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623 Part 1. 덕업

Welcome to the Infected Area.


감염의 시작.


1997. XX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학교 끝나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뭐 있어?'. '이건 직접 봐야 해'. 더는 묻지 않았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그랬다. 이미 서로의 관심사를 가지고 뭉쳐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 다른 친구도 뭐 새로운 게임을 보여주려 하나 보다 했다. 시큰둥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놀러 가는 거기에 기분은 좋은 상태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친구는 참 대단한 친구였다. 당시 정품 게임이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그는 정말 한푼 한푼 몇 달을 모아서 출시 예정 혹은 꼭 하고 싶은 게임을 정품으로 구매하는 친구이었다. 사실 이 친구를 비롯해서 정말 게임을 좋아하는 내 주변 친구들은 복사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딱히 부자인 친구는 없었다. 왜 복사품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진짜를 좋아했을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형편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각자 게임은 많아야 3~4개이었다. 물론 나도 한 개에서 두 개가 한계이었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정말 게임을 깊게 파면서 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의 집. 조금 떠들었을 뿐인데 우리는 순간 이동하듯 어느 사이에 친구 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친구의 집은 지하에 있었다. 정리하고 말고 할 것 없었다. 대충 신발 벗고 들어간 후 가방을 내동댕이치고 바로 게임기를 준비했다. TV를 켜고 게임기를 켰다. 게임 시디는 이미 안에 들어있었다. 곧 시작을 알리는 화면이 나왔다. 갑자기 친구는 방에 불을 탁! 하고 커버렸다. 우리는 '뭐야?, 불을 왜 꺼?'라고 했다. 이내 친구는 '닥치고 봐봐.'라고 답을 했다. 

첫 화면을 본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15초 남짓한 화면은 주변 분위기를 순식간에 숨소리도 안 들리게 만들었다. 그저 두 눈을 껌뻑거리며 화면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 되었다.

이 화면을 보고 있는 내내 충격을 받고 있었다. 실사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이 화면 자체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게임 범주 안에 이런 모습은 없었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놀림 받기 싫었기 때문에 그저 태연한 척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속마음을 숨기면서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을 숨기면서.


이내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보는 나는 한동안 잠을 설칠 정도로 머릿속에 각인 돼버린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친구가 직접 조정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이어지는 게임 속 이벤트 장면이었다.

좀비, 내 인생에 좀비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한 첫 순간이었다. 내 친구는 이 일련의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 난 것이었다. 물론 게임으로서 놀라운 경험을 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9개월간 이 강렬한 모습에 내가 고생을 했다는 기억뿐이었다. 지금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은 삼류 영상일 뿐이다. 


문제는 이 삼류 영상을 통해 나도 모르게 점차 내가 변하고 있었다. 9개월이란 시간 동안 조금씩 이 게임에 감염이 되고 있었던 거다. 뜨문뜨문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떠올랐던 이 게임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머릿속에서 강렬하게 맴돌기 시작했다. 해볼까, 해볼까 하는 마음은 미친 듯이 타는 갈증처럼 이 게임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나는 이 게임 속으로 발을 들인 상태이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온 신경이 곤두섰고 가슴은 매 순간 터질 거 같았다. 게임을 하는 내내 그만두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여기까지만 할까?', '아니야, 조금만 더 진행해 보자'. 게임 속 한 걸음 한 걸음은 내 욕망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 끔찍한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빨리 끝을 보고 싶었다. 몇 날 며칠 끝이 보이지 않은 탈출구는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끝을 통과하게 되었다. 


강렬했던 이 게임과의 첫 경험. 숨 막혔던 공간에서의 탈출의 쾌감은 잠시일 뿐 끝이 아니었다. 이 오염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 대로 된 나는 다시 한번 나왔던 곳으로 들어가 강렬했던 자극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감각 해질 때즘 다른 신선한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내 새로운 곳이 열리면 나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내내 허기진 사람처럼 끝 없는 자극과 본능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입구와 탈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나 6번째 탈출구를 통과하고는 지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이 게임이 가진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마비 되어가던 나에게도 이성의 마지막 끈 하나는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으려는 찰나 7번째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이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그동안 지나왔던 전 지역하고는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처음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강렬한 긴장감이 돌아온 순간 번뜩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읽기 전에 기록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오염 구역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말이다.


                                                                               2017. Feb  틀림없이.


배후.


1979. May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일본의 한 기업이 있었다.

capcom-logo.jpg

79년 일본에서 '캡콤'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전문 게임 개발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아케이드라 불리는 오락실 게임 개발을 주력으로 삼는 회사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회사는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의 멋진 게임을 초창기 때부터 선보였다. 어떤 형태로 접했든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회사 제품을 해봤을 것이다.


당장 기억나는 오락실 게임으로만 조금 나열하면. 1942, 손손, 에리어88, 블랙 타이거, 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 파이터2, 마계촌, 천지를 먹다, 던전 앤 드래곤즈 등 전부 나열하기 힘들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2를 만들어 격투 게임에 붐을 일으켰고 게임 역사 아니 인류가 가진 놀이라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이었다.


이 회사는 오락실 게임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록맨 또는 메가맨이라 불리는 회사를 대표하는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으며 스트리트 파이터2를 가정용으로 훌륭하게 만들어 큰 이익을 얻기도 했다. 내 경험으로는 슈퍼 패미컴 용 스트리트 파이터2는 한동안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이었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오락실과 동등한 수준의 게임을 한다는 것,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는 매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1994. Dec


매 순간 잘나가던 회사에도 큰 전환점과 동시에 위기가 찾아왔다. 세상은 2D에서 3D라는 표현 방법으로 게임이 만들어지길 원했다. 이 회사는 2D 게임에서 독보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3D 게임에서는 뚜렷한 결과물 없이 반대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 돋보이던 콘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었다. 많은 콘솔 회사들도 2D가 아닌 3D를 전면에 내세우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경쟁 관계 회사들도 발 빠르게 준비했었고 그 결과물을 통해 선두주자에 서고 있었다. 


단순하게 기술적 위치에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사실 중 하나로 당시 회사는 엉뚱한 부동산 투기 때문에 큰 존재 위기에 놓여있기도 했었다. 비유하자면 현대 자동차가 삼성동 대지를 매입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그 계기로 위기가 왔다고 보면 된다. 투자 순서가 엉망진창이라는 말과 같다. 당연히 내부 개발자들도 3D 기술력은 둘째치고 3D 관련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 뚜렷한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중에 한 젊은 제작진이 자기 생각을 담은 기획안을 상부에 올리게 된다. 그 기획은 Play Station을 기반으로 제작하는 3D 제품 기획서이었다.


그 기획안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방향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액션, 대전격투, RPG, 레이싱 게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3D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도 대전격투 게임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 엉뚱한 기획안은 결국 회사를 설득하게 되었고 그 젊은 제작진을 디렉터로 세우게 된다. 단, 최소한의 지원만이 이 프로젝트에 허락되었다. 다행스럽게도 3D 기술력은 타 회사를 통해 기술 제휴를 받아 해결은 한 상태이었다. 


1996. March


개발부터 발매 직후까지 순탄치는 않았다. 어쩌면 모든 시대마다 주목받은 그 무언가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개발 자체는 허락이 났지만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포자기였거나 다른 주력 상품들을 기존의 기술력으로 새롭게 만드느라 바빴는지 모르겠다. 기획안을 시작으로 3년의 세월이 지나기 시작했다.


성공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애물단지 취급만 면하기를 원했을 거다. 프로젝트 내내 긍정적인 반응은 받아 본 적도 없다. 결국 온갖 부정적 시각 속에 완성한 제품은 조용히 말 그대로 조용히 매장 한 구석에 놓이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홍보도 없었다. 


다행스럽게 운은 좋았다. 새로운 기기를 통해 발매 된 그 시기가 좋았던 것이다. 아마 이 제품을 처음 구매한 사람은 이거라도 해볼까? 하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상상 못 할 만큼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제품을 탄생시킨 것에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내 손에 선택권이 들어오는 순간 숨 막히는 공포가 온몸 구석구석 파고들기 시작한다. 공포와 쾌감 그 오묘한 경계선에 숙주가 빠지는 순간 이 게임이 가진 바이러스는 조금씩 신체를 잠식해 들어간다. 이내 감염자의 유전자 반응이 자신과 적합한 경우 다른 이에게 전염되도록 조정하기 시작한다. 


발매 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첫 감염자들의 입을 통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1명이 10명을 10명이 10만 명을 10만 명은 곧 10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는 위기에서 탈출하고 빠른 태세 전환을 갖추기 시작했다.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이 제품을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변 확대 목적으로 다양한 매체에 맞춰 발매하고 그것도 부족해 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2년 후 이전보다 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제품을 선보이면서 전 세계로 이전 숫자에 두 배가 넘는 감염자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공포'하면 이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대중화되어갔다.


이 제품에 이름은 'Bio Hazard', 북미 세계에서는 'Resident Evil' 이라 불린다.

logo_J.jpg 

그 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변종으로 사람들을 감염시키다 내성이 생기고 저항력이 강해질 무렵. 정식 넘버를 승계한 7번째 제품이 무감각해진 공포를 일깨우고 사람들을 또다시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기획.


'미카미 신지' 


이 모든 것의 출발은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미카미 신지'. 당시 캡콤 사에 기획팀 일원으로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부각하고 있었던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shinji2_9091.jpg

그는 전문 프로그래머도 엔지니어도 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기획자 단어 그대로 어떤 일을 구상하고 구조적인 틀을 계획하기도 하며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거나 정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다. 지금도 자신을 소개 할때 프로듀서나 디렉터 또는 대표라는 직함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SNS 계정에 '게임 디자이너 미카미 신지 입니다.' 라는 문구만을 봐도 이 사람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1993. XX


2D에서 3D로 표현 방식이 격변하는 시기가 도래했고 회사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시절. 미카미 신지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선배면서 직장 상사이고 스승으로 여기는 '후지와라 토쿠로'에게 어떤 이야기이자 제안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평소 제작했던 방향과 전혀 제품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캡콤에 입사해 지금까지 참여했던 게임과는 완벽히 대칭되는 기획이었다. 자신의 일신 상승을 위한 기회로 볼 수 있지만, 현재까지 그의 행동을 봤을 때 자리 연연보다는 순도 100% 자신이 구상한 게임을 만들려는 열망이 컸다. 이 구상은 '후지와라 토쿠로'가 말한 단어에서 얼기설기 뻗어 나갔다. 바로 '공포'. 오로지 그의 머릿속 중심에 자리 잡은 단 하나의 단어 '공포'이었다.


1994. XX


구상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인 기획안으로 만들어 올렸다. 이 기획안을 본 사람들은 분명 큰 고민을 했을 것이다. 3D 시대를 열고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장르들 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그 주제 또한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에 고민조차 생기지 못하는 기획안이라면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미카미 신지는 신선함을 줬을 뿐만 아니라 분명 프로젝트가 발동되도록 사람을 잘 구슬리는 기획을 그 안에 담았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이 기획안에 매료된 '오카모토 요시키'의 찬성이 프로젝트 시작에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기획안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시작을 하게 된다.


사실 미카미 신지는 구체적인 내용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메모와 공포를 어떻게 줘야겠다라는 큰 흐름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프로듀서 '후지와라 토쿠로'가 FC 시절 만들었던 '스위트 홈'의 구성부터 적극 차용하기 시작했다. '스위트 홈'은 '쿠로사와 키요시'의 공포영화 '스위트 홈'을 원작으로 만든 게임이었다. 


기본 구도는 간단했다. 유령의 집이었다. 유령의 집에 들어가 공포를 만끽하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전부이었다. 오로지 공포만 느낄 수 있게 집중할 뿐 다른 이야기는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체감형 게임 여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 구성에 대한 것은 그 어떤 임원진도 찬성해주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야기 내용이나 각본을 먼저 작성하라는 요구만이 돌아왔다. 업무 보고 회의 때마다 의견은 좁혀지지 않고 이야기 내용과 각본부터 끝내라는 말만 되풀이 되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만 남겨두고 다시 시작했다. 그때 유령이라는 소재는 게임 속에서 너무 흔하다고 봤다. 유령처럼 실체가 없는 부분은 전부 제거하고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에만 주목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좀비'이었다.


1995. XX


미카미 신지는 각본에 시작과 끝부분을 만들었다. 그의 거친 각본과 '좀비'를 포함한 여러 소재를 세밀하게 다듬어 제대로 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준 작가 '켄이치 이와오'를 포함 수십명의 인원이 제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그는 집요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장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세운 기획과 방향이 전혀 다르면 그는 과감하게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그는 흐름을 중요시했다. '공포'가 중요한 주제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흐름이 좋지 않고 주제만 따로 놀듯 튀어 버리면 제작을 진행 시키지 않았다.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주제가 전혀 살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다소 일 하는 방식이 거칠기도 했다. 마찰도 비난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디렉터로서 첫 작품이기에 제작 의도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액션을 강조했던 회사에서 전혀 다른 느낌에 체계가 나온 것에 대해 많은 우려도 쏟아져 나왔다. 결과물이 눈에 보여 질 수록 점차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부정적으로만 흘러갔다.


1996. March


별다른 주목 없이 세상에 놓인 제품은 하나둘씩 사람들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것을 접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것도 부족해 전염병이 퍼지듯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이 게임에 감염되는 사람들 머릿속에 다른 건 잊혀도 '미카미 신지'라는 이름만은 잊히지 않게 만들었다. 강력한 추종자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산업계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연신 화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장르의 특성상 이렇게까지 퍼져 나갈 줄은 그 누구도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캡콤에서도 태도를 바꾸면서 그의 입장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그는 이전과 다른 명성과 지휘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미카미 신지는 캡콤사의 의도와 함께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혼자가 아닌 자기만큼이나 강단 있고 집요한 어떤 한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확산.


'카미야 히데키' 


이 바이러스를 대중들 속으로 더욱 널리 확산시킨 자가 있다. '카미야 히데키'. 이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kamiya_crop.jpg

자신이 사는 집을 게임 센터처럼 꾸밀 만큼 게임 마니아 이기도 하다. 그는 거기서 멈춘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 세계에 참여한 자도 아니었다. 게임 마니아였던 자기 자신이 게임 기획, 제작, 개발에 욕망이 생겨 이 세계에 스스로 뛰어든 사람이었다. 일찍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정해 걸어온 무서운 잠재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의 독특한 점은 이것 말고 하나 더 있다. 그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다. 자기 생각을 들어내고 피력할 줄 아는 사람이다. 치열한 논쟁을 마다치 않는 성격. 그런 거침없고 숨김없는 모습은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난다.


지금 이 시각에도 그는 SNS를 통해 생각, 느낌, 의견, 타인과의 대화 등을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SNS, 블로그를 통해 열린 그의 모습은 그를 파악하기에 필요 이상으로 충분했다.


1994. XX


자신의 의도대로 기획과 제작 일을 하기 위해 캡콤으로 입사한 카미야 히데키. 그가 입사와 동시에 배치된 곳은 미카미 신지가 하는 프로젝트의 Planner team이었다. 처음이라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2D 세대이었던 자신이 3D 게임 프로젝트부터 참여를 했다는 것과 공포와 관련된 컨텐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당찬 새내기는 싫고 좋고를 떠나 자신이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타진을 해야 할 것이 있으면 뒤로 빼지도 않았다.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고 일러스트도 그릴 줄 아는 그는 시작부터 누군가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1996. April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큰 기대가 없었던 시작품은 놀라운 속도로 관심을 받았다. 1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 회사는 발 빠르게 속편 준비를 지시했다. 하루하루 전쟁 같이 작업 하던 미카미 신지는 디렉터가 아닌 프로듀서로 위치를 바꿨다.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조금이나마 밖에서 오는 간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카미야 히데키를 디렉터로 지정했다는 것이었다. 


1997. XX


두 번째 프로젝트는 카미야 히데키 인생 속에 최고의 도전이자 시련 중 하나이었다. 첫 번째 작품에 참여했던 경험과 첫 디렉터로서 일하는 미카미 신지를 근거리에서 봤던 경험을 가지고 일을 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여기저기서 발생 되는 논쟁은 일상다반사이었다. 자신을 발탁한 미카미 신지와의 이견 조율도 전쟁과 같았다. 외부에서도 전편의 인기로 인해 두 번째 프로젝트는 초유의 관심사이었다. 카미야 히데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힘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 출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작업 된 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고 다시 작업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지금까지 작업 된 작업물을 시연해 보니 반복적이고 늘어지며 지루하다는 것이다. 오카모토는 직접 작가 '노보루 스기무라'를 합류시켜 미카미 신지와 함께 시나리오 부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디렉터로서 역량을 질타하고 비난했다. 카미야 히데키는 물러서지 않았다. 미카미 신지도 그를 다독였다. 카미야 히데키는 자신의 스타일을 다시 한번 조율해 가며 작업물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미카미 신지와 캡콤은 발매 지연에 대해 사과를 했다. 미완성 제품 대신 전 제품에 감독판을 만들어 발매하고 그 안에 작업 중인 후속 제품 데모를 넣어 기대감이 식지 않게 열기를 붙들어 놓는다.


1998. January


이전보다 한층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담긴 두 번째 결과물이 발매되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달려들 듯 발매와 동시에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내장된 이 제품은 기록에 남을 정도로 최단 시간 내에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카미야 히데키 본인이 원했던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큰 저변 확대를 위해 대중 속으로 더 깊게 퍼지게 하는 것. 그가 가장 원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그가 추구한 방향은 적중했고 미카미 신지와 함께 자신의 일신도 크게 상승하게 된다. 카미야 히데키에게 이 시련과 고통 그리고 성공이란 경험은 미래에 더 강력한 무언가를 개발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캡콤은 '바이오 하자드'를 명실상부 자신들의 간판 브랜드로 지정한다. 또한, 이 제품을 자신들의 소유한 브랜드 중 가장 돈이 되는 부분으로 인식한다. 마치 끝없는 식욕만이 남은 좀비처럼 이 제품을 다른 곳으로 양산하고 퍼트리는 일을 빠르게 착수하기 시작한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