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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3. 목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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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애꾸눈 (장애인 비하라고 욕 먹을 것 같지만 다른 표현이 없음 ㅠㅠ)은 단연 로마를 벌벌 떨게 했던 천하의 명장 한니발이겠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하후돈도 들 수 있고 우리 역사에는 태봉을 건국한 후삼국의 풍운아 궁예도 그 중의 하나겠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빼면 섭하다고 나설 인사가 하나 더 있지. 


모세 다얀 (Moshe Dayan 1915. 5. 20. ~ 1981. 10. 16.). 이스라엘의 애꾸눈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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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사가 ‘가끔 쓰는 전쟁과 사랑 이야기’ 라고 할 때 기실 이 사람 이야기를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까 잠깐 고민했었어. 모세 다얀의 이름을 되짚게 한 건 1973년 10월 6일 시작된 전쟁, 이 애꾸눈 명장을 나락으로 빠뜨린 욤 키푸르 전쟁 (4차 중동전) 때문이긴 하지만 이 사람의 매우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도 빼놓기 뭐해서.


일단 이 사람이 한쪽 눈을 잃은 사연부터. 그는 1915년 생이고 이스라엘 독립 훨씬 이전부터 시오니즘의 영향으로 옛 가나안 땅에 들어와 집단 농장 꾸리고 살던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 할 영국의 중동 정책은 그야말로 '이랬다 저랬다 헛갈리는 겁많고 비겁한 바보 녀석들'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 흑인들이 간수들을 놀리던 노래 가사)이라고 할만 했지.


애초에 '전쟁에 이기면 너희 맘대로 해줄게!'의 메시지를 유태인과 아랍인들 양쪽에 던진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아랍인들의 반란에는 유태인을 무장시켜 대항케 하다가 유태인들의 세가 위협적이다 싶으니 대번에 유태인들 무장 세력을 탄압하니까. 다얀도 그 무장 세력의 일원이었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된다. 롬멜 군단의 위협에 직면한 영국이 이번엔 유태인들로 하여금 독일편에 선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맞서게 한 거지.


다시 총을 든 다얀. 그런데 망원경을 보던 그에게 총알이 날아들어. 망원경을 박살내고 손가락마저 찢어놓은 총알은 그의 왼쪽 눈을 영원히 앗아간다. 병석에 누워 있던 그는 아내의 두 번째 아이 임신 소식을 들으며 “누가 애꾸눈을 고용하겠어. 이 판국에 아이라니!”라고 비통하게 부르짖었다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어. 그는 평생 회사원으로 일할 팔자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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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그는 천상 군인이었어. 아니 매우 유능한 군인이었어. 즉 협상과 공격, 기습과 사수(死守)를 능숙하게 할 줄 안는 군인이었다는 뜻이야. 


자신의 동생을 죽인 아랍인 마을의 유지들과 협상하여 그들로 하여금 시리아와의 대결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게 한 절제력이 있었고, 시리아 군 탱크 부대를 최대한 접근시켜 최소한의 화력으로 쳐부수는 용기가 있었고. 아무도 예상 못한 특공대를 투입시켜 시리아의 대규모 부대를 후퇴시키는 임기응변도 있었지. 독립전쟁 이후 다얀의 이름은 하늘을 찔렀고 이스라엘 군 가운데에는 그의 부대로 오겠다고 소속 부대에서 탈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명망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그는 이기는 방법을 아는 군인이었어. 그는 참모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모든 집기를 낡은 것으로 바꿔 버린다. 그리고 장교들의 폼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각종 시설과 복지를 줄여 버리고 그 돈으로 군 장비를 갖추라고 명령하지. 골프장은 도처에 지으면서 무기들은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어느 나라 군대 지휘관과는 좀 질적으로 달랐다고나 할까. 그는 형식적 군기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어. 훈시 중에 껌을 씹든 말든 경례를 붙이든 말든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 심지어 군복 입는 품도 제각각으로 놔 뒀다다고 하니까 말이야.


그가 중시한 건 지휘관이 선봉에 선다는 원칙이었지. 그의 부관은 이렇게 표현해.


“누구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면 

다얀은 그 어떤 잘못도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편안한 자리에 앉아 부하들만 전선으로 내보내려 하고 있다면 

다얀은 그를 죽일 준비가 돼 있다.” 


이스라엘의 독립 후 몇 차례 치러진 중동전에서 그는 항상 선봉에 선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벌어진 시나이 전쟁(2차 중동전) 때에는 아예 5일 동안 연락이 두절될 정도로 최전방에 나가 있었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그 운전병이 이집트 군의 총격에 숨질 정도. 


세계 역사상 최대의 승리라 불리우는 6일전쟁 때는 국방장관이었어. 그의 지휘하에 이스라엘 군은 옛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처음으로 당도하게 된다. 감격 속의 슬픔. 그의 딸은 여느 이스라엘 군과 똑같이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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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966년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유능하고 국가에 책임감이 강한 군인이었지만 그는 매우 본성에 충실한 남자이기도 했어. “누가 애꾸눈을 고용하겠나 애가 또 하나 생기다니!”고 부르짖던 충직한 가장의 면모는 포연과 함께 사라져 버린 듯 했지. 


그가 2차 중동전을 앞두고 수에즈 운하에 이권이 있던 프랑스를 분주히 오가며 무기를 사들이고 있던 시절, 비행기 옆자리에서 한 이혼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둘은 범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하지. 저스트 텐 아워. 내것이 되는 시간~~~ 이 둘은 오랜 동안 관계를 지속하다가 1973년에야 결혼하게 돼, 물론 전처 루스와는 이혼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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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부인인 루스 다얀 Ruth Dayan(제일 왼쪽)과 자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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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부인 Rachel Korem과 함께



뭐 이 정도로 끝나면 천하의 명장 다얀이 아니지. 그는 2차 중동전이 마무리된 후 늦은 향학열을 불태우며 대학에 적을 두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가 열심히 한 건 공부만이 아니었어. 마누라도 있고 애인도 있건만 그는 도처에 널린 여자라는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감행했지. (이때만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었겠지?) 일설에 따르면 그가 상대한 여자는 3개 소대는 넘는다고 해.


좀 심했던 부분은 옛 친구의 아내에게까지도 돌격했다는 점이야. '내 아내와 내 친구는 어느 새 다정한 연인이 돼 있었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이스라엘판으로 목놓아 부르던 친구는 벤구리온 수상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치지만 벤구리온의 반응은 유감스럽게도 박정희의 지론과 비슷했어.


“사생활이 공인의 활동을 저해할 수는 없다."

(즉 노골적으로 말하면 배꼽 아래 인격 없다.) 


사족이지만 박정희와는 질적으로 다른 부분은 박정희가 권력을 이용해서 '저 처자 이쁘네'를 부르짖었다면 다얀은 자가발전 자력생생 자아실현이었다는 점.


한 번은 그가 강연을 하는데 한 남자가 손을 들고 타박을 했대.


“당신은 결혼한 처지에 다른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면서 무슨 강연의 자격이 있소?”


그러자 다얀 장군은 한쪽 눈을 빛내며 답했다. 


“당신 결혼했소?” 


남자가 대답했지. 


“그렇소.” 


그러자 다얀 장군은 마치 이집트 군의 허를 찌르던 방식으로 남자에게 들이댄다. 


“절세미녀가 당신 앞에 와서 나랑 한 번 자요 하면 어떨 것 같소?” 


그러자 의외로 남자의 솔직한 대답.


“그.... 그럴 거 같은데.” 


다얀은 득의양양 외쳤다고 해.


“그게 남자요!” 


사실 이건 외통수지. “나는 안 그럴 거요!” 하면 “당신은 남자가 아니오!” 하면 그만이니까.


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도 군인과 정치인으로서의 이력도 제4차 중동전 욤 키푸르 전쟁 이후에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지. 연속된 승리와 상대에 대한 폄하,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 속에 이스라엘은 상대의 전쟁 움직임을 애써 외면했고 여기에는 다얀의 판단도 한몫했거든.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 방심의 허를 찔렀고 한때 이스라엘을 공황 상태에 몰아넣는 초반의 승리를 기록하게 돼.


홍명보만 역적되는 게 아냐. 수십년간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준 명장 모세 다얀이었건만 이 전쟁 이후 거리에서 ‘살인자!’ 소리를 듣는 신세가 됐고 국방장관 자리에서도 불명예 퇴진했지. 이후로도 이집트와의 평화 협상 과정의 막후에서 활약하기도 하지만 그의 시대는 저물었고 1981년 10월 16일 그에게 치욕을 안겼던 이집트의 사다트가 이스라엘의 평화회담에 반발한 이집트 과격파들에 의해 암살된 열흘 뒤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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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다얀과 딸 야엘 다얀



그의 생애를 가장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또는 기록하고 또는 빛낸 사람이 누군지 아니? 그의 딸 야엘 다얀이란다. 이 딸은 아버지의 엽색행각부터 공로까지, 성격의 장점부터 단점까지 꼼꼼히 드러낸 평전을 써냈지. 이 천하의 명장에 대한 딸의 평가는 이래.


“아버지는 영웅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점에서 완벽한 위인들과는 매우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는 독불장군이었으며 서부극의 주인공을 닮았다. 

그는 모험을 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능력을 가졌지만 

때로는 별로 탐탁지 못한 일을 한 적이 있고 여성적인 면도 가졌기에.” 


딸에 따르면 그는 평생 가까운 남자친구는 별로 없었다고 해. 여자친구만 있었지. 그리고 “다시 인생을 산다면 자식들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자식들한테도 서먹했고.


하지만 부전녀전. 얼마 전 이 야엘 다얀이 이스라엘 국회의원으로서 “다윗은 사울의 요나단과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며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해서 종교적 보수성이라면 탈레반 뺨치는 이스라엘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놨었다는 건 팁으로 두자.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한 유태인 군인 겸 정치인에게 10월은 결코 잊기 어려운 달일 게다. 욤 키푸르. 그리고 그의 기일이 든.














산하

트위터 : @sanha88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