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다이어트 나는 수시로 뻘소리한다

이십대 후반의 어느날 친구와 진탕 술을 처마시고 이층 주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이후, 대략 이 년 주기로 한 번씩 허리에 담이 찾아왔다. 조만간 삼시 세끼 잡곡밥으로 배를 채우시게 될 어느 양반님이 즐겨 쓰던 '왜 하필 지금이냐?'처럼, 신기하게도 아픈 기간은 국가 중대사와 겹칠 때가 많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도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파서 처음 두 번인가 빼놓고는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심지어 광화문에 명박산성이 들어선 날에는, 사장이 이런 진귀한 구경을 현장에서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며 다음날을 아예 공휴일로 지정하고 모든 사원에게 함께 광화문에 나가자고 했지만 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늘 명박이 욕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꼬리를 빼냐는 비아냥에서부터, 명박산성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보이면서 이런 역사의 현장을 고작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제쳐두고 뒷담화나 일삼는다고 조롱할 때는 정말이지 저거 아구 한 번 돌려놓고 회사 그만 둘까 하는 진지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작년 연말 현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서는 순간 허리에서 삐끗하는 매우 익숙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라 나름대로 더 악화되지 않게 하는 나름의 노하우도 있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의 아픈 부위에 목침을 대고 뻐근한 느낌이 들 때까지 있다가 부위를 바꿔주고, 이런 식으로 며칠 풀어주면 통증은 사라지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허리에만 국한되었던 통증이 차츰 아래쪽으로 번지면서 오른쪽 엉덩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식당 의자에 앉아 밥을 먹다가 적어도 열 번은 일어서서 다른 사람들 밥 먹는데 차마 엉덩이는 문지를 수 없고 허리를 문질러야만 했다. 양반다리로는 아예 앉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결혼한 동생이 놀러와서 같이 저녁을 먹다가, 인어공주처럼 요염한 자세로 한 숟갈 뜨고, 무릎 꿇고 또 한 숟갈 뜨고 벌떡 일어나서 한 숟갈 뜨는 내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밥 먹을 때마다, 맛스타 드림 선생조차 미처 상상치 못한 궁극의 운동법, 식사 스쿼트를 해야만 하니 밥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러다 살 빠지겠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아래로 눈을 돌리면 풍선처럼 튀어나온 배가 박근혜처럼 요지부동 버티고 있는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원 가기를 싫어하는 탓에 이 주 동안 나름의 목침 요법으로 버텨보았지만, 급기야 허벅지에까지 통증이 번지자 이 년 전에 불과 일주일 치료로 허리의 통증을 씻은 듯이 없애버린 동네 한의원을 찾아갔다. 증상을 듣더니 전형적인 허리 디스크라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했지만 몸에 방사능을 축적시키기 싫어 찍지는 않았다. 그리고 삼 주째 침을 맞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하지만 밀려오는 통증에 울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고통을 욕으로 승화시키는 습관 덕분에 입에는 씨발을 달고 산다. 아이고 허리야 씨발, 아이고 죽겠다 씨발, 밥먹다가도 에고 아파라 씨발, 이러다가 어머님이 욕을 하면서 밥을 먹는다고 한 소리를 하셨다. 벌컥 짜증을 냈다. 아프니까 욕을 하지 기분 좋은데 욕을 해요? 아, 상쾌해라 씨발. 김치찌게 정말 맛있네 씨발. 오늘 컨디션 엄청 좋네 씨발. 날 한 번 좋구나 씨발. 이런 인간이 있으면 미친 인간이지만 아파서 하는 욕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항변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촛불집회에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6차 촛불집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광화문에 나가지 못했고, 어제도 퇴근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명박산성의 악몽이 자꾸만 떠오른다.


설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이었다. 옷을 입으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는데 왠지 몸의 부피가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출근했는데 작업복을 입고 허리띠를 조르자 줄잡아 이 인치 정도는 허리가 줄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인치 정도로는 별다른 변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문제의 비극성이 내재되어 있긴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내 육체를 사로잡고 있는 김정은의 망령을 떨쳐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기대가 들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들어갔다고 비결이 뭐냐고 묻는 동료도 있었다. 허리 아프면 된다고 해줬더니 그의 입에서도 씨발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앉으면 바닥에 닫는 엉덩이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하루 종일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고 서서 지내고, 저녁밥 먹을 때마다 스쿼트를 하는 통에 평소 식사량의 절반 정도밖에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는 생활을 한 달 간 해왔는데 살이 안 빠진다면 그게 더 이상할 듯 싶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이 고통이 나에게 뜻하지 않는 선물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푼 기대. 일전에 동료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일감으로 들었던 생각, 김정은 현지 시찰이다, 그 이래로 그나마 남북한 통틀어 최강의 금수저와 체형이라도 닮았다는 점만을 그나마 위안으로 살아온 세월,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김정은의 망령을 날려버리고, 내 안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있는 주윤발을 소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벅찬 희망.


삼 주 간 침을 맞으니 이제 양반다리로 앉아 일 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아침 저녁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온다. 지금의 나는 이 고통이 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는 있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예전의 생활습관으로 돌아가 모처럼 찾아온 주윤발 재생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또다른 걱정도 든다. 고통과 미모가 반비례 관계에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문득, 이 체험을 바탕으로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하나 떠올랐다. 엉덩이가 땅에 닿기만 하면 전기충격을 주는 벨트. 사실, 하루 일과 시간에 의자에 앉지 않고 일어 서서 생활만 해도 상당한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조금만 힘들어도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충격 벨트를 허리에 차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종일 서서 생활 할 수 있다. 무심코 자리에 앉는 순간 따끔한 충격이 저절로 사용자의 몸을 일으켜 세울 테니까.


혹시 이 아이템을 현실화해서 돈을 벌게 되는 분이 있다면, 나에게 술 한 잔 거하게 사는 것으로 답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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