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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월요일

김범우


수원 노숙소녀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명됬던 노숙청소년들이 2010년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국선변호사가 발표한 조사과정을 담은 영상때문인것같다. 조사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의자들에게 회유와 압박 조작이 있었다는 판결이었다.


조사과정에서 이미 다른아이가 불었으니 네가 진술을 거부하면 너만 가중처벌을 받는다고, 진술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죄수의 딜레마는 경제학 법칙으로 사용될때보다 수사학에 사용될때 더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당시 사건의 담당검사를 하다 지금은 변호사개업을한 박재형 변호사님은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강압수사를 하지않았다고 주장한다. 노숙청소년들은 들고양이같은  야생성과 아이의 순수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서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무죄선고를 받은 노숙청소년들이 진범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13살에서 18살의 5명의 결손가정 청소년들은 2만원때문에 15살난 노숙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년간의 소년원생활을 했다. 또한 최초 범인으로 지목됬던 31살의 정신지체 장애인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위증죄까지 추가되어 5년6개월의 형을 받고 삼년째 복역중이다.


그럴만한 전후사정이 있었으리라 판단되면서도, 시민들이 사회시스템을 신뢰하고 삶을 설계하기위해서 경찰과 검찰의 역활이 지대하다는것을 인정하면서도... 무언가 찝찝함이 남는다. 유독 약자에게 가혹하고, 딱지가 붙어버린 사람들에대한 선입견에 대한 불편함의 원인이 기억속에서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고학으로 다녀야했던 시절. 아파트건설현장에서 한시즌을 땀흘린 댓가로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서울 외각 지역에 보증금20에 월3만원의 월셋방을 얻을수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하던시절 쓰레트를 동네에서 처음 올렸다는 단란한 보금자리는 흙벽에 외곽에만 시멘트를 발라논 집이었다.

비록 쥐가 벽에 구멍을 뚫고 흙벽이 무너져 내려 도배지와 장판이 만나는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도 잘곳을 찾아전전하고 때론 노숙을 해야했던  십대 청소년의 처지에서는 감사하고 고마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금방 세평남짓하던 나의 스위트룸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후배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결손가정이거나 고아 혹은 가정불화로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그렇게 모여들고 어울려서 살았다. 다행히 마음 좋던 집주인 아저씨는 들고양이 같이 모여드는 소년 소녀들에게 잔소리와 훈계만을 하실 뿐 쫒아내지는 않았었다.


끽해야 야간중학교를 드문 드문 다니던 아이들 중에 고등학교라도 다니던 나는 그중에 똑똑한 인텔리였고, 마음이나마 편히 쉴곳을 제공하던 좋은 형이었고 같은말을 사용하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였다. 열몇살에 공장일을 하느라 손가락이 잘린 아이도 있었고, 공장에서 술김에 망치자루로 머리통을 때리던 사장님도 야간학교를 다니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아원을 나와 바로 공장에 팔리듯 취직했던 아이들이 힘든 노동을하고 야간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에 집중할 리가 만무하다.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정식졸업장을 주는 야간학교였지만 한학년을 마치는데 2~3년 걸리기가 일수였다. 공부에 흥미를 잃고 머리가 조금씩 굵어져가는 아이들은 내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일에도 공부에도 흥미를 갖지못하고 잠깐 일하다가도 때려 치기 일쑤였던 무리들은 어울려 다니며 노는데 열심이었다. 좋은 길을 가르쳐줄 어른도  없었고... 그시절 우리눈에 비친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고, 미웠다. 열네살 고아원을 나와 허름한 공장에서 일하다 밤에 방문을 따고 들어온 세명인지 네명인지에게 공장 오빠들에게 당한게 첫경험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소녀들과, 조금씩 다르지만 어딘가에 호소할곳없는 기억들을 공유한 불량청소년 무리는 언덕너머 고등학교 폭력서클과 걸핏하면 싸움질을 했다.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분노를 만만한 또래 학생들을 두들겨 패면서 해소하려했던 우리쪽 아이들과 더러운 들고양이를 발로차는것처럼 야간학교 근근히 다니는 아이들을 재미삼아 건드려 보는 불량학생들의 부딪침은 종종 생겨났고, 대부분 우리쪽 아이들이 수에서 밀려 맞고 도망오기가 일쑤였다.


분명 맞고 지고 들어온 것 같은데 진 게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확실하게 한방 먹여줬다고 스스로의 용맹을 증명하는 불량청소년들은 라면 하나를 끓여 여덟명이 나누어먹으면서도 즐거웠다. 비록 욕을 접미사 접두사, 감탄사처럼 사용했지만 결국 세상에 기댈 곳 없음을 절감하고 있었고  세상속에 섞이기를 원하며 끼워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때론 운수가 사나워  집단구타를 당해 일주일을 아무것도 먹지못하고 끙끙거리고 자리보전을 할일이 있어도 야생을 사는 불량청소년들은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일상과 비일상속에 엄마를 잃어버린 새끼오리들처럼 시끄럽게 몰려다니던 평온함이 어느날 갑자기 깨져 버렸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 ,봄날의 일이었다. 어느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느 때와 달리 경찰들이 깔려 있었고 모퉁이마다 신분확인을 하자며 검문을 해댔다. 집은 비어 있었고 별것없는 세간살이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5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살던 국민학생 여자아이가 등교길에 납치를 당하고 ,동네야산에서 강간을 당하고 목졸라죽임을 당한후, 토막을 내서 불에 태워진 사건이있었다고 했다. 돌아오지않는 아이를 찾던 부모에게 야산자락에서 강간살해의과정에서 찢겨진 옷자락이 발견되고 타다남은 시신이 발견되서 급하게 경찰 3개중대가 동네에 깔렸다고 했다.


간만에 레스토랑에서 써빙 아르바이트급여를 탄 녀석이 있어서 룰루랄라 통닭을 사러 나갔던 아이들은 검문에 걸렸고, 강간토막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서 강서경찰서로 연행되어갔다. 툭탁거리다 소년계에 잡혀가서 혼나고 나온 경험이 있는 일부는 경찰서 갔던 경험을 훈장처럼 이야기했지만 그시절 경찰은 사실 무서운 존재였다.


옷장도없는 집에 하필이면 빨간점퍼가 벽에 걸려있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에서 살인범이 빨간 점퍼를 입은 정신병자라는 소문이 있었던것 같다. 누군가 버린 걸 주어다가 수납장으로 사용하던 냉장고에서 목공소에서 사용하던 목공소용 조각칼들이 한뭉치 쏟아져나왔다. 흉기로 충빈히 오인받을 만한 조각칼들은 다른 가내수공업 공장에서 가져온 비단천에 한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영장없이 경찰들이 붙잡아놓을 수 있는 시간이 48시간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수갑을 차고 형사들차에 실려 현장검증까지 다녀와야 했던 유력한 용의자들은 경찰을  미칠듯이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조사과정에서 순순히 불면 사형만은 변하게 해준다는 경찰의 이야기는 기댈 것 없는 세상에서 갑작스레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감정이었던것 같다.


세상의 어두운곳을 밝히는 공정한 언론들은 새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의 행보에 흙탕물을 튀기지 않기위함인지, 흔하디 흔한 살인사건중 하나로 취급했던 것인지 알순 없지만...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무서웠고,그때 무서웠던 기억이 아직도 각인되어있다.


경양식집에서 써빙일을 하다 누군가 놓고 간 가짜 롤렉스시계를 차고있던 아이는 특수절도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주변학교에는 유괴사건이 발생했을 뿐이라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깔려있는 경찰병력은 유괴범을 잡기위해서라고 하는데, 새벽녁에 간간히 형사들이 방문을 열고 자고있는 아이들의 머릿수를 확인하고는 했다.  

다행히 몇달 후에 범인이 잡혔다. 이웃동네에 살고 있던 성폭행 전과자라고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을 맞은 3.1절 특사로 풀려나와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범인의 어머니가 무언가 이상한 아들을 추궁해서 범행사실을 듣고 한번만 마음아프고 만다고 경찰에 신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후에 방범 아르바이트를 했던 동네형의 입을 통해 경찰들이 미안해 하더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깍두기만한 크기로 신문에 살인사건 범인 잡힌 뉴스가 나왔단 소리를 들었다.


범인이 잡힐때까지 혹시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나 긴장감과는 별도로, 새벽에 잠을 자는 머릿수를 세고가던 경찰들에게 암암리에 받던 협박은 그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범인이 잡힌후에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기위해 아이들은 실낱같은 연고를 찾아 지방으로 떠나가고, 살기 위한 길을 찾아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몇년후에 우연히 들은 소식은... 그시절 어울렸던 한명의 결혼소식과 두명의 자살소식이었다. 스물 몇살, 세상에 설자리를 찾지 못해서 농약을 마셨다고 들었다. 악당이 되지도 못하고 사회인도 되지 못한 들고양이들은 그렇게 죽었다.

그럭저럭 덩치가 커서 술집 기도로 키워준다고 따라갔던 동생은 우연히 만난 뒷골목에서 몇배로 불어난 덩치로 양복을 입고 깍뚝머리를 하고 있었다.


막다른 구석에 몰려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죽인다. 약자로 사는건 더더욱 어렵고 힘들다. 살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에 응원을 보낼뿐이다.


시화호 주변 갈대밭에 저녁만 되면 버림받은  애완견들이 야생견이 되어 눈에 푸르스름한 불을 켜고 고라니의 뒤를 쫒아 사냥을 한다고 들었을때도, 그냥 예전 생각이 났다. 야생견들은 작은 애완견은 잡아먹기도 한다. 개가 개를 잡아먹기도 한다고 개만 잘못이라고 하긴 조금 어렵다. 사람사는 세상도 서로 잡아먹게 만드는 시절이니까말이다.


결손가정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다. 우리끼리 콩가루 집안이라는 용어는 베지밀 가족이라고 순화되어서 불리웠다. 베지밀 가족들이 유독 많아지고 들고양이같은 노숙청소년들이 많아지는건 능력없는 부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때 생각했던 건 결혼 자격시험을 보게해서 자격없고 능력없는 부모들이 자녀를 버리고 방치하는걸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었다.저출산 국가 운운하는걸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사람들이 늘어나는것 같다... 좋지않은 현상이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 관해 죽어간 소녀가 불쌍하고, 죽도록 내동댕이친 세상이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검사의 말이 맞을수도 있고, 억울한 옥살이라는 말이 맞을수도 있다. 다만 15살 여자아이가 누군가에게 맞아서 장파열로 죽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하는데, 아직 시스템 바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많다. 알아서 능력껏 살아남으라는건 누군가에게는 그냥 죽으라는 말로 들릴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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