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여자에 관한 거짓말. 기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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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순결하게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몸을 섟지 않고 그녀를 수태했다. 두 사람이 그 이전에 또는 이후에 얼마나 자주 섹스를 했는지는 그녀와는 아무 상관 없는 문제이다. 그녀의 존재는 오직 어미의 난자 하나와 아비의 정자 중 하나가 만나서 형성된 것이므로 다른 난자들과 정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실패의 역사는 그녀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시험관 속에서 수정되었다. 안전한 실험실에서 그녀는 마침내 수정되었다. 그 수정란은 어미의 자궁을 빌려 자라났지만 태아가 세상으로 나올 때에는 어미의 질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녀의 출생은 예수만큼 순결했으나 그 과정에 신의 개입은 없었다. 그녀의 순결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이며 과학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순결하게 태어났으므로 순결한 채 죽기를 원했다.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태어나는 초현실적인 죽음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죽기를 원했다.

여자의 부모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사랑했지만 여자에게 만족할 수는 없었다.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고추가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어린이집에서 한글쓰기를 배우고 팔절 도화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제 이름 석 자를 그려 넣었을 때 여자의 어머니는 기뻐하는 한편으로 아쉬워했다. 저 애가 사내자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할머니의 한탄, 외동딸은 커서 아들 노릇을 한대요, 하는 고모의 위로가 뒤따라 들렸다.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었던 적이 없지만 딸과 함께 느린 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다가 그 또래의 남자가 딸애 또래인 아들을 데리고 캣치볼을 하거나 승패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달리기 시합을 하는 모습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배구공을 사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원으로 나가 아버지가 던진 공을 얼굴로 받아내고 나니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몹시 미안해하며 어린 딸을 달래주었으나 그의 표정에 담긴 실망감이나 수치심을 감추지는 못했다. 여자는 아버지의 실망감과 수치심을 감지했고 주변의 사내아이들에게 적개심을 느꼈다. 이후로 여자는 유치원에서 남자아이들끼리 모여 공놀이를 하고 있는 데 슬쩍 끼어들어 공에 부딪히고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놀이를 방해하곤 했다. 교사가 달려와서 우는 여자를 달래고 사내아이들의 위험한 공놀이를 중단시킬 때면 여자는 만족감을 얻었다. 복수에 성공했다는 만족감, 그러나 어린 여자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굳이 분홍색이 아닌 옷을 골라 입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목덜미가 드러나는 짧은 단발머리였기 때문에 연두색 티셔츠에 진청색 반바지를 입혀 놓으면 얼핏 남자아이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차려입고 어머니와 함께 공원에 도착하면 손을 놓아버리고 어머니를 앞질러서 있는 힘을 다 해 달려 나갔다. 공원에 아이를 데려온 다른 엄마들이 여자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아들이 귀엽다거나 아들이 건강하고 활기차다고 칭찬하기도 했고 아들이 몇 살이냐 어느 유치원애 보내느냐 하고 묻기도 했다. 여자는 사내아이들 주변을 기웃거리면서도 어머니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머니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는, 선머슴이라 그렇지 딸이에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이들에게는 굳이 딸의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분홍색 옷을 입고 싶다는 욕구는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여자가 크레용을 들고 그림을 그릴 때는 언제나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이 주인공이었다. 그림 속 공주는 치렁치렁한 노랑머리를 예쁘게 말아 늘어뜨려 놓았으며 우아한 분홍드레스 아래로 굽이 높은 빨간 구두를 신었다. 공주남의 침대는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그려졌고 크림색 망사 레이스가 너울거렸다. 공주님의 방에는 아름다운 꽃이 자랐고 커다란 창 너머로 높은 탑이 솟아 있었다. 여자는 유년시절 내내 거의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세계에서 여자는 공주님, 즉 여자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림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다.

 

 

네덜란드 패션 포토그래퍼 듀오 아이네스 판 람베르데 & 비누드 마타딘 Inez van.jpg

 

아이네스 판 람베르데 & 비누드 마타딘

출처: 토이, 독투불패

http://www.ddanzi.com/ddanziDoctu/978153

 

 


여자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것을 특별하게 여긴 부모는 여자를 미술학원에 등록시켰다. 그러나 선긋기부터 시작해 명암 넣는 원리를 배우며 하얀 석고 블록을 따라그리는 과정은 여자애게 아무 의미 없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여자는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따분함을 참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몇 년이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인물의 초상화를 사실적인 데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부모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실체보다 눈매가 더 선명하고 코는 오똑하며 턱은 강인하고 피부의 지저분한 모공이나 잡티는 생략하되 머리숱은 풍성하게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를 받아보고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우리 집안에 여류화가가 나오겠구나! 어머니는 실력이 있는 선생님을 찾아 개인교습을 시켜줘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당장 알아보라며 어머니를 재촉했다.

첫번째 과외교사는 어머니 또래의 여자 화가였다. 유명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십여 년이 지났고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매 주 세 번 두 시간 씩 그림 수업을 하고 한 달이 지나서 이 화가는 스승의 자격으로 여자의 그림을 평했다. 성실하고 재능은 있는데 기계적인 재현에 집착하고 있군요. 이런 말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느껴졌다. 여자의 아버지는 화가에게 자기 딸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확답을 얻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본래 여류화가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섬세하고 묘사적이지 않습니까? 추상표현주의 유행이 끝나가던 시절에 대학에서 배웠던 화풍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던 화가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여류화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과외교사는 20대 후반의 대학원생이었다. 젊은 남자는 학부 때 부터 인물화를 즐겨 그렸는데 왜곡된 형태와 과감한 채색이 주는 격렬한 느낌이 강했다. 그가 가져온 포트폴리오는 미술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여자의 부모가 보기에도 이 사람이 진짜 화가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젊은 남자 화가에게 술을 대접했다. 꽉막힌 직장생활에 지쳐가고 있던 아버지는 이 젊은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무기한으로 떠나버린 외국 배낭여행 이야기가 끝나고, 남자가 인물을 고집해 그리는 이유라든지, 고갱의 인물화애는 무엇이 빠져 있는지, 피카소의 인물화는 어째서 완벽한지, 끝 없이 이어지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여자의 아버지는 황홀한 여행을 즐겼다. 급기야 아버지는 남자에게 이 집에 교사로 입주하는 것은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자의 어머니는 잠시 만류했으나 곧 이 제안이 자기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깨닫고 수락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중풍으로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큰아들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큰아들과 며느리는 효심이 깊었지만 환자를 돌보는 노동의 고됨은 그 한계를 넘어선 시점이었다. 둘째 아들이었던 여자의 아버지는 형이 지친다면 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셔오겠노라 선언했던 바 있었다. 이들 세 식구가 사는 집은 큰 방이 2개, 작은 방이 2개, 욕실이 3개 있으며 거실과 주방도 넓은 대형 아파트였다. 여기에 아버지를 모실 방 하나가 없다고 한다면 너무나 매정한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입주 가정교사가 들어온다면 안방과 딸의 침실, 교사의 침실에 더해 그림교습을 할 작업실이 필요해질 것이다. 모든 계산을 빠르게 마친 어머니는 젊은 남자를 환영했다.

학교 근처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을 빌려 작업실을 꾸미고 작업실 한귀퉁이에 접이식 침대를 펴고 생활했던 젊은 남자가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다음 날 남자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싸들고 이사를 왔다. 이후로 남자는 가족과 함께 영양이 균형잡힌 식사를 했다. 남자의 세탁물은 매주 두 번 오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해결해 주었다. 빈티지 스타일의 면셔츠가 빳빳하게 다림질된 것을 받아들고 잠시 당황하기는 했으나 남자는 싫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학교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는 것이 굳이 칮을 수 있는 단점이지만, 무상으로 숙식이 제공되었고 그림교습으로 얻는 수입은 그의 대학원 등록금을 대기에 충분했다. 무명에 가까운 화가로서 이보다 나은 주거환경과 일자리를 찾아낼 가능성은 없었다.

젊은 남자는 어린 여자 제자에게 유화물감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다. 여자는 남자가 하는 대로 캔버스에 사람을 그렸다. 집안의 모델은 주로 어머니 때로는 아버지였다. 한 번은 파출부 아주머니도 의자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모델이 된다는 데 흥분했고 그 결과물을 보고는 너무나 감격해 어린 여자의 손을 꼭 잡고 그 그림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는 일단 유화물감이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답했다. 그리고 저녁에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비록 자기가 그린 그림이었지만 여자는 아버지의 집에서 생산된 그림에 대한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했다. 무지렁이 파출부조차 딸의 재능을 알아 보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주지 말라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값나가는 재산이 될 것이 분명한 재산을 모델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대신 아버지는 파출부에게 모델 일에 대해서는 따로 수당을 지급하겠노라 제안했다. 파출부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추가수당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자가 붓을 다루는 솜씨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집안에는 부모와 파출부 아줌마의 초상화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초등학생의 실력이라 보기 어려운 수준의 작품도 종종 완성되었다. 남자는 다른 모델을 찾아보려 했지만 여자는 낯선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여자는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 조차 어려워했다. 여자는 말수도 적었고 학교생활은 외토리에 가까와서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는 일도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내성적인 성격을 예술적 기질의 일부로 인정했다. 그는 이런 제안을 했다.

이제 자화상을 그려보자.

여자는 자기 자신의 몸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자기의 몸을 관찰하는 일은 상상만으로 두려웠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이나 발 같은 신체의 일부분부터 시작해 보라고 일러주었다. 여자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자기 손을 그렸다. 손바닥, 손등, 주먹, 브이를 그리는 손가락, 중지만 치켜올린 손 모양은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렸다. 모델을 서는 왼손이 힘들어지기 전애 빠르게 완성을 하다 보니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다음으로 발을 그릴 차례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발등을 그리고 발목을 비틀어 다른 포즈로 몇 점을 더 그리고 나니 발바닥을 그리고 싶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바닥만한 크기의 거울을 가져다 주었다. 거울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발바닥을 비춰 보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정면으로 반영된 자신의 발바닥을 그렸다. 그리고 나서 벽거울 앞에 서서 손거울에 자신의 등과 엉덩이를 비추어 보았다. 이제까지 제 눈으로 보지 못했던 자기 몸이 생긴 모양을 구석구석 관찰했다. 그러다 거울이 가랑이 사이로 향했다. 오줌과 똥이 나오는 곳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자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거울에 비친 똥구멍의 모습을 관찰했다. 조글조글한 갈색 주름이 꿈틀거렸다. 여자는 똥구멍 주름이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오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손거울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겨왔다. 희고 토실토실한 살이 접혀 있었다. 여자는 거울을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더 쪼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살이 접힌 부분을 벌려 보았다. 안에는 불그스레한 살점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가 아니라 내장 같은 붉은 빛이었다. 여자는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장 같은 붉은 살점의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도 내내 그 생각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여자의 어머니는 공기청정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다. 유화물감을 녹이는 테레핀유에서는 자극적인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어머니는 그 냄새를 싫어했다. 중풍 걸린 시아버지의 똥냄새보다야 나을 테니 참고 지내는 것 뿐이었다.

어머니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 냄새가 괜찮아? 남자는 흐흐 웃다가 답했다. 한참 그리다 보면 향긋하게 느껴져요. 여자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림에 집중을 한대도 기름 냄새는 역겹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않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코로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여자는 밑칠을 해둔 3호 캔버스에 브라운 톤의 물감을 펴발랐다. 충격적이었던 붉은 살점 대신 재미있는 똥구멍을 그려볼 참이었다. 컬러를 바꿔가면서 소용돌이 치듯 움직이는 똥구멍을 그렸다. 어제 보았던 기억이 생생해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묘사해 나갔다. 어머니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건 대체 뭐니? 여자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여자가 머뭇거리자 남자가 대신 답했다. 애널이네요. 여자는 애널이란 영단어를 몰랐기에 어떤 터널 같은 것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넘겨짚었다. 애널이 아니라 똥구멍을 그린 거예요, 라고 설명해야 할까 싶어 남자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는데 남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여자가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이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이제 누드작품도 시작할 때가 됐군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계의 명화는 대개 누드잖아요. 담담한 척 했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남자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전문 모델 부르는 것보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재차 권유했다.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낯선 사람 모델로 들이면 제대로 보지도 못할 텐데.

여자는 이 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똥구멍 그림 때문에 엄마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똥구멍 그리면 잘못인가요?

남자와 어머니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고개와 함께 두 팔도 내저었다. 아니야. 잘못한 거 없어. 남자가 단언하고 여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머니는 결심을 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너 이제 옷 입은 사람 말고 옷 벗은 사람도 그려볼래?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앞에서 옷 벗고 있으면 부끄럽지 않아요?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대학에서는 누드 수업이 있어서 모델을 불러다가 학생들이 빙 둘러서서 그리거든.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다만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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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스틸녹스ㅡ수면유도제 먹고 누우면 십오분정도 지나 스르르 비몽사몽 넘어가는데 이 날은 무려 삼십분이 지나도록 잠이 안 와서 약에 취해 이런 걸 썼다.  뎀파졸 들어간 수면유도제 부작용 중 하나로 몽유병 비슷하게 뇌만 재우고 몸은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것도 일종의 몽유상태에서 나온 기록. 똥구멍에 대한 탐구와 어머니의 불륜을 상상하는 뭐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가족 어떡하니..... 남자와 어머니 사이에 정분이 나겠지. 아마도. 외로운 중년 여자의 몸에 그토록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처음. 여자는 이 상황을 분명히 눈치채겠지만 그림 선생님이 쫓겨날까 두려워 아버지에게 밀고하지 못할 테고. 그러나 알고 보니 집 밖으로 나돌던 아버지는 게이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남자화가는 바이섹슈얼이라 아버지랑도 쿵짝쿵짝. 이래 되면 막장드라마 한 편이 나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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