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5. 03. 금요일
raksumi
지난 기사 |
지난 번 글의 반응에 너무 놀랐습니다.
평소 딴지에 눈팅만 하는 입장에서 없는 글 재주에 용기를 내서 써 본 것이었으니까요. 책임감이 좀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지만 감동을 받으셨다는 내용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고 정말 어쩔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일일이 답변을 하려고 했는데 내용이 많아서 감당이 안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죽지 않는 돌고래 기자 분이 글을 좀 남겨달라고 하셔서 앞으로 제가 아는 한 의학 상식, 특히 산부인과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저희 과에 대해 잘못 아시고 있는 내용이 많거든요.
의학 상식에 대해 쓰기 전, 댓글 중에 병원 이야기를 좀 많이 올려달라는 의견이 많아서 오늘도 가벼운 병원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병원이라는 곳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곳이고 자주 가는 공공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비밀이 지켜져야 되는 사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곳 역시 병원입니다.
오늘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평소대로 딴지스럽게 반말로 갑니다.
산모의 나이는 20세였지. 들어오기 전에 벌써 한 바탕 한 눈치더군. 엄마가 딸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딱 철딱서니 없는 딸과 그 엄마의 모습이었지.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지. 일단 초음파를 봤어. 어, 그런데 쌍둥이인 거야.
쌍둥이라고 하니 엄마가 다시 한 숨을 쉬는 거야. 어떻게 하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나이에 임신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계획된 임신은 아니였지. 남자 친구 그리고 그 산모 모두 자리 잡힌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댁이나 친정의 형편도 그리 넉넉한 것 같지는 않고.
임신한 것도 대책이 없는데 하필이면 쌍둥이야. 딴지스들도 결혼한 사람은 알겠지만 애 키우기가 좀 힘들어? 더군다나 쌍둥이는 하나 키우는 것보다 3배쯤 힘들어. 일하는 아주머니를 고용한다면 2명 고용해야돼. 아주머니 하나가 쌍둥이 갓난 아기 2명 못 봐.
그뿐 아니라 쌍둥이는 산부인과 의사도 싫어해. 임신성 고혈압도 잘생기고 조산도 많고 전치 태반도 많고, 뭐, 이런 건 피할 수도 있지. 운만 좋으면 말이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경우, 쌍둥이는 분만을 수술로 해야돼. 이거 역시 돈이 드는 일이지. 조산으로 태아가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러면 돈이 더 들지.
지금은 쌍둥이 임신하면 나라에서 70만원이 나오는 고운맘 카드가 있었지만 그 때는 그런 게 없었어. 암튼 쌍둥이는 애를 가져서나 키울 때나 돈이 많이 들어. 결국 한 숨만 푹푹 쉬다 갔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임산부인 딸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어. 당장 엄마에게 혼나는 게 두려운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어 보였지. 그런 거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임신을 안 했겠지. 그냥 어리고 예쁘고 착하기만 한 고민 없는 아가씨였어.
이런 경우, 다음 번 외래 때 잘 안오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3주 후인가 그 다음 번 외래 때 엄마랑 같이 왔어. 그렇게 임신이 진행되어가던 어느 날, 40세된 산모가 왔어.
셋째래.
애기 낳은 지 15년 정도 됐는데 임신이 됐대. 아들 낳아야 된대. 집에 아들이 없어서, 그래서 큰 맘 먹고 (?) 임신을 했대.
어, 근데 낯이 많이 익네. 맞아, 바로 그 어린 산모 엄마였어. 처음엔 부끄러워서 나말고 다른 선생님에게 갔다가 귀찮아서 그냥 나한테 왔대. 산모 나이를 보니 엄마도 20살 때 그 산모를 임신 했더라구.
차마 결혼하고 임신 했냐고는 못 물어 봤어(설마 그 나이에 결혼했을 것 같지는 않잖아?). 많이 웃기더라구. 자기도 20살 때 임신 했으면서 자기 딸 혼내는 모습이 생각나서 말이지.
그래서 그 모녀는 나에게 외래를 다니게 됐어. 산모 2명과 애 3명을 내가 관리하게 됐지. 시간을 맞춰서 둘이 같은 시간에 왔지. 같이 들어와서 진료도 봤어.
한 사람 초음파 끝나면 다른 사람이 뒤에서 초음파를 통해 엄마나 딸의 배 안 조카를 보든지 손주를 보든지 했지. 딸 산모는 쌍둥이인데 일란성이었지. 둘다 아들이었어.
그런데 간절히 아들을 바라던 엄마 산모 뱃 속에는 그 쌍둥이들의 외삼촌이 아닌 이모가 있었어. 매일 매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그냥 안 보인다고 했지. 태어나서 젤 먼저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말이지.
별 문제 없으면 나이 어린 이모가 생기는 것은 불문가지였는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예상대로 우리 딸 산모는 조산이 생겨서 1달 일찍 분만이 되었어. (참고로 쌍둥이는 한 달 정도 일찍 난 거 전혀 문제 없어) 문제의 우리 '엄마 산모'는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어.
그런데...
내가 평소 취미 생활로 마라톤을 하는데 아마 일요일 아침이었을 거야. 마라톤 대회 나가느라고 차를 타고 잠실 경기장에 가고 있는데 그날 당직 전공의에게 전화가 온 거야. 배 아파서 왔대. 참 난감하잖아. 대회에 나가야 되는데.
그래서 언제쯤 분만 될 거 같냐고 물어보았더니 금방은 안 되겠대. 집안 전체가 내 고객인데 레지던트에게 분만을 시킬 수는 없잖아? 그 순간 결심했지.
그래서 졸라 빨리 뛰었어. 풀 코스가 아닌 하프 코스인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 경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렇게 좋은 기록이 나온 적이 없어. 마라톤에 있어서는 그 날 커리어 하이를 찍고 나서 그 후엔 계속 내리막이야. (94년의 이종범처럼 말이지)
암튼 무사히 내가 직접 분만을 잘 했어. 쫌 힘들었지만 말이야. 내 나이 40 넘은 지금은 못 할 것 같지만 그 때는 했지.
엄마 산모는, 뭐, 실망 했지. 이미 알고 있어도 막상 성별이 그렇게 나오니까 기분이 좀 다르지. 분만은 문제 없이 잘 되었고. 그 나이에 건강하게 낳은 걸 고맙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그런 위로가 귀에 들어오겠어? 분만하고 나서도 몇 번 병원에 올 일이 있는데 대단했어.
병원 대기실이 완전히 아수라장이야. 어린 조카 2명이랑 태어난지 1달도 안된 이모 그리고 '엄마 산모', ' 딸 산모'가 병원에 같이 오는데 하도 외래가 시끄러워. 사회적 정의에 합당하지 않지만 그냥 빨리 봐줬어.
다른 환자들도 이해하는 것 같았고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 이해를 시켰어.(웃음) 조카는 '엄마 산모'가 키우는 것 같았고.
그후 '딸 산모'가 아빠와 사이가 좀 안 좋은 듯했어. 여러가지 문제로 좀 싸우는데 아마도 돈 문제, 그리고 육아 문제도 포함되었겠지. 그러다가 헤어졌나봐. 깝깝하지.
사실 이럴 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자가 손해야. 주된 수입도 없는데 애를 키워야되니 힘들지. 그렇다고 우리나라 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도 아니잖아?
애기는 엄마 산모가 보고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눈치더라구. 중간에 딸 산모가 좀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는데 괜찮았고.
아무튼 그 후, 다 회복이 되어서 '엄마 산모' ' 딸 산모'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게 되었지. 한 2달 쯤 지났나?
‘딸 산모’와 ‘엄마 산모’가 또 온거야? 예감이 안 좋았지. 왜 왔냐고 물었더니 자기 역시 느낌이 안 좋대.(이러면 난 뭔 줄 알지!). 역시 초음파를 보니 또 임신했더군.(다행히 쌍둥이는 아니였어)
아빠랑 결국은 헤어지고 그 아빠가 경상도 어디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데 헤어졌지만 자기 자식인 쌍둥이들을 너무 보고 싶어했다는 거야. 애들 데리고 아빠에게 얼굴 보여주러 갔다가 차 시간이 늦어서 하루 밤 자고 왔는데 그때인 것 같대.
참 신기하지? 어떤 사람은 아무리 해도 임신이 안 되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덜컥덜컥 잘 되고 말이지.
보통 난자는 배란이 되면 하루 밖에 못 살아. 그 난자가 죽지 않는 하루에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신이 안돼. 그래서 실제로 임신 가능한 날짜는 1달(생리 주긴 중)에 하루나 이틀 정도지.
그럼 배란일에 관계를 가졌어. 그렇다고 100% 임신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야. 아무리 그날이어도 약 25% 정도라고 봐.
참고로 30 넘으면 임신 더 안돼. 이런 말 있잖아?
이 '딸 산모'는 모유 수유하고 있고 애기도 낳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 확률이 더 낮지. 대충 내가 계산해 보니 1/50(그날이 배란일 가능성) * 1/4( 배란일에 관계 가졌을 때 임신 확률) = 1/200, 뭐, 0.5% 쯤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어떡해.
사정은 이해가지만 불법이잖아? 그리고 이거 하는 거 좋아하는 의사는 없어. 나는 조심스럽게 (이왕 이렇게 된 거)그냥 합치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는데 안된대. 마음이 이미 정해졌대. 이미 끝났으니 자꾸 언급하지 말래.
그런 걸 떠나서도 그 형편에 애 3은 키우기 힘들지. 엄마 변변한 직장 없구 쌍둥이들도 겨우 겨우, 그것도 갓난 아기가 있는 친정 엄마가 키우는데.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지만 정말 마음이 편하지는 않더라구.
한 번 더 부탁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문제로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마 다른 병원을 소개 시켜줬던 것도 같고 (그때는 인공 중절 문제가 지금 처럼 막 그런 분위기는 아니였어).
그 후 ‘딸 산모’는 한 번 더 나를 찾아왔어. 이번엔 환자로 온 건 아니고 보험 회사에 들어간 거 같더군. 부탁하러 왔대.
그 날 나는 좀 바빠서 권유를 직접 받지는 못했는데 우리 병원 직원들이 보험에 들어 준 것 같았고 나는 못 들어줬어. 어렵게 찾아왔을 텐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들었어. 애기는 '엄마 산모'가 본다고 간호사들이 그러더라고.
말 안해도 알겠지만 많이 힘드시다고. 몇 년 전, 기억이 나서 병원에 있는 전화 번호로 연락을 한 적이 있는데 전화 번호가 바뀌었더라구.
전문의 처음 할 때 정말 잊을 수 없는 산모였어. 개인적으로 미혼모들이 애기를 낳으면 좀 잘 키울 수 있게 나라에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중절을 하는 많은 산모들이 대부분 애기 키우고 싶어해. 형편이 안되고 어려워서 그렇지. 여자들은 원래 그래. 모성애는 부성애랑은 조금 달라.
암튼 그렇다고.
의사들도 태어나서 시끄럽게 우는 건강한 애기 낳고 싶지, 그런 수술 하고 싶겠어?
우리나라가 복지 국가 되었으면 좋겠어.
raksumi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