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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2년, 미국에서 2년 정도 운전을 했는데, 두 나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꽤 많다.


한국에선 운전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을 전전했다. 잠자리 선글라스에 하얀 장갑 끼고 운전하는 택시나 버스기사는 아녔고 그냥 운전이 필수였던 일을 했다.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70-150km 정도? 이렇게 된 거 택시운전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1. 운전면허


한국 면허는 02년에 취득했다. 학원비가 거의 100만 원 했던 거 같다. 과정은 필기, 실기, 도로주행이었고, 학원에 여자 강사분이 많이 계셔서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갔다. 덕분에 전부 한.번.에 합격.


미국 올 때 국제면허를 발급받았다. (지금은 유효기간인 1년이 지나 책상 깊은 곳 어느 곳에 처박혀 있지만) 뭔가 폼 날 거 같아서 받았다. 한국 면허증이 전 세계에 통한다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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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면허증을 갖고 운전을 하려면 여권, 한국면허증, 국제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열라 불편하다. 게다가 미국은 국제면허증을 인정해주는 주도 있고, 안 해주는 주도 있다. 경찰에 따라 무면허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니 엿장수 맘도 아니고.


다들 알겠지만 뉴욕 같은 대도시 아니면 미국에서 차 없이 생활하기 불편하다.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마트에 가려면 최소 2~30분을 운전해야 한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면? 한국 마트에 가려면? 4~50분 정도 운전해야 한다. 관광이 아니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느니 그냥 집에 누워있는 게 좋다.


제네바, 비엔나 협약이 맺어진 국가는 한국 면허를 인정해 준다고 한다. 근데 국가는 인정해줄지 몰라도 주마다 법이 다르다. 그냥 바꿔주는 주도 있고, 몇 시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 주가 있는 반면, 필기는 면젠데 실기를 봐야하는 주가 있다. 내가 사는 펜실베니아는 얄짤없이 필기부터 봐야한다. 덴장맞을.


미국은 한국처럼 마트나 편의점이 아닌 리커스토어(liquor store)에 가야 술을 살 수 있다. 술을 사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엔 한국처럼 사진이 있는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대부분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한다(운전면허증 뒤에 있는 마그네틱을 긁는다). 반면 여권을 들고 가면? 거의 대부분 매니저가 나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그런다. 서로 불편하다. 면허를 따도록 하자.



2. 멀고 먼 면허시험 과정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자동차관리국(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한국으로 치면 도로교통 관리공단)에 가면 무료로 운전면허 예상 문제집을 나눠준다. 공짜니까 좋다. 근데 영어만 있다. 교민회 사이트에 한국어 번역본이 있지만 해설만 번역해 놨다. 예상문제와 답은? 시험을 어떻게 보라고? 나 같은 까막눈은?


접수처에 앉아있는 사람 좋게 보이는 감독관에게 한국 운전 면허증이 있는데 교환해주냐 물었더니 프랑스, 독일 면허는 교환해준단다. 독일이 한국 면허를 바꿔준다는데 독일에 가서 바꾼 담에 들고 올까 아니면 한국 면허를 바꿔주는 다른 주에서 바꿔올까 망상을 해봤다.


통역 겸 운전기사 겸 결혼해주실 여자 친구가 접수 과정을 물어보니 소셜 번호가 있어야 한단다. 난 아직 없는데. 학생이면 I-20 어쩌구 하는 서류가 필요한데, 난 학생도 아니다. 결혼 비자로 들어왔고, 아직 결혼식도 안 했다. 한국어 시험이 있냐 했더니 자기가 알기로는 영어, 스페인어만 있단다.


면허 따기 전에 결혼식부터 해야 했다.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도장 찍고 서류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결혼 서약 문서에 싸인할 자격이 있는 판사, 목사 등 성직자 앞에서 해야 한단다. 와이프 말 들어보니 예전 9.11 터지기 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관광 와서 운전면허 따고 소셜번호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완전 강화돼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둘러 시청 가서 판사 스케줄 비어있는 날짜 잡고 소셜번호 받는 데까지 3개월 걸렸다.


그동안 뭐 했겠어? 할 일도 없는데 영어로 된 문제 하나하나 번역하고 단어 외우면서 준비했다. 근처 한국 병원 가서 신체 이상 없다는 의사 소견서 받고(이건 한국보다 더 대충하는 듯. 근데 비용은 $30), 소셜카드 받고, 다음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월요일은 필기시험은 쉬고 코스 연습만 가능하단다.


화요일 오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접수하러 갔다. 여권, 소셜카드, 결혼증명서, 신체검사표, 30불 개인수표(현금이나 카드는 안 받는다. 3번인가 떨어지면 $5 추가)를 들고 접수했다. 안과 가면 볼 수 있던 시력 검사 기계에 눈을 대고 나오는 숫자와 모형을 말했다.



3. 필기시험


접수 받는 감독관이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 묻는다.


“음, 코리안? 그럼 한국어로 시험 볼 거야?”


“응? 뭐라고? 다시 말해줄래?”


“너 코리안이잖아. 한국어로 시험 볼 거냐고?”


“응? 나 한국인인데.”


“그러니까 너 코리안이니까 한국어로 시험 볼 거야?”


“응, 나 한국인이야.”


“너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로 시험 볼 거냐고!”


읭? 감독관에 따르면, 영어, 스페인,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베트남, 한국어 등 원하는 언어로 필기시험 가능하다고 했다. 벙쪘다. 이거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걸까? 중학교 3학년 이후로 영어 공부를 전혀 안 해서 분명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걸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여자 친구였지만 지금은 와이프가 되신 분이 통역해줬다.


“한국어가 가능하다고?”


“저 사람 한국 사람이잖아. 한국어로 테스트 가능해.”


“얼마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 영어, 스페인어만 가능하다 들었는데.”


“아니야, 영어, 스페인, 프랑스 등 대부분의 언어를 지원해. 한국어로 볼 거야?”


계속 벙쪘다. 그리고 고민했다. 한국어로 볼까? 아니야, 한국어 번역이 이상하면? 교민회 사이트 올라왔던 해설집 에서 운전 용어를 이상하게 번역해놨던데. 한자 섞인 축약어는 오타도 많고. 이거 진짜 한국 사람이 했나 싶을 정도로 문맥과 조사가 틀린 문장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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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를 밝게 켜서 상대방 운전자를 처벌? 헤드라이트를 혹사?


한글로 시험보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아무리 운전면허 책 그대로 나온다지만 한글이 편하겠지. 아니야, 영어로 나온다고 해서 영어만 공부했잖아, 갑자기 한글로 보면 이해가 갈까? 이해가 가겠지, 한국에서도 10년 넘게 운전했는데. 그러다 한글로 시험 봐서 떨어지면?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한글로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영어로 신청했다. 떨어지면 다음날 바로 재시험이 가능하지만 21세 미만은 일주일 후 재시험 날짜를 다시 예약해야 한다.


잠깐 기다린 후 필기 테스트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문제 중 4문제 이상 틀리면 탈락이었다. 모르는 문제는 스킵할 수 있었다. 긴장해 다리를 달달 떨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드름 잔뜩 난 소년이 인상을 쓰며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주마다 다르지만 펜실베니아주는 16세 생일이 지난날부터 운전면허 테스트가 가능하다. (14세 생일이 지나면 운전 가능한 주도 있다 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폰을 착용했더니 뭐라 뭐라 영어가 나온다. 모니터에 이름 풀네임과 주소, 나이, 성별이 맞는지 확인하는 메뉴가 나오고는, 테스트 시작.


운전면허 필기 문제는 전 세계 공통인지 문제집 문제와 테스트 문제가 똑같다. 단어 하나 안 틀리고 문제와 답이 같더라. 심지어 보기까지 같았던 문제도 있었다. 한 가지 다른 건 문제와 보기 옆에 그림이 있었다. 교차로 상황을 가정한 문제라면 문제 옆에 교차로 그림을 친절하게 그려놓았다.


과거엔 삼지선다였는데 요즘엔 사지선다형으로 바뀌었다. 16문제 연속으로 맞추니 더 이상 문제 풀이가 안 넘어가진다. 감독관이 축하한다며 임시로 운전할 수 있는 종이쪽지(Learner’s Permit)을 줬다(혼자 운전은 불가능하고 운전면허 소지자가 동승해야 함). 18세 미만은 바로 실기 시험이 불가능하고, 부모님이 뒤쪽에 있는 여러 옵션에 운전연습을 했다고 싸인을 해줘야 한다. 6개월 뒤에 가능하다던가? 난 18세 보다는 더 먹어서 실기 시험을 바로 예약하려 했더니, 한참 대기해야 한다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하란다. 미국 공무원의 일처리가 얼마나 느린지는 안 겪어보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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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기시험


내가 필기시험 봤던 곳에선 약 2주 후, 집에서 조금 멀리 있는 DMV에선 한 달 후에나 시험이 가능했다. 여름방학과 졸업이 있던 달이라 테스트 보는 학생이 많았다. 도심지 DMV로 갈수록 감독관이 까다롭고 외곽이나 시골로 갈수록 널널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고민하다 필기시험을 봤던 DMV에 실기시험 예약을 했다. 운전이야 한국에서 10년 넘게 했으니 걱정 없는데, 감독관과 단둘이 테스트를 봐야하는 게 맘에 걸렸다. 찾아보니 통역 서비스가 있는데 거의 안 부른다고. 비용도 비용이고 서로 스케줄 맞추기가 힘들단다.


실기 시험에서는 무슨 항목을 보는 지 찾아봤다. 한국 실기시험+도로주행이라 해야 할까? 시동 걸고 라이트, 혼, 와이퍼, 턴 시그널, 비상깜빡이 등을 사용할 줄 아는지, 주행 중 STOP사인에서 잘 멈추는지, 평행주차(parallel parking)를 3번에 할 줄 아는지 등을 봤다. 인근 뉴저지는 P턴을 시험 본다는데 P턴은 뭐지?


불합격 사례를 찾아봤다.


- 한국에서 오래 운전했던 아저씨는 자기가 얼마나 운전을 잘 하는지 자랑하다 떨어짐
- 출발하며 안전벨트 미착용
- 스쿨존에서 15마일 초과
- 정지 표지판에서 정지선 넘어감
- 평행주차(parallel parking) 실패
- 35마일 표지판에서 35마일 넘어서 주행


음, 외국인은 보통 한번정도 불합격 시킨다던데….





편집부 주


위의 글은 독투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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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