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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11. 화요일

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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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딱 욕 먹기 좋은 주제입니다. 사람마다 견해도 천양지차고 호불호가 극명한 데다 취향에 따라 닭고기만 좋아한다던지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인간취급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사람들이 고기를 대하는 태도는 성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한 쪽에선 고귀한 어떤 것으로 여기고 한쪽에선 그저... 응응 하하 이쿠이쿠, 생각없이 소비하고 버리고 터부시합니다. 강신주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손잡지 않고 악수를 하는 것처럼 고기를 대하는 태도는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삼겹살을 좋아하지만 돼지의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데리아에 호주산 청정우라고 써 있더군요. 호주의 너른 들판에서 아름답고 자유롭게 자란 깨끗한 녀석이겠군 하는 생각에 자이언트더블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계시진 않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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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먹고있는 고기가 어떻게 해서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공장형 축산으로 생산된 육류의 유통과정이 어떠한지 비밀도 아닌 비밀이 되었지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 눈감고 귀막고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앞으로 이야기 할 곡물메이저, 공장형 축산, 다국적 육류유통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라면 “뭘 이야기 하려고 이렇게 멀리가나”라고 의문을 품을 것이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독자들은 “내가 지금 매트릭스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곡물메이저와 공장형 축산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하고 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카길, 스위프트, 스미스필드푸드, 타이슨 푸드, 몬산토, 아바이젠, 엘란코, 신젠타 등의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전세계 곡물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육류 50% 이상의 유통에 관여하며 각종항생제와 유전자 조작품종, 성장촉진제, 농약, 고엽제등을 만들어내거나 농산물과 축산물의 판권을 쥐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고 있는 닭고기와 달걀의 품종은 대부분 이들이 특허를 소유하고 있고 KFC, 맥도날도, 버거킹등 패스트푸드점에 각종 육류와 곡물 가공품 등을 납품하는 회사들입니다.

 

 

 

이 중 카길 한 놈만 잡아보겠습니다. 모두 비슷한 구조이거나 서로서로 어렵고 힘들 때 알게 모르게 빨아주고 핥아주는 관계이니 고놈이 고놈이구나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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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길은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설립된 개인회사입니다. 법인, 주식회사 그딴 게 아니란 말이죠. 아직도 개인과 가족이 운영하는 초대형 다국적 개인회사입니다. 단 한 번도 회사 재정이 공개된 적이 없어 그 규모를 추정조차 못하고 있지만 만일 시장에 공개된다면 세계 10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라더군요. 국내엔 2000년대 초반 국내 1위 사료회사 퓨리나 사료를 집어 삼키고 급속도로 국내사료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카길의 운영도를 보면 농장들과 공생관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힘든 일은 농장에 다 시키고 열매만 따먹는 모습입니다. 우선 곡물농장과의 관계부터 봅시다. 곡물농장에 종자를 판매합니다. 대량 생산 할 수 있는 유전자 조작 종자를 판매하죠.

 

 

 

유전자 조작을 할 때 몇 가지 장난을 칩니다.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농약에만 반응 하도록 조작한 종자들입니다. 종자도 팔아 먹고 농약도 팔아 먹습니다. 모든 농장에 다 그렇지만 농약 살 돈 없다, 송아지 살 돈 없다, 병아리 살 돈 없다고 궁시렁 대면 대출도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이자 놀이도 하고 말이죠.

 

 

곡물농장에서 생산된 곡물을 사 들입니다. 대량으로 곡물을 수매한 뒤 선물시장에 참여해 곡물가를 쥐락펴락 하며 돈을 법니다. 이런 저런 곡물을 사들여 1차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 합니다. 시럽, 설탕, 물엿도 만들어 음료회사에 판매하고 씨리얼의 재료로 여타 식품회사에 판매합니다. 사료도 만듭니다. 광우병 이후부턴 소 사료에는 육골분을 넣지 않고 곡물로만 사료를 만듭니다. 대주주로 참여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사료에 넣어 소 사육농장에 판매합니다. 카길의 총체적인 운영철학은 꿩먹고 알먹고입니다.

 

 

 

 

 

주사.jpg

 

 

 

 

 

잘 길러진 소를 사들입니다. 자체 운영하는 도축장에서 소를 도축합니다. 어떤 부위도 버리지 않고 재가공 해 판매합니다. 1차적으로 고기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모으고 다져 햄버거 패티의 원료로 패스트푸드 회사에 판매합니다. 뼈와 골수, 잡고기는 갈아 개, 고양이, 돼지, 닭의 사료로 만듭니다. 축장에서 모아진 소, 닭, 돼지의 털과 부산물은 안락사한 개와 여타 동물들의 시체를 합해 퇴비로 만들어 곡물 장에 판매합니다. 닭, 돼지 농장과의 관계도 비슷한 싸이클로 돌아갑니다.

 

 

 

부산물이 부족하면 중소 도축장에서 싼 값에 부산물을 사들입니다. 캐나다에서도 사들이고 우루과이에서도 사 들입니다. 이런 저런 곳에서 사들인 부산물과 도축장에서 남겨진 부산물들을 모두 합해 육가공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 육가공 제품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과자에 들어간 고깃가루나 소고기 다시다에 들어간 고깃가루에도 이러한 형태의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고기가 들어갑니다. 무튼 큰 그림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이런 싸이클 안에서 각종 항생제와 질병들이 돌고 돌아 동물에게도 가고 토양에도 가고 사람에게도 이어집니다.

 

 

 

카길은 매우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먹는 빵의 밀가루, 국수의 밀, 달걀 프라이의 소금이며 토르티야의 옥수수, 디저트의 초콜릿, 청량음료의 감미료입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분이 먹는 샐러드 드레싱의 올리브유이며 여러분의 저녁식탁에 오르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입는 옷의 면이며 여러분 발 밑에 깔린 양탄자의 안감, 여러분이 경작하는 밭에 뿌리는 비료입니다.”

 

 

 

호연지기!! 이정도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을 대장부라 말한 사람이 맹자 뿐입니까? 호연지기 하면 우리 가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죠? 가카는 이런 대농을 보시며 "우리도 마 이와같은 농업을 해야한다 마" 생각하셨습니다. 기업농 육성이야 말로 우리 농업이 나아갈 방향이다!!

 

 

 

동우, 하림, 하림홀딩스, 농우바이오, 효성오엔비(효성이 빠질 수 없죠) 등이 가카 치세 안에서 성장했거나 상장한 대표적인 농업 관련주들입니다. 가카는 이들에게 광을 팔고 떠나셨습니다. 이들은 카길이나 몬산토를 롤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지만 가카에겐 FTA라는 삥이 있었다는 것. 귀도 잘리고 손목아지도 잘릴 것입니다.

 

 

 

각설하고, 곡물 메이저들이 개발한 선진화 축산법, 공장식 축산농법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넘어가죠. 선진화라는 게 별 것 없습니다. 합리(合理)적으로 판단해서 합리(合利)적인 생산을 하는 것이죠. 수익성이 극대화된 축산법입니다. 단언컨대 <매트릭스>에서 인간 사육장의 모습은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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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장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사용합니다. 성장 촉진제와 항생제는 시간을 단축시켜 줍니다. 3년은 자라야 600kg되는 소를 18개월 만에 키워내고 돼지는 6개월, 닭은 32일이면 고기가 됩니다. 소를 케이지에 가둬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잘라내고 마취없이 거세를 합니다. 닭은 부리로 곡물을 쪼아먹는 습성이 있어 사료를 많이 흘립니다. 좁은 케이지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약한 닭을 부리로 쪼기도 하지요. 그래서 아예 병아리 때 부리를 잘라 쪼아 먹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쪼아 먹지 않고 가루사료를 개처럼 코를 박고 먹게 만드니 빨리 자라고 사료도 아끼더라.’ 라는 것을 발견한 곳이 카길과 같은 회사들입니다. 이들은 이런 실험들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자라게 하고, 어떻게 하면 원가를 절감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 농장주들에게 교육시킵니다. 무한 싸이클을 완성하기 위한 그들의 합리(合利)적인 노력들입니다.

 

 

 

소는 본디 곡물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풀을 뜯어 먹고 살죠. 거친 섬유소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려고 위가 네 개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소에게 영양가도 높고 소화도 잘 되는 곡물사료를 먹이고 좁은 곳에 가둬두니 살이 찌고 지방이 많아지겠죠. 그런 소를 잡아봤더니 근육 사이사이에 지방이 촘촘히 박혀있지 않겠습니까. 해서 목축업자들은 ‘이렇게 맛있는 소고기는 우리만 만들 수 있으니 농림부에 로비해 소고기 등급제를 만들면 우린 대박’ 그래서 소고기 등급제가 생겨납니다.

 

 

 

들에서 뛰어 다니는 소는 꽃등심이 생겨날 겨를이 없습니다. 혹시 야생 노루나 고라니의 고기를 드셔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무슨 횡제 한 것처럼, 정력 좀 좋아질 것 같은 기분에 한 입 먹는 순간 매우 뻑뻑하고 목이 메인다는 것을요. 날이면 날마다 뛰어다니는데 지방이 근육사이에 들어찰 겨를이 없겠죠. 야생 소를 맛 보진 못했지만 야생 소도 비슷할 것입니다. 부드럽고 촉촉한 꽃등심은 죽을 때 까지 먹기만 한 소의 고기라는 사실을 알고나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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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송곳니를 자릅니다. 꼬리는 심심하고 스트레스 받은 돼지들끼리 꼬리 잘라 먹기 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장난치지 마라! 미리 잘라 버리는 것이죠. 송곳니는 어미 젖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릅니다. 어미 돼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엄마 아프지 말라고? 아니죠. 또 새끼를 배야하는데 유방염이라도 걸리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음에 태어날 동생들을 위해 형아, 누나들의 송곳니를 잘라 주는 것입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마스크와 무균복을 지급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어미 돼지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미 돼지는 이렇게 새끼를 낳고 한 달 후에 가임촉진제(?)를 주사해 또 임신을 시킵니다. 그러다 출산율이 저조하면 등급 낮은 고기로 판매됩니다. 무한리필, 1인분 2900원, 배터지는 돈까스 등이 모돈의 고기들입니다.

 

 

 

이 외 잔인한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육과정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뛰어 넘어 도축과정으로 넘어가지요. 카길표 병아리, 송아지, 돼지는 카길 사료, 항생제, 성장 촉진제를 먹고 자라 다시 카길 도축장으로 소환됩니다. 헨리포드는 도축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며 도축되는 소를 보고 자동차 생산라인을 구상했다더군요. 역시 난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도축장에 들어온 동물들은 체인에 뒷발이 묶여 컨베어 벨트를 타고 이동합니다. 전기충격을 가하거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쉬거가 들고 다니는) 에어건으로 충격을 가해 기절시킨 뒤 목에 칼을 넣어 피를 빼냅니다. 이 때 기절 안 한 소, 돼지들이 살아 날뜁니다. 산채로 피를 뽑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빼냅니다. 하룻동안 수 천에서 수 만마리를 이렇게 도축하니 거기 서서 전기 충격을 넣는 사람도 꾸먹꾸먹 졸기도 할테고 발길질을 하는 소의 목에 칼을 꽂으며 사무라이가 된 기분도 들겠죠. 모든 과정에 윤리가 깃들 틈이 없는데 윤리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문제는 키우는 것 까지는 어떻게 구경할 수 있겠는데 도축하는 모습은 내부고발이 아닌 이상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도살을 멀리 했습니다. 망나니와 백정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죠. 망나니와 백정에게 가장 하기 싫은 일을 시키고 밥상머리에 앉아 고기국 맛보는 것으로 일반 대중은 동물의 죽음에 대해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이 일을 해주겠다고 나선 이들이 우리에게 ‘안심, 안심’주문을 외웁니다.

 

“안심하고 드세요.”

"뒤에서 더러운 일은 우리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제 글이 언제나 그렇지만 '해봐서 아는데'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소를 키웠습니다.

처음엔 한 두 마리 키우다 나중엔 100여 마리까지 키웠죠. 이렇게 많은 소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사료 덕택이었습니다. 한 두 마리 키울 때는 볕집과 풀을 베어 먹이다 사료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생장 속도도 빨라지고 그만큼 수입도 늘게 되었죠. 한 두 마리 키울 땐 줄을 길게 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했지만 마리 수가 늘어나자 줄을 좁게 매게 되었고 100여마리를 키울 때는 고개도 못 돌리게 짧게 줄을 매 키웠습니다. 100여마리를 사료 먹여 키우다 보니 사료 값이 너무 많이 들게 되었죠.

 

 

 

사료 값을 줄일 궁리를 하다 쌀가루를 만납니다. 당시 삼촌은 ‘수복’을 만들던 백화양조에 다녔습니다. 정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쌀은 일반 백미보다 훨씬 더 심하게 도정을 합니다. 쌀가루가 많이 나오겠지요. 삼촌을 통해 그 쌀가루를 백화양조에서 헐 값에 사와 소에게 먹였습니다.

 

 

 

마을 인근에 두부 공장이 있었습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하루만 지나도 상해 악취를 풍겨 처치곤란이었는데 소에게 먹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매일 아침 두부찌꺼기를 실어 날랐습니다. 쌀가루와 두부 찌꺼기를 먹으며 꼼짝도 못한 소는 900kg까지 살을 찌웠습니다. 마블링도 최상이어서 항상 최고등급을 받았었죠. 지금 말하는 선진화 축산법의 베타테스트??

 

 

하루는 저녁을 먹은 소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더군요. 배에 가스가 차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의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스를 빼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소의 배는 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몇 분 만에 소는 주저앉아 숨을 못 쉬게 되더군요. 아빠는 죽창을 만들어 소의 배를 찔렀지만 가스가 빠져 나오기 전에 소는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곡물 사료를 주로 먹는 소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라더군요. 당시까지는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흔한 일이어서 가스를 빼내는 응급처치용 기구도 있다더군요. 사료를 먹여 발생한 일인데 사료를 먹이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배에 구멍을 뚫어 가스를 빼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다분히 인간적인 처사이지요. 쩝.

 

 

 

풍선.jpg

 

 

 

 

 

8살. 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 다녀왔더니 누렁이가 전봇대에 목을 매고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 봤습니다. 누렁이는 내가 태어났을 때도 누렁이였던, 나보다 두 살 많은 늙은 개였죠. 어리둥절 하는데 아빠가 마루에 저를 앉히더군요. “닭은 3년 개는 10년이라고 했다. 닭은 3년을 살면 귀신이 되고 개는 10년을 살면 귀신이 되는 것이다.” 뭔 개소리람??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누렁이는 저녁상에 올랐습니다. 다시는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며 밥상을 밀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울었습니다. 5년 후 누렁이의 딸 꺼뭉이가 그렇게 될 때는 강가에 나가 밤이 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이뻐하던 녀석들이 사라졌습니다. 종종 슬펐고 그러려니 하게 되더군요.

 

 

 

 

12살. 초등학교 5학년. 마을 친구의 집은 돼지와 개를 키웠습니다. 친구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있었고 친구가 개와 돼지를 돌봤습니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친구와 함께 송곳니를 자르고 어미 젖을 물렸습니다. 그때는 꼬리 자르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동안 친구 집으로 개를 사러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친구 아빠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으면 손님들을 데리고 개 사육장으로 모십니다. “저놈" 우리는 그 놈을 전봇대에 매달고 머리를 쳐 죽였고 털을 그을린 다음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하고 몸을 4등분 해 손님에게 건네줬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많은 수의 개를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개를 사러 왔더군요. 나보다 두세 살 어린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 아빠가 개를 사러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개를 같은 방법으로 잡고 있는데 여자 아이의 엄마는 자꾸만 여자아이의 눈을 가리더군요. 여자아이는 가리는 엄마의 손을 치우며 보던 것을 계속 보려 하구요. 그 아이의 엄마는 웃는 건지 인상을 쓰는 건지 모를 묘한 표정으로 우리가 하는 짓을 지켜보다 결국 목을 자르고 배를 가를 때 아이를 데리고 차로 가버렸습니다. 지금이야 이런 꼴이 아동학대다 뭐다 하며 날뛰겠지만 그때 촌 것들은 그저 하는 짓들였습니다. 진짜 학대는 그 아주머니의 표정과 행동였습니다. 당시에도 뭔지는 몰랐지만 상당히 기분나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뭘봐!” 라고 말하고 싶었던 기분였습니다. 내 꼴이 우스워 보이나? 개가 맛있어 보이나? 징그럽나? 내 애는 저런 것 보여주고 싶지 않나? 의외로 흥미로워 보이기도 하는 건가? 나와 친구가 불쌍하기라도 한건가? 그 아주머니의 마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누렁이가 죽던 날은 오랫동안 슬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반면 친구집에서 개를 도축하던 기억은 오랫동안 그저 그런 기억처럼 여겨졌습니다. 마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두 주검을 대하는 동진의 태도와 같은 것이었지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일상이 바빠지고 친구의 일을 돕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두 집 부모들이 늙어가며 축산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일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른이 넘어 집을 찾았을 때 아주 묘한 경험을 하며 누렁이와 도살된 개에 대한 관점이 180도 바뀌게 됩니다. 엄마는 아빠를 여의고 집에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동물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는데도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개하고 말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말이죠. 내가 닭장에서 닭을 몰아갈라치면 닭들 놀라지 않게 살살 하라며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빠 제삿날 닭을 한 마리 잡으라데요. “아니. 애지중지 키우더니 그것을 왜 잡어. 알도 잘 낳고 보기도 좋구만 그래”, “잡기 싫으냐? 인자 그런것 못허냐?”, “못할 거 뭐 있것어. 허자면 허지만...” 사실 내키지 않았지만 잡으라니 잡았죠. 목을 비틀고 가슴에 칼을 꽂아 넣을 때 엄마는 눈을 질끔 감으며 “하이고 어찌케 그것을...” 이라고 혼잣말로 안타까워하며 뜨거운 물을 부어주셨죠. 그렇게 닭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1년 반 정도 집에서 자란 닭은 엄청나게 크고 실했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토종 닭은 품종만 토종 닭인 것이죠.

 

 

 

제사 다음날 아침 엄마는 장작을 때 닭을 삶아 밥상에 올렸습니다. 매형들은 뜨악한 탄성을 내더군요. 이렇게 큰 닭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니와 닭 대가리와 닭발이 함께 붙어 있는 닭 백숙을 본적이 없었던 것이죠. 닭다리를 떼어줘도 먹는 둥 마는 둥하는 사위들을 보며 엄마는 서운해 했고 다시는 매형들에게 닭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그날 아침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누렁이와 꺼뭉이를 잡던 날을 떠올려 보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아무도 웃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울먹이기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보신탕으로 밥상에 올랐을 때도 조용히 밥을 먹었고 투정을 부리고 울먹이는 나를 나무라지도, 달래지도 않았습니다.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밥 먹이고 아프면 약 먹이고 눈 오면 부엌으로 들이고 비오면 마루를 비워주고 밭과 논에 갈 때 앞장서 길맞이를 하던 개를 잡는 것은 모두에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린 것 울어대는 꼴도 견디기 쉽지 않았겠죠. 하지만 감래하고 고기로 맞이했을 것입니다.

 

 

매형들은 후라이드치킨 매우 좋아합니다. 계곡에라도 가면 닭 백숙이라도 하자고 먼저 서둘죠. 하지만 단 한 번도 목숨과 시간을 감래해 보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엄마가 어떤 감래를 하고 닭을 잡았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매형이나 이런 상황에 처했을 여러분을 나무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농장에서 병아리 한 마리 목숨은 파리, 모기 목숨만도 못합니다. 수컷으로 부화하는 순간 갈려 사료가 됩니다. 그러니 아프다고 약을 먹이겠습니까, 춥다고 방에 들이겠습니까. 죽으면 마는 것이죠. 감기에 걸리면 병아리 값 보다 비싼 약을 사다 먹이고 잘 걷지 못하면 지렁이라도 잡아다 먹이며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냅니다. 새벽에 울면 밥 값 한다고 좋아하고 알이라도 낳으면 그런 화색이 없지요.

 

 

“산것인게 안 죽게 키는 것이지.” 초등학교만 나와 겨우 성경 책 정도만 읽을 줄 아는 무지렁이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날 이후 그저 그런 도살의 기억들은 슬픈 기억이 되었습니다. 산 것을 그렇게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죠. 반면 누렁이와 꺼뭉이의 죽음은 꾹 참고 ‘무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짐승이 짐승을 먹을 때처럼 무심하기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지난 초겨울 무렵에 말 잘 듣고 순하다며 칭찬하던 워리를 잡았습니다. 이모네 나눠주고 조금 남았다며 먹을지를 묻더군요. 그래서 주라고 했습니다. “생전 안먹더만 뭔일여.” 화색이 돼서 보신탕을 끓여 내 주데요. 20대 초반부터 다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누렁이 이후로 단 한 번도 나에게 개고기를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는다니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남은 걸 싸줘서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보신탕.jpg

 

 

 

지금은 복실이가 마당에 있습니다. 까불고 말도 안듣는다며 궁시렁거리지만 밖에 다녀와 휑한 집에 반기는 개라도 있어 좋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엄마는 복실이와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박상표지음- 개마고원>을 참조하였습니다.


※ 고기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였고 고기가 식재료로 활용되는 방법에 대해선 

다음 회에 구체적으로 디벼보겠습니다.


※ 고기를 먹기 전에 읽어볼 만 한 책으로 <채식의 배신>을 추천합니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이고 비논리로 가득해 보이지만 

육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가장 앞선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춥니다.


※ 앞서 올린 장에 대한 이야기들과 매우 유사한 이야기로 EBS에서 다큐를 만들었더군요.


                                                              <EBS 다큐 프라임.아시아 음식의 비밀 장>


 

 

 

 

 

Ath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