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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삼촌 추천22 비추천0

0.

나는 전화기가 두 대 있다. 가끔 폰을 두고 다니는데 며칠 외출을 했다가 들어와 보니 부재중 전화로 각각 공통 번호가 찍혀 있었다. 김창규(죽지않는돌고래)였다.

 

“소방서에 대해 글 하나 쓸 수 있나?”

 

알겠다, 알겠다고. 지난 번에 그의 집에 갔을 때도 인터뷰 형식이든, 직접 쓰든, 소방서에 대해 글 하나 쓰자는 제의를 받았다. 참 끈질기다. 며칠 전, 소방서에 사직원도 냈고, 합격했던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 활동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던 터라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부담이 됐다. 허접한 내공으로 글도 쓰고 잠시나마 신문 기자도 했었지만 4~5년 동안 글쓰기에 소홀했으니 잘 써질 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엇보다 조직을 떠나며 서에 남은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았다.

 

1.

사람들은 뭐가 궁금할까? 소방서의 어떤? 뭐가? 좀 물어봐 주면 대답하기 수월할 것 같다. 이걸 어디까지 언급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조직에 호의적인? 아니면 조금 애정을 가지고 쓴 소리? 겪은 그대로의 모습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소방행정과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안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아놔. 더 고민 된다. 글을 어느 수위로 조절해야 할 것인가. 보안서약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작성한 후에 위반하지 않을 정도로만 쓸 것인가? 아니면 일단 글부터 쓰고 나중에 찾아가서 보안서약서를 작성할 것인가?

 

그래도 너무 적나라한 부분은 얘기하지 않겠다. 그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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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직을 떠나도

이런 분들에게 예의를 안 지킬 수가.

 

무엇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에피소드 위주로? 말단 직원이 보는 소방 조직? 소방 조직에 대한 구성? 근무 형태? 이런 얘기들은 재미가 없겠다.

 

일단 소방공무원은 군대랑 유사한 점이 많다. 필드 매뉴얼(FM)대로 생활하기가 불가능한 곳이다. 같은 군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어도 각각의 부대마다 특징이 다 다르듯 소방도 지역 따라 행정 업무 강도, 출동 횟수 등은 천차만별이다.

 

2.

근무 형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2조 2교대를 시행하는 곳이 있고, 3조 2교대를 시행하는 곳이 있다. 2조 2교대는 24시간 격일로 근무하는 형태이다. 3조 2교대는 3개의 조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는데 이 형태가 여러 가지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게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주주야야비비’로 돌아가는 일명 6주기다. 주간 2일, 야간 2일, 비번 2일이다. 주간 근무는 9시부터 18시까지이고, 야간 근무는 18시부터 다음 날 9시까지다. 두 팀이 24시간을 맡는 동안 한 팀은 쉬는 근무 형태이다.

 

두 번째는 21주기로 ‘주주주주주비비/야비야비야비당/비야비야비당비’로 돌아간다. 여기서 당번은 24시간 근무를 뜻한다.

 

세 번째는 9주기로 ‘주주주야비야비야비’ 방식이다. 근무 방식의 좋고 나쁨은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기에 답은 없다. 개인적으로 도입하고 싶은 근무 방식은 따로 있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연가를 쓰기가 힘들고(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군대와 비슷하다. 공통적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부대마다 차이점이 있듯이 이 부분도 그러하다. 즉, 연가를 쓰는 것에 있어 제한이 없는 곳도 있다) 긴 여행을 자주 다녀오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비번이 좀 길었으면 했었다. 그래서 추천한다. 당비당/비당비/비비비 4일의 비번을 위해서 3일의 당번 근무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적어도 나는)!

 

3.

자, 그럼 출동 체계에 대해서 한번 확인해 보자. 만약 당신이 신고 전화를 한다면 그 후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먼저 상황실이라고 하는 신고 전화만을 받는 부서가 있다. 그럼 이 상황실에서 신고 접수 후 신고 지역과 가장 가까운 위치의 센터에 출동 지령을 내린다(상황이 심각한 정도면 여러 센터에 동시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그럼 지령을 듣고, 센터에서 출동한다(센터란 119안전센터를 뜻하며, 소방의 최말단 기관이다. 119안전센터(구조대)-소방서-소방본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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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출동 대기 중인 소방공무원들은 평소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 출동 없으면 놀지 않냐고? 불이 안 나면 뭐하냐고? 족구하지 않냐고? 그럼 군인은? 군인은 전쟁 안 나니깐 노는 건가? 그럼 만약 삼성중공업 직원은? 배 만드는 현장직 직원 말고는 노는 건가? 아니잖아? 똑같은 거다(참고로 나는 약 3년 동안 족구 한 번, 탁구 다섯 번 정도 경험한 것이 전부다. 물론 이것도 복불복이다. 군 지역은 축구, 족구 등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안다).

 

소방공무원이기 이전에 공무원이기에 문서 작업, 행정 업무가 많다. 일반 행정직처럼 똑같이 일한다. 거기에 알파로 현장 업무 하는 거다. 현장 활동을 위해서 장비도 꾸준히 관리해야 하고, 훈련도 한다. 그리고 현장 출동하면서도 행정 업무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자질구레하게 보고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주 업무는 행정 업무이고, 출동은 보조 업무라고 우스갯 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굳이 따지면 행정 80프로, 현장 20프로의 비중이랄까? 아까도 언급했지만 군대랑 유사하다. FM대로 생활하기란 힘들다.

 

음. 처음엔 에피소드 위주로 적을까 했는데 -사건이 많다 보니- 당장 생각나는 에피소드도 없고, 특별한 일 보다는 그냥 일상을 적는 것이 낫겠다 싶다.

 

지금부터 119안전센터에 근무하는 소방공무원의 주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실명이나 실제 상황을 그대로 언급하면 민폐가 되니 나름대로 각색을 해서 현장 상황을 전해 보겠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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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다 되어간다. 늦었다. 옷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후 승용차에 몸을 싣기까지 5분 남짓.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이런. 오늘 따라 신호에 계속 걸린다. 안 그래도 센터장에게 찍혔는데 지각은 면해야 한다. 센터 뒤 주차장에 주차 완료. 시간을 확인하니 8시 30분이다. MP3에서는 검정치마의 <antifreeze>가 흘러 나온다. 음악에 따라 흥얼거린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한다. “반갑습니다” 입에서 뱉는 말과는 달리 내 표정은 무미건조하다. 매일 반복되는 형식적인 인사다.

 

인수인계를 하고, 근무교대를 해야 할 시간. 그 전에 당장 소방행정정보시스템에 들어가 근무조 편성 등 기본적인 근무일지 작성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 자리도 없고, 개인용 컴퓨터도 없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은 잡다하게 많은데 컴퓨터랑 책상은 인원에 못 미친다. 거기다가 두 대는 느린 정도가 가히 달팽이 급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고참들 사이로 비어 있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온나라를 클릭한다(온나라는 전자결재 시스템이다.) 기다린다. 일본 여행을 다녀와도 될 만큼만 기다린다. 드디어 창이 뜬다. 수신할 문서는 없는지 살펴본다. ‘소방 행정 정보 시스템’에 들어가 근무조 편성 등 여섯, 일곱 가지의 항목을 작성한다. 근무 일지를 쓰기 위해 ‘취급 사항 관리’ 화면을 띄워 놓고 나니 조례를 시작한다. 전날 간부회의를 다녀온 센터장이 일장 연설을 한다. 부산의 서면 노래방 대참사로 인하여 다중이용업소 화재 예방을 위한 소방 검사를 강조한다.

 

조례가 끝나고 차고로 내려간다. 장비점검 시작이다. 일단 구급차 엔진오일 점검을 한다. 아직 충분하다. 시동을 켜고, 구급차량 내부 장비를 소독, 점검한다. 김 부장은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셨는지 정신 못 차리고 담배 한 대를 물고 앉아 있다. 박 부장은 펌프차 시동을 걸어놓고, 김 부장 옆으로 가서 같이 담배를 문다. 권 반장은 공기호흡기를 우선 점검하고, 제논탐조등 및 개인용 랜턴, 무전기 등 배터리가 충분한지 점검을 한다. 동력절단기와 체인톱에 시동을 걸고는 적재 장비와 소방 펌프 또한 점검한다. 권 반장이 화재 진압 대원으로서 1선 펌프차 장비 점검에 매진하는 사이 나는 2선 펌프차 점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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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근무하는 우리 센터에는 두 대의 소방차와 한 대의 구급차가 있다. 1선 펌프차 운전 및 소방펌프 조작을 맡고 있는 박 부장, 1선 펌프차에 탑승하는 화재 진압대 강팀장과 권 반장. 그리고 구급대원으로서 이십년 째 일하고 있는 김 부장(구급대원은 대부분의 소방공무원이 기피하는 자리이다. 일단 출동이 많다. 그리고 끔직한 상황을 자주 접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대부분이 아마 구급대원일 것이다. 즉, 고생이 많고 그에 대한 대우는 덜하여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자리다. 응급구조사 교육을 다녀오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구급대원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이 교육을 피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구급차 운전 및 김 부장을 보좌하는 역할의 나.

 

그럼? 2선 펌프차 한 대가 남는다. 차는 3대, 사람은 5명. 나와 김 부장은 구급차를 타지만 불이 나면 화재 진압대로 변신해 2선 펌프차를 타야 한다. 그래서 2선 펌프차 점검은 내 몫이다. 사용내구연한을 훌쩍 지나 낡을 대로 낡은 2선 펌프차는 화재 진압 대비는커녕 브레이크가 밀리지는 않을지 부터 확인해야 한다. 차량 점검 후 널려 있는 호스를 본다. 그제 화재 때 사용한 호스들이 다 마른 것 같다. 호스를 내려서 다시 말고, 창고에 넣어둔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센터장이 소파에서 조간 신문을 보고 앉아 있다. 사무실이 좁아서 센터장 전용 책상 하나 없다. 다행히 센터장 전용 컴퓨터는 있다. 그러나 사무실에 없고, 센터장 대기실에 있다(대기실은 사물함이 있는 휴식 공간이다. 개인당 하나씩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단체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군대 내무반을 떠올리면 된다). 센터장은 결재를 하거나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할 때는 대기실로 들어가야 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거나 업무 처리를 위한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에는 사무실로 나와야 한다. 나는 센터장이 불편하니깐 사무실에 없는 게 좋긴 한데 그래도 사무실에 센터장 책상 하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혼자 씁쓸해 한다. 소방의 최말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관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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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람 사는 곳이다. 싫은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헌데 우리가 처한 빈곤한(?) 현실을 생각할 때,

그 좋고 나쁨을 넘어

가끔 현타가 온다고 해야하나, 

이런 식으로 멍 때린다.

내 상사가 싫을 때도 있지만

그 상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못 받을 때의 모습은

또 다른 얘기니까. 

 

5.

교대, 장비점검을 어떻게 했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온나라에 접속하여 주요 공문을 확인한다. 비번 후 첫 근무다 보니 확인해야 할 공문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먼저 ‘개인 보호 장비 점검일지’를 작성하고, 당면 업무를 확인한다. 당장 ‘다중이용업소 소방 검사’가 오늘부터 시작이고, 오후 2시에 롯데마트 ‘합동 소방 훈련’이 있다. 신축 건물 완공 검사 증명서가 하나 내려와 있으니 ‘소방 활동 자료 조사’도 해야 하고, 이번 달 ‘소방 용수 조사’도 아직 실시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소화기랑 단독 경보형 감지기 등 기초 소방 시설의 보급도 이번 주 내로 마무리해야 한다.

 

공람을 확인해 보니 새 일자리 창출 아이디어 보고가 오늘까지이고, 다음 달 화재 조사 및 응급구조사 교육 참석자 명단이 내려와 있다. 손 반장과 이 반장이 빠지기에 대기 근무를 위한 편성을 해야 한다. 지난 달 암으로 입원한 노 부장 자리도 돌아가면서 근무하느라 피곤한데 2명이 추가로 빠지니 당분간은 당번이 잦아질 것 같다. 대충 정리해 보니 급한 건 합동 소방 훈련과 아침에 강조한 다중이용업소 소방 검사다. 출장을 신청하여 올린다. 그리고 웹을 이리 저리 검색하여 짜깁기로 새 일자리 창출 아이디어를 작성한다.

 

이때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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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 삐뽀 삐뽀 구급 출동 구급 출동.

구급 출동입니다. 

장천동 200번지 신고자 술을 드셨고,

병원 이송 요합니다.”

 

신속히 출동한다. 지령서 상의 주소를 보니 단골 손님(?)이다. 괜히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 사이렌도 켜지 않는다. 사이렌을 매번 울리다 보면 정말 중요하고, 위급할 때 정작 사이렌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장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이 있다. 다들 대낮부터 취하셨다. 고주망태가 된 한 분이 “이 사람 데려가”라고 말하며 시체처럼 엎드려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영만이 아저씨. 자주 보니 이제 정이 들 것 같다. 여러 주취자 중에서 그나마 양호하신 분이다(진상이 정말 많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초월이다... 나는 공무원 중 가장 많은 진상을 만나는 직종이 아마 소방관과 경찰관이 아닐까 한다).

 

집은 다 쓰러져가고, 냉장고 문은 떨어져서 부엌에 나뒹굴고 있지만 술을 마실 장소만 있다면야 그들에게 그것은 전혀 신경 쓰일 일이 아닌가 보다. 시체처럼 쓰러져 있으니 너무 무겁다. 이 생활을 6개월 넘게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슴 근육이 발달된다. 왜? 옮겨야 하니까. 아, 5층 아파트는 힘들다. 게다가 가끔씩 거구의 환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들 것으로 각종 환자를 옮기거나 할 때 힘들다고 놔버릴 수 없지 않은가. 저절로 팔, 가슴 운동이 되는 이유다(대신 허리가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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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강제로(?) 몸은 좋아진다.

허리는 망가지고. 

 

병원으로 이송하여 환자를 옮긴 후 구급차량 내부 정비를 하는 도중 전화가 온다. 사무실이다. 언제 들어올 것인지 물어본다. 15분 후에 들어간다고 대답한다. 병원에서 구급일지 작성, 구급차량 정비가 끝나고 센터로 복귀한다. 박 부장이 준비한 점심이 식탁에 차려져 있다. 매일 시켜 먹는 팀도 있지만 우리 팀은 일정 회비를 걷어서 박 부장에게 준다. 그러면 박 부장이 알아서 장을 봐 오고, 우리의 끼니를 책임져 준다. 설거지가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바쁜 곳이다 보니 그래도 배려를 해준다. 널널한 센터라면 준비부터 치우는 것까지 모든 게 나 같은 막내들의 일이다.

 

점심 먹으면서 어김없이 소방서 돌아가는 이야기, 관련된 사람 이야기들이 화제로 나온다. 이런 뒷 담화는 언제 들어도 유쾌하지 않다(다시 말하지만 다 똑같이 사람사는 곳이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나 회식 자리에서나 빠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먼저 먹고 일어나 사무실 컴퓨터에 앉는다. 아까 하다 만 새 일자리 창출 아이디어 제안서를 계속 작성한다. 팀원들의 식사가 끝났다.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간다. 오늘은 내 차례다. 다른 사람들은 티 타임, 담배 타임을 갖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설거지를 끝내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 또 하던 제안서를 작성한다. 전화벨이 울렸다. 합동소방훈련 대비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대응조사팀장의 전화다. 관련 내용을 적어놓고, 제안서를 마저 작성한 후 기안, 보고한다(소방서에는 현장 활동 수행 여부에 따라 외근직과 내근직으로 나뉜다. 외근직은 구조대 및 119안전센터에 근무하면서 현장 출동과 행정 업무를 병행하고, 내근직은 행정 업무만을 담당한다. 내근직 공무원은 소방행정과, 방호예방과, 대응구조과에 소속되어 있으며, 일반직 공무원과 같이 주5일 근무를 한다. 위의 과들은 소방서 건물 내에 있다. 흔히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소방서라 함은 119안전센터일 경우가 많다).

 

합동소방훈련에 대비하여 도상 훈련을 실시한다. 지도 상에서 차량 부서 위치, 각자의 임무 등을 확인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 훈련 대비 집결지로 모인다. 타 센터 차량, 구조대 차량들도 보인다. 훈련 대기 중 구급차 무전이 들려온다.

 

“딴지, 딴지, 여기 벽청”(상황실을 지칭하는 음어, 때가 되면 바뀐다)

 

“여기 딴지”

 

“딴지~ 구급 출동입니다.

장소는 둔산동 푸르지오 아파트 105동 7xx호이고, 환자는 할머니입니다.

신고자는 딸인데 화장실에서 씻다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의식 없고, 호흡 있습니다.”

 

“사칠, 신속하게 출동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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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을 켜고 밟는다. 평일 오후라 도로 상황은 나쁘지 않다. 신호가 나타날 때마다 빨간 불이다.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지나친다. 신경이 곤두선다(그냥 밟지 않고, 중앙선을 침범하는 이유는 카메라에 찍히면 예외 없이 통지서가 나오기 때문이다. 통지서가 나오면 진술서를 작성해야 하고, 구급일지 사본, 차량등록증 사본, 운전면허증 등 각종 서류를 첨부하여 관할 경찰서에 제출한다. 그리고 공문으로 보고를 한다. 이렇게 해야 벌금을 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귀찮은 업무가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주의를 한다. 과속이나 신호 카메라가 많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온전히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119안전센터의 허 반장은 환자 이송 도중 교통 사고가 나는 바람에 환자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그 합의금만 오천만 원이었다. 그 생각이 나니 더욱 예민해 진다(역주행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법이 부여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당연히 사고가 나는 부분까지는 법이 책임 져주지 않는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여 벨을 누른다. 신형 아파트여서 아파트 현관에도 출입구가 막혀 있다. 7xx호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보이고, 화장실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계신다. 몇 번을 봐도 늘 당황스럽다. 그래도 호흡은 있어 안도한다. 김 부장이 기본적인 사항들을 체크한다. 들것에 싣고, 구급차로 옮긴 다음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미 훈련은 끝이 났고, 센터로 복귀한다. 오전부터 방금까지 있었던 일(훈련, 교육, 출동 등)을 ‘취급 사항 관리’ 항목에 입력한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구조 구급 정보 시스템’에 구급 출동에 관한 세부 내용을 입력한다(근무일지 작성과는 별개로 구조, 구급 출동 시에 상세한 내용을 입력해야 하며, 화재 출동 시에는 화재 출동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경미한 사건이 아닐 경우에는 상급 부서 보고를 위한 ‘구조 구급 발생 보고서’ 등을 작성하여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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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퇴근까지 두 시간 가량 남아서 신축건물 ‘소방 활동 자료 조사’를 바로 나가기로 한다. 이 조사는 출동시를 대비한 것으로 건물의 위치 및 출동로 파악, 소방시설 파악, 피난 및 구조방법 사전 숙지, 취약 지역 등을 확인한다. 현장에 나가 관련 내용을 꼼꼼히 파악하고 사진을 찍는다. 센터로 복귀하여 소방 활동 자료조사서를 기안, 상신한다. 그리고 민원 정보 시스템에 관련 내용을 입력한다. 건물 개황부터 상세 정보, 소방 시설, 소방 활동 계획 등을 입력하고, 건물 정면도 및 측면도, 화재 진압 상세도 등의 파일을 첨부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구조구급계 전화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요청한 자료라며 지난 3년 간의 구급 건수 및 미이송 건수를 파악하여 한 시간 내로 알려달라고 한다(국회의원이 자료를 소방방재청에 요청하면 소방방재청에서 각 도의 소방본부로 똑같이 요청할 것이다. 그럼 각 도의 소방본부에서는 각 소방서로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럼 각 소방서의 담당 내근 직원이 전 센터에 연락을 돌려 자료를 요구한다. 결국 자료나 수치를 실제 파악하는 것은 센터나 구조대에 근무하는 외근직의 일이다. 그럼 소방서 내근직은 그 자료를 취합하여 본부에 보고하고, 그게 거꾸로 올라가 국회의원 손에 들려지게 된다). 취급사항 집계 관리에 들어 가니 금방 파악이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번처럼 어처구니 없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가끔 시간이 엄청 소요되는 이상한(?) 자료를 기한 내에 요구할 때면, 다른 일 하기도 바빠 일명 ‘가라’로 올리곤 한다... 아니 될 일이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자료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 말이다. 국회에 있는 분들은 양해해 주시길).

 

한숨 돌릴 무렵 벨소리가 들린다. 민원인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신고를 하러 왔다.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신고서 등 서류를 확인하고, 민원 사무 처리부에 관련 내용을 기록해 둔다. 아, 깜빡 할 뻔 했다. 오늘은 보안 점검하는 날이다. 모든 컴퓨터를 켜고 내 PC 지키미를 실행한다. 모든 PC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공문으로 보고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3월이 지났다. 민원 사무 처리부에 예방대응과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내일 가야겠다. 보안 점검 기록부에도 소방행정과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이것도 내일 가야겠다.

 

슬슬 야간 근무자들이 출근한다. 나랑 친한 2팀의 김 부장과 김 반장이 왔다. 일단 가볍게 인사하고 근무일지 작성 등의 미비된 업무를 완료한다. 근무자 전원이 왔다. 센터장 주관 하에 조례를 실시한다. 유후! 퇴근이다. 주간은 출근과 동시에 바로 퇴근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쁘다.

 

야간 근무 이야기는? 다음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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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을 퇴고하는 와중에 에피소드 몇 가지가 떠오른다. 이것도 다음 기회에.

 

 

 

 

 

 

 

 

 

 

편집부 주

 

본 기사는 2013년 업로드된 

소방관 출신 필자의 글입니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이루어졌으나

당면한 현실,

일상의 노고와 슬픔은 지속중이기에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 이형석 소방경님,

고 박수동 소방장님,

고 조우찬 소방교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