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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9. 화요일

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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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눈봉사 3년'이란 말이 있다. 칠거지악이 규범이던 시절 약자인 여자들에게 삶의 지혜라고 들려주던 집안어른들의 위로와 격려다. 전에는 그냥 억울하고 힘들어도 참고 살라는 말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석삼 년을 참고 살다 보면 인이 박혀 참고 살만해지든가 평균수명이 짧던 시절답게 깔끔한 해결법이 찾아오든가 하니 그냥 묵묵히 살라는 이야기인가 했다. 


문득 그 속담을 다시 생각해보니 벙어리 3년간은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귀머거리 3년간은 모진 소리를 들어도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고, 봉사 3년간 봐도 못 본 척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도 욕하며 분통을 터트리던 사람들 또한 자신들보다 약자에겐 그저 닥치고 살기를 종용했었나보다.


대화가 아닌 말을 한다는 것, 말의 연장인 글을 쓴다는 건, 그 나름의 권력의 표현이다. 어쩌면 한글을 만든 세종의 뜻이 순수한 휴머니즘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귀족들의 신권에 대항하려는 왕이 귀족들에게 직접적인 수탈을 당하는 하층민들에게 무기를 하사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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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말로 번역된 지식이 하층민에게도 퍼지고, 참기 어려운 분노에 격문을 돌리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민중들이 보고 체득한 건, 뜨거운 결기에 옳은 말을 했던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이다. 가슴 속 아픈 곳을 후벼 파는 격문에 공감하고 행동했던 무지렁이들의 시신이다. 아직도 말은 명령의 성격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권력자의 것이다.


작은 일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큰일에 침묵하는 사람들을 겪어보며 별반 다르지 않을 모습에 말을 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부질없고 부끄러웠다. 목화솜으로 만든 옷 한 벌과 믹스커피 한잔에 녹아있는 헐떡이는 삶들에 무력감이 느껴져서 불편해졌다. 가끔씩만 느껴지는 마음의 불편함이 삶을 살아가는데 별 영향을 주지 못해서 부끄러워졌다. 


누구도 세상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모든 일을 재단할 수도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다가 그저 살기 위해 서로를 상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타인에게 손 벌리지 않고만 살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편하게 사는 대로 생각을 꿰어 맞추는 게 아닌가 싶어지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삶의 다양함을 보고 배울 게 많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게 편하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의 환자가 생기자마자 괴담 유포자를 처벌한다는 준엄한 호령이 방송을 통해 들려왔다. 많이 들어본 말인데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괴담유포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하는 불순한 생각도 든다.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가마니인줄 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을 살면 인내심을 인정받기보다는 그냥 병신인 줄 알기가 쉽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휴교를 하는 마당에 교육부에서 내려온 공문은 학생들에게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고 낙타유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단다. 공무원들이 암만 무사안일에 구태의연하다 해도 아주 없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최근에 낙타고기를 먹었고 고열로 고생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다. 중동에서 낙타고기는 아주 귀한 손님에게 전 재산을 털어 대접한다는 의미가 있어서 이명박 전임 대통령도 두 번째 가서야 겨우 얻어먹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 방문인데도 두 번이나 대접받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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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남미순방이후에 고열로 며칠간 국정공백이 있었단 뉴스도 이어졌었다. 대한민국 방송사는 강용석씨의 말대로라면 다 줄 각오를 하고 다니는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읽어주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특히나 최근에 국영 방송사에서 영입한 인재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생리 휴가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생리대를 제출해야 된다고 주장한 합리적 실증주의자다. 하긴 생리 불순일수도 있고 임신 중에는 생리가 멈출 수도 있다.


생리휴가는 생리혈과 생리통이 가장 심한 날 하루를 위해 주어진 휴가이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가진 대쪽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병사들을 집지키는 개로 표현하며 멸시하는 사람도 있으니 반대쪽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둘 다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당당하게 뱉어내는 표현력에 거침없이 살아왔을 삶의 배경과 궤적이 부럽기도 하다.


큰일이 터졌을 때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돌리는 책임이 있으신 분들의 모습이야 익숙하지만 대한민국의 민낯을 본다. 중동에서는 치사율 40%였다지만 한국에서는 김치의 면역력 때문인지 아직 10%인데다 확진자 중 완치된 사람도 있단다. 정부 관계자분 말로는 300만명이 걸려야 중대 사태라니까 국민들은 언제나처럼 이런 재수 없는 경우에 내가 해당할 리 없어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면 된다. 해외에 거주지를 따로 만들어두지 않은 이상 어차피 방법도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편히 가지라던 전임 대통령 이명박 씨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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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원칙에 충실한 사람들 찍어내고, 바른말하는 사람들 솎아내고, 일만 잘하는 사람들을 밀어내니 높은 분들 얼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들만 남았다.


아래를 보지 않고 높은 곳만 보는 사람들에게 제일 높은 분이 과로(?)와 고열로 쓰러지니 국정공백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공백이 좀 컸다. 그러니까 병에 걸리는 건 운이 좀 없는 경우에 속하는 거니까 개인이 감내해야한다. 손발을 청결히 하고 굳이 마스크는 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불안하면 하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도 하자.


하필이면 50대 이상에서 사망률이 높게 나온다니 지지층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정부와 여당의 액션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심드렁하다. 국민들 개개인의 면역체계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듯하다. 지금 권력을 가진 이들을 지지하는 분들은 몇 명 죽지도 않았는데 호들갑을 떠는 언론과 국민들을 나무란다.


특히 딴지일보가 인터뷰를 했던 정치인 변모씨는 조류독감처럼 하면 된단다. 조류독감 때는 구역을 막아 이동을 제한하고 소독을 하고 살처분을 했다. 설마 사람을? 아닐 것이다. 낙타의 이동을 제한하고 살처분하자는 이야기겠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공문도 그렇고 구제역 조류독감식의 대처방안을 주장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식용낙타를 기르는 농장들이 많이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낙타들 많이 죽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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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인정하자. 보건당국은 의료 사업자들과 학연이나 지연, 혈연 따위의 밀접한 관계로 이어져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로비로 이어져있겠지. 그러니 행여 병원의 수익손실을 우려해서 병원감염이 발생하는 병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거겠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니 틀릴 수도 있겠지만 뜬금없이 사정당국의 막강한 권세를 믿고 검사실에서 피의자를 강간하던 어떤 새끼 검사님이 생각난다. 그 똑똑한 새끼 검사가 그 짓을 한 건 관활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폭력배 두목의 변호를 수임하는 선배들과 시스템에서 뭔가 보고 느낀 게 있어서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그 끈끈한 동업자적 관계는 자신의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의료보험 민영화와 영리 의료법인이 본격화되면 이런 전염병에 더더욱 대책이 없을 것 같긴 하다. 자본이 많은 만큼 로비력도 커질 테고, 매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게 전염병환자를 입원시키지도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도 매뉴얼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매뉴얼을 지키려는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이 없어서 일어난 사단이니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뭐 그렇다고...


1997년 이회창 총재를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박근혜 대통님의 정치 경력이 올해가 십팔 년이다. 그전 십팔 년은 민간인으로 사셨고 , 그전 십팔 년은 대통령의 따님으로 청와대에서 살았다. 십팔 년 단위로 삶의 전환을 겪어 오신 범상치 않은 이력을 보고 정치인으로 십팔 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어떤 전환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가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뻘 생각뿐이다. 


뻘 생각이라는 부연설명을 해도 행여 이해 못하고 잡으러 오는 공무원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 실증주의자처럼 생각하는 분들 같으면 식용낙타농장이 없는 나라에서 구제역 조류독감처럼 대처하자는 소리를 하는 분부터 면담을 신청할 것 같은데,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대학졸업생들의 지적능력과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임을 경고한 미래학자들의 예언을 봤던 게 기억나버렸다. 정부 발표가 메르스는 몰라도 유언비어에 엄중 대처하겠다는 보건복지부가 줄여서 '보복'부라 불리는 것도 쪼금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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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긍정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올해가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전환기를 맞는 십팔 년이기를 하고. 기왕 지사 번진 메르스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쫙 퍼져서 휴전선 위아래에서 각 최고 존엄들의 선정의지를 사익추구로 변형하는 늙은 간신들이 좀 치워지고 박근혜 대통령님의 말처럼 민족이 단결된 모습으로 국난을 극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통일이 되는, 의외의 전개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최소 10%에서 최대 40%의 인구 손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애국 지사들의 주장처럼 작전권도 없이 북진통일을 하다보면 핵 터지고 그래서 훨씬 많이 죽고 후유증도 길 테니 말이다.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압박한다던 국민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리란 기대도 해볼 수 있겠다. 받을 사람들이 꽤 많이 줄고 신규 유입된 북한 주민들은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았으니 수령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월급이 74달러인 수백만의 일꾼들도 생긴다. 일부 국민들의 목숨 앞에서 국가와 사회의 경제적 이익을 셈하는 건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인 것 같다는 내면의 소리에도 경제적 손익이 사고체계의 중심인, 교양 있는 상류층 흉내를 내는 기분으로 적어보았다. 


스티븐으로 개명하고 미국으로 국적을 바꿔 입국금지가 된 유승준씨가 국적회복과 한국입국을 간절하게 희망하다가 당분간은 한국과 접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국난의 시기에 나라를 버리고 튀는 이중 국적자들에게 동일한 조치를 취하면 국가경제를 까까먹 듯 하는 까까벌레들을 박멸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의료보험도 지속가능하게 전환될 거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문중의 재산관리인인 장조카를 싱가포르로 국적변경시킨 이명박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나라와 결혼을 한 박근혜 대통령은 해당상황이 없으시고 어쩌면 중동에 다녀오실 때 항체를 몸속에서 형성하셔서 국가를 구해내실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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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통일한국 민족의 어머니로 길이길이 기억될지도 모른다. 일본,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평택 미군의 탄저균 배달사고, 김정은의 미사일 시위를 보다 메르스 사태를 접하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에헤라디야. 태평성대로구나. 대한민국 만세다 . 







범우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