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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올라간 글에서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으로 출발한 커뮤니티'라 전제한 것이 틀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 또한 박가분 씨의 글을 읽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제시된 팩트와는 별개로 지금 이 논쟁에 임하고 있는 한쪽은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커뮤니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나는 이 글이 그런 인식을 가진 이들에게도 읽어볼 만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글의 주제는 '메갈리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진 원인'을 진단함이다. 해서 부득이하게 이전 글의 전제를 그대로 갖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메갈리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자면 글이 너무 복잡해질 것이다. 이해해주시길.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떠올릴 때 곧잘 정의가 '이미 실현된 사회'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꿈에서도 실현이 불가능하다. 사람은 계속 태어나니까. 누군가는 무지할 것이고 정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을 교육, 최악의 경우에는 강제력을 동원해 반사회적 언행이 불이익으로 이어짐을 알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사회란 정의가 이미 실현된 사회라기 보다 '결국은 정의를 지향하게 되는 사회'에 가깝다.


넥슨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한 성우가 논란의 단체를 후원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들은 그 성우의 작업물을 배제시켰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것은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넥슨은 유저들을 설득해야 했다. 성우를 쓰는 데 일일이 성향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으며 이미 작업된 캐릭터 목소리를 재녹음할 경우 제작 비용이 증가함과 함께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성우의 작업물을 쓴다고 넥슨과 클로저스 개발진 또한 메갈리아(편의 상 메갈리아4랑 구분짓지 않고 쓰겠다)를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선을 그어주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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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번 더 냉정해져야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디 이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곳이던가? 넥슨의 선택은 이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 받을 수 있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작업물이 사상에 따라 처분을 달리 하게 된 이 사건이 심히 불편하다. 그러나 넥슨은 기업으로서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최초 원인은 넥슨에게 '이 성우 목소리가 나오는 게 불편하다'며 압박을 가한 소비자들이다. 그들이 폭력적이거나 꽉 막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우가 후원하는 메갈리아가 반사회적 단체라고 생각하여 이 일을 벌였을 것이다. 그런 단체를 후원하는 성우가 내가 하는 게임에서 배제되는 것이 그들에겐 일종의 정의구현이었을 거란 얘기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왜 정의구현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직접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응징하고 있다.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람이 발견되면 SNS 상에 알려 조리 돌림이란 걸 당하게 하거나 반사회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특정 커뮤니티 이용자가 포착되면 그의 직장으로 해고하라 탄원을 넣는 식이다.


기업은 사람을 쓰기 전에 면접 등으로 인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반사회적 사상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를 미리 파악하는 건 어렵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파악하는 사람의 주관이 끼어들어 판단을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성향은 어지간하면 파악하려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선악을 혼자 판단하려 드는 것은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인 동시에 판단이 잘못될 경우 사람 하나를 골로 보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래서 이 사회는 약속해둔 바가 있다. 1차로 교육과 정보화로 반사회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 혹은 그런 사상을 품는 이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2차로는 처벌 과정의 전문화를 통해 교육의 여부와 상관 없이 계속해서 반사회적 언행을 할 경우 이것의 경중을 객관적으로 판단, 적절한 선의 불이익을 당하도록 조치한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우리는 세상의 일들이 결국은 정의롭게 마무리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살 수 있다. 넥슨 같은 기업이 굳이 이것저것 재가며 성우를 쓰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보이콧하지 않아도 반사회적 단체를 후원하는 성우가 있다면 그에겐 결국 정의로운 결과(자기가 후원하는 단체가 논란이 되는 걸 보고 후원을 끊거나 점점 깊이 빠져 기어이 반사회적 언행까지 하게 된다면 처벌을 받는)가 따를 테니까.  


전문화된 정의 구현 시스템은 집행 과정의 착오나 미숙함으로 엉뚱한 사람이 피해보는 불상사를 최소화한다. 혹 실수하더라도 책임 소재가 분명하니 개개인이 정의를 집행하는 것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그런 약속이 있음에도 정의 집행에 민간인이 직접 나선다는 건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깨졌음을 의미한다. 검찰과 경찰, 행정기관까지 범죄세력과 결탁한 고담시에 폭력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배트맨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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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 나라가 사필귀정으로 흐를 것이란 믿음이 깨져있다. 반사회적 사상을 가진 이들이 결국엔 날조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마주하게 될 거란 믿음도 없고 그들의 사상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내가 보호받을 수 있으리란 믿음도 없다. 


길어졌지만 여기까지가 이 글의 전제다. 이제 메갈리아 얘기를 해보겠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다. 내내 메갈리아 후원 성우를 배제한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했으면서 이걸 메갈리아를 분석하는 전제로 삼겠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이 자경단의 행동 동기가 메갈리아 옹호 논리를 펴는 진영-메갈리아 지지를 비판하고 배제하려는 진영 양 쪽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미러링이 메갈리아가 내부적으로 취하는 전략이라면 외부적으로 취한 전략은 자신들이 자경단이 되어 직접 응징하는 것이었다. 즉, 돌아다니면서 여혐종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보이면 여럿이 달려들어 털어주는 방식을 주로 써왔다. 소라넷 폐쇄를 위해 이들이 했던 행동을 떠올려보자. 소라넷을 한다고 추정되는 이의 SNS를 통해 '소라넷 하냐'고 묻고 까발리는 것이 이들의 주요 전략이었다는 걸.   


지금 진보정당이나 언론, 논객 등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확산되는 반메갈리아 정서에 대해 가장 삽질하고 있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페미니즘이란 정의를 극단적인 수단을 써서 나마 실현하려는 자경단과 이성을 잃은 나머지 피아 식별도 못 하게 된 어리석은 군중의 대립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논쟁은 각자 자신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대립하는 자경단 vs 자경단의 구도인데도. (히어로라고 하진 않겠다.)


배트맨은 분명 범죄자이다. 아무리 잘못한 놈이라도 공권력을 위임 받지 않은 사람이 나서서 뚜드려 패는 건 사회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담이란 도시에서 있으나 마나한 경찰의 존재를 들먹이며 '배트맨은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를 얻지 못한다. 여성 인권을 위해 극단적인 수단을 쓰는 건 옳지 않다는 비난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성우의 티셔츠 인증을 문제 삼고 웹툰 작가를 보이콧하느냐는 비난 또한 이에 해당한다. 고담 같은 곳에서 정의는 생존의 문제다. 어설픈 논리를 갖다대면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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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이 시빌워나 배트맨 vs 슈퍼맨 같은 이야기라면 둘 중 자신의 명분을 더 잘 지켜온 쪽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이전 글에서 나는 '메갈리아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험한 커뮤니티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팩트임을 지적한 바 있다. 곧 메갈리아의 명분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원인은 첫째, 충분한 자기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경단 활동은 앞서 서술해드린 위험성과 폭력성 때문에 하는 사람의 성찰이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다른 대안은 없나? 나만을 위한 정의는 아니었나? 생각할 거 참 많다. 하지만 해야 한다. 몹시 고민하며 해도 엉뚱한 사람 때려 잡을 수 있는 짓이니까. 그래서인지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도 현직 검사인 하비 덴트를 자기 대신 새로운 정의의 상징으로 끌어올리고 자신은 손 떼고 싶어한다.   


메갈리아가 셀프 경비 활동을 시작한 명분은 기존의 여성 인권 운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기인한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이나 평범한 여성 운동으로는 공포에 떠는 여성들을 지켜낼 수 없으니 극단적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 썼던 '줄 서지 않는 버스 정류장'의 비유를 다시 가져와 보겠다. 좌석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면? 줄을 만들 시작점을 표시해주면 된다. 그런데 메갈리아는 이걸로 해결이 안 될 거라고 보고 안으로는 미러링이라며 줄 안 서는 버스 정류장을 재현해 보이고 밖으로는 줄 안 서는 사람을 하나하나 찍어 인터넷에서 조리돌림을 한다.  


여기에 대고 대한민국이 정말로 줄 서기(여성 인권)에 답없는 국가였나를 따지진 않겠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바는 이 질문에 대해 사람마다 답을 달리 할 거라는 점이다. 메갈리아가 셀프 정의 구현이 부득이한 상황인가를 성찰했다면 이 온도 차는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여성 인권에 대해 노답이며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데에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해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메갈리아가 별다른 성찰 없이 일찌감치 눈에 띄는 악인(여혐종자)을 때려 잡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은 딱히 대안이 없어서 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오늘 날 대한민국 사회에 팽배한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흔히 일어나는 조리돌림을 별 다른 고민 없이 그들도 했을 뿐인 것이다.  


여기에 대해 동의를 하지 못하겠다면 메갈리아에 한국 100년 여성 운동 역사가 얼마나 녹아 있는지를 살펴보시길. 대부분 20대, 많아봐야 30대인 이 커뮤니티 회원들에게는 멘토로 보이는 존재가 잡히지 않는다. 메갈리아를 통해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다는 게시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한민국 여성 인권 운동이 마냥 실패만 거듭해왔던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5년 전 '성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옷을 헤프게 입지 말라'는 캐나다 경찰의 발언에 반발해 일어난 '슬럿 워크'만 해도 비교적 희망적인, 그래서 계승해볼 만한 운동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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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남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외국발인 데다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성범죄의 원인을 여자의 옷 차림으로 돌리는 남자들을 찾아내며 직접 응징을 가하지 않고 인식 개선 포인트를 알리는 선에서도 세련되게 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임은 분명하다. 줄 서는 지점을 표시해주는 것으로 줄 서는 정류장을 만들고자 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이 운동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오피니언을 한겨레가 실은 바 있다. 대체로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메갈리아가 이러한 과거의 사례들에서 성공적이었던 부분은 계승하고 효과를 거두지 못한 부분은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는가 질문해본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란 힘든 게 현실이다. 인식이 이러한데 '우리는 벼랑 끝에서 마지막 수단을 택한 것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과정 없이 코스튬만 챙겨 입고 나간 자경단은 지독한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이 바닥에서 아마추어는 엄한 사람 때려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험인자이기도 하다. 이 점이 메갈리아에 대한 평판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이들의 명분이 무너진 두번째 이유, 대의의 상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재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 쓰는 배트맨과 달리 대한민국의 자경단은 소위 쪽수로 밀어부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무기가 없다. 정의롭지 않다 생각되는 자가 있으면 자신이 애용하는 커뮤니티에 좌표를 찍고 지원을 요청한다. 그런데 이 쪽수야말로 진정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이다. 


메갈리아 또한 이 '다수'라는 무기를 애용해왔다. 여혐으로 판단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들 커뮤니티에 그의 SNS 계정이나 신상을 공유하고 몰려가서 응징한다. 그런데 만약 최초의 판단이 틀려서 여혐과 무관한 사람을 타켓으로 했다면? 거기엔 다수의 가해자에 의한 소수의 피해자만 남는다. 아무리 강한 사람, 명성을 거머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다구리를 치는 순간 만큼은 현실 세계의 강자(남성) vs 약자(여성) 구도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저 다수가 권력이 되는 것이다. 이 권력을 수시로 휘두르면서 (최소한 인터넷 상에서는) 메갈리아=약자를 대변하는 곳이라는 공식이 희석되어 버린다. 현실 세계에서 여성이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과 인터넷 공간에서 몰려다니면서 부족한 근거(주로 스샷 몇 장)로 '쟤 여혐', '쟤 소라넷 회원'하고 낙인 찍고는 다구리 치며 몇몇 피해자를 만들어온 사실은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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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피해자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실수를 다루는 태도다. 


이런 강력한 무기를 다루는 자경단이라면 한 번 쯤 빠지는 유혹이 있다. 이 힘을 사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서 때릴 수 있다. 다 같이 입을 모아 맞은 놈이 나빴다고 해주면 때린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이다. 이 때문에 각종 코믹스나 영화에서 감당 안 되는 힘을 얻은 히어로는 힘을 포기하거나 누구도 못 쓰게 만든다. 버릴 수 없는 경우 자아를 끊임 없이 견제한다. 헐크를 견제하는 브루스 배너처럼. 


그런데 메갈리아는 한 없이 자기 집단의 이익에 집중하는 쪽으로 빠져든다. 같은 여성이라도 자신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흉자(흉내자지), 명자(명예자지) 등으로 부르며 비하하고 여성보다 소수자인 게이나 장애인도 서슴 없이 비하한다. 페미니즘이 결국 인권 운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기 이외의 소수자들의 인권을 다루는 메갈리아 유저들의 태도는 그들에게 대의가 없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약자든 무고한 사람이든 가차 없이 뚜드려 팰 것 같은 자경단을 어느 누가 응원하겠는가?

 

지금까지 메갈리아가 여자 일베로 불리게 된 이유들을 살펴봤다. 대화보다는 커뮤니티 회원끼리 즐기는 패륜 미러링으로, 그리고 별다른 자기 견제 없이 사용하는 극단적 수단들의 폐해로, 메갈리아는 결국 반사회적 커뮤니티의 이미지를 짊어지게 되었다.  


한 성우의 인증을 두고 벌어진 일들 치고 과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사건을 한 단계 더 키운 웹툰 작가들의 독자 비하 발언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그냥 불난 집에 휘발유 부었으니 불이 커진 거다. 뭔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러나 메갈리아 유저들이 조금만이라도 커뮤니티 밖에 존재하는 집단을 배려했다면 한 성우의 후원 인증이 이렇게까지 커다란 사건으로 확대되진 않았을 것임을 헤아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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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자기들만의 커뮤니티에 갇혀버린 여성들의 공포를 이해해야 한다는 면에서 메갈리아를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보는 게 옳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 또한 적을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음을 곱씹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선량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죄 지은 사람이 죗값을 받지 않는다. 착해지라는 얘기가 '안전하길 포기해'와 동의어처럼 되어가고 있다. 두려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수단의 정당함 따위 졸라 예전에 끝났다. 


이런 세상이라 앞으로도 사람들은 각자 정의를 챙길 것이다. 때론 목적을 위해 과한 수단을 동원하기도 할 것이다. 최선은 아무도 자경단 짓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메갈을 후원한 사람이 게임에 나오든, 이 때다 싶어 여혐 발언을 늘어놓는 사람이 생기든, 모두 사필귀정으로 흘러가리라 믿고 기다려볼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부단히 자아성찰을 하며 타락하지 않는 자경단을 희망하는 선에서 타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메갈리아가 대의를 잃는 과정을 분석한 이 글을 이번 논쟁을 접한 모든 이들에게 던져드리고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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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