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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미안한데 패현 얘기를 조금만 더 하겠다. 지금부터 딱 두 챕터만 참고 읽어주시라.



1


붉은 깃발과 함께 시작된 ‘적제의 아들’, ‘참백사기의’의 주인공, ‘패공’유방의 첫 출정은 소동극도 못 되는 싱거운 코미디로 끝났다. 패공에 오르는 과정에서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한 유방은 고향 땅의 1인자가 되자 순식간에 생각 없는 건달로 돌아왔다. 군사를 일으켰으니 만만한 데나 함락시켜보자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이따위 출정을 소하도, 번쾌도 말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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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막무가내로 행군하다가 만난 곳은 호릉(胡陵.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동남쪽 일대). 유방은 호릉 지역을 먹어보자고 덤벼든다. 그리고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다. 성이란 것이 어디 문을 두들긴다고 열어주는 곳이던가? 침략자를 물리치려고 지혜와 노동력을 짜내 굳이 만든 시설이다. 호릉의 사내들은 성문만 걸어 잠그면 그만이고,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손에 식칼과 호미를 들고 있던 패현의 촌놈들은 공성(攻城)이란 걸 해 본 적도 없다.


“공격했다.” 이것이 전투 내역의 전부다. 성벽을 오른 사람도 없다. 양측의 피해도 기록되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훗날까지 가져갈 원한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냥 성벽에 비비적대다가 안 되니까 물러난 수준이다.


상태가 이 정도면 근본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짚어봐야 할 터. 그러나 유방은 상대를 바꾸기로 했다. 이번엔 좀 더 만만해 보이는 방여(方輿. 진나라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서남쪽 일대.)를 침공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동네 어귀에서 꿈지럭대는 수준이었다. 방여의 책임자는 유방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본인 말로는 적제의 아들이라는데, 그럼 나는 적제 할아비라고 하지 않았을까?


뭐 좋다.


하늘이 도와 성내에 천둥번개라도 떨어져서 성을 접수한들 그 다음엔 뭘 어쩔 건가. 주민들을 죄다 죽일 건가(대체 뭐 하러?), 포로로 취득할 것인가, 아니면 통치할 것인가? 전리품을 싹쓸이해봐야 새로 편입된 인구의 식량으로 도로 지출될 게 뻔하다. 패현과 점령지를 잇는 통신망은 뭐로, 어떻게 구축할 건데.


생각해보니 호릉과 방여에 특별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망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데 눈에 힘주고 있어봐야 아무 소득도 없다. 난세 초보자들인 유방 집단은 그때가 돼서야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 음, 우리가 지금 다른 성을 공격하잖아? 그러면 다른 놈들도 우리 고향에 처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냐?>


물론이지. 유방 군대는 빈집털이를 막기 위해 고향으로 되돌아와, 사마천의 기술에 따르면 풍읍을 “지켰다.” 이 말이 재밌다. 공격하는 적도 없는 지키다니. 그냥 귀향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누가 자신들처럼 쳐들어올지 몰라 긴장한 채 성벽에 보초를 세웠다는 뜻. 그러거나 말거나,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運(운).


역사적 인물에게 운은 중요하다. 재능이 실력으로 굳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살아있어야 한다. 칭기즈칸의 적들에겐 그를 죽일 기회가 수도 없이 있었다.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인 칭기즈칸은 거의 평생 동안 전술과 정치를 학습했다. 유방이 쓸데없는 출정 동안에 ‘진짜 군대’나 숙련된 마적단이라도 만났다면, 패현의 사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호릉과 방여의 군사책임자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실력자였어도 마찬가지다. 괴력의 소유자인 번쾌 정도나 살아남았을 것이다.


유방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잘도 살아남는다.



2


여기 양자강 오리알이 된 남자가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왕릉. 패현 저자거리에서 밤의 대통령까진 아니고 밤의 현령쯤 되는 남자. 유방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큰형님. 유방이 논두렁 주먹이라면 읍내 주먹인 남자. 전국구는 아니어도 지역구 실력자는 되는 분, 왕릉.


왕릉은 유방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유방은 마초들의 세계에서 평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평판이 바닥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유방의 느긋함은 어쨌거나 남자다운 느낌을 주었다. 게으름은 한심한 요소지만 상식을 넘어서 버리면 신비의 영역이 된다. 인간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경험할 때 경외감을 느낀다. 아무리 봐도 별거 없는데 속에 뭔가 있을 것 같은 남자, 유방은 겉으로는 욕을 들어먹고 살았지만 감정의 물밑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왕릉도 유방을 좋아했다. 문제는 아끼는 후배가 고향의 수장이 된 것이다. 왕릉은 난세가 시작되는 시점에 당연히 자신이 패현의 수장이 될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패현과 풍읍의 후배 사내들이 자기 대신 유방을 옹립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왕릉은 전형적인 마초였다. 굵고 직선적인 그는 주먹 중에는 모범 주먹이었다. 후배들을 확실히 제압하고, 챙겨줄 것은 챙겨 주었다. 반면 나이 든 어르신들은 철저하게 공경했다. 오랫동안 저자거리를 풍미한 덕에 돈은 좀 있어서 아래로나 위로나 서운한 소리는 안 나오게 했다. 특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효심이 대단해서, 어머니의 명령이라면 두말없이 따랐다. 아마도 건달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에 고생을 시켜드린 죄책감도 있었으리라(왕릉은 ‘전직’이 기록되지 않는다. 즉 처음부터 쭉 건달이었다.). 한편 화가 나면 반드시 터뜨려야 속이 풀리는 다혈질이기도 했다.


왕릉의 성격이 이렇게 상하관계가 확실한데, 직속 후배인 유방의 수하로 들어가기가 영 애매하게 된 거다. 그렇다고 고향 남자들이 한데 뭉쳤는데 밤거리의 1인자가 혼자서 멀뚱히 있기도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왜 패현의 남자들은 왕릉을 ‘패공’ 후보로 올리지 않았을까? 유방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유방보다 믿음직한 인간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까. 우리는 소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다음은 나의 예상이다.


첫째, 왕릉은 후배들 입장에서 대하기 불편한 선배였을 것 같다. ‘상하관계 철저’는 밤거리의 규칙이지, 난세를 해쳐나갈 덕목이 못 된다. 권위적인 인물보다는 ‘미워할 수 없는’인물을 구심점으로 모인 집단이 보다 결속력 있다.


둘째, 유방의 동기들은 왕릉의 건달패 수하들에게 서열이 밀리게 된다. 소하는 출세욕도 인정욕도 없는 타입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 소하만큼 행정력이 뛰어나고 번쾌만큼 격투를 잘 하는 이는 없다. 유능한 사람이 무능한 이의 밑에 있으면 이중 삼중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난다. 능력이 없을 거면 차라리 유방처럼 백지 같은 편이 낫다. 주변사람들의 재능이 여백을 채울 수 있도록.


셋째, 유능하고 성실한 일꾼이었던 소하는 왕릉을 싫어했으리라. 유방은 백수지만, 왕릉은 행정가의 관점에서는 준 범죄자다.


넷째, 유방에게는 아내 여치가 있다. 유방과 그의 군사가 패현을 비우면 누군가는 남아서 근거지를 지키고 통솔해야 한다. 여치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건달들을 휘어잡고 다녔고, 무엇보다 머리가 비상하다. 왕릉에게는 그만한 파트너가 없다.


이렇게 해서 왕릉은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는 일단 장정들을 모아 일단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독립했다. 왕릉은 소규모 군벌이 된 채로 잠시 어정쩡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다섯 번째 이유가 남았다. 마초들은 거병을 용기와 웅지(雄志. 웅대한 뜻)의 문제로 치부하는 습관이 있다. 회계출납 업무의 달인인 소하는 그보다 차갑게 생각할 줄 알았다. 그에게 전쟁은 용기로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은 물자, 즉 돈으로 하는 것이다. 유방의 처가는 재산을 대부분 현금화해서 고향을 떠나온 집안이다. 소하가 이걸 계산에 넣지 않았을까?


과연 여문(여치의 아버지)은 사위가 거병하자 자연스레 그에게 ‘올인’하게 된다. 여치의 두 오빠는 집안의 재력으로 수백 명의 장정들을 고용해 유방의 부하가 되어 그를 지원하게 된다. ‘버려도 되는 카드’로 유방에게 시집갔던 여치는 급변하는 권력의 무게추를 재빨리 낚아챈다. 그녀는 친정의 결정권을 접수하고 실질적인 가문의 당주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패현의 잡설이 길었다. 이제 난세의 격동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쭉쭉 진행해보자.



3


중언부언을 할 수가 없으니, 이 시리즈는 항상 전편들을 복기해가며 읽기를 추천 드린다. 장이와 진여가 진승에게 한 제안은 옳았다. 왕위든 황위든, 천하의 대권을 잡은 후에 오르도록 하라. 그러나 진승은 진성에서 왕이 되었고 그의 세력은 특정한 땅에 고정되고 말았다. 갓 범람하기 시작한 난이었다. 범람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각지로 군사를 파견해야 한다.


장이와 진여는 차선책을 제안했다.


“하북(河北 황하 이북)을 먼저 평정해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난을 일으킨 이상 장초군의 목적지는 함곡관(函谷關)이다. 함곡관은 천하통일이 되기 전 수백 년간 진나라의 입구를 지킨 천혜의 요새였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견고하기로 이름난 진나라의 건설 기술을 더해 만든 성채가 함곡관이다. 함곡관을 통과해야 제국의 수도인 함양성에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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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부를 차지하고 천하를 제패한 세력은 의외로 외지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 침공당하기 어려운 덕에 실력을 키울 시공간을 벌 수 있다. 신라는 산맥에 갇혀 있어서 비교적 안전했으며, 칭기즈칸의 몽골족은 여차하면 원래 고향인 시베리아 삼림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한족 반란군과 몽골기병의 싸움터에서 먼 남부에서 일어났기에 안전하게 세력을 키워냈다. 물론 성공한 케이스를 두고 본 결과론이지만.


진나라 공격력의 상징이 쇠뇌라면 방어력의 상징은 함곡관이었다. 함곡관을 넘는 데는 당연히 많은 희생과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병사는 물론 보급선, 통신망까지 길고 얇은 띠를 이루게 된다. 이 띠를 뱀이라고 하자. 뱀은 필연적으로 함곡관에 머리를 맞대고 일정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진승, 오광의 난은 양자강과 황하 사이에서 일어났다. 진나라가 난리통에 잃어버린 교통/통신망을 회복하면?


그러면 황하 이북에 포진된 제국의 대군이 남하해 뱀의 허리를 분질러버릴 것이다. 따라서 함곡관을 넘기 위해서는 제국군의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진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장이와 진여를 얻고도 실패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두 사람의 조언은 정확했다. 위나라 출신이지만 조나라에서 스타였던 진여는 자신의 존재를 활용하라고 말했다.


“제가 옛 조나라 일대를 유람하면서 알게 된 그곳의 호걸들과 지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기습적으로 군사를 보내 하북을 재빨리 접수하십시오.”


여기서 진승은 장이와 진여의 조언을 완전히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수를 둔다. 마치 당구를 칠 때 쿠션으로 칠까, 바로 칠까 고민하다가 어중간하게 쳤다가 치는 공이 맞는 공과 벽 사이로 새는 것과 비슷하달까. 진승은 자신의 친구인 ‘무신(武信)’에게 하북 원정군을 맡기고 장이와 진여를 좌교위, 우교위로 삼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군사를 겨우 3000명만 배정한 것. 장이와 진여에게 설득당하긴 했지만 완전히 동의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북부 평정이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그 정도 병력은 아깝지 않다는 태도다. 장이와 진여는 진승에게 실망한다.



4


진승, 결정적인 선택이 어리석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혁명의 파트너인 오광을 가왕(假王 임시 왕)으로 임명해 여러 장수들을 감독하게 한 후 삼천군(三川郡)으로 진군시켰다. 아래 지도의 한가운데를 보자. 삼천군은 이름 그대로 세 강이 만나는 곳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곳을 차지하면 제국 본토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뚫린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곳인 만큼 아무나 태수로 임명되지 않았다는 것. 삼천군 태수는 ‘이유(李由)’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제국의 승상 이사의 맏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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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형양성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장초의 가왕 오광의 군대는 형양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물자와 인력을 쏟아 부었지만 형양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장초군이 처음으로 만난 제대로 된 상대였다.


한편 진승이 동쪽 방면 정벌을 맡긴 ‘갈영’이라는 인물은 제대로 사고를 쳤다. 그는 동쪽으로 신나게 진군하다가 멈추고는, ‘양강’이라는 인물을 데려와 ‘초나라의 왕’으로 세웠다.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만약 야심이 있었으면 자신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양강은 초나라의 귀족이거나 왕실의 먼 친척이었던 것 같다. 현지의 민심을 수습하고 명분을 만들어보겠다고 이런 짓을 했으리라. 당연한 말이지만 일개 장수가 독단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갈영은 양강을 왕위에 올리고 나서야 진승이 왕에 올랐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통신체계가 엉망이었다는 뜻. 갈영은 불필요해진 양강을 살해하고 진성에 돌아와 자신의 실수를 보고했다. 진승은 자신의 야심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갈영을 죽여버렸다. 근신처분을 내리거나 더 많은 공을 세워 실수를 덮으라고 주문하는 게 보통인 상황인데 말이다. 진승은 왕위에 오르고 난 후부터 인격적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진승이 성공하자 그의 옛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하나는 궁궐문을 두드리며 “섭(진승의 어릴 적 이름)아!” 하고 소리치며 쳐들어왔다. 당연히 보초들이 두들겨 패고 체포하려고 했지만 마침 그 소리를 들은 진승이 “누군지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위기를 피했다. 확인해 보니 자신의 옛 친구가 아닌가? 진승은 친구를 자신이 타는 수레에 태워 궁궐 안으로 데려왔다.


옛 친구는 왕궁의 화려한 휘장과 장식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반란군으로 시작된 임시 왕국이고, 전쟁 초기다. 왕궁이라고 해 봐야 막사 수준이어야 하는 게 맞다. 진승이 벌써부터 사치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진승은 옛 친구가 자신의 성공에 감탄하는 모습을 즐겼다. 그는 친구에게 자유롭게 궁궐에 출입하라고 했다. ‘앙투라지’가 된 친구는 오만방자해져서, 길거리에서 자신이 진승과 얼마나 친했는지 과시했다. 즉 진승의 농노 시절 얘기를 하고 다녔다. 신하가 진승에게 귀띔했다.


“손님께서 멋대로 망언을 일삼고 다니니 대왕의 위신이 서지 않습니다.”


유방의 성격이라면 까짓 거 더 떠들고 다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승은 성공하고 나자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여겼다. 진승은 옛 친구를 붙잡아 목을 잘라버렸다.



5


진승이 보여준 폭력적이고 실망스런 모습에 친구들은 하나 둘 그를 떠나갔다. 진승의 성격 변화를 알아챈 약삭빠른 신하 두 사람이 그의 권위의식을 부추겼다.


<왕의 말이 곧 법이다!>


각지로 파견된 장수들이 진성에 돌아와 경과를 보고할 때마다 두 사람은 꼬투리를 잡아댔다. 목표달성에 약간만 모자라도 불충으로 간주해 진승으로 하여금 벌주거나 처형하게끔 유도했다. 역사엔 이렇게 지도자의 인격적 결함에 기생해 잘 살아보려는 인간들이 널렸다. 그래서 지도자에겐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진승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간신배들을 신임하고 정작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장수들과 사이가 벌어졌다.


옛 위나라 방면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진승은 주불(周市. 주시가 아니라 주불이다. 이 한자를 ‘불’로 읽을 때는 허리에서 무릎까지 덮는 방한 하의를 뜻한다.)이라는 장수에게 위나라 공략을 맡겼다. 그런데 주불은 속도조절을 못했는지 위나라 땅을 관통해 적현(狄縣)까지 나아갔다. 적현 산동성의 적 땅에 진 제국이 설치한 현으로, 옛 제나라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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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지도 보고 참고하시라


적현의 현령은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전담(田儋)이라는 남자가 관아에 찾아와 도움을 주겠다며 접견을 요청했다. 그런데 전담은 접견 자리에서 현령을 잽싸게 죽이고 스스로를 제나라 왕으로 선포했다. 불쌍한 현령... 전담은 제나라 왕족이었던 것이다. 주불과 전담, 두 입장이 충돌했다.


<우리는 위나라를 복원하러 왔다!>
<응. 여긴 제나라니까 가서 위나라 복원 해.>
<에이~ 여기까지 온 김에 제나라도 복원을 해 주려고 그러지.>
<어 복원 다 됐어. 님들은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나 정벌 하세요^^>
<어허, 우리 덕에 잽싸게 왕위에 오른 거 뻔히 아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우리 진승 대왕님한테 제나라 왕으로 공식 임명이라도 받지?>
<아니 왕이 어떻게 다른 왕에 임명을 받고 자시고 하나. 어제부터 제나라는 독립국입니다. 여권이 없으신 분은 국경 밖으로 속히 퇴갤해 주세요. ㅅㄱ>
<지금 천하가 진승 대왕의 기의 아래 진나라를 쳐부수자고 한데 모이는데 당신들은 옛 고향 땅만 지키겠다는 건가!>
<앗♡ 정답♡>


주불과 전담이 격돌했다. 결과는 민망하게도 속도조절을 못한 주불의 역관광이었다. 패퇴한 주불은 뿔뿔이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하다가 어째서 전씨 일족에게 패배했는지 생각했다. 전씨는 현령을 속인 직후에 전투에 임했음에도 승리했다. 제나라 유민들이 옛 왕족의 거사에 열정적으로 호응했기 때문일 터.


장초군에는 ‘위구(魏咎)’라는 남자가 귀순해 있었다. 위나라의 순혈 왕족이었다. 주불은 재빨리 위구를 위왕으로 옹립했다. 그러자 위나라 유민들의 민심은 급격히 위구와 주불 쪽으로 기울었다. 진승은 위구를 정식 위왕으로 승인했다. 이렇게 위나라는 일단 재건에 성공했다. 주불은 싸움에 져 놓고도 출정 목표를 달성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장수들이 딴 생각을 품고 있었다. 진승은 점점 믿음직하지 못한 보스가 되어간다. 자신에겐 군사가 있다. 물론 명분은 없다. 하지만 현지의 옛 왕족이나 귀족을 옹립하고 자신은 실권을 쥐면 되지 않는가? 주불의 위나라 재건 작전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초군의 결속력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었다.



6


무신과 장이, 진여는 백마진(白馬津 고대 중국에서 황하를 건너는 주요 나루터 중 하나)에서 황하를 건너 옛 조나라 땅에 들어갔다. 3000명의 병사로 하북을 정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전쟁이 아니라 정치가 필요한 시점. 그들은 각지를 돌며 유력자들에게 유세했다.


“진나라의 통치가 어지럽소. 가혹한 형벌로 천하의 백성들을 괴롭힌 것이 이미 수십 년이 되었소. (중략) 집집마다 분노를 터뜨리고 사람마다 싸움에 뛰어들어 원한을 갚고 있소. 현민들은 현령과 현승(縣丞 현령의 비서이자 부관)을 죽이고 군민들은 태수와 교위(校尉 고위공직자의 부관)를 죽이고 있소.”


이어 세 사람은 조나라 사내들의 영웅심을 자극한다.


“...진나라에게 고통을 받은 지 오래되었으니, 천하가 한 마음이오! 무도한 군주(이세황제 호해)를 공격하여 부모형제의 원한을 갚고 땅을 나누어 가져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지식인이나 무사로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겠소?”


지극히 선동적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더욱이 웅변가가 조나라 일대에서 무성한 소문을 남겼다가 진나라의 천하통일과 함께 사라진 풍운아 진여였다. 조나라 사람들은 진나라 출신 사또들을 죽이고 속속들이 무신과 장이, 진여에게 합류했다. 10개의 성이 세 사람의 수중에 들어왔다.


한편, 진승은 주문(周文. ‘주장周章’이라고도 하는데 헷갈리지 말자. 같은 사람이다. 여기서는 주문으로 통일하자.)이라는 장수에게 함곡관 돌파를 명령했다. 주문은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이 살아있을 때 그의 군대에서 기상관측장교였다. 이 정도면 장초군에서 엘리트다. 진승이 중책을 맡긴 것은 자연스럽다. 주문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쇳가루 사이를 통과하는 자석처럼 군대를 불렸다. 수만, 십수만, 그리고 수십만...! 외적으로는 대단한 성과였다. 이 시기 장초의 내부 균열은 물(物)적 팽창에 가려져 있었다. 정리해보자.


1) 진승이 왕위에 오른 수도이자 ‘본토’인 진성을 중심으로


2) 위나라 재건 성공(굳이 따지자면 이 시점에서는 재건이 완료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3) 장이와 진여의 힘으로 조나라 방면 정벌이 성공하는 중이고,


4) 위에 쓰지는 않았지만 진가 등의 장수가 동쪽에서 옛 초나라 지역 일부를 공략 중이었고,


5) 제국의 심장부로 향하는 주문의 행군은 성공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


6) 오광은 삼천 태수 이유의 분전에 막혀 형양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차피 주문이 함곡관을 돌파하면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주문군의 뒤를 치거나 허리를 꺾을 수 있는 형양성 병력을 붙잡아두는 효과도 있다.



7


여기는 회계군, 기원전 209년 9월. 진승과 오광이 거병한 지 두세 달이 지났다. 다시 말하지만 회계군은 진 제국에서 가장 오지에 속했다. 양자강 이남의 가장 동쪽 위치해 있는 광대한 지역이자 옛 초나라 일대의 심장부다. 이곳의 군수는 독립된 왕이나 다름없었다. 회계군수 은통의 권세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십 년 간의 군수 생활을 거치며 초나라를 자신의 영지쯤으로 여겼다.


은통은 생전의 진시황에게 직접 인수(印綬 해당 지역이나 직책에서 군주의 권위를 대리하는 증표로 몸에 지참하기 위해 끈 연결부가 있는 도장이다. 명령권 및 사법 집행권을 상징하며, 혹은 권한 자체이기도 하다.)를 받고 군수로 임명된 진나라인이다. 그런데도 절대권력자 생활을 맛보자 본국에 대한 충성심이 희미해졌다. 그는 반란 소식을 듣자 별다른 고민도 없이 딴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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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수들


은통은 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꼭 진나라를 직접적으로 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장초군에 합류할 생각도 아니었다. 본국 조정을 배신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난이다. ‘왕 같은 군수’가 아니라 진짜 왕이 될 생각이었다. 항량을 자신의 좋은 친구이자 부하로 착각한 은통이었다. 사실 회계군의 초나라 유민들은 자신이 아닌 항량에 충성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결심이 서자 항량부터 불렀다.


항량은 조카 항우를 데리고 태수전을 방문했다. 태수전이라. 궁전 할 때 그 전(殿)자다. 현령들은 관아에서 업무를 보지만 군수는 급이 다르다. 은통의 경우가 특별한 걸까? 다른 군수나 태수들도 ‘전’이라 불릴 만한, 고급 관사와 업무공간이 결합된 시설을 제공받았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회계군에서 은통의 위세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단어다.


은통은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모두 집결시켜놓고 항량을 기다렸다. 직속 부하들이란 임지로 부임하는 군수에게 딸려 온 행정 및 비서 인력들, 그리고 백여 명에 가까운 호위 병력을 말한다. 항량은 상좌(上座)에 앉은 은통에게 다가가 어인 일로 불렀는지 물었다. 은통은 영웅 행세를 하며 일장 연설을 한다.


“강서(江西 양자강 줄기의 서쪽. 즉 동쪽에 치우친 회계군이 아닌 중원의 중심부.)가 모두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소. 하늘이 진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겠소?”


그는 자신에게 부와 권력을 준 조국을 아무렇지 않게 헐뜯고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움직이면 남을 제압할 수 있지만, 남보다 늦게 움직이면 먼저 세력을 불린 이의 부하가 되는 법이라고 들었소. 내가 거병을 하려고 하오. 그대와 ‘환초(桓楚)’를 나의 부장으로 삼고 싶소.”


환초는 과거의 항량처럼 사고를 치고 늪지대에 숨어 살던 지명수배자였다. 고대 중국에서 이런 류의 협객들이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은 이미 이야기했었다. 항량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애초에 거병하지 않은 이유는 은통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장초의 진승과 오광이 봉기의 명분과 초나라의 국명을 선점해서였다. 그래서 일단은 때를 기다려보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은통이 자신의 야심을 조절하지 못해 때를 앞당기고 있다.


항량은 은통의 큰 뜻에 동의하는 척 하면서 자신과 함께 온 조카 항우 이야기를 했다. 


“환초가 몸을 숨긴 곳을 아는 사람은, 마침 저와 함께 온 조카 항우만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오지요.>그런 뜻이었다. 항량이 태수전에서 나와 혼자서 대기하고 있던 항우를 쳐다보았다. 항우, 24세. 이곳에서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자는 항량 뿐이다. 이제 어쩔 수 없다. 회계군 행정부를 접수할 순간이 왔다.



8


항량이 항우에게 말했다.


“칼을 차고 다시 와서 그대로 대기하라.”


항우의 차림이 평상복이었다는 뜻이다. 항량은 다시 태수전에 들어가 은통 앞에 앉고는, 친근한 투로 말했다.


“항우를 불러 직접 명령을 내리시지요.”


여기엔 여러 가지 신호가 담겨 있다. 이제 자신을 포함한 항씨 가문은 은통 당신의 직속 부하라는 뜻. 조카가 쓸 만한 녀석이니 직접 얼굴을 보고 통성명을 해 보시라는 뜻. 당신에겐 중요한 정보를 직접 전해들을 권리와 필요가 있다는 뜻. 은통은 말한다.


“諾(낙)”


좋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보통 고대 중국에서 어떤 제안에 동의할 때는 ‘선(善 I like it)’이라고 한다. ‘낙’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수락할 때 쓰는 권위적인 표현이다. 항량이 던진 떡밥을 물어버린 것이다. 항량이 항우를 불렀다.


평상복에 검 한 자루만 찬 항우가 태수전에 걸어 들어와 은통 앞에 섰다. 높은 사람이 관할하는 공간에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오는 일은 통상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은통은 이제 곧 군신관계를 맺을 항우의 ‘실수’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백여 명에 가까운 호위병력이 그것도 완전무장한 채로 있다. 상식적으로 위험에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항우는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었다.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드리려는 찰나. 항량이 항우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실행해도 좋다!”


항우는 그대로 검을 뽑아 단칼에 은통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뒤이어 항량이 태연하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은통의 머리를 집어 들고 그의 인수를 허리에 둘렀다. 너무나 엄청난 광경에 은통의 직속 부하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윽고(아마도 몇 초 후에) 정신을 수습한 호위 병력이 항우에게 달려들었다.


항우는 적들을 베어 쓰러뜨렸다. 하나, 둘, 열, 스물... 항우는 삼촌인 항량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진나라 군인들의 피로 태수전을 적셨다.


수십백인(數十百人)


수십 명에서 백명 사이. 항우가 혼자서 쓰러뜨린 적들의 숫자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항우는 비무장 인원, 즉 관리들이라고 특별히 봐 주지 않았다. 손에 무기가 있건 없건 항우의 시야에 들어오면 즉사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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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의 힘을 묘사한 부조


<자치통감>의 기록은 <사기>보다 약간 더 구체적이다. 일단 태수전 전각 안에서 은통의 목을 베고, 뒤이어 “문 아래에서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요란’ 즉 본격적인 싸움이 일어났다고 기술한다. 이에 따르면 밖에서 대기 중인 호위병력이 전각 안으로 밀려들어갔거나, 거꾸로 전각 안을 정리한 항우가 마당에 뛰쳐나와 활극을 벌였을 것이다.


항우는


1)평상복 차림에

2)방패도 없이

3)짧은 초나라 검만을 가지고


달려드는 적들에 맞섰다. 은통의 호위 병력은 진나라 장검이나 극(戟)으로 무장한 상태였으리라.


여기서 잠깐, 극을 설명해보겠다.


창(槍) : 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직선 방향으로 찌르는 무기로, 6개월만 훈련하면 정예병이 되는 무기다.


모(矛) : 창은 창이되, 창끝이 칼처럼 길고 옆에서 날이 서 있어서 찌르는 공격 뿐 아니라 베는 것도 가능한 무기다. 이 시기에는 전차 탑승병의 필수 무장이었다.


과(戈) : 창처럼 긴 자루의 끝에 창날 대신 ㄱ자로 꺾인 낫 형태의 날이 장착된 무기다. 찍고 걸고 당기는 무기로, 주로 적 기병을 낙마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기병에게 낙마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극(戟) : 창과 과의 날이 모두 장착된 융합 무기로 당시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보병 무기다.


태수와 같은 고위 인사의 호위병을, 극을 소지한 장정이라고 해서 ‘집극랑(執戟郞)’이라고 한다. 장교 지위부터는 검을 찼을 것이다. 적들이 든 극과 장검에 반해 초나라의 짧은 검을 쥔 항우는 머릿수는 말할 것도 없고 일단 리치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무공이 압도적으로 높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짧고 굵고 무거운 초검(楚劍)의 특성상 회전을 통한 절삭력은 높기 때문이다.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 회전을 반복하며 다수의 적을 제압하는 데는 초검이 유리할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항우의 손에 들렸을 때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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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검의 기본적인 형태


진나라의 검이 긴 이유는 제련기술의 차이도 있지만 전투 환경의 요소도 크다. 진나라는 황량한 서부에서 발원한 국가다. 개인이든 군대든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개활지에서 적과 맞설 가능성이 높다. 이때는 리치가 중요하다. 반면 초나라의 자욱한 정글지대에서는 리치 확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수풀 속에서 자유롭게 휘두르려면 짧은 편이 낫다. 또한 공격을 방해하는 귀찮은 잔가지들을 제치거나 꺾어버릴 만한 회전력과 절삭력이 중요해진다. 아이고, 또 잡설이 길었다.


항우의 초검에 “수십백인”이 쓰러지고서야 살아남은 관리들은 깨달았다.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공포에 압도된 채 모두 땅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항씨가 회계군을 접수했다. 초나라 중심지 탈환이 항우 한 사람의 무공으로 완료된 것이다.



9


일은 벌어졌다. 항량은 즉시 회계군의 실력자들을 불러 드디어 거병의 때가 왔음을 알렸다. 동의할 것도 거절할 것도 없었다. 이미 완벽에 가깝게 준비된 거병이었다. 항량은 자신과 같은 세대의 남성들을 각자에 맞는 직책에 앉혔다. 이미 재능과 장단점을 파악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왜 자신은 특정 직책에 임명되지 않았는지 묻자 항량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 누군가 상을 당했을 때, 나는 그대로 하여금 장례를 주관하도록 해 보았소. 그때 그대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소.”


항량의 준비는 이만큼 철저했다. 항우는 항우대로 자신의 세대에서 병사를 모집했다. 각 현에서 ‘정병(精兵 정예병)’이 모여들었다. 징병 전부터 정예라는 점에서 역시나 준비된 병력이었다. 이들의 숫자는 8000명. 마지막 전투까지 항우와 함께한 그의 동년배들이다. 이들은 항우와 함께 자라고, 항우의 카리스마를 보고 들어왔다. 초나라 혈통의 8000명 사내들은 항우와 함께 승리하고 그와 함께 사면초가의 절망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들은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따라 죽기 전까지 최정예 군사로 명성을 떨치며 난세를 관통한다.


항량은 회계 군수에 올랐다. 항우는 비장(裨將 부관과 군사 총책을 겸한 장군)이 되었다. 항우는 8000명의 병사와 함께 회계군의 각 현을 돌며 이제 ‘진짜 초나라’가 ‘진짜 일어설’ 때가 왔음을 알렸다. 환초가 나타나 항우에게 몸을 맡겼다(아마 항우가 직접 찾아가 카리스마로 복종을 받아낸 것 같다.). 


회계 일대에는 ‘우영’이라는 도적이 있었다. 그는 진 제국의 시스템이 닿지 않는 산 속에서 무려 8000명의 부하를 거느렸다. 항량과 항우가 회계군을 접수하자 그는 평지로 내려와 부하들과 함께 항씨 가문에 귀순했다. 항씨는 8000명의 정예병에 이어 같은 수의 2진급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비록 2군이지만 정예병의 활약상에 함께하면서 그들과 같은 1군으로 급성장한다.


기록의 부실로 장담할 순 없지만(초나라 측의 인물들은 기록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항우와 운명을 함께할 부하들은 이때부터 이미 그의 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쭉 소개해 올려보겠다.


먼저 ‘용저(龍且)’. 항우와 필적하는 용기와 힘을 지닌 무장으로 초한쟁패의 난세에서 개인적 무력이 가장 강한 세 사람 중 하나다. 다른 두 사람은 항우와 번쾌다. 또 다른 주요 장수인 ‘주란(周蘭)’은 항씨가 처음 거병했을 때부터 항우의 부하였다고 확실히 언급된다.


‘계포(季布)’. 장난 없는 협객으로 유명한 인물. 그의 동생 ‘계심(季心)’도 겁을 상실한 성깔로 이름이 높았다. 계포는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과 은혜도 원수도 받은 만큼 정확히 갚는 회계사 정신으로 유명했다. 훗날 ‘황금 백 근보다 계포의 말 한 마디를 얻는 편이 낫다’는 말을 만들어낸다. 계포는 한 번 돕기로 약속한 이상 목숨도 살려준다. 반대의 경우, 상대는 반드시 죽는다.


‘종리말(鍾離眜)’은 기습, 돌파, 추적의 명수였다. 한중일 삼국에서 습관적으로 ‘종리매(鍾離昧)’로 불린다. 말과 매, 두 글자의 생김새가 워낙 비슷해 일어난 착오로, 아마도 잘못 필사된 <초한지>가 동아시아의 역사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종리매로 굳은 듯하다. 종리가 성이고, 말이 이름이다. 초창기 기록에 이름자의 발음이 ‘말’이라고(“末자와 발음이 같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항씨가 거병하기 전, 종리말의 친구 중에는 밥과 술을 구걸해 연명하는 불쌍한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한신(韓信)’이다.


항량 군은 묘족의 조상신이자 전쟁신인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다.


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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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씨 가문이 이끄는 1만 6천 명의 군사가 양자강을 넘어 난세의 한복판을 향해 북상했다.



Outro


각지에서 산만하게 사건들이 진행되는 통에 내용을 따라오기 힘드실 줄로 안다. 나도 괴롭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인명들은 최대한 소개를 자제했고, 난세를 한 줄기로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계속 실수를 한다(지난 편에서는 유방의 베스트프렌드 ‘노관’을 소개하는 걸 깜빡했다. 미안하다.). 어서 항우와 유방의 양자대결구가 왔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포, 팽월, 관영이 등장해야 하고 범증도 데뷔해야 하고 유방과 장량의 운명적 만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편도 두세 편 분량으로 썼는데 갈 길이 멀어서 그러니 길어도 참고 읽어주셨길 바란다. 예고를 하자면 다음 편 <제국의 역습>에서는 무너지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장한’이 등판한다.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안알남]이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절찬리 다운로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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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양은 남얘기다 - 이번주 [안알남]은 상반기 한국영화 베스트3를 선정해 이야기한다. 1부는 <곡성>, 2부는 <아가씨>, 3부는 두둥...!


<탐정 홍길동>이다.


지 난주 호국보훈의 달 기념 좌익영령 추모 특집에서는 딴지스 ‘리버럴’님이 게스트로 나왔으니 많이들 가서 들어보시라. 이분이 쓴 <대한민국의 뒤통수>와 <루저론>도 명기사이니 잊지 말고 챙겨보도록 하자. 기사 성격에 따라 닉네임을 돌려가서 쓰시는 양반이니 참고하시고.


팟빵 : http://goo.gl/S4xdGH

아이튠즈 : https://goo.gl/SAvD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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