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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셋째를 낳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내가 사는 동네 탓이 큰 것 같다.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다산의 수맥이 흐르는 마을'이라고들 한다. 외동은 몹시 신기해서 한 번 더 외동임을 물어보는 곳, 둘은 정상, 셋은 기본인 곳이 우리 동네다. 요즘 세상에 넷도 있고 다섯도 있는 동네가 우리 동네요, 병설 유치원 3자녀 이상 우선 추첨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라 3자녀라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 또한 우리 동네다.


이런 동네에서 살다 보니 남편은 자식 셋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나 역시 고민고민 하다가도 다들 셋씩 달고 다니는 엄마들을 보며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얻은 나머지 셋을 낳은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없던 애도 생긴다는 우리 마을로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마을 협동조합이라는 게 생겨났다. 마을 곳곳에 필요한 일들도 함께하고 아이들도 함께 키우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밖에서 싸우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할 때는 반찬 나눔 사업도 함께 하는 마을조합이다. 내가 집을 비울 때 내 아이가 부담 없이 가서 쉬기도 하고 유기농 간식도 사 먹을 수 있는 조합 터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사교육 없이 아이 키우기, 회복적 정의같이 좋은 강의를 열기도 하는 마을조합이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지혜가 자라게 해주는 마을조합이다.


조합이 싹을 틔울 때는 둘째가 너무 어려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했고 둘째가 유치원 가면서는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했고, 작년부터는 셋째를 품고 기르느라 마을조합에 무심했다. 한마디로 나는 마을조합의 혜택을 마구마구 받으면서도 늘 무임승차만 하고 있는 조합원이다.

 

이 마을조합에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학교를 열었다. 자전거 학교, 에너지 학교도 있었고 청소년 진로 탐색 프로그램인 유스쿱도 열렸다. 생태 교실과 별학교도 빼놓을 수 없는 학교이다. 마을학교가 열리기 전부터 야구를 좋아하는 동네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야구클럽도 있었는데 이 클럽도 마을학교로 편입되었다. 좋은 강사 선생님과 멋지고 고마운 마을의 삼촌과 이모들이 보조 교사로 참여하여 꾸려지는 마을학교에서는 내 아이도 예쁘고 남의 아이도 예뻐서 서로 웃으며 배우고 뒹굴며 함께 먹으니 고운 정, 미운 정에다 먹으면서 쌓이는 음식 정까지 듬뿍 느낄 수 있어 그야말로 마을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배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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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큰 아이 고래는 에너지 학교와 야구클럽 학생으로 마을학교에 발을 들여놓았다. 엄마가 입덧이 심한 데다 아빠도 바빠서 자칫 지루해서 스트레스가 쌓일 뻔한 여름방학 동안 에너지 학교와 야구클럽은 배움도 배움이지만 고래의 탈출구이자 엄마의 탈출구 역할을 톡톡이 했다. 셋째가 누구를 만나든 생글생글 웃어주는 아이로 태어난 것의 절반의 공은 우리 고래에게 탈출구를 마련해 주어 엄마를 덜 괴롭히게 해 주었고 친구들과 마을 어른들과 뒹굴면서 철들게 해 주어 엄마를 좀 더 어른스럽게 대해 준 마을학교에 돌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에너지 학교를 보내면서 고래에게 아쉬운 얼룩 하나를 남겨줄 뻔한 적이 있었다. 에너지 학교의 대미를 장식하는 프로그램 1박 2일 캠프 때문이었다. 아빠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 모여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고, 자전거를 돌려 만들어진 에너지로 영화를 보는 1박 2일의 야심 찬 캠프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 그날 남편은 밤늦게 일이 끝나는 데다 나는 임신 초기에 둘째까지 데리고 바깥 잠을 자기도 곤란한 처지라 캠프에 참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고래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해를 하면서도 언성이 높아질 뻔했고 다양한 보상책을 짜내어 제시해야 했다. 그래도 아이를 설득한 후 주최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캠프 포기하겠다고 단체 카톡방에 올렸더니 조금 후에 주최 측에서 따르릉 전화가 왔다. 마을 삼촌과 이모들이 돌볼 테니 캠프 참석하면 좋겠다는 조근조근하고 따뜻한 권유가 귀에서 뇌를 거쳐 심장에까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고맙고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고,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우리 큰 아들까지 맡기자니 너무 미안하기도 해서 선뜻 말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정 부모님처럼 다른 집안 다 부모가 오는데 내 아이만 부모 없이 덜렁 보내 놓으면 내 아이 천덕꾸러기 된다고 아예 보낼 생각 하지 말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간 마을 조합을 지켜본 세월이 있는지라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지 않았기에 그런 걱정일랑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단지 너무 고마웠고 내가 그다지 열심히 도운 게 없는데 내 아이를 맡긴다는 게 미안할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래도 너무나 따뜻하게 권해주었기에, 아이가 간절히 원했기에 나는 미안함을 누르고 준비물을 챙겨 아이를 학교로 보냈다. 제발 어른들 말 좀 잘 듣고, 삼촌, 이모들 힘들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1박 2일 동안 아이는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 행복했고, 좋아하는 불장난, 물장난하느라, 옆 사람과 소근거리며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느라 삼촌과 이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겨울 방학이 시작할 때까지 짧은 캠프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몰랐고 내년에도 마을학교 하는 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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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생길 뻔 한 얼룩이 한 페이지의 화려한 추억이 되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내 아이를 마을학교에 보냈을까? 마을학교에서 내 아이가 얻었으면 하는 게 도대체 무얼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나는 내 아이가 가족, 친구, 마을처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함께 어울려 정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고, 서로 기다리며 함께 나아갈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마음 깊숙히 자리 잡았으면 해서 마을학교에 보냈다. 더 많은 돈을 주고 리틀 야구단에 보내고, 전문적인 에너지 캠프에 보내면 그 분야의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얻겠지만 화를 내기도 하고 싸울 때도 있지만 서로 배려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배워가며 정을 나누지는 못할 것이다.


조금 덜 배운 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더 빨리, 더 많이 배울 테지만 이런 공동체 의식은 배우고 싶다고 쉽사리 배워지는 것도 아니고, 배우려고 마음먹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런 것이야말로 조기교육을 통해 아이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과 몸에 묻어나야 어른이 되어 힘들고 고달프고, 바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에 이 소망을 이뤄줄 마을학교에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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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돕고 도움 받을 수 있기를

 

올해 우리 고래는 자전거 학교와 별학교, 야구클럽을 하고 있다. 자전거 학교에서는 2박 3일이나 강원도로 자전거 일주 캠프를 다녀왔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캠프, 나만 잘 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속도를 맞추고 호흡을 맞춰 달려야 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속에 함께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조금 더 짙어졌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지만 함께 해준 삼촌과 이모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주고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셋째도 마을조합과 마을학교가 있기에 이 험한 세상에 내보내면서도 걱정이 덜해진다. 우리 마을과 마을조합, 마을학교가 올바르게 잘 클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하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동네 속에서 조기교육을 받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고래엄마


편집: 딴지일보 cocoa