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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모(19) 군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5년 10월,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안전문) 유지보수 업체인 은성PSD에 입사했다. 월급 140만 원에 과도한 업무량으로 밥도 굶기 일쑤였지만 관련 업무가 2016년 8월 서울메트로 자회사로 이관된다는 소식에 '공기업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생일을 하루 앞둔 2016년 5월 28일, 김 군은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출근길에 나섰다. 오후 6시경, 그는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에 있는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 쪽으로 들어가 홀로 정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2분 뒤, 그는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서울메트로가 승강장 안에서만 정비 작업을 하는 걸로 파악해 열차 운행을 중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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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쪽지들을 수거 중인 역무원들

출처 - <오마이뉴스>

 

기관사가 스크린도어 고장 사실을 신고하면 정비업체만 연락을 받고 해당 역은 통보를 받지 못하는 체계라 당시 구의역에 있었던 3명의 역무원들은 스크린도어가 고장 난 것조차 몰랐다.

 

정비업체는 수리 전, 역무실에 보고하고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 하지만 구의역 직원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김 군에게 스크린도어 열쇠를 건넸고 안전 수칙을 준수하는지 감시하지도 않았다.

 

한 은성PSD 직원은 '혼자서 작업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하다'고 전했고 다른 업체 관계자도 '보고를 하면 작업을 허가해 주지 않아 보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일부 시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앞에 국화를 놓고 김 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 10여 장을 붙였다. 그러나 서울메트로 측이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수거해 대합실에 마련된 추모 공간으로 이전시켰다.

 

스크린도어 정비 같은 위험한 작업을 19살 비정규직 청년이 혼자 하다 변을 당했는데 꽃 몇 송이와 종이 쪼가리 10장 치우는데 정규직 역무원 3명이 출동했다.

 

강남역 추모 때는 보존했던 포스트잇을 구의역에서는 바로 치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으나, 꽃과 쪽지들이 선로에 떨어질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치우는 것이 맞다. 게다가 정거장 등 철도시설에 임의로 광고물을 부착하는 것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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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복구된 추모 쪽지를 보는 박원순 시장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구의역을 방문하겠다고 하자 떼어냈던 포스트잇을 열까지 맞춰 도로 붙여놨다. 

 

정비업체 직원이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 끼어 숨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지만 자회사 정비 직원 수는 그대로다. 

 

은성PSD는 서울메트로가 직원들의 정년을 연장해 주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2011년 말, 서울메트로는 '만 58세인 정년을 연장하기 위해 분사로의 재취업을 알선한다'는 노사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은성PSD 직원의 70% 이상을 정년퇴직을 앞둔 서울메트로 간부들로 채운다.

 

문제는 서울메트로 출신 직원들 대부분이 스크린도어 정비 경력이 없는 사무직이나 역무직으로 관련 지식이라곤 달랑 5일 교육받은 게 전부란 것이다. 실제로 2013년, 2호선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은성PSD 직원이 열차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원순 시장은 김 군을 조문하고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민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사고의 원인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을 묻을 것'이라 밝혔다. 지난 3년간 똑같은 사고로 이미 2명이 숨을 거뒀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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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의 소지품

출처 - <한겨레>

 

사고 당시 김 군이 소지한 가방에는 공구, 필기도구, 육개장 사발면 한 개, 나무젓가락,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들어있었다. 


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대가는 항상 힘없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걸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군 어머니 기자회견 전문



바쁘신 와주신 와중에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으러 온 기자들에게 감사한다. 제가 엄마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야 한다고 해서 왔다. 한 가지 부탁한다. 동생이 있다. 동생이 상처로 다치지 않도록 사진과 목소리 변조 부탁한다.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뭐가 필요하겠는가. 
 
아들이 살아서 제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아들을 살려 달라. 저는 지금도 우리 아이가 온몸이 부서져 피투성이로 안치실을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회사 측에서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우리 아이가 지키지 않아 그 과실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자가 말이 없다지만 너무 억울하다. 
 
메트로 설비 차장이 저희를 찾아와서, 보고하지 않아서 우리 아이의 과실이라고 말했다. 전찰 운항 중에 작업하면 죽는다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정비기술자인데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키를 훔쳐서 규정을 지키지 않고 그 위험한 작업을 하겠나. 
 
우리 아이는 입사 7개월의 20살이다.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운 대로,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규정을 지키지 않아 개죽음을 당했다니요? 간절히 부탁하고 싶어서 이렇게 섰다. 제발 부탁한다. 힘이 없어서 저희가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밝혀 원한을 풀고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아이를 확인하라고 해서 (안치실에) 들어갔는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누워있었다. 20년을 키운 어미가 그 아들을 알아볼 수가 없다. 저 처참한 모습이 우리 아들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아이인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다. 뒤통수가 날아가 있는 시체가 절대 우리가 아이가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짙은 눈썹과 옷가지가 있는데. 그날 입고 나간 옷이 맞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잃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가 죽는 날 나도 죽었다.  
 
눈을 감아도 아이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 마지막에 봤던 처참한, 찢어진 모습만 떠오르고 전동차에 치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제 심장이 저 지하철 소리같이 계속 쿵쾅거린다. 혼자 얼마나 두려웠을까, 무서웠을까. 3초만 늦게 문을 열었더라면. 그 얼굴을 볼 수가 있는데. 
 
제 남은 인생은 숨을 쉬고 있어도 죽은 그런 삶을 살겠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우리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명예회복밖에 없다. 간절히 부탁한다. 우리 아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저도 우리 아이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억울하게 보낼 수는 없다.  
 
제가 이 자리에서 뭐하는 것인지 아직 빈소도 마련하지 못했다. 차가운 안치실에 저희 아이가 있다. 제발 아이를 떳떳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 힘도 없고 백도 없는 부모로서 이렇게 부탁하는 게 전부다. 죽은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차라리 팔다리가 끊어진 것이라면 제가 수발을 들어주며 살 수 있다. 어미로서 할 수 있는 게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밖에 없다.  
 
우리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 있고 반듯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아이 잘못 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가 된다. 
 
우리 아이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착한 아이였다. 그 나이에도 엄마에 뽀뽀하며 힘내라고 말하는 곰살맞은 아이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고를 가며 돈을 벌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장남으로 책임감으로 공고를 가서는 우선 취업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은 나중에 가겠다고 했다. 그때 진짜 말렸으면 정말…. 
 
취업을 하고 백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는 적은 월급 쪼개서 지난 1월부터 적금을 5개월, 백만원씩 다섯번 부었다. 동생 용돈을 주는 착한 아이였다. 끼니를 걸러가며 일하고 그걸 혼자 견디고 집에 와서는 씻지도 못할 만큼 지쳐 쓰러져 잤다. 힘든 내색하지 않고 그 직장에 다녔다.  
 
안전장치도 하나 없는 환경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일했다. 솔직히 얘기를 했다면 부모로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백만원이 뭐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남으로 책임감이 있어서 부모가 걱정하고 그만두라고 할까봐, 조금만 더 참으면 공기업 직원이 된다는 희망으로 참았나보다.  
 
차라리 책임감 없는 아이로 키웠다면 피시방을 가고 술이나 마시는 그런 아이였다면, 그런 아이였다면 지금 제 곁에 있을 것이다. 왜 책임감을 쓸데없이, 왜 그렇게 지시에 고분고분하라고,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 다니면 상사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그렇게 안하면 잘리잖아요.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그런 게 다 후회가 된다. 더 잘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아이 친구들이 찾아왔다. 졸업하고 친구들끼리 여행갈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 아이가 주말에 일하니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에 간다고 우리 아이는 못 간다고 했다고 한다. 그 내용도 저는 몰랐다.  
 
친구들 내용을 듣고 보니까 또 부모를 위해 여행을 못 간 건가 싶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속상할까봐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우리 아이가 속이 깊다고 표현하겠지만 가슴이 찢어진다. 사고가 난 다음날이 우리 아이 생일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태어난 날. 그날 잘 갔다오라고, 올 때 케이크라도 사서 식구들과 축하해준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죽은 당일에도 보니까 하루종일 굶고 시간에 쫓기며 일했을 뿐이다. 근데 우리 아이가 잘못해서 죽은 거라니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고 원통하다. 유품이라고 그 회사에서 갈색 가방을 병원에서 받았다. 가방을 처음 열었다. 학교 다닐 때만 검사한다고 가방을 열어봤지 처음 열어봤다. 왜 거기에 사발면이 들어있나. 
 
여러 가지 공구와 숫가락이 함께 있다. 비닐에 쌓인 것도 아니고. 그 사발면은 한끼도 못 먹어서 그걸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먹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것도 먹지 못하고. 그냥 대기하다가 그것이라도 먹고 출동하려고 숟가락을 그 공구와 함께 섞어놓았다.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규정을 어겼다니요. 무슨 규정을 어겨서 배를 곯아가면서 왜 그렇게 했나. 19살짜리가 임의로 그렇게 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 시킨 것은 자기들인데 규정을 어긴 것은 우리 아이라니.  
 
제발 억울함을 밝혀달라. 한창 멋 부리고 여자친구 사귈 나이에 죄를 뒤집어쓰고 원통하게 보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동료가 안부를 물으며 전화해서, 제가 “정말 아줌마는 너 그만두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도 지하철은 돌아가고 2인 1조로 내보지 않고 혼자만 내보내고 누군가 계속 죽어가고 있다. 죽은 아이 잘못이라니. 정말 엄마가 용기 내서 이렇게 말한다. 간곡히 부탁한다. 다른 것 필요 없다. 살아올 수 없지 않나. 사흘 못 봤는데 너무 보고 싶다. 군대 가거나 유학 갔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몇 년 참을 수 있지만, 군대 가면 휴가라도 나오고 유학 가면 영상통화로 볼 수가 있다. 저는 평생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우리 식구를 모두를 죽여놓고 아이 원통함이라도 풀어달라. 
 
우리 아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희 아이만 죽이는 게 아니다. 진실을 알아주고 원통함을 풀어달라. 우리 아이 얼굴만 보여줬지만 뒤통수 날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 안다. 팔이 다리도 부서져서 없고…. 어제 구의역 사진이 인터넷에 나왔는데 저한테 안 보여주려고 하는데 언뜻 봤다. 유리창이 다 깨져 있고 피투성이더라 제발요. 부탁 좀 드린다. 우리 아이 제발 차가운 데서 꺼내서 보내줄 수 있도록 제발 부탁한다. 저희 아이 잘못 아닌 것 알고 있지 않나. 정말 부탁드린다, 정말 부탁드린다. 






문화병론가 고성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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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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