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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의 외유

 

기업의 사장님들을 만나다 보면 일과 외유(外遊)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수출을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이 동분서주한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일이다. 처음에는 일하지 않고 논다는 죄책감을 덮기 위한 자기 위로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스스로에게 한 거짓말에 완전히 침식되어 시나브로 자신의 외유를 업무상의 해외출장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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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라는 작은 조직 내에서 마치 왕과 같은 권위를 누리는 사장님들은 자신의 해외출장이 외유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구두 상으로 잠시 언급된 포캐스트(forecast, 예상발주량)나 MOU를 마치 계약확정분이나 되는 양 자신의 실적을 떠벌리고 직원들을 다그친다. 어서어서 수출을 대비해 생산을 하라고 말이다. 제정신 박힌 직원들이야 극구 만류를 하지만 벌써 이성을 잃은 사장님은 보신주의니, 매너리즘이니 하면서 직원을 더 몰아세울 뿐이다.

 

회사가 충분한 자금력을 갖고 있으면 이런 해프닝이야 어떻게 버텨내고 훗날 작은 교훈이라도 얻겠지만, 기업의 자원을 짜내고 짜내 수출 한 방으로 만회하겠다는 벼랑 끝에 선 기업이라면 사장의 우매한 행동 하나로 폐업에 이르기까지 한다.

 

사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등의 해외연수도 문제가 없다고 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해외 유관 단체와의 협력, 선진 사례 견학, 우수 직원 포상 등의 명목으로 꾸준히 해외연수에 예산을 배정한다.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앞선 문화와 선진 사례를 눈으로 보고 배워 올 수 있다면 해외 연수를 굳이 탓할 일이 아니라 장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얼 배우기에는 짧은 며칠의 시간, 특히 제대로 교육을 받고 토의를 하기에는 짧게 배정되는 학습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인재들보다는 대부분 기관의 우두머리가 항상 포함되는 외유라고 볼 수밖에 없는 해외연수로 얼마나 많은 예산이 소모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중동 세일즈 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은 채 며칠을 국내에 머물지 않고 또 아프리카로 갔다. 이 정도면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태업이지 싶다. 국내의 여러 현안을 내팽개치고 해외를 떠돌고 있는 행태는 기실 비겁한 행보이기도 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


 

흔히 공직 사회에서 자기들끼리 수군덕거리며 하는 말이다. 이런 비겁한 말이 아직도 회자되는 사회이다 보니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은 언제나 중요한 대선 공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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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으며, 최근에는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의 필요성을 본인이 직접 강조하고 나서기까지 했었다. 공무원들에게는 극한의 경쟁을 주문하면서 자신은 태업을 일삼고 있는 후안무치함으로 인해 레임덕의 가속화와 혼탁한 국정 운영은 계속될 것이다. 그 피해는 물론 국민의 몫이 될 테고…….

 

사람들이 현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이 무엇이 있냐고 물으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하곤 한다. 우두머리로써 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행동이 무엇인지 손수 보여준 타산지석의 대통령이니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반면교사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신 분이라고.

 

 

하인리히의 법칙


1931년 미국 보험사에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예방의 과학적 접근’ 이라는 책을 내며, 인명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사고 발생 전 징후를 포착하는 1:29:300의 패턴을 발표한다. 대형사고 전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29번의 사고, 또 그 이전에는 300번의 사소한 실수나 무심코 흘려보낸 위험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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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 방지 관련 교육이나 책자를 통해 꽤 알려져 있었으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생소한 이론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의 전철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까지 끊임없이 인명사고가 반복되다 보니 위우기도 힘들던 이 법칙이 이제는 보통의 사람들도 알만한 단어가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려면 알아서 똑똑해져야 하고 자기가 스스로 제 한 몸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 같지 않다.

 

어쩌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같은 곳을 가보면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분주히 일하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면 내심 ‘어른 하나 없이 애들만 일을 시키고 있으면 위험할 텐데. 점주는 뭐하는 놈이라 이 따위로 가게를 운영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20대를 어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에겐 한 자리에서 일하며 켜켜이 쌓인 경험을 무시 못 하는 것이고, 더불어 책임질 수 있는 위치의 관리자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경미한 사고가 일어나도 쉽게 해결될 일이 되레 큰 문제로 비화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기름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커다란 튀김통, 소스와 물이 떨어져 미끄러운 주방 바닥, 쉴 새 없이 빨리 음식을 재촉하는 손님들 속에서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쁜 젊은이들(?)…….

 

행여 기름통에 얼음을 빠트리는 작은 실수만 하나 하더라도 큰일 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고 이놈에 노파심은 왜 나쁜 상상만 하게 되는가 하며 고개를 젓곤 한다. 그리고 매장을 나올 때면 마음속으로 또 한 번 어떤 놈이 점주인지 저는 자식 안 키우는 놈인가 낯짝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디 햄버거 가게뿐인가. 몇 년 전 대기업 N사는 휴일에 진행되는 외주용역사의 공장 내부 보수 공사를 감독하려 자기네 직원이 출근하면 휴일 수당을 줘야 한다며 외주용역사가 알아서(?) 공사를 하고 결과만 사진을 전송하도록 시켰다. 경험 없고 뭘 모르는 잡부들이 공장에 밸브 하나 건드려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일인데 관리를 해야 할 직원의 휴일 수당을 아끼는 게 대순지 이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과정 자체 의문을 갖게 하는 행동이었다.

 

손익을 따지느라 10원 한 장도 따지는 기업은 그렇다 쳐도 정부기관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부의 어떤 산하기관들은 민원인 방문상담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가능한 모든 업무를 외주용역으로 돌리고 최소한의 계약직 인원으로 운영하다 보니 직원들이 거의 매일 외근을 해서 일어난 일이다.

 

급한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 민원인이 발길을 돌리기도 다반사고, 그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과로와 신분 불안으로 몇 년을 못 버티고 사표를 낸다. 이러니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기획재정부는 이런 기관에는 예산을 삭감한다. 또 다시 인력난과 사건 사고가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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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준 OECD 주요 국가 산재사망률(십만명 당 사망자수)

출처 - 공무원U신문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다. 수많은 사건 사고의 반복으로 죽지 않아도 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일을 국민들이 계속 보아 왔고 그 아픔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져 가슴 속 상처로 쌓여왔다. 경험 삼아서 또는 조금이나마 어려운 형편에 부모에게 보탬이 되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나서는 자식을 보며 마치 전쟁터에라도 내보내는 양 무사를 기원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되었다.

 

어느덧 무능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까지 팽창했고, 서민 한 명의 목숨은 자본을 위해 언제든 희생될 수 있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우리 사회가 앞만 보고 달린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러다간 국가와 사회 체제에 대한 국민 불신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고,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이란 거지 같은 영역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워크홀릭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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