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 [수취인분명] : 수취인불명. 반송. 수신자 주소가 하나 잘못 쓰임. 기본 카테고리

DJ DOC [수취인분명] : 수취인불명. 주소가 하나 잘못 쓰임. (수정)

DJ DOC의 [수취인분명] 이 ‘여성 혐오’ 에 대한 가사 - 구체적으로는 ‘miss(take)박’ 이라는 표현 -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주 빠른 반응을 접했다. 어디선가는 DJ DOC 를 무대에 올리라는 서명운동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대에 서는 걸 반대한 ‘여성단체’ 라는 표현이 기사에 붙자, 누군가는 이게 어디가 여성혐오적임? 이라고 말하며 ‘도대체 그 여성단체는 누구요?’ 하고 묻는다. 

자, 이것은 여성혐오인가? 그렇기도 할 것이고 아니기도 하다. 상대주의로 물타기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기도 하다. 상대주의란 늘 내가 서 있는 땅이 어디쯤인가에서 시작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전체를 기반으로 생각하자면, 이것은 여성혐오가 맞다고 할 수 있다. 

우선, miss(take)는 mistake와 miss + take 의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해주기 바란다. 우선 고발뉴스를 통해 노래보다 하루 먼저 공개된 가사에도 ‘miss(take)박’ 이라고 되어있으니, DJ DOC가 일부러 ‘미스박’ 이라는 표현과 ‘미스테이크 박’ 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의도했다는 건 분명하다. 

노래의 가사는 기본적으로 시지만, 노래는 시와는 조금 달라서, 그 시를 쓴 사람의 의도가 이중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힙합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라임’ - 길라임 이야기는 있다가 하고 - 의 기능이 그것 아닌가. 그런데, 이것을 ‘miss박’ 으로 읽으면(이 역시 DJ DOC의 의도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여성혐오의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DJ DOC는 세련되게도 여기에 mistake를 중의적으로 붙여냈지만, 우선 이 ‘미쓰박’ 이 가지는 여성차별적 관점은 인정하도록 하자. 

다방에서 ‘미쓰박’이 아직 있고, 회사에서 미쓰박이 아직 있다. 미쓰는 기본적으로 직급의 역할을 무시하고, 한국사회에서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지고지순한 가치인 ‘결혼’ 을 하지 않은, ‘이상한 사람’ 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으며, ’아니 근데 결혼도 안하고 뭐했어?’ 와 같은 답을 끌어 내기에 좋은 호칭이다. 물론 이런 말이 나올 때 대충 이에 대한 정답은 ’아니 너님이 뭔데 왜 참견이세요’ 와 같은 답이 되겠는데, 실제로 이렇게 반응하면 '아니 왜 호칭가지고 그렇게 까칠하게 구셈?' 이 돌아온다. 

이것은 이미 고착화되어있는 표현이며, 그래서 '그저 미혼 여성'을 나타내는 미쓰, miss, ms는 이미 차별적 표현이 되었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미스터, mister, mr은 결혼 여부따위 없잖아. 그러니까, 한국에서 '미쓰박' 이라고 하면, 대개 그에 대한 기분나쁨을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미쓰박' 이 된다는 게 한국적 상황의 문제다. 

자, 이제 ‘길라임’ 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보자. 차움병원에 박근혜가 길라임을 가명으로 적었고, 그게 가명으로 차움병원의 간호사가 썼다는 청와대의(!) 반론은 ‘길라임’ 이라는 드라마 속의 캐릭터가 현실의 관념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우리는 박근혜가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그걸 조롱하고, 남의 조롱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일을 안 하시는 분’ 이라든가, 현빈 취향이라든가. 

이 이미지의 근원에는 드라마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되면 TV 리모콘을 빼앗겨본 남성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드라마를 보고, 그걸 판타지로 꿈꾼다는 비난은 사실 웃기는 것이지만, 실제로 잘 작동한다. 

드라마를 보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인가. 나는 LG TWINS의 모든 경기를 (가능한) 라이브로 다 보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도 똑같은 부류인거야? 나는 하루 1시간 이상은 PS4를 돌려줘야 ‘좋은 하루를 보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도 똑같은 부류인거야? 아니, 그렇게 보면, 안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루 종일 알바돌기에도 바쁜 20대는 이런 배깔고 드라마 볼 시간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틀린 말은 아닌데, 사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콘텐츠, 특히 대중문화콘텐츠를 아예 소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누가 있기는 한가.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긴 한가? 그 사람들이야말로 소수점 이하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박근혜가 비판받아야 하는 지점은 드라마를 본 게 아니다. 길라임이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쓴 게 아니다. 나도 가명이 필요하다면 프로야구 초기 선수들의 이름을 쓰겠다. 노상수, 차영화, 김준환… 프로야구를 웬만큼 잘 알아도, 이 이름들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김봉연, 박철순, 이만수 이러면 가명인가 의심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박근혜는 남이 알아보든 말든 그냥 길라임을 지른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건 가명따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어쩌다 하려니 그냥 경험이 없고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리 비웃는 데 익숙해졌을까? 비난받을 일이 없는 비웃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 사상 이렇게 명확한 적이 나타난 건 처음일 것이다. 한국사회가 자발적으로 이렇게 정치에 극단적으로 호오를 보인 건 또 뭐가 있었을까? 김영삼의 96% 지지 시절? 그리고, 우리는 그 위치, 적의 위치에 있는 박근혜와, 박근혜의 ‘최선생님’ 과, 그 ‘최선생님’ 과 연결된 많은 사람들과, 국내외 기업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주력 세력들이 여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에 대한 익숙한 차별을 여기서도 익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차별을 남들보다 더 민감하고, 가슴아프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단어와 문장들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가보다 나오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누구 입에서 나오는 건 괜찮다 / 안 괜찮다’ 까지 범례를 만드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5,000만개의 사례가 있으면 가능하겠다) 기본적으로 ‘피해야 할 표현’ 들이 생겨난다. 

물론, 여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해 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꽤 많이 무시당해왔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날선 반응이 나오는것 또한 드문 일이다. 지금의 이 상황은 모두가 동의하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 이 나타나는 아주 드문 상황에서 가능해진, 그야 말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상황’ 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어떻게 이 정도로 DJ DOC를 무대에도 못 올린단 말이냐' 라고 말하는 대응 방식은 마치 정치인들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인들은 이런 표현과 대응 방식을 꽤 잘 쓰는데, 정치인들이야 말로 ‘하나’ 가 가장 싫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통합’ 을 사용하고, 차이를 강화하기 위해 ‘평등’ 을 사용한다.  

이 공공의 적을 앞에 두고, ‘모두가 함께’ 싸우기 위해, 그 무기와 도구들은 마땅하게도 범용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무기인 말과 글마저도 사실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게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다. DJ DOC의 [수취인분명] 이 발표되기 며칠 전에 SanE가 내놓은 곡은 이 여성혐오적 관점을 전면으로 드러내었고, 그냥 ‘휘갈겼다’ 이상의 인식을 주는 데 실패했다. DJ DOC의 [수취인분명] 은 이에 비해 훨씬 세련되었고, 날카로우며, 표현 역시 많이 정리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아직 우리쪽의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물론 우리 중에 들어있지만 나는 ‘그게 뭐 어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쪽의 누군가에게는 아직 아픈 거다. 우리는 더 좋은, 더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어야 하기도 하고, 더 범용한 무기를 만들어야 하기도 한다. DJ DOC의 무기는 이전 다른 음악들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범용성이 조금 부족했던 거다. 그렇게 받아들이자. 

이번의 [수취인분명]은 DJ DOC 음악에서 가장 중립적인 영역에 있는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미아리복스' 사건으로 이미 DJ DOC 가 여성혐오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들이 '공연에 올라가면 안된다' 는 데는 이런 관점이 더 크다고 본다. 이것 역시 이전과는 달라진 지형에서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처음에도 썼지만,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올바름' 은 아주 좁은 길로 수렴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확실히 제한된다. 그러나, 지금은 박근혜 하야라는 96%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드문 기회다. 잘 써먹어보자. 

DJ DOC 형님들 고생하셨다.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하고, 노래 들으며 '아아 역시 내공은 어디 안 간다...' 하고 즐겁게 들었다. 앞으로도 즐겁게 들을 생각이다. 나는, DJ DOC가 이 노래로 지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을 아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SanE에게는 큰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형님들도 뭔가 조금 더 생각해보실 수 있을 거 같고.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가 아닌가. 어디까지가 공정한가하는 고민을 해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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