품이 되었다는 말은 후에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된다. 맞다. 이미 철학인지 미술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수준으로 와버린 미술이 그간의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인다. 즉 작품보다 작가와 그 작품의 콘셉트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술은 일반 관객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술이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뒤샹의 작품 혹은 변기에 일부러 쉬~를 한 사람까지 등장했다. 아무튼 이제는 미술만의 언어나 방식이 아니면 이해 못 할 작품들이 난무하게 되고 저기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고 사는 사람들은 미술을 자신의 부를 뽐내거나 자신의 교양을 뽐내는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고 여기는 일반 대중도 많아졌다. (물론 실제 대다수 미술 작가들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의 열악한 처지를 알면 측은한 마음이 들 테지만)



앤디 워홀

 

그런 뒤샹 이후 미술은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방식이 가능하며 모든 이가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즈음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그 유명한 판화 워홀 선생. 조영남이 영감을 얻었다고 얘기하고 따라 했다고 읽는 그 엔디 워홀 선생이다.


그는 공장이라고 부르는 그의 작업실에서 일상용품의 이미지를 대량생산 방식을 빌려 제작해냈다. 예술은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라는 말은 그의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워홀은 대량생산과 산업사회의 모습을 보며 전통적인 생산방식과 장인정신을 내세우던 예술계에 똥침을 날린다. 티비에 나가고 잡지를 만들고 연예인처럼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작품은 공장이라 부르는 곳에서 생산한다. 이 흐름은 현대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작품을 직접 만드는 사람보다 마케팅이 중요하고 작가의 스타성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방식…… 흔하다.


한 가지 더 살펴보자. 팝 아트가 미술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그동안 고상한(?) 미술에 날린 직접적이고 깊숙한 똥침이다. 예술이 가지는 고상한 이미지. 그림은 이젤과 캔버스에 세워놓고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평평하게 눕혀 놓고 그리는 그림의 매체들을 선택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간판 화가 등 다양한 분야 출신들이 자신들이 평평하게 놓고 하던 작업(예술계에서 소위 상업 미술이라며 깔보던 것들)을 보기 좋게 박물관에 걸어버렸다.



슈퍼스타군단

 

워홀 선생 이후 미술계에 차례로 나타난 슈퍼스타들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거대 기업처럼 브랜드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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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만드는지 정확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엄청 파격적이고 부자의 후원까지 잘 받는 성공한 대기업 이미지의 데미안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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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명의 조수를 고용해 쇠로 된 귀여운 풍선을 만드는 제프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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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무라카미 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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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자꾸 만들어 불만 켜도 예쁜 데~라는 제임스 터렐 등.

 

성공한 슈퍼스타들은 현대사회의 기업의 방식과 많이 닮았다. 자본을 토대로 계속 커나가는 대기업과 명성을 토대로 계속 커나가는 예술가. 그들 밑에서 작업을 해주는 수많은 조력자가 있고 이익 대부분은 자신이 갖는 방식.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예술을 통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물론 이들의 작업은 대부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그게 미학적 철학이든 사회에 대한 철학이든 분명한 내용은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작품의 제작과 판매라는 형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만큼 그 부분은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어차피 미학이라는 거 그거 진중권 선생 빼고 아무도 이해 못 하잖나.

 

다시 조영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조영남이 그림을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필자가 미술과 관련된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티비에서 하던 교양프로그램 비스무레한 예능 프로였다. 보티첼리 그림을 한 장 띄워놓고 제법 웃기는 사회학 교수 한 명과 조영남이 앉아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런 프로그램. 미술사를 공부한 입장에서 봤을때 조영남은 그림에 대한 배경이나 사실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혹은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느낌이었지만) 자기가 우기고 싶은 대로 그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시쳇말로 예술가라는 감투를 쓰고 티비에 나와서 하는 혹세무민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 약 판다 하는 느낌적 느낌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필자 역시도 존나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그의 철학을 볼 수 있는 저서에 대한 혹독한 리뷰를 잠깐 보자.



첫 지문부터가 한심하다. “머지않아 서울은 현대미술의 메카가 된다.” 이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두개 제시된다. 한국은 무대뽀 정신이 있고, 백남준의 직계 후예여서란다. 이 위험천만한 해석의 근저는 또한 이렇다.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미술대학이 많고, 비싼 경비를 지출해 개인전을 도처에서 여는 것만 봐도 무대뽀 정신이 충만한 증거라는 것이다. 전국 대학에 개설된 미술대학 과잉은 대학의 수입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미대 졸업생 대다수는 취업난에 허덕여 미술계 내부에서조차 사회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걸 그가 과연 알까? “미술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멀쩡하게 화가가 될 수 있다”(p 45)고 서두에서 주장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개설된 미대의 개수와 한국 미술의 가능성 사이의 함수 관계를 논하고 있나? 그러나 망언의 정점은 역시 백남준 타령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대미술의 선각자 남준 팩이 우리와 똑같은 혈액의 소유자 바로 한국 사람이었다는 것이다”와 같은 지문에 이르면, 논리보다 광기를 동원해 독자를 현혹하는 알맹이 없는 저술의 속물근성을 유감없이 관람할 수 있다. 한데 조영남이 제대로 파악했으면 싶은 게 있다. 그가 “우리 한민족 대표”(p 377)로까지 추켜세우는, 백남준의 약력을 잠깐이나마 검색해보길 권한다. 그는 32년 서울에서 나긴 했지만 50년 전쟁통에 홍콩을 거쳐 일본에서 대학을 마쳤고 이후 활동 무대 역시 모국(이런 용어가 과연 백남준에게 타당한가 싶다)이 아닌 독일과 미국에서 작품 발표를 해왔다. 그의 한국말이 서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럴진대 그를 온전히 한국인이라고 규정하는 게 온당할까? 때문에 위키 백과에서도 백남준을 ‘남한 태생 미국 작가’로 기재한다.

 

진중권이 어디선가 한 표현대로 대한민국은 백남준을 낳아주기만 했지 키워주진 않았다. 설령 백번 양보해 백남준이 한국이 키운 국제적 작가라고 치자. 그 사실과 후대에 태어난 한국인의 운명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형성된다는 걸까? 그 외에 본문에서 거슬릴 정도로 빈번이 등장하는 그와 인맥을 나눈 유명 인사들과의 호형호제 에피소드 역시 값싼 호기심이야 충족시키겠지만 미술서의 본질과도 무관할 뿐더러 결과적으로 필자의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리딩에 방해만 된다.

 

조영남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리뷰_ (서평문화 2007년 가을 67호)|작성자 반이정



그럼 조영남 그림의 수준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 대작을 한 것이 밝혀졌으니 그림의 기술적인 표현에 대한 논의는 논지를 한참 벗어나는 것일 터 그의 콘셉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됐다고 한다. 이미 70년대 초기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니 근 40년을 넘게 그림을 그린 셈이다. 그것도 화투장 그림으로 말이다. 게다가 그는 얼핏 팝 아트라는 그것도 앤디 워홀의 팝 아트 방식을 사용한다고 수많은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 앞서 말한 엔디 워홀이 산업사회와 대량생산이라는 방식을 나타내기 위해 코카콜라 켐벨수프통 등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또한 그 방식 역시 복제가 쉬운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현대사회의 대량생산 방식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그림을 평가할 때 그 작품이 좋은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그림의 내용, 표현, 매체에 기반을 둔다. 작가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내용이 있는 작품, 그 내용을 잘 돋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표현방법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눈에 명확히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작가가 선택한 매체.

 

이 기준으로 한번 나누어 보자. 우선 그림의 내용. 화투라는 일본의 놀이문화를 빌려왔다. 일본을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놀이를 할 땐 제일 먼저 꺼내 드는 화투. 충분히 재미있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런 것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아닌지 하는 그의 철학과는 반대로 화투 자체는 나름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40년이나 그림을 그려 왔으면서 한 가지에 집착하는 것이 조금 애처롭긴 하지만 다양성 부재나 발전의 더딤으로 그를 까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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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가 남이 그려줬다면 기자 불러놓고 이런 가식적인 사진은 찍지 말았어야지?

 

그다음 표현. 앞서 말한 팝 아트의 정신과 내용 따위는 다 무시한 전통적인 회화에서 쓰이는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그의 작업방식을 보자. 그림을 가장 팔기 좋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회화라는 매체. 자신이 스스로 그렸다고 오해하기 가장 쉬운 매체를 선택한 점 모두 팝 아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그가 쓴 글처럼 그의 그림도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 모순적인 사고의 빈곤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예 대놓고 앤디 워홀처럼 "난 내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라고 얘기할 수 없었던 조영남. 스스로 만든 그물에 갇힌 한 마리 화개장터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내놓은 대답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리는 대답뿐이다. 아무리 변명을 하려해도 수백 년 전의 방식을 가져와 변명하는 그 고루함이란 안쓰럽기까지 하다.


누가 봐도 직접 만들지 않았거나 아니면 작가가 만들든 남이 만들든 상관없는 -오히려 작업의 컨셉이 중요한 여타 개념미술- 작가들의 작업과 달리 조영남의 그림은 철저히 자신이 그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을 동원했고 겉으로는 자기가 그린 척, 뒤에서 몰래 남에게 대작을 맡겼다. 분명 기만이고 사기가 맞긴 맞다. 하지만 공분을 산 것과 법적임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다르다. 검찰 역시 관심도 없는 미술책 몇 권 뒤지다 보면 결국 조영남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내가 법을 잘 몰라서 그럴지도). 또한 이러한 방식이 기존의 나름(?) 성공한 작가들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만에 하나 협회에서 반론을 제기한다면 … 이건 백프로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이 끝날 일인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은, "그렇지 않다" 이다. 


애초 예술활동이란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이도 어른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만 자신의 그림을 돈을 받고 판매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는 개인이 판단할지라도 수많은 미술계 종사자들은 그간의 역사와 이론을 토대로 이를 정리하고 금액평가를 도와주고 소비자에게 작품의 가치를 설명해야 한다. 최근엔 미술 활동을 하여 작품을 파는 많은 연예인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접근하는 화랑이나 겔러리가 많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연예인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예술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화랑이 돈을 벌고 연예인은 화가라는 타이틀을 얻어 조금 더 고상한 이미지로 자신을 재포장하는 방식. 이미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물론 미술계에서 학술적으로 조영남의 미학을 다루거나 혹은 여타 다른 연예인의 작품을 평가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작가에 비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간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금전적 이익을 위해 화랑이 움직이는 것을 좋게 봐준다 하더라도 작가들이 설 자리가 그렇지 않아도 좁은 한국 미술계에서 모두가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조용한 것.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대기업 이름을 걸고 각종 골목상권까지 진입해도 소비자의 믿음을 얻고 장사 잘하는 상황. 연예인의 후광이나 그들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이 하는 대리운전, 이삿짐센터, 음식점, 피시방 등 거의 진출 안 하는 분야가 없는 연예인 사업들. 그리고 연예인을 믿는 만큼 그들의 사업에도 믿음을 보내는 소비자들.


무릇 조영남과 그를 비롯한 다른 연예인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위의 상황에 비춰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화랑.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보단 연예인의 후광을 이용하여 하는 장사일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파는 그들만 비판할 문제는 아니다. 이런 것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미술계 전체와 그림을 사는 관람객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이 조영남의 대작 사건 과연 그와 연관된 갤러리나 큐레이터들이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다! 라는 것에 내 부랄…까지는 차마 아까워 못 걸겠다.

 

이는 비단 조영남 혹은 연예인 작가들에 국한된 문제인가? 아니다. 숨죽이는 미술계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간 수많은 명망 있는 교수와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작가들 과연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 했을까? 조영남이 특별히 파렴치 하기 때문에 달랑 십만 원 주고 자신의 대작을 맡겼을까? 워워 그럴 리 없다는 것 다들 안다. 교수 작업 도와준다며 작가와 같이 일한다며 자신의 노동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아와야 했던 수많은 조수들이 이 땅엔 넘쳐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너무나 공고히 뿌리 박혀 있다. 심하게는 일 년간 교수 작업실에서 모든 작업 대신해주고 더이상 못 버티고 나오는 순간 160만 원 받은 사람까지 봤다.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와 같은 그늘까지 전부 드러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작품의 질, 개념, 현대미술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 사회의 노동에 대한 형편없는 인식이 예술계에서도 똑같이 보일 뿐이다.

 

즉 '창작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엄청난 논리 아래 조영남의 대작을 해준 작가와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젊은이들은 오늘도 어느 작업실에서 밤을 세워가며 남의 돈 버는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 정말 쥐꼬리만큼의 돈을 받아가며.

 

따라서 이 연사 소리높여 외쳐본다. 이론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기 전에 이 땅의 예술가들의 현실이나 제발 한 번쯤 고려해 달라고. 조영남이 자신의 잘못을 차마 깨우치지 못할 만큼, 이 땅의 열악한 환경의 수많은 미대 졸업생들은 오늘도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노동을, 하루를 자신보다 더 유명한 사람을 위해 바치고 있는 게 미술계에선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리고 그가 말한 '관행'을 미술의 개념이니 뭐니 이유를 붙여가며 설명하는 많이 배우신 분들도 핵심은 작품 하나에 꼴랑 십만 원 주고 "이게 관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에 한마디 쯤은 해주시는게 그들의 역할이 아닐까한다. 분명 조영남이 이야기한 관행이 작품의 생산에서의 개념을 관행이라고 불렀다기 보단 10만 원만 던져줘도 누구든 자신의 작품을 만들라고 맡길 수 있는 이 사회의 너무나 값싼 노동력에 대한 관행 일테니 말이다.



도상학과 도상 해석학 


미술에는 도상학과 도상 해석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도상학은 말 그대로 그림에 그려진 무언가를 보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도상 해석학은 찾아낸 의미를 가지고 그 시대 혹은 작가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을 유추해 내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작게 작게 보이는 여러 조각들은 결국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돈 만능주의 그 적나라한 민낯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대작료를 꼴랑 10만 원 지급하고 7년간 일을 시킨 조영남이 더욱 괘씸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엔 교수라는 작가라는 감투를 쓴 제2 제3의 조영남이 너무나 많다. 그가 한 50만 원씩 줬다면 내가 이렇게 비판만 하진 않았을텐데..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바로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그럼 20000





타데우스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