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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4. 목요일

sydney








-그들과 우리,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얻은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정리한 글입니다.




연재 마지막 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눈팅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훈장질을 하게 될 것 같아 심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라? 동서양 차이의 뿌리를 찾고자 한 결과 그런 결론에 도달하였으니 이해해주시라 믿고 시작해보겠다.


불특정 다수 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인종차별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 왜 없겠는가? 칼라도 다른데 자기들이 쓰는 언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현상이. 더욱이 가방끈과는 관계없이 무식하고 용감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이곳에서의 차별은 워낙 세련되어서 표면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1.이방인에 대한 공포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하여 경계심을 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다름' 이 자기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 손해가 될 것인가를 추가해서 판단한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하기 때문에 18세기 이전에는 색깔중심의 인종주의(racism)보다 자기와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의 민족(ethnic) 중심의 인종주의가 보편적이었다.


좀 더 쉽게 풀어 보자면 태초부터 인류는 자연 환경을 중심으로 오래 동안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관습이나 언어 등의 요소로 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적 정체성’이 다른 부족들을 만났을 때, 자기들과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되고 이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즉, zenophobia(제노포비아, 타 종족을 두려하는 의식)을 생기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백인우월주의 혹은 ‘백인 인종주의’의 단초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선박들이 이슬람의 세력들을 누르고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포르투갈에 노예로 팔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의 우월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 까지는 ‘색깔이나 얼굴형태’를 중심으로 한 인종주의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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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경매


그러나 서구 열강들이 비 서구를 강제 점령하는 과정에서 인종주의(racism)가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비 서구인들, 땅 그리고 자원들을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정당화는 매개로서 서구 인종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 서구 인종들에 대한 삶의 양식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그들이 주조한 ‘유사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팔레스타인 출신의 양심적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동양주의(Orientalism)‘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자들은 여기서 '동양주의’ (Orientalism)에 밑줄 좍 긋고 읽어야 한다. 중간고사에 틀림이 없을 나올 인류문화사의 엄청나게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동양주의라는 것은 막상 한 번도 서구를 벗어나 동양을 여행해 본 경험이 없는 관리나 학자들이 주로 피 식민주의 나라에 파견되어있는 정치인, 인류학자, 관리, 선교사들이 보내준 편지나 간단한 정보를 분석하여 그들의 서재에서 동양인들의 삶, 성격, 가치관을 포함한 문화를 제멋대로 '재구성’하고 ‘재창조’한 것이다. 예를 들면 보고서에선 중동인들을 호전적, 중국인들은 큰소리만 치고 게으른, 인도인 자기나라를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갈 능력이 없는 야만인들 등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에 의하면 백인들은 비 백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창조해 가고 있던 고유의 문화를 하나의 '차이'와 '특징'으로 보지 않고 '야만성'과 '후진성'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서구의 진보적인 문화와 가치로 그들을 '계몽'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고, 백인들이 비 백인들을 근대성으로 '계몽' 해야 한다는 일종의 'manifest destiny(사명)' 같은 허위 강박 관념을 갖기 시작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비 서구인들의 얼굴 색깔은 야만인들의 색깔이고 계몽 받아야 할 무지한 체질로 이해시켰던 것이다.


이 같은 ‘백인 우월 신화’나 ‘비 백색 야만인 신화’는 일반 백인들에게 알제리의 지식인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이 인용한 섹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prospero' 증후군을 낳게 된다. prospero 증후군이란 백인 딸을 둔 백인 부모들은 혹시 자기 딸이 흑인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할까봐 늘 안절부절 하는 강박관념을 말한다.


이런 심리는 백인들이 비 백인들을 ‘야만성’과 ‘후진성’으로 간주하고 그 색깔 속에서 위협의 공포를 ‘상상’하게 되는, 백인 그들 스스로를 허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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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끝.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


프란츠 파농(Franz Fanon)에 따르면, 흑인들은 반대로 백인을 증오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백인들을 닮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근대 이후 오랫동안 백인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비 서구인들의 의속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일종의 ‘내면화된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해도 툭하면 한국 사람들 스스로 “엽전이 별 수 있나?” 하는 자학적인 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이도 비슷한 결과다. 친일 교과서 논란을 일으킨 뉴라이트 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견해도 이로써 설명될 수 있고.



2.무슬림 이야기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정통적인 인종차별에 관한 논리들이 무색해지면서 인종에 대하여 새롭게 풀어야할 숙제가 서구사회에 대두되고 있다. 무슬림, 즉 아랍인들에 대한 문제다.


호주 국영방송인 ABC에 ‘해외특파원’이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곳에서 탈레반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 백신 보급 활동을 하는 여성이 소개된 적이 있다. 놀라웠던 건 방송 중 그녀가 백신을 보급하는 많은 보건요원들이 탈레반에 의해서 살해 되었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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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처음엔 탈레반이 자기 나라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업을 방해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송에서는 미국이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 소아마비 백신접종을 활용 했다고 하는 이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은 한국 MBC에서 이와 관련한 방송을 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펼쳤지만 잡지 못했다. 파키스탄이 빈 라덴의 도주에 적극 협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우연히 TV에서 파키스탄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는 장면을 본 CIA 패네타 국장은 소아마비 백신 캠페인을 벌여 빈 라덴 은신처를 찾아낼 것을 제안했다.


파키스탄 아동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놓아 주면서 몰래 혈액을 채취해 빈 라덴의 자녀를 찾아내자는 작전이었다. CIA는 파키스탄 현지의 명망 있는 의사를 동원해 소아마비 백신 캠페인을 벌였고, 채취된 혈액은 즉시 CIA에 전달됐다. CIA는 이 혈액들을 빈 라덴 여동생의 DNA와 일일이 대조하며 빈 라덴의 자녀를 찾아 나섰다. 자녀의 거주지를 알면 빈 라덴의 은신처를 확보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결국 빈 라덴은 체포 후 사살되었다. 그 후 예방접종 캠페인이 빈 라덴 체포를 위한 CIA의 비밀 작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탈레반은 이 캠페인을 금지하고 의료인들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에 나섰으며, 그 공격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파키스탄에서 근절되었다시피 했던 소아마비는 빈 라덴 사살 3년 만에 급격히 확산됐다.


한 개인을 추적하기 위해 대중 보건사업을 위장해 비밀 작전을 진행했다는 것은 아무리 파키스탄이 후진국이라고 해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파키스탄 아이들에게 소아마비가 확산되도록 해놓고 빈 라덴이 허무하게(?) 죽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 뉴스가 시끄러울 때 어떤 아저씨가 사립학교 교복을 입은 10살 전 후의 아들을 데리고 택시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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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빈 라덴 누구야?"

 

“알카이다 지도자”

 

“알카이다가 어느 나라야?”

 

“나라가 아니야. 그냥 단체야”

 

“어디 있는데?”


“어디나(Everywhere)”


“근데 왜 죽였어?”


“미국을 공격했거든”



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국가가 어디나 존재하는, 국가도 아닌 조직에 맞서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3.폭력에 대한 무슬림의 선택


요즘 호주도 무슬림 때문에 난리다. 아니? 이라크와 멀리 떨어진 호주가? 왜? 무슬림 동네 젊은이들이 이집 저집에서 슬그머니 사라져서 시리아로 이라크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청년들은 그곳에서 죽기도 하고 IS 유튜브 선전물에 살벌한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바람난 동네 처녀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까지 사라져서 시리아 등지에서 총을 들고 나타난다. 바야흐로 호주를 비롯한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들은 지금 호떡집에 불이 난 형편이다.


물론 서구 세계에 나고 자라서 IS로 향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행동 때문에 자신과 같은 무슬림들이 얼마나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는지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들을 위험한 상황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서구에서 자라서 등 따시고 배부른 무슬림 청년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줄지어 가는 것일까? 무슬림 광신주의 때문에? 웃기는 소리다. 그들도 자기 목숨 아까운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유는 미디어에 있다. 서구 미디어가 무슬림을 다루어온 방식은 폭력적이고 구시대적이다. 흔히 무슬림은 서구 문명에 위협이 되는 근본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들이 다른 종교인을 살해했을 때는 이슬람교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다른 종교인이 무슬림을 살해한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종교가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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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버마의 로힝야 무슬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은 서구 미디어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다. 최근에도 로힝야 무슬림들 600여 명이 무슬림의 나라인 말레시아나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위해 낡아빠진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주변국에서 모두 받아주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죽어가고 있다.


무슬림 이민자가 많은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는 남이고 말구….” 하면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한다. 반면에 무슬림은 겉으로는 “우리가 남이 아니지 않은가?” 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는 남인데….”하고 중얼거리는 양 편이 모두 어색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슬림이 다수인 여러 국가에서 많은 무슬림들은 (미국의 비호를 받아 탄생한)독재 정권과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환경 덕에 알카에다나 이슬람 국가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의 결과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죽어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도 무슬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까.


이렇듯 서구 세계에 대한 원한이 사무칠 때 그들은 IS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IS는 공포라는 무기로 세계를 위협한다. 그들이 뿌리는 공포의 향기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방처럼 IS에 달려든다.



4.공포와 그 결과와 사회적 비용


공교롭게도 9.11 사건이 난 화요일에 나는 뉴욕 근처의 고속도로에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수다를 떨면서 뉴욕을 빠져 나가는데 반대 쪽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움직이지 않는 차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라디오를 틀었으면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오래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고 그럴 생각을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TV로 무너져 가는 쌍둥이 빌딩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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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1월 4일(현지시간) 오전 8시께 애틀랜타 공항 보안 당국에 '여행가방 안에서 진동소리가 울린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애틀랜타 국제공항은 직원이 진동소리를 들으면 의무적으로 보안 당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당국은 폭발물이 들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상한 가방이 발견된 공항 내 일부 터미널을 폐쇄하고 공항으로 통하는 도시 전철 운행도 전면 중단시켰다. 애틀랜타의 전철 회사인 '마르타'는 자사 트위터에 ‘긴급사태로 인해 어떤 열차도 공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띄워 불안감이 증폭됐다.


그러나 경찰이 열어본 수상한 가방 안에는 폭발물이 아니라 전동칫솔 1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고 있을 뿐이었다. 수하물 처리 과정에서 가방 안에 충격이 가해져 전동칫솔이 작동한 것이었다. 당국은 도시를 한동안 테러 공포에 떨게 한 전동칫솔의 스위치를 끄고 40분 만에 공항과 전철 운행을 정상화시켰다.


9.11 이후 우리의 모습이다. 무슬림에 대한 폭력은 서구 세계에 ‘불안’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 ‘불안’이라는 선물은 워낙 값이 비싸서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는 우리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안전 비용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5.호주의 모습

 

호주에서 느끼는 인종 갈등은 단순히 백인이 흑인이나 동양인을 차별하는 것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다. 우리 눈에는 똑같이 인도인으로 보이는 이들 중에도 북부 지방과 남부 지방 출신, 파키스탄, 스리랑카, 타밀인들 간에 갈등과 긴장이 높다.


발칸 반도의 구 유럽 연방에서 갈라진 나라 출신들의 반목도 심각하다. 그래서 파키스탄과 인도인들은 크리켓 경기 중계를 보다가도 한판 붙어서 주변을 아수라장을 만들기도 하고, 발칸 반도 출신들은 테니스 경기를 보다가도 패싸움을 하는 정도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은 영어 좀 한다고 비영어권 출신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건방 떠는 인도인들이다.


밖으로 들어 내놓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호주의 가상 적국은 인도네시아다. 보트 피플.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이라크 등에서 들어오는 난민들이 안보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배를 타고 호주로 몰려오는 밀입국자들 때문에 호주 정권이 흔들흔들할 지경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정부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야당은 정책을 잘못했기에 난민들이 몰려온다고 공격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호주 정부가 유투브에 ‘여기 오면 본국으로 송환시킬 거다.’는 동영상을 올려서 밀입국 희망자를 단념시키는 선전활동을 할까.

 

불법 이민자에 대한 호주의 경고

 

이 난민들의 보트가 출발하는 곳은 대부분 호주와 인접한 인도네시아 섬들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어찌 하냐에 따라 호주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호주는 인도네시아에게 단속 잘해 달라며 고속정도 사주는 등 인도네시아와 불편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정성을 엄청 쏟는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사고뭉치들이 이런 저런 사고를 쳐서 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 최근에도 인도네시아 발 불법 이민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호주인 2명이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마약을 밀수하다 잡혀 사형이 집행 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인도네시아 대사를 소환하여 항의하는 등 갈등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작 13회의 긴 연재를 끝마치려 한다.


결국 뾰족한 답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인종 간 문제는 끊이질 않고 있으며 더욱 심해질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며, 그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수밖에. 우리는 남이다. 좌우 옆 집, 위아래 집에 사는 인간이 어떤 색깔, 어떤 인종이든 간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 지내려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이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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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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