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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 고래를 임신하면서 '인권분만', '울지 않는 아기' 같은 것을 배웠다. 자연분만을 넘어 아기와 엄마가 진실로 하나가 되어 출산‧탄생하는, 오롯이 엄마와 아이, 주변 가족들이 중심이 되는 축제 같은 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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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분만'은 흔히 '르봐이예 분만', '폭력 없는 분만'등으로 불린다.

<강동구보건소>


아이가 건강하고, 내 몸이 허락한다면 꼭 이런 출산을 하고 싶었다. 그게 머리뼈가 겹쳐지는 고통을 겪으며 엄마 산도를 통과해 세상에 나오는 아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딱히 물려줄 것도 없는데 첫 세상 맞이를 아름답고 평화롭게 해주어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빠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축하받게 해주고도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먹을거리를 조절하고, 남편과 마음의 준비도 하면서 열 달을 보냈다. 병원에서는 키가 작아 자연분만도 힘들지 모르니 수술을 각오해야한다고 했지만 좋은 조산사 선생님을 만나 무사히 고래를 낳았다.


우리의 선택은 참말로 탁월했다. 유난히 긴 우리 고래가 세상에 나오느라 엄마와 아기가 좀 힘들긴 했지만 고래는 나오자마자 울지 않고 엄마 젖을 먹었고, 촉진제나 회음부 절개 같은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내 몸도 돌까지 밤낮이 바뀌고 유난히 잠이 없는 우리 고래와의 힘든 육아 전쟁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


둘째 빵돌이 때는 다섯 살 고래가 탯줄을 자르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었다. 동생 출산에 첫째도 깊이 들어올 수 있어 행복이 배가 되었다.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우리 고래는 동생이랑 아무리 싸워도 분해서 울먹울먹할지언정 손을 대지는 못한다. 형아한테 너무 까불어서 엄마아빠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한 방 때리라고 해도 손이 올라갔다가는 울어버리고 만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배달(분만을 영어로 ‘delivery’라 하지 않던가)받지 않고 엄마와 아이가 서로의 속도에 맞춰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가족이 출산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셋째 아이 출산 때는 한 걸음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두 아이를 끌고 어딘가로 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아이들이 떠들면 혹시 누군가 같이 있을 때 민폐일 테니 뱃속에 있는 포뇨 공주님도 익숙한 우리 집에서 출산을 맞이하기로 했다. 분만용품은 조산사 선생님이 챙겨 오시고, 이불과 침대시트, 아기 옷과 기저귀는 내가 준비하면 되고, 낮에 아이를 낳을 때를 대비해 커튼과 신문지로 햇볕을 가려주면 되지 않는가? 포유동물이라면 내 몸 잘 관리해서 아이를 못 낳을 리 없고, 모든 포유동물들도 자기 은신처에서 아이를 낳지 않던가! 가정분만이야말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첫 선물이자, 평생을 살아가는 긍정의 에너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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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 병원에서 다운증후군에 대해서도 알아봤더니 태어나자마자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병은 아니라고 한다. 혹시 아프게 태어나더라도 집에서 나오면 그 아픔을 가족이 감당하기에도 훨씬 가벼워지겠지!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조산사 선생님께 가정분만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뜻밖에도 난색을 표하셨다. 예전에는 가정분만도 왕왕 해주셨다는데 이제 연세가 드셔서 힘에 부치신가? 그래도 셋째를 받아주시는데, 그동안의 정도 있는데 잘 설득하면 해주시겠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어떻게 설득할지 궁리나 해보자.


산부인과 의사 해먹기 힘들다는 말은 그만큼 아이를 낳을 때 변수도 많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언제 진통이 시작될 지도 모르고, 진통 중에 무슨 변수가 생길 수도 있고, 산모의 진통을 완화해 주거나 아이의 상태를 체크해주고, 심리적 안정도 주고, 아이를 낳고는 산모의 몸을 살펴주고, 다른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안심시켜 주기도 해야 하니 경험 많은 조산사분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가정분만에 대한 결심이 확고해진 후, 비용과 절차,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즐거워야 하는 임신 기간 중에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정분만 비용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가정분만을 도와주는 조산사분의 임의대로 정해진다. 대략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선이다. 산모 거주지 건강보험공단 지사에 가면 25만 원을 환급해준다고 했다. 150만 원에 25만 원이면 쥐꼬리만 하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다. 우리나라 각종 복지 수당이 어디 말 안 되는 게 이것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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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그런데 좀 이상하네? 병원이나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병원이나 조산원에서 비용을 청구하는데, 왜 집에서 아이를 낳을 때는 산모가 직접 청구하지?


궁금한 것은 풀어야 맛인지라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광활한 인터넷의 세계에는 없는 게 없고, 안 나오는 게 없는 법인지, 작정하고 인터넷을 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나왔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답이었다.


대한민국 복지 종합 안내 사이트인 ‘복지로’에 의하면 가정분만을 했다고 나라에서 주는 돈의 명목은 ‘위급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주는 요양급여’였다. 돈이 없거나 병원이 없는 곳에 살거나 기타 이유로 병원이나 조산원을 이용할 수 없는 불쌍한 산모에게 몸조리나 하라고 주는 돈처럼 보였다. 내가 우리 귀한 공주님을 위해 열심히 몸 움직이고, 먹을거리 조절하면서 노력에 노력을 다해 하려는 일이 불쌍해 마땅한 일이란 말인가? 정말로 화가 났다.


뒤따르는 의문 하나 더. 그러면 조산원도 비우고 불편한 우리 집에 와서,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는 산모의 진통을 지켜보며, 내 몸에서 대소변이 나오면 닦아주고, 내가 엎드려 있으면 아가 상태를 확인해보려고 같이 엎드려가며, 옆에서 수근대고 노심초사하고 떠들기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안심시켜 주고, 아가가 태어나면 한참을 기다려 탯줄을 자르게 도와주고, 또 한참을 기다려 산모의 몸에서 태반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뒤처리를 해주는 조산사는 뭐지?


내가 아무런 의료혜택도 못 받는다면 우리 집에 와서 나의 출산을 도와준 조산사는 투명인간이거나 혼자 아이를 낳는다니 불쌍해서 구경 온 이웃집 아줌마가 선의를 베푼 것에 불과해진다. 그 말은 내 출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년간의 경험으로 신속하게 어떤 조치를 취했어도, 내가 너무 고생해서 괘씸하다며 또는 나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겨 불법 의료 행위로 신고할 경우 꼼짝 없이 조산사는 범법자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나에게 가정분만을 강권하지도 않았고, 순전히 나, 산모가 원하니 산모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의 평화로운 출산을 위해 한 일인데도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의 가정분만 제의를 반가워하지 않으셨던 게다. 백퍼센트 이해되었다. 생판 모르는 집에서 변수가 많은 출산을 돕는다는 것은 조산원에서 출산을 도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터인데도 불법 의료행위가 되어버리다니,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우리나라는 가정분만의 개념조차 없었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하면 25만 원 이상의 돈을 받는데 가정에서 자연분만을 하면 왜 달랑 25만 원인가? 아무리 의료혜택을 못 받았어도 똑같은 자연분만 아닌가? 그렇다면 의사가 없이 자연분만을 이뤄냈으니 그 수가만큼을 자연분만 주체인 산모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어린이집 보육비와 가정양육비의 차이만큼이나 간극이 넓었다. 가정에서 양육하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대충대충하고 돈이 덜 들것이라 생각하여 그리 한 처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부득이하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요양비’라면 피치 못할 사정을 감안하여 더 많은 혜택을 산모에게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돈 몇 푼 더 받자고 위험을 무릅쓰고 귀한 아이를 집에서 낳겠다는 산모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안고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첫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가정분만 개념 자체가 자리 잡지 못하고, 아이는 무조건 산부인과에서 낳아야한다는 병원중심적 출산 관념이 있다.


둘째, 성남시에서 공공산후조리원을 짓는다고 했을 때 반대가 심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산부인과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아 고생하는 병원들에, 조산원과 가정분만까지 겹치면 더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복지와 복지정책에 대한 태도, 국민에 대한 태도가 있다. 한때 가정양육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니 엄마들이 그것을 양육에 쓰지 않고 생활비로 쓴다며 바우처 형태로 지급해 아이의 양육에만 쓰게 하도록 하겠다는 소문(?)이 돈 적 있었다. 아이의 간식을 챙기고, 아이 친구들이 오면 먹을 것을 넉넉히 내주고,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하릴없이 창밖을 보는 여행을 떠나는 것 모두는 아이를 잘 키우려는 부모의 양육이니 생활비와 양육비의 경계가 무색해지는 것은 다반사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을 감시하지 않으면 돈을 다른 곳에 전용, 횡령할 것이라는 잠재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서류로 복지 수급을 규제하고 선별해서 복지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분만 문제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가정양육을 의료혜택으로 인정해 병원에서의 자연분만과 같은 수가로 적용하면 못된 국민들이 열약한 집에서 아이를 낳고는 수급비를 전용하지 않을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국민들이지. 그것은 아이의 생명과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길 테니 절대 안 돼! 돈을 함부로 횡령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해야지, 음지에 있지 말고 병원으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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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작은 문제라고 생각했던 가정분만이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까지 바뀌어야 가능해질 것 같다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는 것으로.


내가 넷째를 낳을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없어야 하기에 나는 더 이상은 아니 된다) 이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 같지만, 그게 아니다. 내 아이들이 아이를 낳을 때는 꼭 자연분만의 최고봉 가정분만으로 탄생의 기쁨을 더 온전히 누렸으면 한다. 해서 계속 신경 쓰고, 되어가는 모양을 지켜볼 생각이다. 내 아이들이 가정분만을 하고 싶어 한다고 가정분만이 완전히 허용된 다른 나라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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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엄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