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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지하철 입구 근처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모자 옆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엄마는 이에 대해 남자에게 지하철 입구부터 10미터 안은 금연구역이므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정당한 항의를 하였고 남자는 이 엄마의 항의에 분을 못 이겨 엄마를 폭행했다고 한다. SNS에서 들은 이야기라 사실 확인은 힘들지만 벌어지지 못할 일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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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과 '차별, 억압 없는 세상'이란 말이 같거나 비슷한 값을 갖는다 치면 난 후자의 표현을 더 선호한다. 모호한 평등이란 말 보다 차별이란 말이 싸워야 할 대상을 선정하고 그것을 소거하는데 훨씬 더 구체적 방법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인권선언이나 헌법 조문을 들먹이지 않아도 문명사회라면 차별이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하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고개만 돌려도 그렇지 않다.


먼저 차별이라는 말에서 몇 가지 정보를 뽑아보도록 하자. 우선 차별의 주체는 강자다. 머릿수의 힘이든 비록 소수지만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든 차별은 언제나 사회적 강자의 행위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과 강자를 구별 짓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지언정 차별이라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차별은 대부분 강자로부터 구분지어진 약자의 정당한 권리 박탈이 뒤따른다.


그 박탈된 권리가 공기 중으로 증발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박탈된 권리는 구분지은 강자의 소유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즉, 착취가 된다. 이 착취의 과정에서, 행위자가 스스로 강자임을 인식하거나 남의 권리를 뺏을 의도 등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기득권이 그렇듯이 아마도 의도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 집단의 구성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뺏긴 것이 자신의 권리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운명 지워진 것을 돌리는 데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 차별이란 것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것은 인내의 대상이 아니라 고쳐나가야 되는 부분이다.


사회적으로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운 역사를 굳이 역사책에서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신문의 사회면만 봐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린아이들 교실에서 벌어지는 집단따돌림이 그렇고, 대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학교에서 '데모할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다. 거리에는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 임차인이 있고 직장에는 월차 연차 못 쓰고 야근에 시달리는 월급쟁이들이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것을 넘어선 것들이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지고 누려야 할 부분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약자라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없었는데 어떤 강자가 선선히 손에 있는 것을 내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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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주장에 대해 강자들의 대응 방식 또한 가짓수가 많진 않다. 소유한 것을 지키기 위해 반사적으로 일단 발을 빼고 본다.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의 따돌림에 대해 책임이 있는 부모들의 반응은 대게 좀 짓궂은 장난을 쳤을지언정 우리 아들, 딸은 남을 괴롭히거나 집단 따돌림을 시킨 적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직장에서도 임신을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지는 않는다. 임신한 직원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아이의 육아를 위해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업무가 미숙하거나 품위를 해쳐서 해고된 직원이 있을 뿐이다.


자신들은 결코 뺏은 적 없다고도 한다. 70년대 평화시장. 허리도 펼 수 없고 환기도 안 되는 일터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하루 14시간이상 노동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위해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것과 사람답게 살 정도의 임금을 요구하며 분신한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지금 받고 있는 대우가 너희가 한 일과 능력에 따른 정당한 임금이라는 조소였다. 수십 년 버젓이 이뤄지던 특정지역의 차별 이유는 원래 남 뒤통수나 치며 도둑질을 일삼는 게으른 놈들 탓인 반면, 차별했던 그들이 그동안 반사적으로 누렸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되었고 시정하려고 들려는 날에는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들고 일어난다.


차마 발뺌하기 민망하면 방식의 과격함을 지적한다. 총과 칼 그리고 탱크를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학생과 시민들이 손에 쥔 깨진 돌과 화염병을 문제 삼으며 질서를 교란하는 과격시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파업은 언제나 예외 없이 불법파업이었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불법파업만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판사도 어떤 노동부장관도 어떤 대통령도 합법파업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에 엄벌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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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랜드 사태


인터넷은 지금 '나는 왕자가 필요 없다'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로 벌어진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우선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남자이며, 메갈리안이 어떤 사이트인지 미러링이 뭔지 그리고 페미니즘이 어떤 이념인지 네이버 사전 정도의 개념 외에는 알지 못한다. 전형적인 사회의 남성이라고 할 내가 여성들이 주장하는 부분에 대하여 특별한 공감 능력을 가졌을 리 없다. 솔직히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운 이 글을 스스로 페미니스트이라고 외치는 여성들이 수고하여 읽어 볼 것을 원치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무리의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내가 속한 무리의 남성들이 이들의 주장에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 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좀 뜨악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티셔츠에 반응하는 남성의 대응 가운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장은 여성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인터넷 신문 칼럼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약자라는 명제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 이유로 40대 여성임대인이 있고 20대 남자 임차인이 있을 수 있으며 이 경우는 남자가 더 약자이므로 일률적으로 여성을 약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경우 40대 조물주 위 건물주 여성은 우리가 흔히 사회적으로 남자에 대비하여 분류하는 '여성'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물주는 이 사회의 약자도 아니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구별과 연관이 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류면 혹 모르겠지만. 헛발질이다.


다음으로 그럴만한 정당한 차별이라는 반응도 많다. 주로 물리적인 힘이 부족한 여자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열거된다. 경찰, 소방관, 군인. 하나 같이 극단적인 예로 일반적인 현상을 정당화 하려고 한다. 생각해보자. 영화에서 깡패 때려 잡는 형사로 연기하는 박중훈처럼 싸움을 잘하는 남성만 경찰이 될 수 있는가? 그런 남자가 그리 많던가? 정말 우리나라 남자 경찰들이 모두 물리적으로 그 정도의 무술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경찰이라는 조직은 힘만 쓰는 보직으로만 이루어져 있는가? 직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여자는 6시가 되면 무섭게 퇴근하고 서로 잘 헐뜯으며 문제를 많이 일으키므로 회식과 야근에 시달리는 남자가 고위직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너무 흔하고 흔한 만큼 진부하다.


이제 방식의 문제만 남는다. 미러링은 남성 혐오라는 것이다. 혐오는 폭력이므로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점잖게 충고까지 덧붙인다. 여자가 설득해야할 것은 남성인데 여성들만 보는 사이트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미러링이라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미러링이 혐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라는 무리가 아직 이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분류에 비해 약자임을 인정한다면, 또 거기에 어떤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차별로 인하여 별 것 아닌, 태어날 때부터 남성으로 분류되는 행운으로 인하여 혹시 정말 하찮은 남의 권리를 빼앗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쪽의 주장에 대해 남성들 스스로 돌아볼 수 없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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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그 어떤 여성들의 방법이 옳지 않다고 문제 삼거나, 오히려 이 땅에서 남성도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을 해도 정말 늦지 않다는 것이다. 약자라고 생각할 땐 싸움의 대상을 괴물이라고 비난 하였는데 자신이 우연한 기회에 강한 쪽에 서 있다 보니 약자가 괴물이라도 된 듯 굴지 말고 말이다. 당장 불편한 이야길 듣기 힘들다면 나 자신과 내 주변의 가족, 친구, 아내의 이야길 들어보는 건 어떨까. 괴물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 말이다.


정말 우리나라의 이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사이에 차별이 없는가? 만약 있다고 생각한다면 수십 년 동안 자행된 이 차별을 어떻게 없애야 할까? 아니, 최소한 남녀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정도로라도 낮출 수 있을까? 미러링이라는 방법이 그렇게 패륜적이라면 규방 규수처럼 얌전하고 다소곳이 조용하게 속삭이면 당신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내 부인과 나는 흡연자이다. 내 부인은 곧 40이 되가는 나이에도 밤에 내가 밖에 나가 담배를 피려고 하면 부리나케 채비를 해서 따라 나선다. 아직도 밖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좀 그렇다고 한다. 나는 좀 그렇다는 느낌이 뭔지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니까. 







족발먹을래요?


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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