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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짜 실기시험


와이프 차(소렌토)를 타고 면허 시험장에 갔습니다. 실기 시험을 위해 DMV에 세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제가 시험 봤던 곳은 커다란 쇼핑몰이 있는 곳이라, 한적한 주차장에 이미 여러 사람이 평행주차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한국엔 운전면허 시험용 차가 따로 있지만, 미국에선 펜실베니아 주에 등록된 차량이면 그 차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펜실베니아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동승해야 합니다).


차 안에 후방 카메라가 있어 첫 테스트라 볼 수 있는 평행주차(parallel parking)는 쉽게 할 수 있지만, 혹시나 후방 카메라를 끄고 하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인터넷에 읽었던 ‘사이드 브레이크(미국에선 더블 브레이크 혹은 이머전시 브레이크라고 하더군요)가 페달 형식이라 시험이 불가능하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손으로 당길 수 있는 차를 구해오라’는 실기시험 탈락 사례 글도 생각났습니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무례하다고 기분 나빠 하려나, 감독관이 조수석 탑승할 때 음료수라도 드려야하나, 괜히 줬다가 뇌물이라고 시험 보기도 전에 탈락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보아하니 쇼핑몰 주변 도로를 돌며 테스트를 하는 거 같았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아두는 게 모르는 길 가는 거 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염탐을 하기로 했습니다. 평행주차 합격하고 나오는 길목에 주차하고 기다렸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이 떨어지는데 제가 봐도 야, 저건 아니지! 할 정도로 못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한참 지켜보는데 차량 한 대가 평행주차에 합격했는지 DMV 입구 쪽으로 나오길래 서둘러,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갔습니다.


대충 10분 정도 쇼핑몰 주변 도로를 도는데, 음, 알겠더군요. STOP사인, SLOW사인, 신호는 없지만 횡단보도 표시가 있던 장소. 시험 시간이 아직 남아 그 코스를 3~4번 정도 돌았습니다. 테스트 약속 시간이 다가와 다시 DMV 안으로 들어가니 차들이 정말이지 주우욱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약을 했으니 정해진 시간에 보는 건가 했더니 이미 와 있던 차들 뒤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이럴 줄 알면 연습이나 더 할 걸. 다른 차들 떨어지는 거 구경도 하고, 잠깐 졸기도 하는 도중에 바로 앞에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테스트를 위해 진입하더군요. 할리데이비슨은 왜 저기 서 있지? 구경 온 사람인가? 오토바이는 오토바이 시험장에서 보는 거 아닌가? 아, 여기선 같이 테스트 하나 봅니다. 어쩐지 쇼핑몰 나가는 곳에 할리데이비슨 매장이 있더라니….


오토바이는 어떤 방식으로 시험보는지 궁금해 유심히 봤습니다. 약 1m 정도 전진하더니 감독관과 한참 이야기 후 그냥 가더군요. 아마 떨어진 거 같습니다. 뭐지? 오토바이는 본인이 그냥 타고 와서 보는 건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조수석에 있던 와이프가 차에서 내려 감독관에게 차량등록증, 보험증서, 운전면허증, 제 임시면허증을 확인시켜주고 멀리 떨어집니다. 두근두근 합니다.


감독관이 PDA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제 차 앞에 서서 시동을 켜봐라, 왼쪽/오른쪽 신호를 줘라. 비상 깜빡이, 경적을 눌러봐라, 라이트를 켜고 하이빔을 여러 번 작동 시켜봐라, 와이퍼를 작동시켜라 등 지시를 하고 PDA에 뭘 또 입력합니다. 제 시험 과정을 기록하는 거 같았습니다. 옆자리 탑승한 감독관 지시대로 평행주차(parallel parking)를 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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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대로 오른쪽 신호 먼저 넣고 들어가려니 감독관이 뭐라 뭐라 영어로 이야기를 합니다. 눈치로 들어보니 어떤 식으로 해야 주차가 가능하고, 옆 라인 주차선과 뒷 라인 깃발 앞 범퍼가 얼마나 떨어지고, 3번까지 기회를 준다는 말 같았습니다. 이미 인터넷으로 찾아봤기 때문에 오케이를 반복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평행주차를 끝내자 감독관이 내려서 직접 앞, 뒤, 옆을 확인하더군요.

 

평행주차 코스에서 DMV 밖으로 천천히 이동했습니다. 나갈 때 첫 번째 정지 사인에서 3초 이상 멈추고 좌우를 샥샥 확인 후 출발하는데 감독관이 직진 길이 아닌 왼쪽으로 턴 하라 합니다. 읭? 내가 계속 봤던 길은 직진인데? 지금까지 계속 직진해서 쇼핑몰 뒤쪽 길로 갔는데? 한번만 더 말해 달라 했더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왼쪽으로 가라 합니다. 이런 덴장.


감독관이 알려주는 왼쪽 길은 쇼핑몰을 가로질러 안쪽에서 돌아 다시 오던 코스더군요. 혹시 내가 따라 다닌 걸 아는 걸까, 미리 답사한 걸 알아서 코스를 바꾼 건가, 감독관이 어떻게 기억을 하고 있는 건가, 별별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그게 불법은 아닐 거라는 소심한 마음으로 감독관 지시대로 운전 했습니다. STOP 사인에선 3초 이상 멈추고 좌우 확인, 쇼핑몰 주차장을 지날 때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사람들이 건널 때도 기다리고, SLOW 표지판에서는 15마일 이하로 운전했습니다. 대략 10분 정도 운전하니 DMV가 보이더군요. 지친다는 표현이 맞다 싶을 정도로 기운이 죽 빠졌습니다.


아침도 못 먹고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기다리느라 점심도 안 먹고 나름 긴장한 상태에서 끝났다 싶으니 그냥 내려주고 집에 가고 싶은 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합격/불합격 여부는 들어야 해서 차를 세우니 감독관이 영어로 뭐라 이야기 합니다. 교차로에서 뭐가 어떻다고 설명하는 거 같았습니다. 저쪽 나무그늘 아래 서있던 와이프를 오라 했습니다. 와이프와 한참 이야기 하더니,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진입 순서대로, 순서를 모를 때는 시계방향, 만약 교차로라 하더라도 오른쪽 턴 차량은 먼저 진입하라는 표시가 있을 경우 등에 대해 메뉴얼 어느 페이지를 읽어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운전을 많이 한 거 같다. 합격시켜주겠다’며 등록을 위해 따라 오라 합니다. 땡큐를 몇 십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감독관을 따라 DMV 사무실에 들어가서 또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지켜보니 감독관도 나름 바쁘더군요. 합격하면 합격한데로 서류를 이것저것 작성해서 넘기고,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서류를 작성해서 넘기더군요. 서류를 받고 번호표를 뽑아 또 기다리기를 한참, 사진을 찍어야 한답니다. 한국처럼 사진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여기서 찍는 거랍니다. 머리도 안 감았는데. 서둘러 머리를 만지고 찍었더니 사진이 참 가관이더군요. 터치스크린으로 몇 가지 설문(공화당을 지지하냐, 민주당을 지지하냐, 장기기증 할거냐 등)을 했습니다. 면허증은 우편으로 받을 수 있나 아님 찾으러 와야 하나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임시로 사용하는 면허증을 주고 정식 면허증은 열흘 안에 우편으로 온다고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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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면허증은 이렇게 생겼읍니다


면허증을 받아 나오니 오후 3시가 넘었더군요. 하루 종일 쫄쫄 굶어서 배는 고픈데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서둘러 밥 먹으러 갔습니다.



P.S.

와이프가 10년 넘게 투싼을 타다가 소렌토로 바꿨습니다. 투싼은 60마일(약 96km)만 넘으면 진동과 소음이 심했습니다. 타이어 편마모도 없어서 제 생각엔 허브베어링이 나간 거 같았습니다만, 현지 정비사들도 정확히 원인을 찾지 못 하더군요. 주기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상태라 ‘가격이나 알아볼까’하며 들어갔던 딜러샵에서 소렌토로 바꿔타고 나왔습니다. 한국에선 이것저것 옵션을 정한 뒤 계약금을 걸고 인기 차종은 한두 달 기다려야 하는데, 여긴 가전제품 매장처럼 진열된 차 중에 맘에 드는 차를 골라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신기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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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셜번호 취득부터 면허시험 응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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