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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들은 똑똑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과거 2년제였던 교대 출신과는 질이 다르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젊은 교사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지난 세대들과 선을 긋고, 스스로 격이 다른 지성인인 양 생각한다면 이는 도덕성에 관한 낮은 이해에서 비롯된 터무니없는 자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겠다.


사실 젊은 교사들이 똑똑하다는 의견의 근거는 교대, 사대 입학 커트라인이 높아진 것과 임용고사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것뿐이다. 높은 학업 성취도가 지적 능력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을 수 있으나 필연적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학교 성적이 건전한 지성을 담보한다면, 국회에는 동식물이 아니라 한국 최고의 지성들만이 몰려있어야 한다.


한국처럼 교육환경이 극기 훈련에 가까운 나라에서는 관점에 따라 이들의 공통점을 ‘인내심’, ‘검증된 체제 순응성’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즉 객관적으로 볼 때 ‘큰 일탈 없이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중상위권 성적의 학생들 중,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교대 입학생들의 공통점이다.


이 학생들이 성장해 젊고 똑똑한 교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려면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교(이하: 교대, 사대)가 ‘똑똑한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주장컨대,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은 예비교사로서 나를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많았다. 난 학교를 다니는 내내 ‘교대는 작정하고 우리들을 바보로 만드는가?’라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고, 현장에서 10년 가까이 보낸 지금, 그 의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여기서 잠깐, ‘똑똑하다’의 기준을 짚어보자. 각자의 기준이 물론 다를 것인데, 내 기준은 다음과 같다. 똑똑한 사람은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인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가 아닌,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집중한다. 똑똑한 사람은 의뭉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의심한다. 끝까지 ‘왜?’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대충 퉁치고 넘어가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고, 각자의 생각이 자유롭게 오가는 속에서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과 쾌감을 느낀다.


이런 내 기준에서 볼 때 교대는 그야말로 바보 양성소다. 교대 졸업생들이 모조리, 틀림없이 바보라는 뜻이 아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도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라듯, 교대 졸업생들의 면면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교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내용의 공부를 하는지를 분석하면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육입안자들이 어떠한 ‘교사상’을 원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밝힐 수 있다. 또 말 잘 듣기로는 전국 최고의 인물들이 모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순진한 교대생들이 그 속에서 어떤 함정에 빠지고, 어떠한 성향을 가진 교사가 되기 쉬운지도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이글에서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국·공립 특수목적대학인 교대에 관해서만 기술한다. 중등 교사를 양성하는 사대는 일반대학교의 단과대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어, 교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교사 양성 과정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교대와 사대는 근본적인 문제를 공유하기도 한다)



1. 교대 커리큘럼 : 예비 교사들을 바보로 만들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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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를 다닐 때 늘 허기진 기분이었다. 밥을 못 먹고 다녀 그런 게 아니라, 학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14개 교과 내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배우는데, 초등 교과 내용 혹은 그 과목을 가르치는 ‘방법’에만 치중하다 보니 깊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차라리 고등학교 수업이 더 깊이 있고,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이 취업을 위해 졸업장을 받는 관문쯤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지만, 교대는 일반대학교에 비해서도 그 정도가 정말 심하다.


비교를 해보자. 교대에 입학하기 전에 일반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을 2년 정도 다녔다. 교양과목으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들었는데 당시 교수는 한국의 식민지시대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수탈론보다는 근대화론을 옹호했고, 그 근대화를 이끌었던 주체가 한국의 관료들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간에 여러 찬반 의견이 오갔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는 다른 단과대 선배들이 반론을 제시하고, 깊이 있는 자료를 공유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봤다. 그때 나누고 배웠던 내용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업으로 역사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역사철학 과목을 신청했고, (역시나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공부했다. 이런 지적 호기심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다. 이 즐거움은 전파력이 매우 강해, 설교 따위를 늘어놓지 않아도 학생들은 배움 자체를 즐기고 존중하게 된다.


순수한 호기심에 이끌려 발생하는 ‘지적 몰입의 즐거움’을 교대 커리큘럼은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고등학교처럼 짜여진 시간표가 나오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능과 방법 중심의 커리큘럼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적어 좀처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이런 비판을 제기할 때 주변에서 많이 하는 반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교대의 얇고 넓은 커리큘럼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초등교사는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니까!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내용을 몰아놓는다. 이런 주먹구구식의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이리저리 몸은 바쁜데,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이렇게 얇고 넓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들이 실제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다.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 성취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많은 교대생들은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을 한다. 리코더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 초등학교 성취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냈더니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2)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교 수준의 내용만 알고, 그 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만 배우면 되지 않을까?


어떤 학생이 사회 수업에서 경제 관련 내용을 배우다가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을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뭐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니?’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고, 학생의 주장에서 ‘경제 활성화와 정부의 개입’에 대한 무수한 논의와 이론들을 이끌어내는 교사가 있다. 어떤 교사가 내 아이를 가르치길 바라는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교대에서 골백번도 넘게 들은 말이다. 하지만 방법론 중심의 교대 커리큘럼은 철저히 반대방향으로 짜여 있다. 교사가 경제전문가, 물리학자, 수학자에 버금가는 전문적 지식들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들을 ‘지적 대화’로 이끌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은 갖춰야 한다. 얼핏 뜬금없어 보이는 학생의 질문을 존중하고, 호기심을 활활 불태울만한 이론을 끄집어내고, 다양한 관점들을 소개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똑똑하고 지혜로운 교사가 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일정 수준이란 것이 ‘초등학교 교육과정 내용 수준’이 되기에는 이제 사회가 너무나 복잡하고 고도화되었다.



(3) 다른 나라의 교사 양성과정은 어떻게 다른가?

 

<한국과 핀란드의 교사 양성 과정 비교>


 

한국

핀란드

이수 학점

140 학점

 


300 학점

(학사 180 + 석사 120)


수업 시간

2100 시간

8000 시간

실습 기간

1개월~2개월

 

6개월~ 9개월

 

임용시험

있음

없음

교사 과정 입학 절차

1. 내신, 수능시험

2. 논술, 면접

 

교대 입학

(전국에 10)



1. 내신, 수능시험

 

2. 교육학 서술형 시험

(공고된 입학시험도서에 기반)

 

3. 학교와 동일한 상황을 설정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의사소통 능력 평가

 

4. 면접

 

대학의 교사양성과정에 입학

(단과대학 개념, 전국에 8)

참고자료: ‘핀란드의 교사양성 및 연수제도 현황과 시사점’, 정도상, 한국교육개발원, 2013


핀란드 학생들은 PISA, TIMSS 등의 국제 학력 비교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인다. 학습 결과만 보면 핀란드와 한국은 자웅을 겨룬다. 그러나 한국은 사교육 의존도가 매우 높고 학습 시간도 많은 반면, 핀란드 학생들은 학교 교육이 전부다.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육대학에서 나온 ‘핀란드 교육의 성공비밀’ 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핀란드 교육의 성공 요인은 ‘철저한 교사 교육’이다.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큰 차이를 갖는 한국과 핀란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시사점이 대단히 많다.


첫째,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다. 과목전담 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 과정을 거친다.


 *교육학: 교육에 관한 체계적 이론 (교육에 관한 철학, 사회학, 역사, 심리, 윤리, 연구 등의 내용)

 *교육과정: 계획된 교육 내용 (국어, 수학, 음악, 체육, 과학 등의 각 교과목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의 내용)


둘째, 핀란드의 예비 초등 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 대조적이다(300학점 중, 한국의 ‘교육과정’과 같은 개별 교과과목 내용은 60 학점 정도다).


내가 교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교대 커리큘럼에서 교육학의 자리는 매우 협소했다. 그나마, 임용고사 과목 중 교육학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을 통해서나마 공부를 했다. 특히 교육사회학 부분이 몹시 흥미로웠는데, 왜 교대 다닐 때는 이런 걸 배우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교육학은 임용고사 과목에서조차 제외됐다. 그 바람에 교대에서 교육학의 위치는 더욱 하락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서넛의 신규 교사들과대화 했는데, 그들 모두 ‘솔직히 교육학이 뭐하는 학문인지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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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한국의 교사양성과정은 예비교사들이 교육 철학, 교육을 통한 사회 정의 실현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과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아바타 같은 존재이길 원한다. 즉, 교사가 교육 분야의 비판적 지성인이 아닌 국가가 감독하고 교육부가 공연하는 인형극 속, 줄에 달린 인형쯤이 되길 바란다고 볼 수 있다.


셋째, 핀란드 교사양성 과정의 공통필수과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모국어 사용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이다. 핀란드에서 이것은 교사교육이건, 학생 교육이건 마찬가지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핀란드에서 교육은 ‘대화’다. 교육이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교사와 학생 간 상호 존중의 분위기는 필수이며, 학교에서 모국어 사용 능력을 기르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일국의 대통령이 의사소통이 힘들 만큼 모국어 사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부분이 아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대표로 선출했다는 것은 대화와 소통으로서의 정치와 교육에 한국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넷째, 핀란드 교사 양성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 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한국에서 신규교사들이 인턴 과정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상당하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전혀 연계되지 않는다.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차쯤에 완전히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섯째,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위치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95%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교대생들은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수 십만 원의 강의비, 교재비,자료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나라는 어찌된 게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도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사교육 시장에 돈을 들이붓고 치르는 임용시험에는 지엽적인 암기 내용을 묻거나, 아래와 같은 놀라운 문제들이 나온다.


“비만 오면 우는 청개구리”가 엄마의 유언을 듣고 처신이 난처했던 까닭은?

(엄마의 유언: 내가 죽거든 꼭 강가에 묻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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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초등임용고사 교육과정 기출문제 (국어 3번)

출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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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산에 묻으면 엄마의 유언을 어긴 것이고, 강가에 묻으면 비가 오는 날에 무덤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라는.



2.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개인적으로 다소 쓰기 힘든 주제다. 내가 전국 10개 교대의 상황을 샅샅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까 조심스럽다는 점잖은 이유 때문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내가 겪은 야바위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일반대학을 다닐 때도 깜짝 놀랄 만큼 형편없는 교수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교대는 이상한 교수 발생 빈도가 배 이상 높지 않은가 싶다. 일단 본인이 맡은 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과연 조금이라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교수들이 많았다. 강의시간에 말도 안 되는 숙제를 던져주고 운동을 하러 나가는 교수, 책 베껴 쓰기만 시키는 교수, 뚜렷한 평가 기준도 밝히지 않고 F를 주고는 그 이유를 묻는 학생에게 ‘너 같은 사람은 선생님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만 주장하는 교수 등이다.


물론 괜찮은 교수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교대에 이상한 교수가 유난히 많다는 것은 사실 많은 주변 교사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혹시 내가 졸업한 이후로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을까 싶어 최근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들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나아지기는커녕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가장 능력 없고 이상하다고 느꼈던 교수들이 오히려 그 사이 학과장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교수들이 어떤 검증 과정을 거쳐 임용이 되는지 속사정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추측해보건대 교대의 폐쇄적인 구조와 얌전하고 순종적인 학생들이 이상한 교수 발생 비율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남는 교수 중 한 명의 성격이 정말 괴팍했다. 영화 <위플래쉬>의 플렛처 교수가 그랬듯이 윽박지르기, 약점으로 상처 주기, 평가 기준을 모호하게 해 자신을 신비화하기 등의 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나마 플렛처 교수가 자신의 뛰어난 실력에 기반해 권력을 휘둘렀다면, 그 교수는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는 자인지 끝끝내 밝혀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루는 그가 한국 최고의 문장가이자 지성은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라는 말을 떠들고 있었다. 원래 잡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굳이 조용히 앉아있던 나를 콕 집더니 자신의 말에 동의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당시 강준만을 필두로 한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가슴 뛰게 지켜보던 젊은이가 조선일보 만세! 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심스레 견해를 밝힌 끝에 결국 나는 강의실에서 “역시 빨갱이로구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기 막바지까지 왔지만 마지막에는 강의평가서 때문에 말썽이었다. 익명으로 쓰는 강의평가서에 정중하게 개선 사항을 몇 개 썼을 뿐인데(예: 글씨 쓰기 연습 시간이 줄고, 내용이 강화되었으면 함) 이거 쓴 사람 누구냐고 버럭 거리는 통에 이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나의 어떤 면이 그를 그렇게까지 약 올렸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때 반항다운 반항은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학생들 몇몇이 슬리퍼를 신고 강의실에 왔다거나, 머리를 염색했다거나, 무언가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F를 받고 졸업을 못 해서 그 해 임용고시를 보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교대는 학생의 수업 선택권이 거의 없고, 또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F를 받으면 반드시 그 교수에게 다시 수업을 들어야 했다그래서 그가 내 면전에 빨갱이 소리를 하거나, ‘이 강의평가서 누가 썼어?’라고 눈을 희번득일 때 화도 났지만, 이 괴기스런 교수 하나 때문에 F를 받고 졸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또 교대는 학점으로 내신 결과를 내서 그것을 임용고사 점수에 포함시킨다. 만약 한 학년 학생이 500명이라면, 4학년이 됐을 때 내 학점 총계가 500명 중에 몇 등인지 나온다. 이걸 10개 등급으로 자잘하게 나눠서 임용시험에 반영하니 교수들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교대에는 몹시 순하고 얌전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때 야자 땡땡이 몇 번 친 정도가 학창시절 최고의 아찔한 일탈인 경우가 많다. 다른 대학처럼 다른 학년, 다른 단과대 학생들과 어울려 수업을 듣는 기회도 거의 없다. 같은 반 학생 30명 정도가 4년 내내 함께 수업을 듣는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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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도 극히 적다. 입학할 때부터 교사가 되리라 정해진 학생들이다 보니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든 크게 동요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임용 정원과 관련된 문제 외에는 사회 참여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그런 것을 구경할 기회조차 거의 없다. 요즘은 일반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정도 면에서 교대는 한층 심하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공부는 할 틈도 없이 스펙 쌓는다고 고생하는 일반대학생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과목 저 과목 배운다고 껑충거리다 제대로 배우는 것도 없고, 스타 강사에게 수십만 원씩 강의료를 내가며 임용고사 공부만 하다가, 정작 현장에 나오면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모든 걸 배워야 하는 교대생들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결국 이러한 폐쇄적인 학사구조와 교대 특유의 환경 속에서, 일부 교수들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그 피해는 교대 학생뿐만 아니라, 이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교육하게 될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미친다. 



3.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그렇게 4년을 보내서인지 젊은 교사들 사이에는 매사 대충 퉁치는 습관이 만연하다.


교장이 비리를 저질렀는데 그것만 빼고는 인자한 분이시니 악담하지 말자고 한다. 학교에 예산이 부족한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분명 무상급식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교총이든 전교조든 교원단체이긴 매한가지니 둘 중에 하나만 가입하면 된다고 한다. 나이 많은 선배 교사가 내게 전교조라 그래서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을 때는 웃었지만, 젊은 교사들이 이렇게 물 흐르듯 매끈한 사고를 시전하며 똥과 된장을 가리지 못할 때는 무서웠다.


매사 적당히 마무리를 짓는 못된 습관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 131쪽)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이렇게 참으로 열심히도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결과가 오늘이다. 도둑질이 나쁘다고 가르치면서도, 현재의 도둑들이 과거 도둑들의 자손이거나 법적 상속인들이라는 사실을 퉁치는 두루뭉술한 교육의 결과가 현재 우리가 사는 2016년의 모습이다.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시간에 성소수자에 관해서 아예 언급하지 말라 지시했다. 교육부가 그러거나 말거나 난 성소수자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사회적 불평등에 처하는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몇 번이고, 확실하게 교육하겠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자들이 타인에게 일상적 모욕과 폭력을 가하는 것을 방관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하겠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특정 지역인을 생선으로 비하하는 자들의 뒤를 이어, 성소수자들에게 선을 긋고 혐오의 언어를 생산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동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배 나오고, 담배 냄새나는 아저씨였다. 어릴 때 농사짓던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하셨던지 모내기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허리가 다 아프고, 이마에서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새참 얘기에는 침이 꼴깍 넘어가고, 수확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신이 났다.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 영세농업인들이 많아. 쪼끄만 땅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야. 하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한 사람이 가진 땅이 크지. 우리처럼 손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 기계를 많이 쓰고, 농약도 헬리콥터로 뿌린다! 뿌와아아앙! 그래서 쌀 개방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우리나라 농부들은 가진 땅이 좁아서 미국 농부들처럼 쌀값을 낮출 수가 없거든. 농부들이 다 망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 농부들이 없어져. 그러면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쌀을 사다 먹어야 돼. 식민지가 된다. 그 사람들이 쌀값을 왕창 높여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나라 쌀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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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경제 성장은 낮은 쌀값과 낮은 임금 정책 덕분이었지만 그로 인해 농민과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영세농업, 식민지, 저곡가, 저임금 정책 같은 말들을 4학년 꼬맹이는 이해 못 할 것 같은가? 현실에 뿌리를 내린 모든 이야기는 훅훅 박힌다. 얼마나 깊게 새겨졌던지 대학생이었던 2005년, 쌀 협상 국회 비준안이 통과되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대도시를 떠나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농민들이 처한 상황에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것은 교육 덕분이다. 2년제 교대를 나온, 배 나오고, 담배 냄새 풍기던 동네 아저씨 같았던 선생님이 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이야기를 내 가슴에 박아 넣었기 때문이다.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준 진짜 교육자, 진짜 선생님이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교대에 입학하고, 임용고사를 통과하고, 빠릿빠릿 눈치 빠르고, 나이 드신 분들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화려한 학습 자료를 만드는 우리 젊은 교사들은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진짜 선생님이었던 적이 있는가? 교대는 이런 진짜 선생님들을 배출하기 위해 최선의 여건을 마련하고 있는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교사들’과 ‘현실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는 교사들’ 중 누가 ‘덜’ 역사의 진보에 기여했는지는 다다음 세대 정도가 평가해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젊은 교사들이 지금처럼 현실을 외면한 채, 우리들을 똑 닮은 - 말 잘 듣는 - 학생 만들기에만 몰입한다면 사회의 재앙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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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