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5. 16. 목요일
산하
한창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고 돌아다닐 때(일 때문이니 오해하지 마시오) 들은 얘기가 있다.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치료가 어려운 일종의 ‘암’에 가까운 증상이 있는데 그것은 의부증 또는 의처증이라는 것이었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멀쩡한데 한 사람에 대하여 미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정상적으로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잘 벌고 대인관계도 괜찮은데 자기 배우자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인 사고 체계가 발동되고 질투망상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런즉, 문제의 질환을 가진 배우자는 생으로 목숨을 끊을만큼 괴로운데도 주변에서는 병을 가진 사람을 두고 “참 좋은 사람이 마누라 (또는 신랑) 하나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며 동정하거나 그 배우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언젠가 의처증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를 가까스로 빼내 인터뷰를 하는데 그 30분 동안 전화가 100통이 넘게 찍혔다. 아내는 거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아무리 옆에 있던 친구(여자)가 나랑 같이 있다고 얘기를 해도 남편은 “지금 어디야?를 반복했다. 그 남편의 머리 속에서는 지금쯤 아내가 누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모텔방에서 뭘 하고 있으리라는 망상이 쑥쑥 크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의사는 내게 진귀한 사례 하나를 들려 줬다. 환자가 자신의 친가 식구들에 의해 끌려오는 일은 매우 드문데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 손목을 잡고 왔더라고 한다. 이유인즉슨 이렇다. “딸네 집에 갔다가 딸이 없어서 아들네에 늦게 왔지요. 열쇠가 있어서 벨을 누르지 않고 집에 들어갔는데 며느리가 한 손은 침대에 한 손은 우리 애 손에 묶여 있는 거예요. 기겁을 하고 물었더니 애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거예요. ‘엄마 내가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잖아. 그때 이 여자 애인이 온다고. 그걸 막으려면 이 수 밖에 없어.’ 얘가 미쳤구나 그때 알았죠.”
질투망상에 빠진 이들은 앞서 말했듯 그 증상만 제외하면 거의 정상적인 생활인들이다. 그래서 그 광증을 의심받지 아니하며 되레 사람들은 그 망상을 믿거나 동조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위의 남편처럼 상대방의 ‘바람 피우는 능력’을 매우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저 여자는 번개같이 애인을 맞아들이는 능력이 있으며 저 남자는 잠깐만 한눈을 팔면 다른 여자 치마폭을 들추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잠든 동안에도 애인을 침대에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고 믿듯이. 또 하나 더 그 특징을 추가한다면 질투 망상에 빠진 이들은 매우 많은 ‘증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망상은 그들이 수집한 ‘증거’에 의해 더욱 공고화됐다. 아내 앞에 3분 이상 서 있던 이상한 벤츠 승용차는 기사가 화장실에 갔다 왔기 때문이 아니라 아내와의 밀담을 나누기 위해 그곳에 서 있었다. 남편의 와이셔츠에 묻은 붉은 자욱은 절대로 육개장 국물이 아니라 립스틱의 흔적이었고, 밤늦게 걸려왔다 말없이 끊긴 전화는 백퍼센트 애인의 전화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런 ‘증거’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배우자를 족치고 옥죄고 주변에 그 배우자의 부정을 폭로(?)하며 통탄해 마지 않았다.
외관상으로도 멀쩡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 하나 하지 않으며 사회 생활 잘하고 애들 잘 키우는 사람이 특정 대상에게만 미쳐 돌아가니 의처든 의부든 참으로 발견도 어렵고 고치기도 힘든 질병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요즘 전혀 새로운 질병의 출현에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게 된다. 그 병의 이름은 의북증이다.
정말 그렇게 생기지 않은 사람들이, 고등교육도 받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는 사람들이 ‘북한’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 것이다. 거기까지야 그렇다고 친다. 배우자의 부정을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너 북한 좋아하지? 종북이지?” 하는 광증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북한이라는 존재는 홍길동보다도 우월하고 전우치보다 신묘한 재능을 가진 대상으로 치부되며 '눈 깜짝할 사이 내 마누라를 훔쳐가는' 마누라의 애인같은 능력자로 등극한다.
그래서 모든 해킹은 다 북한이 한 것이며 수도권의 지하철과 가스관과 수도관을 일일이 피해 가며 휴전선 넘어 수원까지 땅굴을 팠고 광주항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인민군을 침투시켰으며 급기야 윤창중이 미국 방문할 것을 미리 알고 민주당의 박지원이 자신이 알던 여성을 인턴으로 취직시켜 윤창중을 옭아매는 계책을 세웠고 한국 외교관 가운데 성골만 간다는 미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도 종북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망상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 그것만 똑같은가. 참 증거들은 많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줄 모르는 탈북자가 “그때 광주에 인민군이 갔댔시오” 한마디 한 건 절대불변의 진리가 되고 “박지원이 그날 미국에 있었다,”는 윤창중 제거를 위한 종북들의 음모론의 주요 재료가 된다. 그러다보면 '윤창중 의병'이니 “이 기회에 종북 논객들 다 고발하시라,”는 광증이 부지불식간에, 그리고 알만한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들 손 잡고 정신 병원에 온 시어머니의 심경이 된다. “얘 가자. 어쩌다 네가 이렇게 됐니.”
질투망상을 가진 사람들의 마지막 특징 하나는 절대로 이혼을 하거나 상대방을 놔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 사랑을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배우자의 피를 말리고 스스로를 망쳐 나간다. 의북증 환자들도 같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자이며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으며 스스로 애국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광증 속에 자신들의 공화국을 죽이고 있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자유는 헌법상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대한민국 헌법의 팔목을 잡아 비틀어 자신의 침대에 묶어 놓고 있다. “북한은 번개같은 넘이어서 언제 들어와서 널 유린할지 몰라!”를 부르짖으면서 말이다.
정신과 의사들에게 진지하게 권고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집단 정신병에 대한 진지한 임상적 접근을 해 보기 바란다.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질투망상이 아니라 한 집단에 대한 과도한 피해망상이 탄생시킨 이 ‘의북증’은 정신병의 ‘암’이 아니라 ‘AIDS'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돕는 길을 찾아달라.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치고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신 의사 선생님들의 결의에 찬 선언을 기대한다.
“이것은 가정과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질병이며 적극적인 치료와 사회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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