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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블로그(링크)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길에서 주미대사관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대변인에서 해임당한 윤창중씨가 칼럼을 썼다. 공소시효 3년이 지나자마자 억울하다며 칼럼을 쓴다. 공소시효 3년간은 용케 억울함을 참았다.


자신이 수 십년 몸 담았던 언론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직업군의 선후배들이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음을 서운해 한다. 그 서운함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찢어발기던 노무현대통령도 끌어들인다. 어떤 사람들은 공소시효가 끝난 형사대신 거액의 송사로 들어올 미국식 민사에 대비하기위한 밑밥이라는 말을 한다.


성격은 고치지 못해도 인격은 향상 시킬 수 있다고 한다. 삶에 치이고 휘둘리는 생활을 하면서 가당키나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좀 더 우월한 위치에서 더 많은 배움과 여유를 가지고도 개가 부럽지 않게 사는 분들을 보면서 위안이 된다. 저런 분들도 있는데 중간쯤은 가고 있는 거겠지.


생각할 거리도 생겼다. 정말 왜 저러는 걸까. 강용석씨의 사례에서 용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그도 절정의 순간에서 한방에 고꾸라졌지만 닥치는 대로 고소를 남발해서 인지도를 올렸다. 티비에 출연해서 본인을 희화화 하고 노출된 친근감으로 악명을 희석했다.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해서 직접 손을 더럽히기 주저하는 분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그가 원하는 재기에 가까이 갔었다. 유부녀와 불륜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으면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에게 판을 깔아준 미디어 관련 종사자들의 공이다. 그가 명예와 권력을 얻어 하려던 것이 남의 돈으로 여행을 하고 인사를 받고 맛난 것 먹고 여자를 즐기는 인생을 살려고 했다면 이미 성공한 건지도 모른다.


윤창중씨가 다시 일어설 각오로 몸부림을 치는 건지 가족과 지인에게나마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염치는 없다. 삼년 전 그날 세계 외교사에 유례가 거의 없는 짓을 하고 뺑소니를 쳤을 때 미국에 남은 실무자들이 치렀을 곤욕은 문외한도 상상할 수 있다.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가뜩이나 얼마 안 되는 도덕성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문제의 공론화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게 양보했을 무언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야반도주를 하고 공소시효 3년이 지나도록 와신상담의 고사를 인용하며 꾸욱 참다가 이제사 노무현을 이용해 글을 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백 번쯤 우기면 진실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면 효과는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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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분노와는 별도로 윤창중씨는 재기에 성공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종편이 있다. 대통령 수행단의 숨은 이야기와 서열에 따른 예전의 차이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혹하는 사람들 많겠다. 그날 그 밤에 있었던 일을 포장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처녀 대통령에 대한 연심이 순간 솟구쳐서 큰 죄를 범할 것 같아 작은 죄를 지었노라 사죄의 시늉을 하면 이해와 해량의 덕을 보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윤창중씨를 보면서 변양균씨가 연상된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때문에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노무현의 인간적인 믿음을 부수고,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분은 감옥생활을 끝내고 어디 공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다들 살면서 이어진 인연의 줄기를 잡고들 산다. 능력이나 노력보다 인연이 더 중요한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위적인 인연의 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윤창중씨는 자력갱생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다.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기사를 쓰던 후배들에게 나중에 두고 보자는 문자를 보낸 건 서열의식이 너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딱히 응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을 거두지는 않겠다.


더 세분화 할 수도 있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은 자본 소유량에 따라 슈퍼리치, 부유층, 중산층, 노동계급, 빈곤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말의 무게감이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더 가지려고만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은 게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하위 노동계급으로 살면서도 권력의 최측근으로 섰던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인격자가 된 것 같은 우월감을 느낀다. 서열과 경쟁의식은 본능이라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하고 싶다.


결백의 한 증거로 자신을 버리지 않은 아내를 내세운다. 아내분이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는 모른다. 남편의 결백을 믿는지,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생각인지, 그저 자신의 업으로 받아드리는 담담함인지. 성폭력 피해자보다 관광객의 감소를 걱정하는 흑산도 주민의 심정인지 알 수는 없다.


아내가 흑산도 성폭행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고향인 신안군의 이미지 하락과 실질적 피해를 걱정한다. 그리고 피해자인 여교사의 걱정도 덧붙인다. 범죄의 대응이 침착했고 용감했다. 잘 자란 자존감과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죄가 없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지역은 이미지도 하락해야 하고, 실질적인 피해도 입어야 한다. 뉴스로 본 것만 해도 이번 한번만이라고는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보고도 못 본 척한 사람들과 알고도 모르는 척한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피해자보다 관광객 감소를 걱정하는 것을 보니 불의에는 둔감해도 불이익에는 민감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불의에 눈 감으면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체험적 학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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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그랬다. 아마도 그 사람의 아이는 선생님을 해코지 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선생님의 제자였던 다른 아이들의 응징을 받을 것이다. 어른들이 쉬쉬 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섬 마을에서 관광객에 의존하던 수입이 감소하면 감옥에 있는 그들 대신 그들의 아내에게 분노와 원망이 쏠릴 것이다. 섬마을 공동체에서 죄인으로 오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소문은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섬을 버리고 타지 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다. 살기위해 다른 남자를 받아드리는 삶을 살수도 있다.


아내는 아비의 죄로 시달리고 인생이 망가질 아이들도 걱정한다. 못 이겨내고 비틀어지면 그 애비에 그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겨내도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진 못하겠지만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업을 벗는 것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의 굴레를 벗는 것만큼 힘들겠지만 운이 따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사람의 죄를 가족들이 뒤집어 쓰게 된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밑바닥에 있을 사람이면 그런 범죄를 모의하지도 않는다. 세상 모든 것 보다 자신이 중요하고 자신의 쾌락이 우선인 사람이다. 타인을 아프게 하다보면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진다는 학습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당신이 아이들을 안 뒤틀리게 험한 시간에 안고 키운 건 장한 일이다.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제법 사는 집 아이들이 유학까지 다녀온 뒤 유산상속을 받기위해 부모를 죽이는 일도 있다. 인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보호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아이들은 해바라기처럼 자란다. 사랑을 받아본 아이가 사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란다. 거지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잘 키웠다. 아내에 대한 칭찬으로 마무리한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옹이가 되고 마음속에 흉터는 선명하겠지만 아이들이 제법 잘 자랐다.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대단한 점은 잘 모르겠지만 타인과 작은 동물들에도 선의를 보인다. 가끔은 선의를 표현하기위해 욕심을 꺽을 줄도 안다. 부족한점들도 적지 않게 보이지만 그 정도면 됐다. 다른사람들 아프게 하면서 살 것 같지는 않다. 나머지는 살면서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경험하며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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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