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설화 1-1 기본 카테고리

바위설화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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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흥 억불산의 며느리바위>

전남 장흥 억불산의 며느리 바위입니다. 장자못설화에서 며느리가 바위가 바위가 되었다는 것은 전해지나 바위가 된 며느리는 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억불산에서는 장자못설화와 바위가 된 며느리가 확인이 됩니다. 장자못에서는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면, 이곳 억불산 북쪽에는 탐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못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석기시대에는 돌칼, 돌낫, 돌삽, 돌호미, 돌추, 돌화살촉, 맷돌 주춧돌, 구들, 등의 생활건축도구로서 사용되었으며, 다이아몬드, , 비취, 사파이어와 같은 보석을 장신구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큰 돌인 바위는 탑, 비석, 석조각상 등의 기념물로, 고인돌, 석관묘처럼 죽음까지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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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고인돌 박물관>

인간이 이용하지 못할 만큼 커다랗고 동물의 모양과 비슷하면 사자바위, 여우바위, 거북바위, 곰바위 등 각종 동물의 이름을 붙인 바위들이 있습니다. 자연현상에 기인한 벼락바위, 인간의 성기를 닮았다 해서 남근석과 여음석, 그리고 자주 사람들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딱히 무엇을 닮거나 하지 않을 때에는 이야기를 담아 이름을 지어준 이야기 바위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상사바위와 망부석, 부모와 자식 혹은 형제의 비극적 사건이 전해지는 장군바위, 애기바위설화와 남매바위설화, 출산과 관계되는 아들바위와 치마바위설화 등 바위와 관련된 설화는 다양하게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고개 들어 보이는 산천의 수 많은 바위들에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이름과 이야기를 담아 왔습니다.

바위설화의 특징은 바위가 많은 지역에 편중적입니다. 연못설화가 지역에 관계없이 한반도 전역에 전해지는 반면에 동물 이름바위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특히 많이 전해지는데 바위와 돌이 많은 자연환경 때문입니다. 이야기 형식의 설화와 관련된 바위는 그래도 전국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바위를 제외한 설화가 담긴 이야기 바위들을 찾아 가려 합니다.

바위 설화에서도 용이 승천을 합니다. 연못설화에서 용의 승천이 연못에서 이루어 진다면 바위설화도 용의 승천이 바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연못에 수신(水神)이 연결된다면, 바위에는 산신(山神)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연못 설화가 징악적이며 신화적 인간승리였다면 바위 설화는 비극적 결말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지도 알아보려 합니다.

바위의 성별(性別)

또 바위는 모양에 따라 성별(性別)이 결정됩니다. 남성의 성기(性器)와 같이 생긴 바위는 숫바위로 남성성(男性性)을 가지며 넓고 뭉뚝한 바위는 암바위로서 여성성(女性性)을 가집니다. 이런 바위들을 집안에 들여 놓기도 하는데, 아마도 바람과 습도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습도가 높은 집에서는 숫바위를 집 곳곳에 놓고 바람이 바위를 통과하면서 바람의 세기가 더 세져 습기를 날려 줄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건조한 집에서는 암바위를 집 곳곳에 놓고 바람이 오랫동안 머울게 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습도가 높아지니까요.

이처럼 바위는 선조들의 생활도구이면서 동물의 이름을 넣어 생명체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성적(性的) 구분을 해 인격성도 갖게 했을 정도로 친숙한 존재였습니다. 망부석을 찾아 가면서 다른 바위설화들도 찾아갔습니다.  

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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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저동리 미암사의 쌀바위>


옛날 한 비구니가 불공을 드리러 찾아오고는 했다. 비구니의 불공에 감복해, 어느 날 꿈에 부처가 나타나 흰바위의 구멍에서 쌀이 나오게 될 것이라 말해준다. 그래서 다음날 비구니는 바위 밑에서 그날 먹을 식량만큼 쌀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비구니 욕심이나 쌀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뚫어 더 많은 쌀을 가져가려는 욕심이 생겼다. 가지고 간 부지깽이로 구멍을 찌르니 구멍에서 쌀이 아니라 피가 흘러나오더니 그 뒤로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한다.

충남 부여군의 미암사의 쌀바위에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쌀바위 이야기는 욕심을 부리다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암사의 쌀바위는 근처의 다른 바위보다 석영 함량이 많아 하얀색을 띄고 있습니다. 부여의 쌀바위는 쌀과 같은 색 때문에 생긴 이야기 같습니다.  

울산 가지산에서도 쌀바위가 있습니다. 울산의 쌀바위도 석영이 함유되어 흰빛을 띄고 있는데 바위에 구멍도 나 있습니다단순히 흰색의 바위라는 특징으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만큼 지역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일정한 감정이나 인식의 공통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설화를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면 쌀바위 근처에는 물이 흐릅니다. 그런 곳은 예부터 기도 터 였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누군가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쌀 시주를 해 놓고 가면서 그 쌀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수도자가 많아지고 그 중 한 수도자의 욕심이 화를 불러 일으켜 발생한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 졌을 수도 있습니다.


술바위(누룩바위)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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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석탑리 누룩바위>


누룩같이 생긴 누룩바위에서는 술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딱 한잔만을 허락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불량배가 두 잔을 마시더니 더 마시려 하자 누룩바위에서는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누룩바위에서는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퇴적암으로 된 누룩바위입니다. 바위에 푸른 곰팡이처럼 보이는 이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누룩바위 하단의 빈 공간에 잔을 놓으면 술이 채워졌다 합니다. 과거에는 이곳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과 상인들이 많이 지나쳤다고 합니다. 더운 여름날 갈증이 날 때 이 누룩 같은 바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술을 생각해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도 말고 딱 한잔만 마시고 싶은 옛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누룩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금오산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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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서 바라본 금오산>


신라시대 어느 처녀가 살고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이르자 뭇 남자들이 그 처녀와 결혼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처녀는 결혼보다는 속세를 떠나 부처님 세계인 열반에 살 것을 결심했다.

갱의암(更衣岩) 에 이르러 처녀가 속세의 옷을 벗고 잿빛 승복으로 갈아입자 산짐승들이 길을 막았답니다. 살쾡이(고양이)가 등을 구부린 채 위협했습니다. 그 다음 간사스런 개(여우), 심술궂은 산돼지, 무서운 귀신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물리친 처녀는 계곡 암자에 이르러 정진에 열중했다.

계곡에서 처녀가 목욕을 하자 이무기가 덮칠 듯 산 위에서 위협했다. 그러나 큰곰이 부처님을 동경하여 수도하는 처녀를 보살펴 주었다. 거북이도 눈을 부릅뜬 채 엎드려 처녀 곁을 지켰다.

드디어 수도를 마친 처녀가 부처님 세계로 향하는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똥 무더기가 처녀를 가로막았지만 진리의 마음을 깨친 처녀는 더러움도 포용한 채 열반의 세계로 향했다. 멀리 산마루에서 할머니가 성도한 처녀를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다. 처녀는 할머니를 따라 열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들어갔다.- 경주시 향토사료, 열반에 든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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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관음사 곰바위(사자바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에있는 금오산(지금의 경주 남산) 열반골에는 처녀의 열반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라의 한 처녀가 갖은 고생을 거쳐 열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용장리에서 관음사를 지나면 처녀의 열반설화와 관련된 동물이름바위가 놓여져 있습니다. 용장리 관음사에는 처녀를 지켜주었다는 곰바위(사자바위)가 있습니다. 각각의 이름바위들을 통해서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관음사가 세워진 뒤에 바위들에 따라 이름 붙여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주의 처녀바위 설화는 바위들을 한데 엮어 완벽한 서사구조의 이야기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의 이름바위들은 복잡한 서사구조보다는 이름바위가 된 간략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호랑이 바위


일반 평지지역의 이름바위는 대체로 짐승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동물의 형상을 딴 이름바위가 홀로 놓여 있는 편이지만 산간지역에는 호환이 자주 발생하여 호랑이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을 나타내 주는 피(혈액)바위와 호랑이바위 등의 이름바위들이 많습니다. 여인바위가 대표적인데, 여인이 호랑이에게 잡혀가 죽음에 이르게 한 맹수인 호랑이의 형상인 호암(虎巖), 호랑이에 죽임을 당한 여인이 떨어뜨린 비녀와 닮았다 해서 비녀바위, 여인의 피가 떨어졌다는 피바위가 있습니다. 비녀바위는 숫바위가 쓰러진 모습이고, 바위사이에 철분 함량이 높아 산화되어 적갈색을 띄는 바위를 피바위라 합니다.

벼락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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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의 벼락바위>

몹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두 남자가 홍수를 피해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곡을 건너려는 중이었다. 불어난 물 때문에 쉽게 건널 수 없었다. 그러다 계곡 한 가운데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보였다. 남자 둘은 그 바위에 올라가 점점 불어나는 불을 피해 바위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 근처에 큰 구렁이가 다가왔다. 구렁이<혹은, 독사, 지네>도 불어난 물을 피하려던 것이었다. 남자들은 두려워하며 바위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구렁이는 바위에 오르자 남자 둘을 발견했는지 그들에게 향했다. 그때 하늘에서 벼락이 구렁이에게 떨어졌다. 구렁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었다. 그때 벼락이 떨어져 바위도 함께 두동강이 났다 하여 벼락바위라 불린다. 그 이후 마을의 수호바위가 되어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냈다 한다. [강원도 향토사료집]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역에는 벼락바위설화가 특히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위와 계곡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벼락이 치면 사람들은 큰 바위 밑으로 몸을 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벼락바위는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는 신성한 힘이 있다 생각해 바위에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사진은 강원도 속초 도천교 근처의 벼락바위입니다. 상당히 큰 바위가 두 동강난 모습입니다. 지금도 제를 지내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돌이 많은 척박한 농지를 터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돌은 원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벼락바위 바위설화는 힘든 자연환경에 대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돌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 신성성을 상실하면 불편에 따른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 누군가를 지켜주려 바위가 벼락에 희생하면서 떨어져 나갔다면, 자갈은 나에게 찾아온 나의 고난일 뿐입니다. 공동체의 안녕에 관한 만큼은 관대할 수 있고 허용이 될 수 있습니다. 

계곡이나 하천을 건너게 하고 마을을 지켜준다는 신성한 바위와 밭에 잔뜩 깔려있는 돌을 다른 대상으로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지 않아야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바위에서 자갈과 돌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갈과 돌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게 됨으로써 척박한 땅에서 살아갈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바위설화(동박삭바위)

동방삭의 명은 삼십갑자였다. 삼십갑자가 되던 해에 동방삭은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을 미리 알고 저승사자를 대접할 음식을 잔뜩 마련하였다. 동방삭을 데리러 온 저승차사는 뜻밖의 대접을 받고, 그 사례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동방삭의 수명을 삼십에서 삼천으로 고쳐주었다(혹은, 음식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가 삼자에(三十)자에 한 획을 더 그어 삼천(三千)이 된다). 삼천갑자를 살고 영악해진 동방삭은 죽을 날이 되었지만(혹은, 지났지만) 저승차사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러자 저승차사는 동방삭을 찾아내기 위하여 여인으로<혹은, 할미, 마고할미> 변신하여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동방삭이 왜 숯을 씻고 있느냐.”라고 문자 여인은 하얗게 되라고 씻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내가 삼천갑자를 살도록 숯이 하얗게 되라고 씻는 여자는 처음본다.”라고 하였고, 여인으로 변신한 저승차사는 그자가 동방삭임을 알고 저승으로 데려갔다. [한국구비문학대계, 223-6-(1)], <>안의 글은 다른 설화의 내용을 추가 보완했음

동바위설화와 관련된 탄천이라는 하천 지명이 있습니다. 상류의 검은 바위에서 과거 저승차사가 숯을 씻어 하천 물이 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한강의 지류인 탄천과 강원도 탄천에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신도 2리는 동방삭이 살던 마을이라 하여 동바우마을이라 했다 합니다. 청도군에서는 실제로 숯을 제조하던 곳이 있었는데 그 숯은 근처의 솥을 만드는 곳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합니다. 물빛이 검고 상류에 검은 바위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탄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동방삭의 이야기를 더한 것입니다.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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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의 남근석>


전남 담양에 있는 남근석입니다. 밭 한가운데 놓여있으며 바위 중간에 작은 돌들이 놓여져 있다. 남근석 중간에 작은 돌들을 올려 놓거나 남근석을 갈아 먹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합니다. 마을은 무등산 자락이 동서로 10여킬로 남짓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북에서 남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며 논과 밭이 개천을 따라 길게 뻗어 있으며 인가가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이 풍부한 곳이라서 농경생활을 하기에 좋은 지역인 점과 산악지역으로서 맹수들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남자가 필요한 지역이기에 아들 낳기를 원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긴 바위를 남근석이라고 하지만 이 바위가 넘어져 다른 바위에 올려져 있으면 비녀바위가 됩니다. 남성성이 쓰러진 바위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바위의 모양도 그렇지만 어떻게 되어 있느냐의 상태로 숫바위나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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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상원사 인근의 바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부랄바위는 현재 훼손되어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 상원사로 가는 길목의 바위로 대신했습니다. 부랄바위는 고인돌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위에 있는 바위가 굴러 떨어져 밑 바위를 둘로 나눈 것으로 보입니다. 부랄바위 건너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가 치마를 펼쳐 놓은 것 같다는 치마바위입니다.

부랄바위와 치마바위는 바위의 성별과 관련이 있습니다. 숫바위인 부랄바위와 암바위인 치마바위, 사람의 출산에 관련된 바위로 여성이 오른손으로 돌을 던져 치마바위에 올려 놓으면 딸을 낳고 왼손으로 던져 부랄바위에 올려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낳기 쉽고 아들은 낳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남자 아이를 원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상사바위

경주 남산 국사골에 할아버지가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할머니 무덤으로 찾아가 울곤 했다동네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하며 따랐다. 그 중 피리라는 이웃 소녀가 무척 따랐다. 할아버지는 피리를 친 손녀처럼 대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귀도 어둡고 눈도 잘 보이지 않기에 피리는 할아버지를 친 할아버지처럼 봉양했다. 어느덧 피리도 무럭무럭 자라 꽃다운 처녀가 되었고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피리가 이사를 한 후 너무 외롭고 쓸쓸했다. 어느 해 가을날 할아버지는 피리 소녀생각에 깊이 잠겨 있었다. 그때서야 자신이 피리를 손녀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 마음 속에는 온통 피리 모습뿐 이였다. 눈을 뜨면 산마루에, 눈을 감으면 눈 속에 피리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피리와의 나이차이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고통스러웠다. 할아버지는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결심을 하고 국사골 큰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날 이후부터 피리는 밤마다 할아버지 꿈을 꾸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큰 뱀이 되어 밤마다 피리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비몽사몽 정신이 혼미해져 피리는 나날히 병약해졌다. 피리는 밤마다 몸 속으로 파고드는 뱀이 원망스러우면서도 밤마다 꿈속에 피리에게 다가오는 할아버지가 그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피리의 꿈속에 할아버지가 울면서 나타났다. “아무리 피리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어 국사골 벼랑 끝에서 뛰어 내려 목숨을 끊었는데 죽어서도 피리를 밤마다 괴롭히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 말하는 것이었다.

피리는 자기를 생각하다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아버지가 측은했다. 피리는 꿈속의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피리가 멈춘 곳은 할아버지가 뛰어내린 국사골 큰 바위였다. 피리는 생각했다.

생전에는 나이 때문에 저와 사랑을 이룰 수 없었지만 천년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바위가 되어 변함없는 사랑으로 할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피리는 그곳 벼랑 끝에서 뛰어내렸다. 피리의 영혼은 또 하나의 바위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 큰 바위 옆에 나란히 치솟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곳  바위를 「상사바위」라고 불렀다. 지금도 큰 바위 아래 붉은 반점이 피리의 핏자국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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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금오산)상사바위 뒤편의 남근석>

설화는 사랑이야기 이지만 경주의 상사바위를 직접 확인해 보면 출산과 관련된 남근석으로 확인됩니다. 숫바위 두 개가 차례로 놓여져 있습니다. 상사바위설화는 신분과 나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짝을 찾지 못한 비극적 사랑이야기입니다. 또 인근에 석불상 제작을 위한 채석장이나 작업장이 있는 곳에 상사바위가 있습니다. 석공이 불상 제작을 위해 오랜 기간 작업하다 혼기를 놓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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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과 (우)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의 석조여래좌상과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제작해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인근의 암석을 가공해 제작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석공이 불상을 제작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또쟁과 징용, 부역 때문에 혼인 적령기를 넘긴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국가의부역 때문에 혼기를 놓치기도 하겠지만 부족한 남자들 때문에 여성들도 혼기를 넘겨 짝을 찾지 못한 남녀가 짝을 찾아달라고 남근석에 기원하거나 원망했던 것이 이야기의 유래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숫바위이자 남근석은 출산 뿐만이 아니라 출산의 원인인 혼인까지도 기원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원래 찾아가려 했던 장군바위와 망부석을 찾아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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