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든 생각 : 대통령과 대종상 영화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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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득 두 대상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들어 끄적였다. 둘은 딱히 별 관련은 없다.



1. 대통령



오늘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파리에서 남들 다 검은색 옷 입고 추모할 때 혼자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 자기 참모한테 "오늘 무슨 옷 입어야 돼?" 라고 묻고, 참모가 "오늘은 흰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라고 답하자 일말의 자기 생각도 없이 "아. 그렇구나." 라고 말하며 흰 옷을 입으시지 않으셨을까.



차라리 둘. "나 오늘 흰 옷 갖고 왔으니 이거 입을거라고, 빼애애액!" 하셨다면 그게 더 나은 경우이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대통령을 처음 청와대에 들어서는 날부터 위의 두 상태 중 하나가 아니셨을까 싶었다.  최소한 두번째 상태도 있는 분이시지 않을까하고 봤었으니. ...근데 이제는 거의 완벽하게 첫번째 상태로 삶을 살아나가고 계시겠구나 싶었다.


뭔가 해외순방 나가는 것도 자기가 계획에서 이 때쯤 나갔다 와야겠다 해서 간 게 아니라, "각하. 이 타이밍에 한 번 나가셔야 합니다." 라고 참모들이 말하니 "아. 그렇구나." 하고 갔을 거 같어. 되게 무서워졌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이제야 한 거지. 이 야밤에, 뒤늦게 더 무서워졌다.




2. 대종상



나는 2년 전에 제 50회 대종상 영화제의 예심을 담당하는 일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일을 했던 적 있다. 이런 화려한 과거를 숨긴 채, 올 해 개봉한 오승욱 감독의 영화 <무뢰한>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인 '무뢰한당' 에 들어가서 작품이 대종상 영화제 주요 부문 후보에 하나도 오르지 못했다고 글을 끄적인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 팬 페이지의 관리자를 하고 있는 중이다. 팬 페이지 이름 끝에 '당' 이 붙다보니 직접 나 자신을 '당수' 로 칭하기로 했다. (물론 영화제 메인 홈페이지에서도 주요 부문 목록이 나오지 않길래, 당시에 내가 잘못된 정보를 찾았었다. <무뢰한>은 현재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후보에 하나 올라가 있다. ..딱 하나.) 어쨌든 그렇게 써 두자, 당원들은 당수인 내게 "대충상된지 오래고 비리로 얼룩져 있는데 그걸 몰랐냐" 며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허허. 내가 그 영화제에서 예심 심사를 하고 온 사람인데, 이런 사실들을 가르쳐주려 애쓰다니. 우리 당원들은 얼마나 착하고 사려깊은가 감탄했을 무렵, 정말 이 시상식은 지구 중심부까지 땅 파고 들어가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이지만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인기상 후보들이 전원 불참했다고 한다. 보이콧 선언이다. 그러나 뭐, 대종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위에 대통령을 써 놨지만 그녀의 정부에서도 자기네들끼리 훈장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대종상도 어지간히 바뀌겠거니 싶은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왜 한국에는 레퍼런스가 될만한 시상식이 존재하지 않는걸까 하는 점이었다. 음악 시상식이나 영화 시상식이나 다 그렇다. 예술의 영역에 굳이 상을 주고 우수한 작품을 고르겠다면 그 누구보도 열려 있는 태도가 우선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정치와 시상식은 밀실의 느낌이 강하다. 둘 다 모두 덕후들을 혼자서 컨트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실천했던 영감쟁이가 있었던 군사정권 시절의 생각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덕분에 스포츠 덕후 김연아가 받아야 할 체육 훈장을 나경원이 받고, 15개 부문의 상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휩쓸거나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가 상을 받는다. 이런 진풍경들을 10년 가까이 (대종상의 경우에는 10년도 훨씬 넘게) 보고 있다.



수상결과는 대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수상작들은 그렇게 잊혀진다. 과거를 보존하는데 유독 게으르고, 어떤 때는 일부러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나라이다 보니 우리는 관객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가수나 배우들이 과거의 작품을 전혀 몰라 하는 한심한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때문에 앞으로도 당분간.. 그러니까 음악으로 치면 밥 딜런이 나와서 상을 받거나 노래를 할 때 경의를 표하는 후대의 가수들, 혹은 엘리아 카잔 감독이 공로상을 받으러 나왔는데 마냥 찬사에만 그치지 않고 냉소와 비판이 담긴 시선으로 노려보는 배우들의 모습을 시상식에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시상식 자체가 조롱받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오스카 상이라고 뭐가 더 다르겠냐만은, 최소한 시상식 자체가 자국민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다.





엘리아 카잔은 분명 좋은 작품들을 만든 감독이다. 그러나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작품을 만들었던 그가 매카시즘이 만연했던 시절,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출두해 자신의 동료들을 고발한다. 1999년에 오스카 공로상을 수상하러 나왔을 때 여전히 객석에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는 배우들은, 엘리아 카잔 감독의 행동에 대해 여전히 비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자기들끼리 상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사는 지속될 수 있다. 문학상 같은 경우는 계속 그렇게 이어져 왔다지 않은가. 아마도 어디 횡령이나 뇌물 받은 거 없는지라도 조사해서 운영진 강제사퇴 시키지 않는 한, 대종상은 이런 방식으로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솔직히 지금의 보이콧조차도 영화제에 자정작용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대해 실제로 대종상 영화제 본부장은 '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는 이들 탓' 이라고 콧방귀 뀔 여유를 보이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드는 건 대종상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신인배우', 아니면 그래도 대종상의 존재의의를 인정하는 일부 배우들이다. 나는 지금도 5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짓>으로 신인여우상을 받은 서은아나, <몽타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엄정화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암만 시상식이 개판 5분전일지언정, 그 역사와 네임 밸류 때문에라도 여전히 대종상을 선망하는 영화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대종상 영화제는 이 모양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근데도 꾸준히 이 태도를 유지하는 걸 보면 해당 영화제 위원회의 머리 속에는 레바의 말처럼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거나 아니면 무슨 고집같은게 굉장히 센건가 싶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머리 속엔 뇌가 들어야 하겠지만, 우리 대통령을 생각하니 갑자기 나는 정말, 간절히 후자의 이유이기를 기원하고 있게 되었다. ...이번 영화제도 망할것 같다.




p.s.



1)  대종상 감독상 후보들을  보니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은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사도>의 이준익 감독,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암살>의 최동훈 감독과 함께 올라가 있다. 그러나 오승욱 감독이 상을 탈 일은 없어 보인다. 류승완 감독 역시 그냥 다양성을 위해 후보로 올려준 듯 보이고, 대종상의 성향 상 <국제시장>에 줄 것 같긴 한데 뭔가 반발을 일으킬 듯해서 '사극' 인 <사도>를 찍은 이준익 감독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암살>은 은근히 어딘가 눈치 볼 것 같아서 감독상 주지 않을 것 같고. 대종상이 작품 이전에 굉장히 저열한 정치적 판단을 하며 선정하려 들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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