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영화는 영화다. 기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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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팀 버튼의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혹은 싫어 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다. 또 보게 될 사람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는 무척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왜 팀 버튼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일단 그를 소개하자면. 이런저런 이력을 소개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자신을 소개한 영화가 있다. 자신의 데뷔작이다. 영화 "빈센트". 이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가 간접? 출연한 영화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어떤 영화 세계를 만들지 선언한 짧은 애니메이션이다.  


빈센트.jpg


팀 버튼역의 빈센트 말로이




이 단편에 모든 것이 담겼다. 뭘 더 이야기할 것이 없다. 그래도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너에게 나를 보낸다.


팀 버튼의 영화는 픽션이다. 하지만 그 픽션은, 현실의 논픽션을 찾아가려 하는 영화다. 그의 영화가 너무나도 기괴하다고 해서 현실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찾아가려 하는 공간은 우리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팀 버튼의 영화는 그래서 화면 밖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거울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괴팍한 성격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영화의 캐릭터들이 실제 존재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공간이다. 신뢰할 수 없는 공간의 캐릭터에서 벌어지는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인 영화는 신뢰가 아니라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이라는 심리적 공감을 필요로 한다.


다른 헐리웃의 대작과 그의 영화가 다른 점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다른 영화들이 1시간이나 2시간, 관객을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게 한 다음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영화의 공간에서도 빠져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몰입이 아니라 공감을 위한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 까지 영화의 스크린과 관객의 사이를 허물어 스크린 안으로 끌어 들이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의 영화는 자신이 창조해 낸 캐릭터들이 관객의 심리적 공간으로 들어가게 하는 작업이다. 영화 빈센트에서 햇빛이 비치는 밖으로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거부한 채 방안에 남은 말로이 처럼 그는 물리적 공간의 밖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의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영화를 통해서 찾아가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통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악의 결정, 어린아이와 같은 윤리의식의 문제들이다. 아이들도 아는 간단한 심리적 가상의 공간에서 관객도 알고, 캐릭터도 아는 선과 악의 세계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 낸 가상세계가 존재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사실 없는데 말이다. 팀 버튼의 영화는 아주 사소한 감정으로 만들어진다. 마치 아이들이 처음 만났다 하더라도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것 처럼. 어른들의 거대 담론으로서의 정치 사회 문제가 아니라 흔한 불만, 질투나 외로움 같은 것들로 첫 단추가 채워진다. 그렇게 관계가 채워지면 영화는 공간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공간이 시작된 이유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얻어 내느냐 못하냐로 영화의 실패와 성공이 갈린다. 공감을 얻을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팀 버튼 영화가 현실을 그래도 조금은 반영하는 이유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 내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화와같은 공간을 이용한다. 그렇다고 그 공간을 유지하지 않는다. 익숙한 공간을 재구성한다. 팀 버튼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게 느껴진다.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을 캐릭터들이 뒤바꾸기도 것으로 하게 한다. 마치 춘향이가 알고보니 구미호였다거나, 이몽룡이 도깨비였다거나, 콩쥐팥쥐의 콩쥐가 알고보니 웅녀였다고 하는 것과 같이, 알면서도 생소한 공간으로. 익숙하지만 처음인 것 같은 공간. 그것이 팀 버튼이  만드는 공간이다.


그래서 팀 버튼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활보하는 각 캐릭터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팀 버튼의 공간은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재 창조하는 곳이다. 서로 다른 캐릭터가 각자 만들어 내는 공간. 그런데 그 공간은 불협화음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조화롭게 보인다. 그것이 팀 버튼식의 공간 내어주기다.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공간만으로 채우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채우기를 바라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채우기 보다는 다른 누구나가 채워야 훨씬 더 좋아지는 공간은 양보한다. 마치 아이들이 모래성을 만드는데 더 잘만드는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양보하듯이 말이다. 그 공간 채우기는 처음부터 정해지기도 하지만 타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팀 버튼의 공간 채우기는 조화를 찾아 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내어주기가 가능한 이유는 서로 각자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데 있다. 어쩌면 완성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만들다 포기한 존재성에 가깝기도 한 그런 캐릭터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것. 그것을 깨달은 주인공은 그 불완전함을 이용해서 혹은 다른 불완전한 캐릭터의 도움으로 자신의 완전한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처음부터 팀 버튼은 완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가정한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 부분을 채워준다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은 채울 수 없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뭔가 볼일 다 못보고 끝낸 것 같은 찜찜함을 가지기도 한다. 팀 버튼의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이다. 팀 버튼은 사람들의 배설욕구를 채워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한 벌의 바지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옷을 만드는 작업에서 바지 밑단을 천을 둘러 쳐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한다. 그 불완전성은 불완전성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팀 버튼은 공간의 재단이 그렇게 마무리 짓지 않는다. 그의 공간은 불완전한 다른 공간과 결합시킨다. 마치 바지 양끝을 서로 이어 붙이듯 말이다. 그래서 그의 공간은 관객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거나 존재할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존재 불가능한 세계를 그리는데, 그 불가능은 관객의 불완전한 공간과 일치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관객의 공간은 팀버튼의 공간과 연결되고 확장하게 된다. 그렇게 팀 버튼의 캐릭터가 사람들 마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이 팀 버튼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주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은 객석을 떠나는 관객과 함께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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