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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추락할 것만 같았던 중국경제는, 당장의 추락만은 면한 모양새다. 중국당국은 7% 중반대 이상의 성장을 자신하며, 중속 성장 기조를 내세웠고, 적극적인 시장개입으로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을 일단 안정시켰다.

 

그러나, 내 소견으론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크레딧버블이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고(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다루기로 하자), 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고 산소호흡기를 달아도, 기업들의 닫힌 지갑을 열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미 고용과 신규투자 같은 세부지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결국 남은 것은 언제 이 버블이 터지느냐에 문제인 것이고, 그 시한은 이르면 올 하반기, 아니면 내년 상반기 즈음이 될 것 같다. 길어봤자 3년 안에는 곪아 터질 문제라고 본다.

 

일본 역시, 몹시 위험한 상황이라고 본다. (개인의 편향될 수 있는 의견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원래 물가 안정이 제일의 과제인 일본 국영은행을 쥐어 든 아베 정권은, 미친 듯이 돈을 찍어내서 엔화가치를 떨어뜨리고 물가상승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데 (엔저가 실현되면,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이 강화된다), 이에 대한 효과는 몹시 미미하다고 본다. 소비는 전혀 늘지 않고 있고, 투자심리 역시 전혀 개선되지 않아,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상황이다. 이걸 억지로 되살리고자 아베 정권은 온갖 조치를 취해보고 있지만, 그럴수록 일본의 국가채무는 임계점에 가까워지고만 있다.

 

한국 얘기를 하기 위해 멀리 돌아왔는데, 우리나라 역시 우울한 소식뿐이다. 조선업 불황으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 관련 기사가 총선 이후 도배되고 있다. 수십 조에 달하는 채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고, 채권단과 해당 기업 간의 협상 소식이 매일 급박하게 업데이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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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유가 하락과 중국경제 둔화 등 외부적 충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선업계가 어려워졌다고 볼 수도 있고, 산업은행 등이 거의 관치를 하다시피한 해당 기업들이 방만한 운영을 한 탓에 위기관리능력이 부제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자를 따른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선업을 전략적으로 보호해야 된다는데 방점이 찍히는 셈이고, 후자에 따른다면, 산업은행을 필두로 한 현 정책지원사업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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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한 발짝 떨어져서, 이걸 조선업이란 개별 업종이나, 관치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경제 모델의 실패라고 보고 싶다. 이른바 '거함제일주의 시대의 종말'이다.

 

거함제일주의란, 쉽게 말해 대기업 몰아주기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지금 막 만든 말이니까 검색해보고 그러지 마시라.) 전후 일본에서 시작된 이 산업모델은, 정부가 먼저 돈이 될만한 사업을 선정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잘할 것 같은 기업에 정책자금을 투입하여 육성시키고, 몸집을 키워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시키는 모델이다.

 

이게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되왔던 이유는, 그동안 잘 먹혔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그간 많은 양의 물건을 싸게 만드는 게 중시되어 왔다. 그 바닥에서 규모의 경제는 몹시 중요한 문제였다. 정부가 떠먹여 준 정책자금으로 지어진 큰 공장과 설비, 그리고 값싼 노동력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었고, 이들 기업들을 단시간에 세계무대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본이 시작했고, 우리가 따라 했으며, 중국 역시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이걸 가장 모범적으로 실현해 온 3국이 공교롭게도 현재 경제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이는 전부 빚의 문제로 귀결된다.

 

애써 빚내서 지은 생산시설과 공장이, 전부 기대만큼 돈을 못 뽑아내고 있다. 특히, 규모의 경제가 가장 중요시되는 철강(제철소의 용광로는, 한 번 지어지면, 쉴새 없이 돌아가야 한다)과 조선업(노동집약적 제조업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다)에서 위기가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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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우리가 쫓아갔듯, 중국이 우리 뒤를 바짝 쫓고, 그 뒤로는 인도가 또 따라오고 있다. 중국경제의 굴기 이후, 제조업 모든 업종에 걸쳐 큰 배가 너무 많아졌다. 아니, 큰 배만 너무 많다. 큰 배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통념과는 반대로, 이제는 치킨게임이 펼쳐질 것이고, 무리하게 덩치를 불린 순으로 죽어 나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함들은, 혼자 죽는 게 아니다. 한 대기업의 몰락은, 수만 명의 직원과, 하청업체와, 지역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마불사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수많은 공적자금이 투자되어, 이들의 회생에 투입될 것이다. Too big to fail. 도산했을 때 그 결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영향을 두려워한 각국 정부는 이들을 되살리기 위해 혈세를 쏟아부을 수밖에 없고, 이런 시장개입이 이뤄질수록 과잉공급문제는 더욱 더디게 해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아주 소수의 운 좋은 대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 기업에 들어간 돈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겪었고, 97년 한국이 겪었던 문제가 이제 다시 중국에서 시작되어 벌어지는 셈이다. 결국, 이런 과잉 투자문제가 반복될수록, 대기업을 유지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그로 인한 수출과 일자리 창출의 경제적 효과를 능가하는 시점이 빨리 다가올 것이다.

 

'똑같은 물건을 거대한 설비를 통해 최대한 빨리, 더 많이 만드는' 경제 모델은 가치를 점점 상실하고 있다. 적어도, 개발도상국을 벗어난 국가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이번엔 조선, 철강이지만 (참고로 IMF 스타트를 끊은 게 한보철강이었다), 비슷한 반도체(이미 반도체시장은 여러 차례 치킨게임을 겪었다. 수천억의 적자와 수조 원에 이익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시장이다), 핸드폰 등의 제조업 전반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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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안적 모델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 번 끊고,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을 좀 더 다뤄보겠다.


 

첨언1.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나,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들 공기업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리스크를 키운 것인가, 아니면 정치권의 요구에 굴복하여 대출을 해준 것인가. 이 기회로, 이들의 의사결정과정이 좀 더 투명하게 공개되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현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꼬리짜르기식의 구조조정이 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첨언 2.


국내기업 중에 산업은행 자금이 안 들어간 기업은 거의 없는 걸로 안다. 그로 인해, 이들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식의 관행이 있고, 이런 구조는 이 기회에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이들이 만든 카르텔은 반드시 깨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론, 관피아 문제보다 심각한 게 이들을 쳐낸 자리에 들어가는 정피아 문제라고 생각한다. 관료 출신이나 공기업 출신은 최소한 자기분야에서 전문성이라도 있지만, 보은 인사로 귀결되는 정치인 출신들은 그마저도 없다. 지금의 문제가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국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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