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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


7월 18일, 김자연이란 이름을 가진 성우는 인스타그램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트위터에 인증했다. 이 티셔츠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텀블벅 후원(링크)을 위해 만든 티셔츠다. 텀블벅에서 티셔츠를 구매하면 자동으로 <메갈리아4>에 후원을 하게 된다(후원을 하면 티셔츠를 받는다고 해야 하나?).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메갈리아2>, <메갈리아3> 페이지를 삭제했었는데, 해당 페이지를 전신으로 삼고 있는 <메갈리아4>는 텀블벅 후원으로 모은 자금을 페이스북과 법정 다툼을 하는 데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민사소송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다. 삭제된 페이지들을 회복시켜달라는 건지, 페이스북 혹은 페이스북 코리아의 사과를 요구하는 건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법정 공방을 위해 전략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무튼 '그 티셔츠'를 김자연 성우가 입었고, 해당 성우가 '메갈리아'를 지지한다고 알려지자 '1차 논란'이 일어났다(편의상 '1차 논란'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내가 <메갈리아4>라고 하지 않고 '메갈리아'라고 하는 이유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측에선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는 다르다"라는 식의 어법을 자주 구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면서도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구별하지 않고 둘 모두를 옹호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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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4>와 '메갈리아'를 구분하는 의견의 트윗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측은 꽤나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김자연 성우를 비판하는 측은 일관적으로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딱히 구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메갈은 메갈이다", "일베나 메갈이나"같은 말을 하며 김자연 성우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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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전문 웹진 '인벤'에 올라온 댓글들


참고로 김자연 성우는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구별하고 있다. 이는 7월 19일 22시 41분에 업로드된 김자연 성우의 입장문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저는 소위 '미러링'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편한 감정보다 불편한 감정이 더 큽니다. 혐오에 혐오'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앙갚음이 불러오는 결과에 회의적인 편입니다.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는 최대한 미러링을 배제한 커뮤니티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들어 알고 있는 와중에, 유독 이 페이지만 자꾸 신고당하고 삭제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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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연 성우는 넥슨이 운영하고 있는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의 성우였고, 녹음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 역시 그녀의 입장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일에 있어 회사 측은 저를 많이 배려해주시고 걱정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미 지난달쯤 녹음을 마쳤고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부당해고라는 표현은 삼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비난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6월쯤에 이미 녹음은 마친 상태고, 그 녹음에 대한 보상은 받은 듯 보인다.

 

이미 녹음을 마친 상태였지만 김자연 성우의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으로 '1차 논란'이 일자 넥슨-<클로저스>는 7월 19일, 입장문을 올린다. 김자연 성우를 다른 성우로 교체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2차 논란'이 일어난다. 2차 논란은 1차 논란과는 다른 주체(메갈리아 지지자들)에 의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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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입장문

 

그리고 넥슨-<클로저스>가 7월 19일 성우를 교체하겠다는 입장문을 올리고 논란이 일자 7월 19일 22시에 김자연 성우가 사과문에 가까운 입장문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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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연 성우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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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김자연의 사과가 꽤나 아쉽다. 그녀는 녹음을 마쳤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 녹음을 마친 후 그녀가 <메갈리아4>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입고 트위터에 이를 인증한 것은 그녀의 권리이고, 이는 누구에게도 '사과할 일'이 아니다. 그 인증으로 인해 넥슨을 향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이 역시 김자연이 사과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김자연을 비판한다면 이는 김자연이 감당할 부분이지만, 그들이 넥슨까지 비판한다면 이는 넥슨이 감당할 부분이고, 그녀가 의도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녀가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 넥슨이 결과적으로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해서 녹음을 다시 뜨게 되어 녹음 비용이 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도 이 역시 김자연이 사과할 일은 아니다.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그대로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우의 목소리로 대체하겠다고 결정한 건 넥슨이기 때문이다. 

 

여튼, 여기까지가 사건의 개요다. 한편, 7월 21일(목) 오후 7시에 넥슨의 판교 사옥 앞에서 시위가 예정되어있다. 




부당해고인가?


부당해고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김자연 성우는 <클로저스>의 티나 캐릭터의 음성을 작업했고, 그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만약 그가 보상도 못 받고 녹음 행위를 했다면 이는 임금 체불에 해당하는 사항이긴 하지만, 보상을 받았기에 임금 체불도 아니고, '부당해고'도 아니다. 김자연 성우가 '내 목소리를 <클로저스>에 무조건 쓴다는 조건에 한해 녹음을 하겠다'라고 계약을 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녹음된 음성의 소유권은 넥슨에게 있고, 그 목소리를 사용할지 여부도 넥슨에게 달려있다.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넥슨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와는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은 여전히 남는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할 자유가 비판받지 않을 권리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 모든 행위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김자연 성우의 티셔츠 인증이나 넥슨의 성우 교체도 같은 잣대로 해석될 수 있고, 해석되었다. 김자연 성우는 <메갈리아4>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인증했다. 그리고 그는 메갈리아에 비판적인 자들에 의해 비판받았고, 그 비판을 수용 혹은 지지하는 넥슨-<클로저스>는 성우를 교체했다. 그리고 넥슨은 성우 교체 행위로 인해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자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세상에는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자들만 있는 게 아니고,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도 있다. 넥슨은 성우를 교체하면서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했다. 넥슨이 성우 교체를 하지 않고 버텼다면 지금과는 다른 이들을 상대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넥슨은 '선택'을 했고, 이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차례다. 

 

이번 사건으로 (남성인) 내 친구 하나는 넥슨을 탈퇴하고 그것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인증했다. 그는 이번 넥슨 성우 교체건으로 넥슨을 탈퇴하는 첫 유저도 아닐 것이고 마지막 유저도 아닐 것이다. 페북 페이지 <메갈리아4>는 넥슨 계정을 탈퇴하는 링크까지 친절히 상단에 고정되는 글로 올려두었다. 그런데 넥슨의 불친절한 웹사이트 설계 때문에 계정 탈퇴조차 여의치 않다는 반응이 많이 보인다. 게임만 못 만드는 게 아닌 모양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이들은 늘어날 것이고,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목소리들은 비단 게임업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중 미디어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모든 영역에 자취를 남길 것이다.

 



넥슨 사태 이후에 만들어질 게임들


난 넥슨이 각성할 거란 기대는 솔직히 하지 않는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FPS게임 <서든어택2>에 '전장의 아이돌'로 설명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건 게임 개발의 의지도 실력도 없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서든어택2>로 촉발된 성차별 이슈를 보건대, 이번 <클로저스> 이슈에서 넥슨이 보인 행태는 예측 가능했다. 이쯤 되면 김정주에 관한 논란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넥슨은 게임제작 회사로선 그냥 가망이 없는 회사다. 

 

여성을 성적으로, 수단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는 비단 넥슨 게임에서만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다. 넥슨이 사이즈가 큰 회사이니까 두드러졌을 뿐이다. 예를 들어 펄어비스가 제작하고 다음과 네이버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한국 MMORPG 게임 <검은 사막>에선 심지어 창고관리를 해주는 여성 메이드를 구매할 수 있다. 창고 관리를 해주는 남성 NPC는 '놀랍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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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네이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페미니즘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한 미국에서도 게임 내의 성차별적 표현은 현존한다. 블리자드의 <오버워치>에서 트레이서 캐릭터의 승리 포즈는 엉덩이를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블리자드는 해당 비판을 조롱하듯 해당 포즈를 핀업걸 포즈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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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든어택2>로부터 이어지는 <클로저스> 사태는 넥슨에게는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할 거지만(앞서 말했듯 넥슨은 가망이 없다고 본다), 넥슨을 제외한 타게임사들에게 꽤나 많은 교훈을 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게임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게임을 소비하는 유저들이 성차별적 표현이 담긴 게임, 혹은 그런 행태를 옹호하는 게임사에 반복적으로 거대한 보이콧의 목소리를 낸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게임이나 회사 운영에 반영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할 때 기업의 생사가 걸리면, 기업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 싸움에서 진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자시고 간에 성차별적인 표현은,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가 남성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네티즌들의 비판에 의해 삭제되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거다. 

 

게임의 개발자뿐만 아니라 유저들 중에서도 섹스어필을 하는 성차별적인 여성 캐릭이 게임 흥행의 주요 변수라 믿는 이들은 상당하다. 광고업계에서마저도 섹스어필이 얼마나 광고의 효과를 증대해주는지 열변을 토한다. 섹스어필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게임 흥행의 주요 변수인지 아닌지 확인할만한 데이터가 내게 없지만, 해당 변수가 '역변수'로 기능을 하게 될 때, 게임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길을 걷게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긍정적 전망도 부정적 전망도 힘들다.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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