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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2012.10.20 23:07

김범우조회 수:1239 추천 : 0 0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안산 반월공단 염색공장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눈 딱 감고 5년만 돈을 모으면 서른살 즈음엔 1톤 화물차로 과일행상이라도 할 수 있을거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간 꽤나 비루하게 살아온 탓에 그땐 그게 제법 큰 꿈이었다.

안산에서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는 지금은 초지역으로 이름을 바꾼 공단역앞의 연립주택단지의 지하방 같은 반 지하방이었다. 옷가지 몇 개를 걸을 행거하나와 전기장판 이불과 코펠과 부루스타가 처음 살림살이의 전부였었다.

수돗물은 나왔지만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옥외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했다. 길을 다니는 사람들 무릎이 겨우 보이는 창문은 공장에서 얻어온 검은색 샤무즈 원단으로 가려버렸다, 주야간 맞교대를 해야 하는데 야간 조 근무를 마치고 낮에 잠을 잘때에 조그만 창문으로 스며드는 낮의 밝음은 눈을 아프게 하고 잠자리를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단위로 주야간 근무 교대를 하는 2조 2교대 근무라 야근에서 주간으로 전환 될때는 일요일 아침에 퇴근해서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야했다. 주간에서 야간으로 들어가는 주에는 일요일에 보통 특근을 해야 했다. 한 달에 특근을 두 번 하면 하루도 회사에 없었던 날이 없던 달이 된다. 명절이 있는 달 말고는 보통 그렇게 일했다.

다들 그렇게 일하거나 공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거나 해서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해를 공장과 지하 동굴 같은 반지하방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녔다. 조그만 창문이 있기 때문에 반 지하라고 하지만 깊이는 분명 지하일층 깊이였다. 그래도 난생처음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살아보는 거라 나름 도시문명의 혜택을 개미똥구멍만큼이라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건물에 지하 방이 8개가 있었는데 사람이 사는 곳은 내가 사는 방과 비디오 테이프를 불법 복제해서 팔아먹는 아저씨가 사는 방 두방 뿐이었다. 이사 오가는 사람들이 지하에다 가구를 버리고 가서 흉가 분위기가 났는지 예비군 통지서를 돌리는 방위가 통지서를 돌리러 왔다가 사람이 안산다고 그냥 가서 동원훈련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람 인기척이 반가 와서 인사를 갔다가 불법 복제의 현장을 보고 눈치를 챘지만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공테이프에 영화를 복사하고 정품 같은 스티커를 붙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비디오방에 팔러 다니는 것 같았다. 무슨 약도 하는 것 같았지만 약은 취향이 아니라 물어보질 않았다. 간간히 마주치면 인사나 하고 가끔 비디오를 빌려서 중고 가전 상가에서 산 비디오 일체형 티비로 보곤 했다.

프라스틱 서랍장도 사고 행거에 걸린 옷가지도 몇 개 늘어났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해서 돌아오니 자물쇠가 걸린 문고리가 비틀려 있었다. 티비도 없어지고 행거에 있는 옷가지와 밥솥까지 없어졌다. 이불과 부루스타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그냥 두고 갔다.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아령과 덤벨도 없어졌다. 참 그지같은 도둑이다 싶었다.

울컥한 마음을 가라 않히고 드라이버로 시건장치를 고치고 있는데 불법 복제 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 왔다. 그 집도 털렸나보다. 불법복제에 사용하는 기기는 조금 값나가 보이는 물건이었는데 아마 오토바이 빼면 그게 제일 큰 재산이지 싶었다. 어쩌면 드림 오토바이보다 비쌀지도 모른다. 난 전자제품에 대해선 잼병이니까.

경찰에 신고할 입장은 아니고 나를 조금쯤은 의심했거나 혹시 정황을 알고 싶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얼굴로 도둑들은 이야기를 했다. 나도 도둑이 들었다고 거지같은 방이 더 거지같아진 모습을 보여주니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걸 보면 그길로 방을 옮겨 버린듯 했다.

나는 일년 만 더 참고 살기로 했다. 삼년자리 적금을 들었으니까 천만원 짜리 적금을 타면 눅눅하지 않고 곰팡이도 없고 화장실도 건물 안에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

그해 여름 장맛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하는 중에 창밖으로 비가 양동이로 퍼붙는 것처럼 쏟아지더니 금새 도로가 강이 되어 물길이 열려버렸다. 염색단지 내에 입주한 공장들이 몰래 몰래 하수도로 버려 시화호를 오염시키던 염료 섞인 물들이 각자의 하수도에서 역류하여 빨강 파랑 노랑등 가지각색들을 길 위에 연출하며 도로명 물들임길 이라는 이름이 공무원들이 그냥 허투루 지은 이름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염색공장은 전기가 나가거나 열병합발전소의 스팀이 끊기거나 하지 않는 이상 교대자와 교대를 할때 까지 정상근무를 한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빗줄기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도로에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횡단보도에서 다리를 걷고 물을 건넜다. 집에 도착해보니 창문으로 물이 나온 흔적이 있었다.

건물주민들이 소방차를 부르고 모터를 구해서 물을 빼내고 해서 발목깊이로 바진 바닥을 헤집고 방으로 들어가서 물을 퍼냈다. 장판위에 고인 물을 퍼내는 데는 쓰레받이가 유용하다는걸 금방 알아버렸다. 물을 퍼내고 걸레를 짜내고 벽을 딱아 내도 큼큼한 시궁창 냄세가 온방에 배어버렸다.

낚시용 간이 침대를 빌려다 방에 놓고 웅크려서 잠이 들었다. 옷가지를 빨고 선풍기로 방을 말리고 곰팡이 소독용 스프레이를 뿌려보았지만 온몸에 피부병이 생기고 잔기침이 많아졌다. 적금 탈 때까지 버티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금을 해약하고 가불을 땡겨서 다가구 주택이 많은 선부동에서 방을 구했다. 다행히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싼 가격에 이층으로 창이 있는 방을 얻었다. 창문이 뻥 조금 보태서 전에 살던 방만 했다. 흐믓하게 웃고는 검은색 샤무즈 원단으로 가려버렸다. 다시 공장과 바뀐집을 다람쥐 쳇바퀴돌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공장에서 아침을 먹고 교대자에게 작업 인수인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보통 아침 9시에서 10시가 보통이고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피로감이 무겁게 몸을 눌렀다. 정말로 잠들때마다 거의 매번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는 퍼뜩 눈이 깨지면 오후 한시즈음이기 일수고 야간근무를 위해 다시 잠을 청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몸의 피곤함과 수면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맞아떨어지지만 밤샘근무에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간혹 가다 잠이 들어서 출근시간의 알람에 맞춰서 몽롱한 기분으로 일어날 때는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게 된다.

그냥 둬도 매주 바뀌는 근무 포지션에 따라 시차적응 하느라 헉헉대는데 계란을 파는 포터가 집 앞을 지나가기라도 할라치면 배계에 얼굴을 묻고 치밀어오는 짜증을 삭히느라 몸부림쳤다. 아임엠에프 이후에 부쩍 늘어난 과일차량과 가전제품 수거차량들이 수면과 비 수면의 경계상태에 있을때 만이라도 지나가지 않기를 은근히 바랬는데 그 바램은 무너지기가 일수였다.

그 기억이 4조 3교대근무를 들고 나온 문국현에게 투표하게 했고 도청 앞 피켓팅을 갔다가도 엠프 소리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겨우 잠든 남편을 위해 소리를 줄여달라는 아주머니의 부탁에는 고개를 숙인 죄인이 되도록 했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든 어느 날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포교하러 나온 사람들이면 험한 소리를 할 생각으로 겨우 잠든 잠에서 억지로 깬 짜증이 가득한 채로 문을 열었다. 택배 기사가 미안한 얼굴로 서서 말을 한다. 아랬집에 쌀과 농산품들이 택배로 왔는데 사람이 없고 다른 집에 맡기려도 다들 일나갔는지 사람이 없다. 죄송하고 미안하다며 부탁을 해왔다.

신발장 앞에 쌀자루를 내려놓고 업치락 뒤치락 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 겨우 잠이 들자 마자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야했다. 아랫집 여자가 쌀을 찾으러 왔다. 미안하고 당황한 얼굴로 올라와서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쌀자루를 바라보는데 여자가 들 무게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아랫집에 쌀자루를 날라주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한 시간째 몽롱한 상태에서 잠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어보니 문손잡이에 머리가 겨우 닿을 갈래머리의 여자아이가 서 있다가 꾸벅 인사를 한다. 아랫집 아이다. 제딴에 무거운 쌀자루도 날라주고 택배도 받아주고 해서 고맙다고 인사를 왔다고 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또박또박 제 할 말을 하고 손에든 걸 내민다. 네잎 클로바다. 집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화단에서 나를 주려고 찾았단다.네잎 다 합쳐도 겨우 손톱만한 클로바를 기쁘게 웃는 얼굴로 내민다. 군것질을 즐기지 않아서 아이에게 줄게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고맙다고 말한다. 

다음부터는 집안에 과자같은 것을 사다 놓게 되었다. 오가다가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면 가끔 불러서 과자를 주려고 했는데 활동 시간대가 다르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많은 집들이 이사를 오가고 집주인마저 바뀌는 와중에도 아랫집만은 십년 가까이 이사를 가지 않았다.

싹싹하고 활달한 여자아이와 수줍음이 많은 남자아이 그리고 엄마가 한 가족이었다. 오랜 시간 얼굴을 보고 지내고 서로 서로 조금 속내를 조금씩 털어놓고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꼈나보다.

어쩌면 명절날 따로 가는 곳 없이 얼굴 마주치는 쓸쓸함이 공통점이 되어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그 집 사정을 알고 조금 더 가까워졌다. 아이들 아빠가 빚을 남기고 친척들 돈도 유용하고 아는 사람들 민폐를 많이 끼치고 걸핏하면 빚쟁이를 피해 집을 몇 달씩 나가곤 했단다.

아이들 통장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몰래 가지고 나갔을 때는 진즉 포기했었지만 이제는 아이들 인생을 위해서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꽤나 버거운 과정을 거치고 아버님의 탄원서까지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이혼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평생 한일중 제일 잘한 일로 꼽는단다. 그리고 아이들을 지키며 겨우 겨우 살고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별 위협도 되지 않는 가시를 잔뜩 세우고 세상을 경계하며 살다가 오랜 시간을 보아서 익숙해지고 한결같은 모습에 경계심이 풀렸다고 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이 조금 겹쳐 보이기도 했고 끝내 아이들을 지키려는 여자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한 사람 몫을 할 성인이 될 때쯤 어딘가 시골로 가서 흙을 밟고 살기로 했다. 

서로가 너무 깊은 사람관계는 서투르고 경계하는 면도 없지 않아서 그렇게 멀지않은 곳에서 서로 기대며 도와가며 또 몇 년을 살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나라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에 곧 적응해 버렸다.

어느 날 저녁 사람들을 만나러 나간자리에서 장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다급한 목소리로 자네가 얼른 집에 가서 일 좀 처리해달라고 말을 했다. 여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겨우 통화한 여자아이는 울고만 있었다. 

얼마 전 아이의 아버지가 무슨 죄인지 모르지만 또 교도소를 갔다가 출소를 했고 병이 들어 자기 어머니가 재가해서 살고 있는 집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혈변을 누고 피를 토하며 말라가는 모습에 더 이상 가망 없음을 느끼고 어머니와 의붓아들이 고개 가눌 힘도 없는 환자를 차에 싣고 와서 열쇠장이를 불러 문을 따고는 방안에 이불에 말은 채 환자를 내려 놓고 갔다.

여자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랐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미친년처럼 울며 제 아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차마 연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이 왔다. 사건 개요를 듣더니 경찰이 119를 불렀다. 그 사이 어떻게 살았는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뼈만 남은 환자는 구급대원의 들것에 실려 나오면서도 누군가를 찾는 듯 의외로 또렷한 눈동자로 시선을 굴렸다.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등뒤로 와서 분노한 듯 노려보는 여자아이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 갔다.

경찰이 남자의 어미에게 연락을 취해 봐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연락을 받을 것 같으면 죽어가는 자식을 이곳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내아이는 어찌할 수 없는 분노로 괴성을 지른다.

남자는 며칠 더 살다 병원에서 죽었다. 병원원무과에서 병원비 때문에 연락이 온다. 그냥 행려병자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돈이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들 아버지라는 이유를 들어 대학병원의 해부실습용 재료로 쓰이느니 곱게 화장을 해 주는 게 좋지 않냐며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려 의료 보험 처리할 것을 종용한다.

행여 아이들 마음에 응어리를 염려한 여자는 이내 약해져서 병원비를 물고 화장비를 내어놓았다. 그 바람에 새로 걱정거리가 생겨버렸다. 어찌 살아왔는지 모를 삶 때문에 아이들의 장래가 막히는 것을 막기 위해 사망 신고 후 3개월 안에 상속포기 청구를 해야 했다.

모든 게 시간이 덮어주고 아이들은 자라난다. 겪은 과정에 비해 겉보기에는 크게 그늘 없이 자랐다. 내가 아버지 노릇이야 못하겠지만 바람막이 정도는 되어주겠다고 했다. 제 나름 힘겨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남자아이가 자라서 이달 말에 군대를 간다 .

어린 여자아이에게 네잎 클로바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저 나름 행운을 모으고 싶었나보다 . 지금은 어렸을 적 일을 이야기해도 기억하지 못한다. 옆자리에 누운 집사람이 나는 당신에게 무어냐고 물어온다. 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사랑 같은 말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냥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내 팔자라고 말해주고 웃어버렸다.

어릴 때 한겨울 고슴도치 가족은 어떻게 겨울을 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추우면 모여서 체온으로 버텨야하는데 정작 강한 적들에게는 별 쓸모도 없는 빳빳한 가시를 가족들에게 꾹꾹 찔러댈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을 갸우뚱거렸다. 추우면 들러붙고 아프면 떨어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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