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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8. 월요일

춘심애비








‘메르스의 공포’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김무성 한겨레.JPG

(출처- 한겨레)


“작년 세월호 충격 때문에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메르스 공포가 과장되게 퍼지면 세월호 충격보다 10배는 더한 충격이 오게 돼 있다.”


이 사람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 말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함 보자.



1. 공포의 성질


공포를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필자는 다소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건물 옥상 난간에 기대선다거나 지상을 내려다보지 못한다. 그러나 필자의 친구 하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행동을 한다. 반대로 필자는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땐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는 커녕 회전그네도 못 타는 지인들이 많다.


공포의 원인에는 ‘위험한 사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을 볼 수 없다던가, 낯선 장소라던가 등 ‘얼마나 위험한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도 공포를 조성한다.


한편 공포라는 건 감정 또는 감각적 상태다. 무섭다, 안 무섭다 하는 것을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공포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형성된 결과다.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걷는 게 무서운 건, 그 사람이 무섭기로 한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는 상태’가 됐다는 거고, 날이 밝아진다고 무서운 상태에서 벗어나는 거지, 안 무섭기로 한 게 아니다.
 
이를 조합하면 ‘타인에게 공포의 기준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난다. 특공대원 훈련을 받는 한 사람이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레펠을 탈 수 없는 상태라고 치자. 그 사람에게 ‘무서워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주문이다. 단지 ‘무서움을 참고 반복’하면서, 경험의 누적을 통해 레펠을 타더라도 ‘안 무서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원래는 공포였던 것을 더 이상 공포가 아닌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앞서 말했듯, 반복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이 있겠다. 이는 실제로 위험하지는 않거나, 또는 위험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요령이 존재할 수 있는 경우에 성립된다. 안전장비만 잘 다루면 안전한 스카이다이빙은 자꾸 하면 안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안 룰렛은 아무리 많이 해도 죽을 확률이 줄지 않으므로 계속 무섭다.
 

공포.jpg


공포의 원인이 경험적 또는 이성적 예상이라면,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방법도 있다. 밤길에 뒤에서 치한이 쫓아오는 줄 알고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경찰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공포감이 줄어들 듯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엔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공포감이 더 커진다. 그러므로 만약 ‘경찰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공포를 덜어내어 뒤를 돌아봤더니 칼을 든 강도였다면, 그 사람은 그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경찰입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공포가 덜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가 커질 수 있겠다.


근본적으로는 공포의 원인 자체를 없애는 방법이 있다. 어두운 길이 무서워서 손전등을 통해 그 어두움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 공포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어두운 곳에서 빠져 나오고, 낯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레펠 하강을 거부하는 방법이다.


이 밖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그 공포의 대상을 버티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더 큰 공포를 주고 그 더 큰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기존의 공포를 남겨두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메르스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2. 메르스에 대한 공포의 양상


메르스에 대한 공포의 원인은 ‘치사율’, ‘낯설고 왠지 무서운 이름’, ‘전염성’ 등 다양하겠지만, 핵심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러다가 내가 (또는 내 주변 사람이) 저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 공포를 없애려면 메르스라는 병 자체가 사라지거나, 최소한 한국 영토 내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이건 이상적인 상황으로 당장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메르스 발병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서 익숙해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일단 이 상황이 안전하지도 않을 뿐더러, 레펠 훈련처럼 짧은 시간에 반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나와 내 주변 사람이 메르스에 걸려 죽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는 그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유일한 해법은 명명백백한 논리다. 앞서 언급했듯, 정확히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자체로 공포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청년의사.jpg

<청년의사>


바로 이 점에서, 정부와 언론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다지 전염성이 높지 않다면서 나날이 확진은 늘어난다. 치사율이 높지 않다면서 1주일 내에 사망자 수는 세계적 수준이란다. 사망환자들은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사인을 보도하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밝히고 있는 메르스에 대한 설명과 실제 벌어지는 현상이 서로 맞지 않는다.


이에 더해 정부가 메르스 확진 18일 만에 공식적으로 환자 발생 및 경유 병원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그것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정보의 공백을 만들어 본인이 위험에 노출이 됐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자체를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각 개인이 전염됐을 가능성은 랜덤에 가까워지고, 공포감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이 전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긴다.


메르스.jpg

<아시아경제>


결국 공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공포가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이러다가’라는 상태를 차단한다. 마스크를 사고, 손 세정제를 사고, 외출을 삼가고, 영양제를 먹는다. 즉, 전염병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하는 ‘전염의 가능성’이란 공포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다.

 

정리하자면,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의 발표와 언론을 통해 밝혀지는 정보의 총체는 매우 모순적이다. 판단의 기준이 될 믿을만한 정보가 부재하므로, 사람들은 공포를 덜어낼 근거를 찾아낼 수 없다. 때문에 공포의 원인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3. 다시 그 발언으로


해당 발언을 다시 보자.


“작년 세월호 충격 때문에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메르스 공포가 과장되게 퍼지면 세월호 충격보다 10배는 더한 충격이 오게 돼 있다.”


일단 ‘공포의 과장’이라는 말은 매우 주관적인 표현이다. 공포라는 건 ‘상태’이자 ‘결과’니까, ‘메르스의 치사율이 20% 라는 건 한국의 기준에선 과장이다’라고 말해야 객관적 서술이다. 대중들은 이 병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보와 현실이 상충하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므로 공포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그것이 원래 어느 정도여야 적당하다’는 기준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래의 발언을 이렇게 고쳐볼 수 있겠다.


“작년 세월호 충격 때문에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메르스 공포가 존재하면 세월호 충격보다 10배는 더한 충격이 오게 돼 있다.”


이 문장에서 ‘세월호 충격’은 수식어다. 이 수식어에 괄호를 쳤다 치고 문장의 핵심만 추려보자.


“작년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처럼 메르스 공포가 존재하면 10배는 더한 충격이 오게 돼 있다.”


다시 말하면


“메르스 공포는 작년보다 10배는 심한 경기 침체를 낳게 돼있다.”


글타. 김무성은 저 발언을 통해 대중들에게 더 큰 공포를 들이대는 거다. 메르스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보다 10배 심한 경기 침체가 더 큰 공포의 대상인 거다. 그 무서운 경기 침체보다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대중들에게 기대하는 거다. 본인은 부정하더라도 저 발언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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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도 텅 빈 거리와 상점을 보여주고 손님 떨어진 자영업자들의 푸념을 보도한다. 관련부처는 ‘격리조치’를 마치 ‘웬만큼 확실하기 전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행위’처럼 받아들인다. 마치 메르스라는 공포의 원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려는 행위가 다른 어떤 것에 큰 방해가 되는 행위인 것처럼.


만약 경기침체를 메르스로 인해 죽는 것 보다 더 무서워한다면, 방법은 확실하다. 아래와 같은 보도가 계속 나오면 된다.


“메르스 발병 및 감염사례 위치 및 경로 전수 추적 마무리, 관련부처 홈페이지 및 SNS를 통해 공지”


“메르스 4차 감염 위험인물 전체명단 확보, 오늘부터 자택격리 및 격리시설 이용 개시”


“메르스 확진 증가율 한 자릿수 대로 감소”


“메르스 사망자 N주째 변동 없음”


“메르스 공포 잠잠해지나”


“메르스 확진자 7명, 완치 판정 후 퇴원조치. 현재 누적 완치 판정 33명”


이런 보도가 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10배 심한 경기침체’를 들이대면서 공포의 과장이라는 무의미한 수사를 털어놓는 현실.


우리가 사는 2015년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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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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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