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4. 29. 월요일
너클볼러
지난 시간 선수 |
RIVAL #1
라이벌. 경쟁자, 혹은 적수라는 뜻. 순화해서는 맞수라고 하기도 한다. 영어로 Rival이 ‘하천을 공유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강’을 뜻하는 ‘River’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물이 너무나 중요하니 인간덜이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공유하고 뺏고 뺏기길 반복한 거다. 그게 라이벌. 세계 4대 문명 발상지가 모두 강을 끼고 있으니 물이 중요했음은 더할 나위가 없겠고 그런 삶의 터전을 뺏고 뺏기길 즐겼던 인간의 호전적 기질을 라이벌의 어원을 통해 확인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인간은 문명이 발생하던 그 때부터 허벌나게 경쟁을 해온 것이다.
RIVAL #2
지금은 류현진이 속해있는 LA다저스의 타격코치로 유명해진 마크 맥과이어. 해를 거슬러 올라 1998년 메이저리그 최대이슈는 바로 어느 팀이 우승하느냐가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와 라이벌 새미 소사 중 누가 먼저 37년 동안 로저 매리스가 지켜온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냐였다. (물론 불타는 홈런레이스는 훗날 둘 모두 약의 힘이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내가 바로 쏘오사
시즌이 시작된 후 딱 2달 동안 27개의 홈런을 몰아친 맥과이어를 보며 팬들은 최고기록을 위한 그의 고독한 질주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고독하기만 할 것 같던 홈런 레이스에 새미 소사가 등장했다. 새미 소사가 6월 한달 동안 20개의 홈런을 몰아친 것이다. 그들의 경쟁은 결국 맥과이어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인 70홈런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주인공은 내내 맥과이어였다. 66홈런을 때려낸 새미 소사는 조연, 혹은 구단과의 불화를 일으키는 유색인일 뿐이었다. 천하장사 이봉걸이 골리앗이었듯 새미 소사 역시 슈퍼스타 마크 맥과이어를 위한 조연이었을 뿐이었다.
전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F1에 등장한 슈퍼스타 아일톤 세나를 위해 알랭 프로스트 역시 그러 했다.
F1
F1은 Face 아니,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의 약자다. Formula는 공식, 규격을 뜻한다. 1885년 실용적인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한 인간이 하고 싶었던 것은 그 옛날 강을 사이에 두고 뺏고 뺏겼던 전의, 곧 경쟁이었다.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한 9년 뒤인 1894년, 프랑스 신문사인 ‘프티주르날’의 주최로 126km를 달리는 최초의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 처음엔 자동차와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차원에서의 레이스였으나, 수 많은 관객들은 이 새로운 레이스에 후끈 달아올랐고, 이태리와 벨기에, 모나코 등 유럽전역에서 서서히 독자적인 레이스가 열리기 시작했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날 정도의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는 아니었으나 인간은 ‘위험’이 주는 즐거움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고 섀시(차체)가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속도는 시속 100km에 도달하게 되었다.
위험게이지가 서서히 맥시멈에 다르자 없던 규정(Formula)이 필요하다 여겼고 1904년 국제자동차공인 클럽협회 AIACR(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Automobile Clubs Reconnus)을 만들어 중량을 1,000kg으로 제한하는 최초의 규정(Formula)을 만들어 레이스에 적용한다. 이렇게 ‘본격 위험한 레이스’를 맘껏 즐기기 위한 체계를 슬슬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붙기 시작한 자동차 경주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인간이 즐기는 가장 위험한 놀이, 바로 전쟁이었다. 1910년대는 세계 1차 대전으로 각종 레이스가 중단되었다. 전설의 레이서 엔쵸 페라리 등이 활약하기 시작하던 1920년대에는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자동차 경주를 본격 권장하면서 그 지원을 받은 포르쉐 박사가 완성한 슈퍼 차져를 장착한 차량 등이 은빛 화살 Silver Arrow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나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또 다시 발목을 잡힌다. 그러나 인간이 끊을 수 없었던 것은 마약만이 아니었다. 위험을 동반한 ‘스피드’ 금단 증세를 겪은 인류는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본격적인 경주 준비에 돌입한다.
히틀러와 포르쉐
국제자동차공인클럽협회, AIACR을 보다 발전된 형태의 연맹인 FI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I’Automobile)로 발족시킨 뒤 새로운 규정 Formula1을 만들었다. 그렇게 규정을 뜻하는 F와 최고를 뜻한 1을 묶어, 지구상 최고의 스피드를 가리는 포뮬러 1, F1이 시작되었고, 역사적인 첫 번째 그랑프리(Grand Prix, 각각의 경주를 부르는 말)가 1950년 영국에서 열리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첫 F1의 드라이버 챔피언은 알파로메오의 ‘주제페 파라나’ 였다.
다임러,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등으로부터 시작된 F1은 BMW, 로터스 등의 새로운 팀들이 가세하고, 아시아팀 최초로 Honda가 64년 우승, 67년엔 벨기에에서 최초의 미국차 ‘몬 이글’의 우승이라는 이슈와, 74년의 멕라렌 등장, 77년 르노의 컴팩트한 사이즈에 무지막지한 출력을 쏟아 붇는 F1 최초의 터보엔진 개발 등이 맞물리면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기세를 올린 F1은 올림픽, 월드컵 등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잡았고, FIA은 거대해진 인기만큼 수익과 지출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경주의 주인공인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라 불리우지 않았다. 머신, F1 머신이라 불리우기 시작했다.
F1 머신
F1 머신은 매년 최신 기술과, 규정을 반영하여 새롭게 만들어진다. 대략 100억 정도 든다. 최신 기술과, 규정의 반영은 이해되나 100억이라는 금액에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F1 머신은 양산형이 아니다. 스마트폰도 1~2대 정도만 생산한다고 가정해보자. 부품가격은 2~3배를 가볍게 넘어설 것이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부품들에 필요한 금형 등을 제작하는 비용으로만 수억이 들어가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면 100억 정도면 나름 합리적인 금액일 수도 있겠다.
F1 머신에는 온갖 첨단 기술이 접목된다. 우선 힘. F1 머신의 배기량은 2400cc로 중형차 수준이지만 출력은 750마력으로 2~3배쯤 된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리 걸리는 시간)이 2.4초 밖에 되지 않고, 최대시속은 제트기 이륙속도인 350km에 이른다. 일반 자동차와는 다르게 아무런 편의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으나,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최첨단 다이어트 기술을 접목해 지금은 ‘600kg이하’라는 감량에 성공했으며, 가벼운 대신 차체를 노면에 붙이는 공기역학기술이 머신 전체를 뒤감고 있다.
더불어 충격으로부터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섀시 기술이 동원된다. 어디 그 뿐인가. 신발보다 싼 타이어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우천 등과 같은 상황에 따라 노면과의 접지력을 극대화하는 타이어는(1999년부터 브리지스톤 단독 공급)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시합 전 공급, 시합 후 모두 회수해 간다. 찢어져 떨어져나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100억 같지 않아 보여도 어쨌든 100억
하지만 진짜 기술 중 하나는 바로 머신의 퍼포먼스와 드라이버의 능력을 일치 시키는 것이다. 흔히 파일럿이라고도 하는 F1 드라이버들은 레이싱 출전시 섭씨 50도를 넘는 운전석의 온도를 견디기 위해 방열복을 입는다.
어디 그뿐인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저항을 최소화시킨 머신엔 현가장치(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충격이 고스란히 운전자에게 전달되며, 일반인은 견디기 힘든 압력(300km 이상으로 주행할 경우 전투기 조종사와 맞먹는 5G의 압력을 받는다. 일반인은 3.5C정도에서 보통 의식을 잃는다)과 수시로 대면하며 2시간 동안 트랙 위를 질주한다.
그랑프리(레이스)에는 총 12개팀, 24대의 머신이 출격한다.(작년의 경우, 전 세계를 돌며 19개 그랑프리를 치뤘다) 각 팀은 출전한 2명의 레이스로부터 1년(시즌) 내내 머신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한다. 머신은 머신의 한계를 확인시킬 드라이버를 필요로 하고, 드라이버는 자신의 능력을 백뿌로 반영 가능한 머신을 필요로 한다. 결승점에 들어오는 것은 머신과 드라이버 모두이지만 시상대에 오르는 건 드라이버 뿐이다. 그런 드라이버를 두고 세계 랭킹 1위 세바스티안 베텔은 ‘으깨려고 봉지에 담아 이리저리 흔드는 감자’에 비유하기도 했고, 혹자는 마라토너의 심장에 복싱선수의 상체, 육상선수의 하체를 가져야만 가능한 직업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촉각을 다투는 레이싱 특성상 순발력과 5.62km 서킷을 55회정도 주행, 주유와 팀원과의 호흡 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머리도 좋아야 한다고 한다. 괜히 연봉이 8000만 달러(전성기때의 미하엘 슈마허)가 아닌 게다.
헬멧을 쓰고 있어야 슈마허다워 보이는 미하엘 슈마허
그런 F1 드라이버를 다룬 영화(극영화, 다큐멘터리)가 몇 편 있었다. 이브 몽땅이 출연한 1966년작 ‘그랑프리’, 액숀 스타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드리븐’, 그리고 2010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세나’가 있다.
제작사가 워킹타이틀이라는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세나’, 1인자인 알랭 프로스트(이하 프로스트)를 제끼고 최고가 된 아일톤 세나(이하 세나)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재미를 완성시킨 것은 바로 프로스트의 ‘매우 나쁜 짓’이었다. 세나의 죽음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은 운명과 같은 비극이었고, 나쁜 짓 시전자 프로스트는 세나를 위한 조연급 드라이버가 되었다. 프로스트는 빈곤층 아동을 돕는 세나 재단(세나의 누나인 비비안 세나가 1995년에 설립)의 이사로도 활동했는데 말이다.
아카데미 2개부분을 수상하고, 세계 주요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인 애쉬프 카파티아는 부와 명예, 그리고 패독클럽(VVIP 부스) 패스도 받았고, 주인공인 세나는 1994년 세상을 떠난 후 다시금 영웅으로 주목 받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서킷의 교수’가 평가 받았던 프로스트는 졸지에 나쁜 놈, 매우 나쁜놈이 되었다. 프로스트는 ‘영화가 보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나는 그를 알고 싶어졌다
Ayrton Senna (1960~1994)
아일톤 세나의 입장
게다가 잘생겼다...
F1의 하위리그인 F3에서 유망주 이름표를 달고 있던 세나에게 F1 팀의 러브콜이 쇄도한다. 그 중 멕라렌 같은 탑팀도 있었다. 하지만 세나는 고만고만한 ‘톨만’에 입단한다. 그는 당장 팀의 에이스로 트랙에 출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트리플A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유망주 투수라도 맷 케인, 범가너, 린스컴, 보겔송, 지토같은 선발이 버팅기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콜업되어 바로 선발 자리를 꿰찰 수 없듯이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막 입단한 초짜 드라이버가 한단 말이 ‘최선을 다할라니까 최고의 레이싱카를 가져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적할 거고, 이적을 막으면 확 은퇴해 불랑께’였으니. 재능에 배짱까지 겸비한 난놈 오브 더 난놈이었던 것이다.
1984년 몇 개의 그랑프리에서 두각을 보인 세나는 토니 스타크가 F1 머신을 타고 질주하다 위플래시(미키루크)에게 살포시 채찍질 당해 두동강이 났던 시가지 코스로도 유명한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13번째로 출발해 2위까지 치고 올라간다. ‘고만고만한 드라이버들이 고만고만한 팀에서 고만고만한 성적을 거둘 수 밖에 없다’는 정설을 캐무시하고 그런 저런 팀의 드라이버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괴력을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비도 오던 상황. 하지만 1위를 달고 있던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 프로스트가 경기중단을 요청하고 그게 받아들여져 역전을 눈앞에 둔 세나는 2위에 그치고 만다. 세나는 경기 직후 이렇게 말했다.
‘F1은 정치고 돈입니다. 무명의 신인은 이런 일을 이겨 내야 합니다’
아일톤 세나의 우승이 가능했던 레이스였다. 폭우 속에서 이미 70%정도의 레이스가 진행되었는데 중단될 것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프로스트가 세계 최고였고, 세나는 듣보 신인에 불과했다. 국제자동차 연맹 회장이 프로스트와 같은 프랑스인이었고, 세나는 브라질 출신이었다. 프로스트가 곧 정치이고, 돈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새겨 듣기 시작했고, 세나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프로스트는 돈과 정치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다.
85년, 아일톤 세나는 조금 더 큰 팀 ‘로터스'로 옮긴다. 그리고 ‘빗속의 천재’라는 닉에 걸맞게 폭우 속에서 진행된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경험한다. 그렇게 85년과 86년 그리고 87년, 그는 전도 유망할 수도 있는 신인에서 주목 받는 드라이버가 되었다.
게다가 프로스트가 ‘밟을 때’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하는 ‘교수’라는 닉에 걸맞게 계산적인 드라이버였다면 세나는 본능적으로 밟아대는 거침없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게임이 끝나면 골프 등을 즐기는 프로스트와 달리 스텝들과 함께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보내는 성실함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렇게 덧붙여진 서사로 인해 팬들은 프로스트와 세나의 경쟁을 즐기기 시작했고, 선두의 프로스트를 세나가 하루빨리 제껴주길 바랬다.
그 유명한 첫 우승 기념샷
88년 알랭 프로스트가 속해있던 당대 최고의 팀인 멕라렌은 앞서가던 프로스트의 똥꼬를 습관적으로 쑤셔대는 세나에게 오퍼를 넣는다. 그리고 열정의 사나이 세나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다른 팀 드라이버와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같은 팀원과도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동시에 팀웍을 해쳐서는 안 되는, 그렇게 개인과 팀 성적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시츄에이션을 조성했다. 세나에겐 황제 프로스트 중심의 팀에서 2인자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옵션이 부가되는 되도 말이다. 세나의 친누나 비비안 세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멕라렌에 간 1년 동안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긴장했다"
슈퍼스타 세나는 긴장한 만큼 성적을 만들어냈다. 멕라렌은 그 해 16번의 그랑프리 중 15승을 챙겼고, 그 중 7승은 프로스트, 8승은 세나가 챙김으로써 팀 우승(컨스트럭터)과 월드챔피언(세나)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시즌 세 번째로 치러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1위로 앞서나가던 세나가 ‘(프로스트에 비해)너무 앞서나가니 속도를 줄여라’라는 무전을 받은 뒤 사고가 나 프로스트에게 1위를 빼앗기고 15번째 일본 그랑프리에서 출발이 늦은 세나가 1위였던 프로스트에 역전해 월드챔피언을 확정했다는 ‘2인자 극적 성공 스토리’까지 덧붙었다. F1도 세나도 인기의 정점에 다다랐고 늘 최고였던 프로스트는 비호감의 결정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멘트들과 함께...
‘그(세나)는 저를 이기려고 한 게 아니라 모욕하려고 했어요.
그가 훨씬 강하다는 걸 증명하고 자랑하려고 했죠. 그게 그의 약점이었어요.’
세나와 프로스트와의 관계는 경쟁이 아닌 전투가 되었다. 팀 내에서도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었고, 그로 인해 팀은 불안 덩어리 그 자체였지만 성적은 최고였다. 그들의 경쟁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고, 박수를 더욱 찰지게 하기 위해 좋은 놈과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적 설정이 MSG마냥 가미되었다. 우린 모두 알고 있다. MSG가 가미되면 음식이 졸라 맛나진다는 거슬...
경쟁이 전투로 진화하자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월드 챔피언 1위 자리를 빡 터지게 다퉜고, 그러다 결국 사단이 났다. 프로스트를 뒤쫓던 세나와 프로스트가 코너에서 부딪혀 코스 밖으로 나간 것이다. 이때 화가 난 프로스트는 머신에서 내려 경기를 포기했고, 세나는 어떻게든 경기를 재개하려 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프로스트가 월드챔피언이 되는 상황이었고, 세나는 한번의 그랑프리가 남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우승해야 월드챔피언에 실낱 같은 희망을 품어볼 수 있었다. 프로스트와의 충돌로 선두를 뺏긴 세나는 다행히 진행 요원 덕에 경기를 재개할 수 있었고, 언블리버블한 질주로 우승을 거머쥔다.
하지만 운영협회에서는 그의 경기 재개를 (이해하기 힘든)부정으로 선언해 우승을 박탈했다. 게다가 6 개월 정지라는 부록까지 선물했다. 당시 그의 우승을 박탈한, 게다가 6개월 정지까지 먹인 운영협회의 회장은 세나가 첫 우승을 거머쥘 수도 있었던 88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프로스트의 경기 중단을 받아들였던 장 마리 발레스트르 바로 그였다.
세나는 남고 프로스트는 떠났다.
결국 월드챔피언의 자리는 프로스트에게 돌아갔다.
이듬해인 90년. 프로스트가 멕라렌을 떠나 페라리로 이적한다. 한 팀에서의 경쟁을 탐탁해하지 않았던 프로스트에게 결별은 당연한 것이었고, 경쟁에 물러섬이 없었던 세나는 프로스트의 이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세나와 프로스트는 눈치보지 않고 지지고 볶을 수 있는 경쟁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 또다시 사단이 벌어진다. 89년과는 정 반대의 상황, 시즌 막판에 세나가 월드챔피언 1순위, 프로스트가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상황. 프로스트는 반드시 우승해야만 월드챔피언을 기약할 수 있는 레이스. 스타트가 빨랐던 프로스트가 1위로 치고 나갔고, 뒤쫓던 세나가 코너에서 또다시 부딪혀 모두 리타이어(경기중단)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89년과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되었고, 월드챔피언은 세나가 되었다. 프로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세나는 매우 비양심적인 드라이버다.
레이스는 전쟁이 아니다. 스포츠일 뿐이다.’
가깝지만 참 멀기도 했던 그들.
91년. 프로스트는 부진을 거듭해 은퇴를 선언했고, 세나는 압도적인 점수로 세 번째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 해 프로스트의 빈자리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차세대 슈퍼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가 등장했다.
92년 세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월드 챔피언은 커녕, 자신의 후미를 들이받은 슈마허에게 ‘캐항의’하는 모습으로 가쉽 거리가 되기도 했다. (프로스트라는)거대한 목표를 잃은 모습이기도 했다.
93년, 프로스트가 은퇴를 번복하고 윌리암스 팀으로 복귀하자 세나와 팬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프로스트도, 세나도 전성기의 실력을 보여줬다. 다만 월드챔피언엔 예상외로 프로스트가 올랐다. 프로스트가 복귀하면서 맺은 윌리암스와의 계약은 2년이였지만 그는 93년 네 번째 월드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뒤 영구 은퇴를 선언한다. 시즌 중반, 팀에서 세나의 영입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세나는 하향세를 거듭하던 멕라렌을 떠나 프로스트가 있던 윌리암스로 가고 싶었고, 윌리암스 역시 과거 멕라렌이 프로스트와 세나의 경쟁으로 최고의 팀이 되었듯 그런 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그게 싫었다. 세나는 윌리암스로 이적했고, 프로스트가 윌리암스를 떠났다. 그렇게 94년이 시작됐다.
94년 산마리노 그랑프리.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4월 30일 예선도중 멕라렌 시절의 동료였던 라첸베르, 그가 코스를 벗어난 사고로 사망했다. 본선에선 차량 파편으로 인해 관객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어떤 예감이 들었을까. 세나는 처음으로 프로스트에게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5월 1일 예선에서 드라이버가 사망했음에도 진행된 본선, 세나는 이미 최고의 드라이버가 된 슈마허를 뒤에 두고 시종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프로스트를 압박했듯 슈마허가 자신을 압박하고 있던 상황.
세나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탐부렐로 코너에서 코스를 벗어나 콘크리트 벽에 충돌하고 만다. 사고 당시 시속은 대략 200km, 전문가들은 드라이버가 사망할 정도의 충돌이 아니라 했지만 세나는 사망하고 말았다. 훗날 사람들은 머신 자체의 결함과 슈마허의 압박으로 인한 세나 자신의 심리적 요인을 사고의 원인으로 꼽았다.
가장 비극적인 사고
세나의 등장에서 프로스트와의 경쟁, 세나의 사망까지... 관객들은 열광했고, F1은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세나는 세상을 떠난 불멸의 영웅이 되었고, 프로스트는 세나도 뛰어넘지 못한 기록의 소유자였으나 조연으로 기록되었다. 10여 년이 지나 만들어진 다큐에서도 영웅은 세나였다. 세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시 박수를 받았다.
Alain Prost (1955~)
알랭 프로스트의 입장.
그 역시 멋졌다.
88년, 멕라렌에 입단한 세나. 세나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프로스트는 단연 최고의 드라이버였다. 최고가 되고 싶었던 브라질 출신의 불 같은 세나에게 유일한 경쟁상대는 최고의 드라이버였던 프로스트 였다. 세나는 자신의 능력을 실현해 줄 최고의 팀이 필요했고 팀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드라이버를 둘이나 보유한다는 것이 팀의 우승, 그리고 최고의 인기를 실현해 줄 담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세나는 프로스트라는 경쟁자이자 최고의 드라이버가 있는 팀으로 이적을 결정했다. 함께 경쟁하며 시즌을 치르는 중 함께 한 인터뷰에서 경쟁의식을 부추기는 질문에 프로스트는 세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답했다.
‘(경쟁보다는) 공동으로 챔피언 하믄 안될까.’
목숨을 걸고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챔피언답지 않은 답변에 그때까지만 해도 도전자였던 세나는 이렇게 답한다.
‘조까’
프로스트의 마지막 답변은 이러했다.
‘쉣’
더딴지 6호에서 계속
편집부 주
무규칙2종매거진 [더딴지 6호]에서는 F1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로 손꼽히는 세나와 프로스트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공개된다. 얼치기 언론들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보도한 '선수들'의 쌩짜배기 얼굴. 대중의 흥미와 언론의 장사 속을 위해 덧칠된 그들의 본 모습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디벼주겠는가 |
너클볼러
트위터 : @Knuckleballer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