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일기2:허상과 싸우다. 기본 카테고리



1. 미안

 

2016년 8월 광주 유스퀘어

 

“죄송한데, 길 좀 비켜주시겠어요?”

 

“죄송한데, 포크 좀 주시겠어요? 제가 젓가락질을 못해서...”

 

“죄송한데...”

 

“야! 넌 뭐 그렇게 미안하고 죄송하냐!”

 

친구놈의 딴죽이었다.

 

“...그러게, 난 뭐가 그렇게 미안하지?”

 

 

2013년 9월 도서관 장애인 전용 화장실

 

“아 씨... 드릅게 안나오네...”

 

끼이익

 

“어...어?”

 

용변을 보던 중 화장실 문이 열리려한다.

 

“사람있어요!”

 

“어이쿠!”

 

“...장애인이에요?”

 

아마 청소부는 단 한 번도 도서관화장실을 장애인이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나 보다.

 

“장애인이냐구요?”

 

“아... 네... 죄송합니다.”

 

청소부도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아... 여기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어서... 미안해요 학생.”

 

역시나...

 

 

 

 

2012년 대학 새내기

 

“죄송합니다. 못 갈 것 같아요.”

 

MT에 가지 않기로 했다.

 

“왜? 무슨 일 있니?”

 

“아,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애들이 저 챙기느라 힘들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라고 둘러댔다. 정확히는 낯선 사람들과 단체활동을 하기 싫었던 거겠지만...

 

어쨌든 난 그 해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종강파티까지 모든 학과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토론하고 발표하지만, 수업 외에는 아무것도 안하는(혹은 피하는),

 

난 괴짜였다.

 

 

 

2011년 모교 고등학교 2학기 어느 날

 

“야, 왜 우리 반은 안 찍냐?”

 

학교 홍보를 위해 카메라들이 돌아다녔다. 내가 속해 있던 반을 빼고 말이다.

 

‘설마 나 때문이겠어? 아닐거야...’

 

야간자율학습에서 내가 빠진 날, 귀신같이 내가 속한 반을 촬영했다고 한다.

 

 

 

2011년 모교 고등학교 1학기 기말고사 후

 

중국어 수업에 흥미가 있어 제법 공부했다. 성적이 좋게 나왔다.

 

“아 씨 병신한테도 지네.”

 

반에서 공부를 제법 잘하던 사람(동창이지만, 말을 한 번도 섞어본 적 없어서 어떻게 지칭해야할 지 모르겠다.)의 말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이 새끼 패드립햌ㅋㅋㅋㅋㅋㅋㅋ”

 

떠들고 웃고 있었다. 대놓고 말 못하는 금기를 깨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었을까?

그런데 난 듣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음악은 듣고 있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렇게 말하던 사람은 어느 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2009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무슨 걱정 있니?”

 

담임교사의 상담이었다. 누구나 돌아가면서 하는 그 짧은 상담 말이다.

 

‘걱정? 진짜 걱정을 말해드릴까요? 전 제가 가진 장애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늘 걱정해요! 그 걱정 때문에 말도 안하고, 부탁도 안하려고 해요! 1년이 다 되도록 말을 섞은 사람은 2명뿐이라구요!’

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다. 뭐 이딴 말을 했으면 일이 커졌겠지. 학교는 지들 명예 때문에 운영위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할 테고, 나올 대책이 ‘장애인식개선교육’ 따위일 것을 생각하니 말을 안하느니만 못했다.

 

“아, 문제 없어요.^^ 학교 너무 재밌는 걸요. 애들도 너무 잘해줘요!”

 

졸업할 때까지 난 친구를 5명 사귀는데 그쳤다.

 

 

 

 

 

 

2008년 중학교 3학년 1학기 음악 실기시험

 

“해보라니까 왜 못해?”

 

오카리나 실기시험 날, 음악교사가 날 다그쳤다.

 

“아 저...”

 

난 제대로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보여줘야 했다. 소근육을 신속히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왜 말을 안 했니?”

교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아, 됐다. 들어가!”

 

“네...”

 

 

“아오 저 X벌X, 죽여불고 잡네.”

절친의 중얼거림이 내 옆에서 들렸다. 그나저나 그 음악교사는 왜 내게 화를 냈던 것일까? 죄책감의 왜곡된 표현이었을까? 뭐 지금 그걸 생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나저나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었다.

 


 장차법1.png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8년 4월 11일에 시행되었다.

 

    

 

2005년 11월

 

“죄송합니다. 아버님! 늦봄선생께서 살아계셨더라면 가장 먼저 한슬이를 입학시켰을 텐데! 저희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늦봄문익환학교 교장이었던 목사는 머리를 조아렸다.

나의 부모는 나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 틀이 짜여진 교육에 대해 당신들의 아들이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자유로움을 더 펼치길 원했다.

하지만 대안학교에 대해 몰랐고, 대안학교도 장애학생을 몰랐다.

요즘 같으면 입학거부를 당했다고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엔 장차법도 없었고, 비인가학교였으니 교육청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다. 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짝이 뭔 죄가 있겄소. 어디 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좋아질 테니, 그 때 좋으면 봅시다.”

 

난 4년 후 지역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다음은 뭐... 말한대로......

 

 

2004년 2학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2층 계단 위

 

“손땔까, 말까...ㅋㅋㅋㅋㅋㅋㅋ”

 

“아... 하지마! 제발!”

 

동급생이 2층 계단 위에 내가 탄 휠체어를 앞뒤로 민다. 난 공포에 질렸다.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 이 새끼 봐라”

동급생은 정색한다.

 

“진짜 손 뗀다.”

“아 진짜 미안, 잘못했어!!”

“ㅋㅋㅋㅋㅋㅋ농담이야 인마”

 

그렇게 또 교실로 나를 갖다 놓는다.

일주일에 세 번 씩은 꼭 그랬다.

 

그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나는 너무 일찍 악마를 보았다.

 

 

2003년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교실 안

 

“쟤는 숙제 안 해와요!”

 

동급생들의 비난이\과 비웃음이 이어졌다.

 

“아 저... 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배움이 굉장히 느렸다. 재활운동을 다니기 위해 오후수업은 빠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모두 개근처리 됐다.) 그것을 알았던 담임교사는 나만의 숙제를 따로 만들어 줬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쉬웠다. 그런데 하필 그날, 담임교사는 출장을 간 상태였다. 출장을 간 담임교사를 대신해 온 교사는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4학년 1학기가 다 지나가지만 아직도 구구단을 못 외운다는 고백을 말이다.

 

 

 

 

2. 허상과 싸우다.

 

“그럼 그 때는 왜 지금처럼 ‘ㅈ까!’하지 못했던 건데?”

 

“살려고 그랬던 거지... 살려고”

 

실제로 그랬다. 불특정 다수에게 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생존’말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나는 그 현실에 맞추기 위해 착해져야 했다. 친절하고, 조용하고..... 물론 그 안에서 ‘나’는 없었다. 나의 자존감, 정체성, 생활양식, 개성은 저 멀리 보내야 했다. 본래의 나는 정반대다. 떠벌이며, 욕도 잘하고, 온갖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살아야 했다. 착함을 강요받았다. 선택권 따윈 없었다.

 

나는 실제로 미안했던 것일까? 내가 가진 장애로 인해 남이 고통받는 모습이 실제로 미안했을까? 나름대로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도움을 받고, 그 자체가 수치스러워서 ‘미안하다’는 단어만 빌린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남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밝혀야 했다. 내가 그곳에 갈 수 없음을, 손가락을 필 수 없음을, 화장실 갈 때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배움이 느리다는 것을 말이다. ‘무능’이 곧 나의 정체성이었다.

 

내가 존재해서 미안하다는 허상, 나의 존재가 남에게 피해가 된다는 허상, 부모의 꿈을 갉아먹는다는 허상, 내가 완전히 무능하다는 허상이 나를 지배해 왔다. 부모를 제외하고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았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랬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

 

“그런거지 뭐... 아! 여기 죄송한데...”

 

“아! 그만저만 해라 쫌!”

 

“쩝... PC방이나 갈래?”

 

“니가 내냐?”

 

“아니.”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허상과 싸우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이 돼버렸다.

극복은 없다. 익숙해 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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