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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5. 03. 금요일

이동현






 

 




밤(夜)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택시 기사들이 달려와 호객을 시작한다. "너 어디로 가니?" "베이징 가니?" "텐진역 가니?" 여기저기서 막 달려들어 물어본다. 근데 나 어디로 가지? 내가 묻고 싶다. 


천진항 택시기사님들, 제가 아무 대답 않고 막 무시하고 지나간 이유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믿어주세요.




대강 가보고 싶은 도시들은 있었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시안, 팬더가 사는 청두, 아름다운 춘성 쿤밍, 지도를 보고 기차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니까 어딘가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사면 갈 수 있을 것이다. 예약은 안 했지만.


기차역에서 내 뜻대로 기차표 예매가 안 되면, 그때 가서 고민하지 뭐. 항구 바로 앞 터미널에 관광버스가 열 대 정도 서있었다. 버스 문 열어놓고 해바라기씨 까먹으면서 한담을 즐기는 아저씨들이 있길래 달려가서 길을 물어봤다.


"어떤 버스가 기차역 가요?"


내 질문에 한 아저씨가 "무슨 기차역?" 이라고 반문하는 순간, 다른 아저씨가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너 일본인이니?"


"아니에요." 


힘차게 부정한 뒤에 


"한국인입니다!" 라고 외쳤다. 


나의 국적을 의심했던 아저씨는 한궈런(한국인)이라고 중얼거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댜오위다오(일본말론 센카쿠 열도)의 영토분쟁으로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심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 일본계 상점에 돌을 던지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영상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댜오위다오는 듕국영토입니다.'라는 내용을 미리 작문해서 연습하기도 했다. 자, 그러니 어서 영토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주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아저씨를 따라 가건물로 들어가니 중국인 무역상인들이 모여있다. 짙은 화장이 인상적인 왕언니 느낌의 여자와 왜소하지만 다부진 인상이 참치를 닮은 젊은 여자, 지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던 아저씨 둘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나는 시안으로 가고 싶다고,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왕언니 말씀에 따르면 지금 바로 북경에 가도 9시 전에 도착은 어렵다며, 일단 가까운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부터 구하란다. 텐진역에서 시안으로 가는 표를 구할 수 있으면 좋고, 만약 표가 없으면 베이징남역으로 이동해서 야간기차를 알아보라고 했다. 다부진 참치 여자가 펜을 들고 메모지에 가장 가까운 기차역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귀엽게 택시를 그리고서 친절하게 내가 가야 할 곳들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우왕 쎼쎄~!




탕구훠처짠(항구기차역)까지 택시기사가 50위안을 부르길래 반사적으로 비싸다고 했더니 흥정을 시작한다. 중국어가 조금 늘어도 절대 나아지지 않는 게 흥정의 스킬이다. 그리고 여기서 기차역이 얼마나 되는지 거리도 모른다. 일단 지나쳐서 다른 택시기사에게 30위안에 가자고 했더니 그러잔다. 이렇게 단번에 흥정이 성사되어버리면 내 요구가 받아들여졌음에도 찝찝한 이유는 뭔가... 


미터기를 켜지 않는 택시에는 이미 할머니가 한 분 타고 계셨다. 내가 합승하게 되어서 할머니가 가려던 길에서 돌아가게 되었는지 기사한테 뭐라고 따지다가 갑자기 나한테 "조선사람이에요?" 물으시더라. 그렇다 대답하니 반색하며 반가워한다. 삼년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중국에 처음 방문한 거라고 하신다. 경상도 김천이 고향이라 고향에서 죽을 작정이라고, 지금은 아들 내외와 같이 경기도 광주에서 살고 있고, 잠시 중국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 왔다고, 어쩐지 쓸쓸한 이야기.


기차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쯤. 기차표 예매는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일 새벽 기차는 자리가 없고 그나마 다행히 다음날 오후 기차가 있었다. 시안에서 청두, 청두에서 쿤밍까지도 예매하고 싶었지만, 뒤에 줄이 너무 길게 서 있어서 그만 밀려났다.


그리고 기차역 밖으로 나와서 깨달았다. 내가 있는 곳이 텐진역이 아니라 텐진항구 근처의 작은 기차역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여기서 텐진역으로 가는 차표도 사야 하는데... 다시 돌아가서 줄 서기가 싫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아야지. 




버스를 타자. 기차역 밖으로 나가서 버스정류장을 찾는데 110번 버스만 잔뜩 서 있다. 그 중에 정차해서 청소하고 있는 버스 문이 열렸길래 기사님께 물어보니까 앞으로 200미터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고 621번을 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 뒤에, 묻는다. 


"너 일본인?"


"아니, 나는 한국인입니다."


이번엔 '댜오위다오는 중국땅이다'라고 먼저 외쳐볼까 하다 참았다.


역에서 약 50미터 지나 있는 버스정류장을 하나 지나치고 나니 인도가 끊어졌다. 오른쪽은 철로가 지나가서 아무 것도 없다. 갓길을 따라 좀 더 걷다보니 정류장이 보였다. 근데 여기 621번은 안 써있다. 퇴근하는 직딩 아저씨를 붙잡고 또 길을 물었다. 저 기차역 가려는데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언어는 공기 같은 것이라 이전에 배웠던 말이나 내 입으로 말했었던 단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지는 것 같다.


마침 달려온 버스 621번은 시외곽과 중심부를 연결하는, 서울로 치면 빨간버스 같았다. 뒷문이 없는 좌석버스로 인적이 드문 대로로 한참 내달리고 정차하는 정류장도 많지 않았다. 요금도 일반 시내버스(1~2위엔)보다 비싸서 6위엔. 근데 잔돈이 없어서 10위엔 내고 거스름돈 못 받았다. 중국 버스는 거스름돈을 안 돌려준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4위안이 아깝다는 느낌과 예전엔 알고 있었던 걸 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맘이 상했다. 언제나 이렇게 사소한 데 맘이 상하지. 




텐진역까지 가는 데 한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항구에서 도심까지 거리가 꽤나 멀구나. 게다가 퇴근시간의 교통체증까지 있었다. 배에서 바로 내려서 오늘 중에 시안으로 이동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다. 


텐진기차역은 규모가 크고 창구가 많이 열려 있어서 사람이 많아도 그리 붐비지 않았다. 시안에서 청두로 가는 K5 티켓과(195위안, 잉워 상) 다시 서안에서 쿤밍으로 가는 K673 티켓을 예매했다. (374위안, 롼워 상) 다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할 때는 5위안 씩 수수료가 붙는다. 이 사실도 영수증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중국여행을 예닐곱번은 했는데 참 쉽게 잘 잊는구나. 





기차표 예매를 마쳤으니 이제 오늘 밤 잘 곳을 찾아봐야지. 그리고 중국 USIM 카드를 구입해야겠다. 옌통에서 3G서비스를 한다고 했어.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지. 쿤밍의 지인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근데 왜 텐진의 밤거리를 무작정 걸었을까?


텐진은 중국사에서 중요한 위치였던 적이 없는 늪지의 항구 도시, 19세기에 제국주의 국가의 압력으로 개항한 뒤 상하이와 함께 외국문물과 중국문물이 교차하는 경계가 되었다. 서구화의 진통을 심하게 겪은 도시이기도 한데, 프랑스 수녀들이 민중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고 의화단 항쟁 때 기독교 예배당이 불타기도 했다. 지금 텐진은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고 4대 직할시 중 하나. 


텐진시내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었다.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고층건물과 번쩍이는 네온사인 불빛, 이 도시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기차역 맞은편으로 서양 조계지가 남아있었고 건물마다 외벽에 호화롭게 조명을 밝혀 전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도시의 미관이란 소모적인 것, 아침이 되면 비참한 뼈대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도시에선 밤길을 걸어야 한다. 





한시간쯤 걷다가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은행 ATM 간판이 보이길래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현금을 더 찾아둬야겠단 생각이 들어 들어갔다. 근데 인출이 안 된다. 통신연결에 실패했다는 메시지와 오류코드 ***01. 이게 뭔가 싶었는데 로밍해둔 전화로 뾰로롱 문자가 온다. 


KB국민카드

이동현님

10/17 20:16

해외이용거절:SAVINGS ACCOUNT승인 거래불가


음... 이렇게 말로만 듣던 국제미아가 되는 건가? 지금 가진 돈으로는 리턴티켓도 사지 못할 것이다. ATM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뒷사람이 기다리길래 돌아섰다. 뒤에 서있던 남자가 고장났냐고 물어보아서 내 카드가 안된다고 답했다. 대답을 듣고 어눌한 발음을 눈치챈 남자가 다시 불쑥 묻는다.


"너 일본인?"


"아니, 한국인입니다."


남자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ATM으로 제 볼일을 본다. 기분도 꿀꿀한데 남자의 등짝에 대고 댜오위다오는 중국땅이라고 얘기해 버릴까보다. 




역 근처를 멍하니 걷고 있는데 호객업에 종사하는(aka 삐끼) 아주머니가 따라온다. 숙소 구하냐는 질문을 듣고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 어디서든 잠을 자긴 자야지. 일단 따라오는 호객업자에게 팅부동(못알아들어요)을 외치고 걸었다. 역 근처에는 여관 간판이 여러 개 보였다. 그 중 하나 용문여관에 들어가보니 싱글룸 90위엔,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 들어가려고 했지만, 여기선 외국인 주숙등기가 안 된다며 건너편 쥬디엔으로 가란다. 


보통 쥬디엔(주점)은 여관이나 빈관보다 비싼 숙소. 밖으로 나갔더니 아까의 호객업자가 내 팔을 붙잡고는 쥬디엔으로 가잔다. 자포자기한 기분이 되어 아줌마를 따라갔다. 바로 맞은편 간판은 나도 읽을 수 있다고 뿌리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밍지아콰이지에쥬디엔(명가쾌첩주점)의 숙박비는 160위엔에 디파짓 40위엔. 조금이라도 깎을 수 있지 않을까 흥정을 시도해봐도 실패. 카드키를 받아들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호객업으로 버는 수수료가 얼마쯤 되는지 궁금해졌다.





텐진역 숙소 밍지아콰이지에쥬디엔(名家快捷酒店)
숙박비는 160위엔 / 디파짓 40위엔
침대 매트는 딱딱하지만 시트는 깨끗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옴.
미니바 비슷하게 비치된 물품도 인근 상점에서 파는 가격과 동일했다.
(냉장고는 없지만, 컵라면, 생수, 청량음료, 양말과 속옷 등)
텐진역 근처에서 하룻밤을 잘 일이 또 생긴다면 다시 올 것 같다.
시내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다른 선택지도 없다.

-- 실질적 여행정보 를꼼꼼하게 전해주고 싶었어...



대충 짐을 풀고 나가서 길거리 공용전화를 찾아 쿤밍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략 23일에 도착할 거라고 알리고 그때까지 쿤밍에 있을 건지 물어보니 웃으며 그러겠다고 해서 굉장히 안심이 되었다. 전화 상태가 안좋아서 일단 끊고 다시 걸어보려 했지만 이번엔 불통이었다. 공용전화라는 게 우리나라 같은 공중전화가 아니라 잡화를 파는 상점에서 일반전화기 몇 대를 내놓고 장사를 하는 것, 사용요금은 비싸고 통화품질은 저렴하다.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자 마자 옌통에 가서 핸폰을 개통해야지. 텐진역을 거닐며 와이파이 잡히는 데 없나 찾다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그 자체가 비효율적인 시간낭비에서 어떤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니까, 헤매고 묻고 어리석은 일을 하고,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그리고 어쩌면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일은 덜 바보같이 굴겠지. 글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저녁밥을 먹기 귀찮아서 숙소 옆 가게에서 건포도와 녹차와 생수를 사들고 왔다. 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우리고 건포도와 건블루베리로 얌차. 이 건포도는 중국의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재배해서 남부 광주에서 가공한 제품, 건조 블루베리는 미국산으로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것. 말린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세계화 만세 외쳐야 하나.


심심해서 텔레비전 뉴스를 틀어놨는데, 오늘 오후에 한국해경과 중국어민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이 나온다. 자막으로 써주지 않는 내용은 알아듣기 어렵지만, 아마도 흑산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중국어민들을 해경이 체포한 모양이다. 뉴스 진행자가 최근 한국해경이 중국어민을 나포한 사건을 몇 가지 열거하고, 해경에게 맞아서 몸에 피멍이 들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중국인들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준다. 



내일부터는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면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편이 안전할까?









낮(晝)




IMG_7606.JPG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웅장한 종소리가 들렸다. 텐진역 종소리인가보다. 종소리가 끝나고서 내 핸폰알람이 울렸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 7시.


세수만 하고 밖으로 달려나가서 중국 이동통신사 옌통의 대리점을 찾았다. 호텔 프론트에 물어보니 역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 내부로 들어가려면 티켓을 가지고 짐 검사까지 받고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이라 포기. 역 주변의 작은 대리점을 찾아서 심카드를 구입했다. 내 전화기엔 작은 크기의 마이크로심카드가 들어가는데, 대리점에서 가지고 있던 카드는 보통 크기라서 전용 펀칭기 같은 걸로 플라스틱을 도려냈다. 


그런데 심카드를 장착해도 내 전화기는 불통이었다. 혹시 가짜 카드인가 싶어서 가게 아줌마 전화기 달라 해서 끼워 보았는데 거기엔 인식이 되더라. 시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 아이폰 컨트리락이 걸려있는 걸까 싶어 SKT에 물어봤을 땐 아니라고 했었다. (알고 보니 심카드 펀칭기가 정조준되지 않아서 -_-; IC칩이 접속단자와 꼭 맞지않아 생긴 문제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끼워보니 인식이 되었다.)




현지에서 핸폰을 개통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마치 하려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이 처음인 것처럼 격렬하게 좌절하고 말았다. 대리점 아줌마에게 괜히 화가 났고, 그렇잖아도 없는 살림에 150위안(심카드 50 + 요금충전 100)이 날아갔단 생각에 우울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좀 더 많이 준비를 해왔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ATM에서 인출이 불가능한 카드를 생각하니 불안해졌다. 마스터-시러스 마크가 있는 카드는 해외에서 현금인출이 될 줄 알았는데, 마크 따위를 믿으면 안 되는구나 억울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와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가진 돈을 세어보았다. 1319위엔. 여기서 야진(숙소보증금) 40위엔을 돌려받으면 1359위엔. 우리 돈으로는 25만원 정도가 되는 금액이다. 많다면 많은 돈이고 적다면 적은 돈인데, 문득 이 돈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했다. 최악을 상상하니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돈이 없다고 죽지야 않겠지, 적어도 누가 날 죽이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돈이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잖아, 생각해보니 별로 겁낼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돈을 아껴 써야겠다는 다짐은 했다.




기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텐진을 걸어보기로 했다. 힘을 내는 데에 걷기 만큼 좋은 일도 없다. 호텔 프론트에서 체크아웃하고 고문화가로 가는 길을 물어보자 텐진역에서 5번 버스를 타란다. 걸어가고 싶다고 했지만 버스를 타라는 권유를 다시 들었다. 버스는 대도시답게 깔끔한 신식이었다. 누군가 꽃장식도 해두었더라.





고루동 정류장에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문묘가 보인다. 도심 한복판에 생뚱맞은 중국전통 건축물이 솟아 있다. 고층의 현대식 빌딩보다 연식이 짧은 전통건축물이라니,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전통이야 말로 현대시장에 팔기 좋은 문화자원 아니었던가. 둥마루를 따라 걷다보니 그런 분위기의 건물이 잔뜩 모여있다.




천주교당이 서있는 맞은편, 관광버스와 택시가 뒤엉켜 있는 복잡한 길이 보였다. 여기가 고문화가인가 싶어 근처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었다. "저기가 고문화가 맞나요?" 아니라며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음, 그럴리가 없는데, 할아버지 말을 무시하고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니 여기가 고문화가. 구라쟁이 할배, 왜 그랬을까? (일본인 같았나?)





고문화가(구원화졔)는 우리나라 인사동 같은 분위기의 상점가였다. 청나라 풍으로 건물을 단장해둔 지역에 전통공예품이나 민속품 등의 관광기념품을 파는 상가가 입점해 있다.















텐진 고문화가 상점가에는 전통의상점도 있고, 도자기, 특히 자사호를 파는 상점도 있고, 골동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물건들도 팔리고, 목공예품이나 청동상 같은 것도 진열되어 있다. 어떤 가게에서는 청대의 동그란 전통모자(aka 강시모자)를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설마 저런 게 팔릴까 싶었는데 곧바로 그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관광객을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





고문화가 중심에 텐허궁(천후궁)이 있었다. 도교사원인데 출입이 통제되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 앞에 청동상이 있었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달려들어 상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사자상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발굽이랑 생김이 조금 달랐다. 


빨간바지를 맞춰 입은 커플이 지나가길래 붙잡고 저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남자애가 '치린'이라고 말한 뒤 내가 못 알아들은 기색이자 글자로 써주었다. 모르는 한자지만 아마도 기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쪽지를 잃어버려서 확인할 수가 없다.)


무슨 의미가 있길래 만지냐고 물어봤더니 행운을 의미한단다. 나도 행운이 필요해, 기린의 수염을 만지작거리자 여자애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빨간바지 커플 덕분에 여행 기념 사진을 남겼다. 목 짧은 기린동상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망설여지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천후궁 옆에서는 한 남자가 청나라 때 의상을 입고 옷과 피부에 황동빛을 칠하고 같은 색으로 칠한 담뱃대며 부채를 들고 있었다. 움직이는 조각상 퍼포먼스가 재미있어 구경했는데 같이 사진을 찍고 돈을 받는 일인 것 같았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다니 인구가 많은 나라는 참 좋구나 부러워졌다.





기본적인 그림을 파는 상점에서 부처와 성모자 사이에 놓인 마오쩌둥 액자를 보았다. 훤한 이마를 드러낸 마오쩌둥의 얼굴이 천안문 위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그림이었다. 마오쩌둥의 초상화는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그림이지만, 부처와 성모자 사이에 놓여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고문화가를 빠져나와 다리를 건넜고 강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넓고 아름다운 강이었다. 강가에 앉아있는 남자를 붙잡고 강의 이름을 묻자 '하이허'라고 알려준다. 海河 '바다강'이라니 '양식장에서 갓 잡아올린 자연산 우럭' 같은 이름이다. 혹시 강물이 민물이 아니고 짠물인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남자가 가버렸다. 강물을 찍어서 맛을 볼 수도 없고 궁금했다.


텐진 중심지를 가로지르는 강, 하이허를 따라가는 길은 꼭 상하이 와이탄 같은 느낌이었다. 강을 따라 동쪽으로 서양식의 근대건축물이 남아있고 서쪽으로는 현대적인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상하이 와이탄 같이 번잡스럽지는 않고 조용한 산책로 같은 느낌, 평일 낮이라 그럴까? 강가에는 한가로운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고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워놓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을 오른쪽에 두고 남쪽으로 계속 걸었다. 해를 마주보고 걷는 길은 눈부시고 더웠다. 찬란한 한낮이었다. 










배낭은 7~8킬로그램 정도의 무게,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넘게 걷고 나니 조금 힘이 들었다. 강가에 앉아 쉬면서 텐진역에 짐을 맡기고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한낮이고 나는 그리 지치지 않았고 기차가 출발하려면 다섯시간이나 남았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면 괜찮겠지.




텐진역 앞의 제팡챠오(제방교)를 건넜다. 간밤에 헤맸던 길이다. 역시 이 도시는 낮보단 밤이 아름다운 것 같다. 조계지는 옛 서양식 건축이 남아 있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 새로 지은 건물도 주변과 비슷한 양식으로 만든 것 같았다. 십오분 정도 느릿느릿 걷고 나서 잉커우다오(영구도)로 방향을 틀었다. 평범한 중국의 상점가, 주택과 식당과 상점이 뒤섞인, 꽤 오래된 동네, 산책하기 좋았다.





잉커우다오를 지나다 특이한 상점이 보여 들어가 봤다. 남방불교 상징물과 장신구 등을 파는 상점인데 한 남자가 손수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태국에서 수입한 태국 불상, 불교용품 등을 판다고 한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싱긋 웃으면서 플래시는 터뜨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비록 나는 가난하지만 부유한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아이템일지도 모르니까 쇼핑정보 남기기. (텐진시 화평구 영구도 124호, 156.7011.1144)




잉커우다오 지하철역이 있는 큰길에 접어들었다. 화려한 쇼핑센터를 지나 들어간 뒷골목에 서개천주교당(시카이텐주쟈오탕 西開 天主敎堂)이 있었다. 그동안 지나오며 본 텐진의 조계지에는 천주교 성당이나 기독교회가 여러 개 있었다. 서개천주교당은 프랑스 제국주의의자들이 지어놓은 건물이었는데 그 규모가 텐진 최대라고 했다. 


중국의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보기에 제국주의 침략자를 등에 업고 중국땅에 들어 온 서양의 종교가 얼마나 역겨운 느낌이었을지를 상상하며, 동시에 이국땅에서 자기가 진리라고 믿는 말씀을 전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선교사들의 깊은 믿음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가치의 충돌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현장은 드물다. 그래서 이 곳에 와보고 싶었다.




천주교당 뒷문으로 들어가서 생활관 같은 공간을 지나 정문 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 사이에 있는 안뜰 같은 공간에는 전형적인 중국정원 장식인 기암괴석 무더기가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았더니 마리아님이 계시더라. 마리아님은 어느 성당에서나 볼 수 있지만 중국풍의 암굴 조경 속에서 나타나시니 생뚱맞았다.


그 앞에는 긴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성서를 읽는 신자들이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원을 요청했다. '지금 여기'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떠난다면 어디에 가더라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평상심을 가질 수 있기를, 충동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기를,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린 일들이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 뜻대로, 순리대로 이끌어 주세요. 이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으면서 나의 안위를 바라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다. 구원요청 메시지가 전송되기를 바라며 초를 하나 밝혔다. 






성당 본당에 들어가 보았다. 종교건축물은 무엇이든 좋아한다. 사원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의 미적 지향과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건축물은 많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신앙심이 더해지면 숭고미라 불러도 좋을만한 신비한 아름다움이 생긴다. 특히 오래된 건물은 더욱 그렇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나 바람, 절망과 믿음, 헌신하는 마음과 사랑이 충만하게 고여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특별히 웅장하거나 아름다운 건축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런 감정으로 충만했다. 


서개천주교당은 지금도 신부님이 상주해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미사에 참여할 건 아니라 짧게 한 번 더 기도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성당 입구에서 지도를 꺼내보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Do you need help?" 난데없는 영어에 급 당황. 로만칼라를 보고서야 신부님인 줄 알았다. "No, thanks" 반사적으로 답한 뒤에, 어쩐지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여행자라고 말했다. 그는 여행길 조심하라 말하고 웃으며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신부님을 만난 건 무슨 계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려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데, 타인의 선의를 외면하고 내 의지만 믿어왔던 건 아닌지. 





서개천주교당 정문 앞은 엄청난 번화가였다.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건너다가 예쁜 처자들을 붙잡고 길 이름을 물어보니 빈장다오라고 한다. 여기서 뭘하냐 물었더니 신발이랑 옷을 사러 왔다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거리에 넓은 보행자 도로가 펼쳐져있고 길 양옆으로 대형 쇼핑몰이 줄지어 있었다. 일반 차량은 없지만 관광용인 듯 도로를 가로지르는 무개차가 다니고 있었다. 명동을 쭉 잡아늘린 뒤에 차와 노점을 빼내면 이렇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한참 걷다보니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골목이 보인다. 문득 허기가 느껴졌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 양꼬치 5개에 10위안,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우물우물 먹었다. 빈장다오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과일가게가 있길래 기차여행을 위해 귤 3개를 4위안에 샀다.


큰 길을 건너 다리를 건넜다. 제팡차오 옆의 큰 다리인데 동글동글 예쁘게 생겼다. 인도가 둥글게 휘어져 있어서 차도와 거리가 멀어진 채 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공안에게 다리 이름을 물어봤지만 모르겠다고 한다. 









텐진역 근처로 와서 제팡차오를 지나 강변의 벤치에 앉아 있다가 멀리 란저우에서 온 루오씨를 만났다. 그는 화학교사인데 가족들과 함께 베이징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란저우에서 베이징까지 바로 가는 표를 구하지 못했는지 텐진에서 몇 시간 환승을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다. 루오씨와 강변을 바라보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다른 가족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루오씨의 아들이 뜬금없이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여기도 불어닥친 모양이었다. 텐진역 앞에서 루오군과 함께 '나는 사나애'를 외치며 팔을 흔들어댔다. 


내가 시안에 간다고 하니까 란저우에서 시안이 가깝다며,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사진도 찍고 어쩌다 보니 한 시간이 훌떡 지나갔다. 나도 루오씨 가족도 기차 시간이 다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차역에 돌아와 지도를 펼쳐보니 오늘은 10킬로미터는 넘게 걸은 듯 싶다. 많이 걸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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