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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5. 02. 목요일

독투불패 갈맥




430 청년학생문화제를 끝내고 낮에 시청광장을 갔다. 노동절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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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스1>



집회가 끝나고 대한문에 침탈당한 분향소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집회 말미에 플라자 호텔 앞 도로에 일렬로 서서 행진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보이는대로 경찰이 버스 차벽으로 꽁꽁 포위해놔서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 사진에는 경찰들이 아직 덜 깔린것처럼 보이는데, 집회 끝날 때 즈음 대한문으로 행진하려는 시도가 보이자 갑자기 완전무장한 경찰들이 엄청나게 깔리더니, 뒤편으로 보이는 플라자호텔까지 쭈욱 점령해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불법도로점거로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중이니 속히 해산하라... ㅅㅂ. 집회 신고하고 교통통제까지 다 된 도로를 무신 놈의 불법 도로점거라고 그렇게 확성기에다가 앵앵대는지. 굉장히 짜증났다.


경찰력이 서서히 더 깔리는 걸 보니, 솔직히 무서워졌다. 한미FTA 집회 땐 경찰이랑 별다른 대치 없이 7시 땅 되니까 세종문화회관 계단 길 열어주고, 광화문광장 진입 차단하고 말았다. 걍 경찰버스 주차 신공만 보고 왔었다. 근데 이건 뭐, 완전군장하고 있는 경찰 기동대 애들이 무더기로 있으니 자칫 두들겨 맞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감마저 들었다. 걍 존나 벌벌 떨었다는 게 맞을 것같다. 그러는 사이 소나기는 더욱 거세지고.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최루액을 분사하는데, 정말 눈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씹새끼들, 욕이 절로 나오더라. 사람 얼굴에다 대고 뿌리는데 앞에서 스크럼 짜던 학생들이 맥을 못추고 나오더라. 나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최루액 냄새 조금 맡았을 뿐인데도 막 현기증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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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만날 최루액 뿌리는 건 사진으로만 봐 왔지, 실제로 보니 위력이 대단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우리 선배도 최루액을 눈에 맞으셨는데, 숨을 못쉴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더라. 최루액의 위력은 정말 본 사람만이 안다.


이 강력한 자극 물질을 쉼없이 스프레이로 뿌려대니 진짜 겁이 났다. 나는 겁에 질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앞에서 스크럼을 짜는 학생들은 최루액 감수하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부끄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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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민중의 소리>



저기 뿌리고 있는 가루를 물에 타면 최루액이다. 오늘은 물에도 안 타고 가루째로 뿌리더라. 어휴.


430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대한문은 쌍용차 분향소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약자, 비정규직 문제를 한꺼번에 표상하는 곳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기를 쓰고 막는다고. 우리 역시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약자들의 표상이 된 대한문 아니면 안되는 거고, 그네들도 대한문 화단을 양보하지 않는 거고. 정말 그랬다. 시청광장에서 대한문 가는 걸 정말 기를 쓰고 막는다는 게 눈에 보였다.


결국 해산하고, 시청역 지하도로 건너 대한문 앞에서 430 메이데이 실천단 해단식을 치르러 이동했다. 여기도 경찰력이 쫘악 깔려있었다. 화단을 철저히 봉쇄해 놨더라. 꼼꼼한새끼들. 분향소를 다시 세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대한문 옆 덕수궁 돌담길에서 해단식을 하고 선배들과 함께 조용히 임시 분향소에서 분향만 했다. 그렇게 나의 노동절은 끝났다.






무기력감에 휩쌓였다. 저 무시무시한 경찰력 앞에서 나는 벌벌 떨고 있었다. 분명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자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했고, 대한문으로 가서 불법으로 철거당한 분향소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 그거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어 경찰들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우리가 할수 있는 거라곤 스크럼을 짜고, 최루액 맞고 질질 짜는 것 밖에. 이러고 나서 합법으로 신고한 집회 불법으로 매도하고, 주구장창 경찰들이 최루액 뿌리는데도 뉴스에 나가는 거 보면 시위대가 불법 집회를 해서 좀 뿌렸다, 이런식으로 포장되어 나가겠지. 이렇게 꼼꼼한 양반들 앞에서 무기력한 우리들이 하는 이런 것들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꾸준히 나 여기있소, 이의있소, 문제제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깨지는 사람들조차 없다면 또다시 이 시대의 수많은 전태일들은 묻혀버릴 거고, 우리는 또 거대한 노동자들의 죽음 쓰나미를 맞이해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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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레프트21>



벌써 쌍용차에서만 24명이나 죽었는데 또 24명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여기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왜 죽어나가는지 이유 한 번만 들어달라, 이런 목소리 한 알 한 알이 모여 거대한 확성기로 모이고, 거대한 마이크가 되어 세상을 바꾸리라 난 믿는다. 마치,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던 87년 6월항쟁처럼. 뭐, 시답잖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하루종일 무기력감에 휩쌓였다.


착잡한 하루의 단상이다.




독투불패 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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