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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25. 목요일

산하

 

 





 

영화 <링컨>을 얼마 전에 봤었다.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다. 지나는 병사들과 소탈하게 얘기 나누는 한 키 큰 남자. 그리고 흑과 백의 병사가 읊어대는 저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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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인민들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쟁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은 내전이다. 형제끼리, 피붙이끼리 일단 싸움이 나면 그 격렬함은 말도 못할뿐더러 화해하기도 어렵다. ‘가족이니까’ 덜 지독할 것 같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치를 떤다.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전쟁은 남북전쟁이었다. 반미를 표방하는 분들이 내 온 통계대로 미국은 대외 전쟁을 그치지 않은 나라이지만 그 모든 전쟁에서 전사한 미국인들보다 더 많은 미국인들이 남북전쟁에서 죽었다. 링컨은 그 전쟁의 본의아닌 도발자이자 지휘자이자 마감하는 자로 미국 역사에 남게 된다.



영화 <링컨>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그에게 붙여졌던 별명대로 ‘정직한 에이브’만은 아니었다. 또한 인간의 자유와 흑인의 권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를 관철한 고결한 위인만은 아니었다. 남북전쟁 이전 그는 이렇게 얘기할 정도니까.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백인과 검둥이가 정치,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으며, 찬성했던 적도 없습니다. 검둥이에게 선거권이나 배심원의 권한을 주는 것, 검둥이가 공식적인 지위를 갖는 것, 또한 백인과 결혼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검둥이가 우리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한 검둥이는 우리처럼 살 수 없으므로 상층과 하층 계급은 반드시 존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상층의 지위는 백인들에게 할당되어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남북전쟁 중에도 그는 흑인들에게 이렇게 쏘아부친다. “이 전쟁의 이유는 당신들이 여기 살고 있기 때문이야.” 그의 최대 목표는 연방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노예를 해방시켜서 연방이 유지된다면 그렇게 하겠다. 노예 해방을 포기하여 연방이 유지된다면 또 당연 그렇게 하겠다.”



그의 주 관심이라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유지였다. 물론 그 자신 노예제에 대한 본원적인 혐오를 가지고 있기는 했고 노예제를 싫어하여 노예주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 살았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으며 그리고 노예에 대한 끔찍한 학대를 목격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은 노예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위대한 해방자로 이끈 것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떨쳐 일어나 왕 없는 나라,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다스리고 의회가 그를 견제하는 통일된 공화국에 대한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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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고 한 독립선언서는 링컨으로 하여금 “이 인종이니 저 인종이니, 어떤 인종은 열등하므로 열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모든 모호한 말들을 버립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의 단일한 국민으로서 뭉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선언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저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 또한 이렇게 시작한다.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전쟁의 승리자 치고는 놀라울만큼의 관대함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묘사된 북군의 아틀란타 포위전같은 아픔이야 전쟁판에 흔한 일이었지만 서로 최후의 자존심까지는 건드리지 않았고 승패가 갈린 후의 예의는 대체로 지켜졌다. "(남군은) 무조건 항복해야 한다”를 입에 달고 살아 그게 별명이 돼 버린 율리시즈 그랜트였으나 남군 사령관 리가 자신의 칼을 풀어 건네며 항복을 표하자 그 칼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남군이 자신의 말을 타고 고향에 돌아갈 것을 허용한다. 복수를 외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남군의 총칼에 죽어간 북군의 유해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남부를 완전히 점령하고 계엄을 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링컨의 대답은 그의 두 번째 취임사였다. 나는 게티즈버그의 연설만큼이나 이 연설의 한 구절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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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 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마태복음 18장 7절) 미국의 노예제가 이런 죄 중 하나고, 신의 섭리 아래 일정 시간동안 이 죄가 계속되어 왔다면, 신께서 죄를 저지른 남군과 북군 모두에게 이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게 했다면, 그 때문에 신이 그를 믿는 이들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전쟁이라는 벌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길 조심스레 희망하고 열렬하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신께서 250여년간 노예들의 보답없는 노동으로 쌓아올린 모든 부가 없어질 때까지 이 전쟁이 계속되길 원하신다면, 3천년 전 말씀하신대로 채찍에 맞아 흘린 땀이 칼로써 되갚아질 때까지 지속되길 원하신다면, 그 역시도 '진실하고 의로운 신의 법'일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의를 갖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가 향하도록 이끄시는 정의를 굳게 믿고,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이 전쟁을 참아낸 사람과 미망인과 고아를 돌보기 위해, 우리들과 온 나라들과의 정의롭고도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 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ing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이 연설을 한 지 한 달 열흘 뒤 링컨은 악의를 참지 못하고 증오를 숨기지 못한 남부의 광신자 윌 부스에 의해 암살당한다. 뒷머리에 총을 맞아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위대한 인물이 갔습니다.”라고 서럽게 울었던 스탠턴은 한때 링컨의 암살 기도에 가담했다는 소문까지 있었고 변호사 시절 링컨에게 최악의 모욕을 줬던 인물이었다.

 


멋진 성경 말씀 배운다.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 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이 말을 해 줄 사람이 너무나 많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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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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