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도시, 지금도 서안의 길은 바둑판 모양으로 무척 단순하다. 게스트하우스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니 남문 밖으로 나가 장안대학 근처로 가면 섬서성박물관, 대안탑, 소안탑 등의 관광지가 멀지 않은 거리에 모여 있었다. 제대로 된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WiFi가 되는 숙소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구글맵을 켜고 주변의 지리를 익히며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스크린샷을 찍어 두었다.
종루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12번이 장안대학으로 간다고 써있어서 올라 탔다. 버스에서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장안~'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같은 안내방송이 얼핏 들려 황급히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내리고 보니 이 정거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내린 곳은 장안입교(立交, lìjiāo) 정류장인데 이 말이 어째서인지 학교(学校 xuéxiào)비슷하게 들렸다. -_-;
아무리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대중교통망이 촘촘하게 조직되어 있을지라도 버스에서 멍때리는 길치의 앞길은 험난한 법이다. 이른 아침부터 헤매기 시작하니까, 오늘도 활기차게 길을 잃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길을 잃어주는 것이 거대한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의 예의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 정도만 길을 잃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침이고 기운이 넘치니 걸어보지, 하는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섬서성미술관이 보였다. 육교를 거슬러 가는 동안 어쩐지 이 길이 대충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행정입안자라면 그 지역의 문화적 지표를 보여주는 미술관을 지을 때는 당연히 소안탑과 같이 오래된 역사유적 관광지 근처에 부지를 잡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이 기회에 과천시 외곽의 고립된 산비탈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세운 독보적인 부지선정에 대해 딱히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 아니다.)
미술관 가는 길, 큰 건물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보고 미술관 특별전이라도 있나 아싸 하고 뛰어갔는데 가까이 가보니 도서관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줄을 선 학생들이 예뻤다. 무럭무럭 자라렴.
시안박물원(西安博物院 시안보우위엔) / 소안탑(小雁塔 샤오옌타)
주소: 西安市友谊西路72号
전화번호: 029-85238032
박물관 개장시간: 09:00~17:30(16:30까지 입장)
소안탑 개장시간: 09:00~17:00시안박물관은 2010년 3월 31일 이후로 무료로 개방하고 있고, 소안탑은 성인30/학생15위엔의 입장료를 받는다. 시안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하지만 등록제라 입구의 매표소에서 신분증/여권을 맡겨야 한다. 옆에 짐보관소도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금속탐지기 설치되어 있는데 삐익 울려도 경비원이 신경 안 쓰더라.
시안박물관 1층 전시관에는 진한시대의 부장품인 옥기와 금은기들부터 명청대의 작품까지 전시되어 있다. 역시 당나라 때의 금은기, 청동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당대의 호사스러움이 좋다. 절제하지 않고 출렁이는 당초문의 화려함, 이국의 문물과 도안, 문양을 모두 담아내는 풍요와 여유로움... 당시에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 예술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다니 감동받고 말았다.
2층은 서주 양식을 계승하는 서예가들의 합동전시, 관심 없어서 패스하고 내려가보니 지하에도 전시관이 있었다. 지하는 서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 중앙에 장안성의 모형과 터치스크린 화면으로 꽤나 많은 분량의 교육자료를 제공하지만 나의 짧은 중국어로 보기엔 어려워서 패스했다.
뒤로 가면 명청대의 서안 출토 유물들이 있다. 양식이 확립되며 훨씬 단정해진 장식과 도안, 명료하게 기능에 충실한 기형이 눈에 띄었다. 일테면 명대의 기와는 정형화된 스타일의 용이 전면에 꼭 차게 배치되는 식인데, 만약 이런 도안이 당대의 기와에 들어갔다면 테두리와 여백이 비어있게 내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하의 둥근 회랑 뒤에 따로 전시관이 두 개 더 있었다. 첫번째 전시관은 주진시대 문명을 보여주며 시작. 서주와 춘추시대 청동기, 고대 중국의 기하학적 문양이 잔뜩 새겨진 위압적인 고졸한 유물들. 전국시대의 청동악기를 지나 진대 병마용갱 출토품도 있었다.
한켠에는 시대별 동경이 한두 점씩 있어 형태와 문양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완전 역사교육장. 여기서 중국미술사 수업하면 정말 좋겠다.
아무 기대 없이 들어온(있는 줄도 몰랐던;;) 시안박물관에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끝인가 아쉬워하며 1층으로 다시 올라와보니 불교조각 전시실이 있네. 입구에 석불이 잔뜩, 어머나 절대 지나칠 수가 없잖아. 이번에도 전시는 시대 순서고 불상 전시배치도 이전만큼 교육적이었다.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전시였지만 새삼 놀라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북주시대, 그러니까 6세기 말 관음상 섹시한 거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랫배 툭 튀어나와서 저 야리야리한 표정 좀 봐. 관음이 다른 보살과 마찬가지로 남성이지만 여성성을 강조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때로는 여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왔다.
여성적인 매력을 특히 강조한 보살상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각을 만들었던 걸까 궁금해진다. 성적인 불만을 해소하는 통로는 아니었을까 싶고. 글쎄, 관음상보면서 딸딸이 좀 친다고 부처님이 대노하실까, 불쌍한 중생들아 쯔쯔 그러시지 않을까 싶은데.
당대의 오룡석주와 근사한 석가모니 석불을 지나쳐, 다시 청동불로 넘어와 수당오대십국 명청대 불상이 쪼르르 비교전시.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전시 내용;; 후다닥 돌았는데도 두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안 시립 박물관이 이 정도인데 산시성 박물관은 어떨까 두근두근하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 겨우 10월 20일 오전 반나절 지나갔는데, 사진이 너무 많군요. 간추려서 올려도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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